|
본문 |
이 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이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峯)들을 대면(對面)하려고 새댁 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峯)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容易)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 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野山)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氣稟)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 반(朝飯) 후 단장(短杖)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 웃음경삼아 탐승(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遠近) 산악이 열병식(閱兵式)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萬山)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 학천봉(萬壑千峯)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山色)은 붉은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靑)이 있고, 녹(錄)이 있고, 황(黃)이 있고, 등(登)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朱紅)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 잡한 것은 색(色)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多岐)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峻痒)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溫厚)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凡俗)이 아니다.
산 의 품평회(品評會)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無窮無盡)이다. 장안사(長安寺)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鬱鬱蒼蒼) 우거진 것은 다 잣나무뿐인데, 모두 이등변삼각형(二等邊三角形)으러 가지를 늘어뜨리고 섰는 품이,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차례탑(茶禮塔) 같다. 부처님은 예불상(禮佛床)만으로는 미흡(未洽)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른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千萬不當)한 말 같지만, 탐내는 그것이 물욕(物慾)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고 보면,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佛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溪流)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峽谷)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찾집이 있다.
다 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紙面)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明鏡臺)!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慙愧)함이 없는 공명(公明)한 심경을 명경지수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惡心)을 여기서만은 정(淨)하게 하지 아니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천담(黃泉潭)을 발 밑에 굽어보며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절벽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化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유무(有無)를 이 명경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影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 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猶不足)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日常)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可驚)할 일인가?
신 라조(新羅朝)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麻衣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 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송(念誦)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業罪)를 명경(明鏡)에 영조(暎照)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雲上氣稟)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登極)하실 몸에 마의(麻衣)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佛法)이 말하는 전생의 연(緣)일는지 모른다.
두 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처럼 막아 서는 웅자(雄姿)가 석가봉(釋迦峯)! 뒤로 맹호(猛虎)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峯)!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狹窄)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狹谷)!
몸 에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由來談)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深海)같이 유수(幽邃)한 수목(樹木)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천 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至賤)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 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花園)이요, 벽공(碧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봉봉(峯峯)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난만(百花爛漫)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不意)의 신화(神火)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眞珠紅)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海綿)같이, 우러러 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 풍이 이렇게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金兄)은 몇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畵幅)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 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 림 같은 연화담(蓮花潭) 수렴폭(垂簾瀑)을 완상(琓賞)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石階)와 목잔(木棧)과 철삭(鐵索)을 답파(踏破)하고 나니, 문득 눈 앞에 막아서는 무려 3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5천 척의 망군대(望軍隊)―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 름도 정다운 백마봉(白馬峯)은 바로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毘盧峯)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밖에도, 유상무상(有象無象)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戰時)에 할거(割據)하는 군웅(群雄)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千仞斷崖), 무한제(無限際)로 뚝 떨어진 황천계곡(黃泉溪谷)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七寶丹粧)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詞衍)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여장(旅裝)을 풀고 마하연암(摩詞衍庵)을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禪院)이어서,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러 30명은 됨직하다. 이런 심산(深山)에 웬 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한없은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無限淸山行欲盡]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白雲深處老僧多]
옛 글 그대로다.
노독(路毒)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溫故之情)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김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 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의 낙화(落花) 송이 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 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 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 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춘향(春香)이 태형(苔刑) 맞으며 백(百)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陋名)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告祝)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定配)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 백작(伯爵)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갔다.
자 꾸 깊은 산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群小峯)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陰散)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銀梯), 금제(金梯)에 다다랐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煙霧)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우장(雨裝)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가, 돌연 일진 광풍(一陣狂風)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운무(雲霧)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 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가며 짜 놓은 비단결 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 꽃보다 단풍이 배승(倍勝)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우세(雨勢)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濃霧) 속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영봉(靈峯)을 영송(迎送)하는 것도 가히 장관(壯觀)이었다.
