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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선민의 글자(2): 한자(漢字/韓字)
(고린도전서 14:10-12)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소리의 종류가 많아도 뜻 없는 소리는 없다고 했습니다. 뜻을 모르면 야만이 된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글자가 많이 있지만 그 뜻을 모르면 역시 야만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글자 중에서도 그 뜻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글자가 바로 한자입니다.
지난 광복절을 기해 일제 때 훼손되었던 광화문 현판을 복원(復元)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새로 복원되는 현판(懸板)을 한글 현판으로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답니다. 마치 한글 전용만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펼치는 이 사람들은 光化門 현판을 한자(漢子)로 달면 우리나라가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광화문 현판은 한자로 쓰여 있었습니다. 한글로 바꾼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대륙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 것은 결국 훼손하는 것이니 문화민족으로서 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전적비도 모두 한자로 되어 있으며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비롯해서 고려사 등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기록도 모두 한자로 되어있습니다. 특히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의 조선왕조실록도 모두 훈민정음이 아닌 한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광화문은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변질시키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까지 한자를 우리 글자로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자는 애초부터 우리 글자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자를 쓰는 것을 수치로 알지 않으며 자기네 글자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은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일본에 전파하지 않았습니까? 한자를 쓰는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자도 우리 글자임을 자랑해야 합니다.
1.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도 실은 우리 고유의 글자입니다.
1) 강호(江湖) 동양학자로 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인 김종희 님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漢字는 한국의 문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한자’라고 쓸 때에는 중국 한나라를 뜻하는 한수 한(漢)자를 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 한(韓)자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한자(韓字)는 너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① 우리가 보통 한자(漢字)라고 말하는 것은 중국의 한(漢)나라 때(BC 202~AD 5)에 만들어진 글자란 뜻이 아니라, 은(殷)나라에서 만든 갑골문이 발전해온 것을 漢나라 대에 이르러 자기의 글과 글자로 삼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나라란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으므로, 한자란 중국의 한(漢)족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님이 확실합니다.
② 여러 설이 있지만, 삼황오제 중 한 사람인 태호(太昊) 伏羲氏가 창제했다는 설과 黃帝 헌원씨(軒轅氏)의 사관인 창힐(蒼詰)이 창제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모두 우리 민족인 東夷族입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태백일사에 있는 신시본기(神市本紀)에 따르면 복희씨는 환웅천황의 5대 자손인 환웅의 막내아들이고 창힐은 치우 씨의 후예입니다.
③ 환웅천황은 우리 한민족의 시조이며 치우 역시 한민족입니다. 고대 한민족의 활동영역은 한반도와 만주를 거쳐 산동 지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현재 산동성 제남 부근에 많은 인물이 태어났습니다. 순임금도 제나라 시조가 된 태공망 여상도 모두 우리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한자를 썼습니다. 또한 단군 임금님은 나라를 세우며 국호를 한자로 ‘朝鮮’이라 지었습니다. 이후 오랜 세월 한 민족은 한자를 사용해 왔습니다.
④ 우리가 우리 민족의 시조를 단군왕검이라고 