산 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로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滄海)로 변해 보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 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絶頂)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童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先着客)들이 자리를 사양해 주었다. 인정이 따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뒤집히는듯하다. 용호(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노(大怒)하신 것일까? 경천동지(驚天動地)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이렇게 만상(萬象)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肝腸)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졌다. 변환(變幻)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 로봉 최고점(最古點)이라는 암상(巖上)에 올라 사방을 조망(眺望)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雲海)뿐,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 외 해(內外海) 삼 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쑤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척을 가하고 오연(傲然)히 저립(佇立)해서, 만학천봉(萬壑千峯)을 발 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일랴.
마음은 천군만마(千軍萬馬)에 군림하는 쾌승 장군(快勝將軍)보다도 교만해진다.
비 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 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던― 철책(鐵柵)도 상석(床石)도 없고, 풍림(風霖)에 시달려 비문(碑文)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 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化石)된 태자의 애기(愛騎) 용마(龍馬)의 고영(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素服)한 백화(百花)는 한결 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 자의 몸으로 마의(麻衣)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千年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정비석(鄭飛石)
1911 ∼ 1991. 소설가. 본명은 서죽(瑞竹).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22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문과를 중퇴하였다. 1940년 매일신문 ( 每日新聞 ) 기자, 1945년 중앙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하였다. 이어 1961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처 음에는 시 〈 어린 것을 잃고 〉 (1935)를 ≪ 동아일보 ≫ 에 발표하였으나, 1936년 단편소설 〈 졸곡제 卒哭祭 〉 가 ≪ 동아일보 ≫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어 1937년에는 단편소설 〈 성황당 城隍堂 〉 이 ≪ 조선일보 ≫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그 뒤부터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을 대표하는 〈 성황당 〉 은 천마령 깊은 숲 속에서 숯을 구우며 사는 순박한 현보와 서낭신을 숭배하는 순박한 아내 순이와의 토속적인 삶과 그들의 건강한 부부애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천마령의 풍성한 숲과 나무에 삶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서낭당의 서낭신을 숭배하며 사는 질박하고 건강한 삶은, 1930년대 후반에 성행하였던 내면의식의 분석적 추구를 보였던 문학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어 1940년 ≪ 문장 文章 ≫ 8월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 제신제 諸神祭 〉 에서는 육체적 욕망과 기독교 교리 사이의 어긋난 문제가 드러나 현실적인 삶의 고통을 주제로 드러냄을 볼 수 있다.
이 러한 작품 경향과는 달리 〈 고고 孤高 〉 (文章, 1940.3.)에서는 해외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애국지사인 춘파 선생을 묘사하면서,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선배들의 행적이 ‘ 피투성이의 기록 ’ 인 것을 깨닫고 그 원고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보인다.
여기서 원고를 없앤 데 대하여 애석하다는 뜻을 그를 존경하는 청년이 말하자 춘파 선생은 “ 지금 청년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새로운 역사를 첫줄부터 창조 ” 할 것을 말하고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 보이듯이 그는 애욕의 도덕적 문제와 종교이념의 현실적 한계 인식, 그리고 지사의 풍모 등을 작품의 주요 과제로 삼고 창작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 러한 작품의 흐름에서 〈 청춘의 윤리 〉 (每日新報, 1944) · 〈 고원 故苑 〉 (白民文化社, 1946) · 〈 자유부인 自由夫人 〉 (서울신문, 1954.1. ∼ 8.) 등은 그의 애욕과 도덕의식을 당시대적 풍조 속에서 조명하면서 대중적 흥미로 이끌어갔음을 말하여주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뒤 에 〈 명기열전 名妓列傳 〉 (1977) · 〈 소설 손자병법 〉 (1983) · 〈 소설 초한지 〉 (1984) · 〈 산유화 山有花 〉 (1984) · 〈 소설 연산군 〉 (1984) · 〈 소설 삼국지 〉 (1985) 등 역사적 장편물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삶에 내재한 욕망과 그 모순 및 다산성(多産性)의 역사적 · 풍속적 문제들을 다루어 대중적 호응을 크게 받았다.
수필집 ≪ 비석(飛石)과 금강산의 대화 ≫ (1963)는 금강산의 풍경을 주요하게 다룬 것으로서 시적 정치가 넘치는 명문으로 평가받았다. ≪ 소설작법 小說作法 ≫ (1946)도 당시 중요한 창작의 지침서로 널리 읽혀졌다.
≪ 참고 문헌 ≫ 朝鮮新文學思潮史(白鐵, 首善社, 1948), 韓國現代小說史(金宇鍾, 成文閣, 1978), 韓國現代小說史(李在銑, 弘盛社, 1979), 韓國文學史(大韓民國藝術院, 1984).
설명
<사진설명: 강원도 금강군 내금리 금강산 만폭동 입구에 자리한 북한의 표훈사. 국보 문화유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금강산 4대 사찰인 유점사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찰이다.>
산정무한(山情無限) : 산에서 느끼는 감정과 흥이 끝이 없음
고단한 마련 해선 :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영봉(靈峰) : 신령스러운 산봉우리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 아름다운 금강산의 절경을 처음 보는 데서 오는 설렘을 새댁의 수줍음에 비유하여 표현한 구절이다. 금강산에 대한 작자의 기대와 애정이 담겨 있다.
준봉(峻峰) : 높고 험한 산봉우리
청운의 뜻을 - 나무들이었다. : 마치 대망(大望)이라도 이루려는 듯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근심 없이 자란 나무’란 표현과 어울려 인위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의 원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외틀어지고 : 비뚤게 틀어지고
단장(短杖) : 지팡이
전정(前程) : 앞길
웃음경삼아 : 웃음을 주는 경치로 삼아
탐승(探勝) : 경치 좋은 곳을 찾음
만학천봉(萬壑千峰) : 수많은 골짜기와 산봉우리들
등(橙) : 오렌지 색
다기(多岐) : 여러 갈래
준초(峻 )하고 : 가파르고 험하고
차례탑(茶禮塔) : 차례 때 높이 괴어 올린 제물
예불상(禮佛床) : 예불시 음식물을 차려 놓은 상(床)
부앙(俯仰) : 굽어보고 우러러봄
참괴(慙愧) : 부끄러움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 :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사사로움이 없이 정당하고 맑은 마음. <맹자> 인용
군
자삼락(君子三樂) 군자의 세 가지 낙. 첫째,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출전]《孟子》〈盡心篇〉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말. 전국 시대,
철인(哲人)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B.C. 372?∼289?)는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君子有三樂(군자 유삼락)]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澤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
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한편 공자는
《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에서 '손해 되는 세가지 좋아함[損者三樂(손자삼요)]'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 [유사어] 익자삼요(益者三樂) [반의어] 손자삼요(損者三樂)
명경지수(明鏡止水) : ‘맑은 거울과 잔잔한 물’이라는 뜻으로 아주 맑고 깨끗한 심경(心境)을 일컫는 말
반공(半空) : 중천(中天)
외연(巍然)히 : 높고 크게 우뚝이
층암절벽(層巖絶壁) : 험한 바위들이 층층이 쌓인 낭떠러지
영자(影子) : 그림자
반영(反映) : 반사되어 비침
인간 비극은 - 거울에서 출발했다. : 인간은 거울을 봄으로써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열등 의식이 싹터 고뇌와 비극이 시작되었고,
또한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아 자신을 개선하고 환경과 생활을 고쳐 나감으로써 문화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억설(臆說) : 근거나 이유가 없는 억측의 말
유부족(猶不足)할 : 오히려 부족할
가경(可驚) : 놀랄 만함
염송(念誦) : 마음 속으로 부처를 생각하여 염불을 욈
업죄(業罪) : 전생에 지은 죄
영조(映照) : 밝게 되비춤
운상기품(雲上氣稟) : 속됨을 벗어난 고상한 기품. 곧 왕족의 기품으로 백성의 세계에 대하여 왕족의 세계를 이룸
염마(閻魔) : 염라 대왕. 저승의 임금
웅자(雄姿) :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 웅장한 모습
신용 : 신과 같이 거룩한 용모
협착(狹窄)한 : 매우 좁은
진퇴유곡(進退維谷) :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어찌할 길이 없음
절박감(切迫感) : 매우 급한 느낌. 다급한 느낌
유래담(由來談) : 사물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
유수(幽邃)한 : 그윽하고 깊숙한
지천(至賤) : 너무 많아 조금도 귀할 것이 없음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 온 산과 계곡이 단풍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단풍으로 이루어진 산과 바다와 같다. 황홀하고 찬란한 단풍을 표현한 것이다.
요원 : 불타고 있는 벌판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이요, - 한 떨기의 꽃송이다. : 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표현. 산과 봉봉은 그대로 단풍에 덮여 있으므로 산과 봉우리는 곧 단풍이라 할 수 있다.
벽공 : 푸른 하늘
외연히 : 산 따위가 매우 높고 우뚝하게
백화난만(百花爛漫) : 온갖 꽃이 피어 한창 무르익어 곱게 흐드러진
신화(神火) : 도깨비불. 까닭 없이 저절로 일어난 불
진주홍(眞朱紅) : 진한 주홍빛. 새빨간 빛
해면(海綿) : 갯솜. 동물의 뼈로서 솜같이 된 것
화폭(畵幅) : 그림을 그려 놓은 종이 헝겊 등의 조각
감흥(感興) : 마음에 느끼어 일어나는 흥취
다리는 줄기요 - 물들어 버린 것 같다. : 탐승하는 일행을 나무에 비유하여 마치 몸의 다리는 줄기이고 팔은 나뭇가지이며,
피부는 온통 단풍의 빛깔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완상(玩賞)하며 : 즐기며 구경하며
석계(石階) : 돌계단
목잔(木棧) : 나무로 사다리처럼 놓은 길
철삭(鐵索) : 철사로 꼬아 만든 줄
답파(踏破)하고 : 끝까지 다 걸어가고
일망무제(一望無際) : 멀고 넓어서 바라보는 데 막힘이 없음
광활(廣闊) : 환하고 넓음
지호지간(指呼之間)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
유상무상(有象無象) : 세상 물건을 이것저것 구별하지 않고 통틀어 일컫는 말
유상무상의 - 저기에서도 불끈, : 갖가지 모양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모습을 싸움터의 영웅에 비유한 것이다.
전시(戰時) : 전쟁 중에
할거(割據) : 제각기 땅을 차지하여 자리를 잡음
군웅(群雄) : 많은 영웅들을 이르는 말이나 여기서는 많은 산봉우리를 이름
천인단애(千 斷崖) :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칠보 단장(七寶丹粧) : 여러 패물로 단장함
환대(歡待) : 반가이 대접함
선원(禪院) : 참선(參禪)하는 절
이런 심산에 - 많을까? : 은근히 당나라의 시인이 쓴 시구인 ‘白雲深處老僧多’(흰 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를 인용하고 있다. 사람이 귀한 여관 풍경과 대비시키고 있다.
온고지정 : 옛것을 살피고 생각하는 마음
음풍 : 음산한 바람. 겨울 바람
고축(告祝) : 신명(神明)에게 고하여 빎.
시베리아로 정배가는 ~ 쫓아가는 대목 :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장편 <부활>의 한 장면을 말함.
홀연홀몰 :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짐.
경천동지 :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울린다는 뜻으로,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함.
오연히 : 오만스럽게
저립해서 : 우두커니 섬.
풍림 : 바람과 비, 풍우
섬섬옥수(纖纖玉手) :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창맹 : 세상의 모든 백성, 창생.
남가일몽(南柯一夢) : 덧없는 부귀 영화
수유 : 잠시동안
고단한 마련 해선 :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 아름다운 금강산의 절경을 처음 보는 데서 오는 설렘을 새댁의 수줍음에 비유하여 표현한 구절이다. 금강산에 대한 작자의 기대와 애정이 담겨 있다.
청운의 뜻을 - 나무들이었다. : 마치 대망(大望)이라도 이루려는 듯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근심 없이 자란 나무'란 표현과 어울려 인위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의 원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 :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
움이 없고 사사로움이 없이 정당하고 맑은 마음. <맹자> 인용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俯不澤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세상에 - 있을 수 있을까? :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추기에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어 두렵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敬畏感)의 표현이다.
인간 비극은 - 거울에서 출발했다. : 인간은 거울을 봄으로써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열등 의식이 싹터 고뇌와 비극이 시작되었고, 또한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아 자신을 개선하고 환경과 생활을 고쳐 나감
으로써 문화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 온 산과 계곡이 단풍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단풍으로 이루어진 산과 바다와 같다. 황홀하고 찬란한 단풍을 표현한 것이다.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이요, - 한 떨기의 꽃송이다. : 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표현. 산과 봉봉은 그대로 단풍에 덮여 있으므로 산과 봉우리는 곧 단풍이라 할 수 있다.
다리는 줄기요 - 물들어 버린 것 같다. : 탐승하는 일행을 나무에 비유하여 마치 몸의 다리는 줄기이고 팔은 나뭇가지이며,
피부는 온통 단풍의 빛깔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心一如)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등극하실 몸에 - 모른다. : 임금이 되실 귀한 몸에 범부나 입는 삼베옷을 입고 평범하게 살아가야 했던 마의 태자의 행적은 이미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업보가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유상무상의 - 저기에서도 불끈, : 갖가지 모양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모습을 싸움터의 영웅에 비유한 것이다.
이런 심산에 - 많을까? : 은근히 당나라의 시인이 쓴 시구인 '白雲深處老僧多'(흰 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를 인용하고 있다. 사람이 귀한 여관 풍경과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금강산 장안사로 가는 길부터 시작하여 '장안사→명경대→황천 계곡과 망군대→마하연과 비로봉→마의 태자의 묘지'에 이르는 여정과 감상을 담은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요, 신비로운 일화가 얽혀 있어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저절로 탄성을 울리게 하는 금강산. 지은이는 이 금강산의 풍치와 절경과 거기서 오는 낭만적 정감을 신선한 감각과 화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표현함으로써 기행문이라는 단순한 기록성을 뛰어넘어 서경과 서정이 잘 조화된 문학으로 승화시켜 기행 수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은 금강산 기행에서 느낀 감회를 낭만적, 감상적, 회고적으로 그린 수필이다. 노정에 따른 추보식 구성으로 씌어진 이 글은, 화려한 문체로 서경과 서정을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여행객이 지닌 가벼운 해방감과 감수성으로 노정을 선명히 드러내고, 관찰과 연상에 의해 작자의 유려한 문체와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금강산 장안사로 가는 길부터 시작하여 마의 태자의 묘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그때그때의 감상을 담은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요, 신비로운 일화가 얽혀 있어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금강산, 작자는 이 금강산의 풍치와 절경과 거기서 받은 낭만적 정감을 신선한 감각과 화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기행문이라는 형식이 지닌 단순한 기록성을 뛰어넘어 서경과 서정이 잘 조화된 문학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기행 수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는 표현이 있다. 금강산의 경(景)을 먼저 구경하고, 여기에서 촉발된 작자의 정(情)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적(詩的) 수필에 가깝다.
출처 참조: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http://blog.naver.com/soo2959/5012798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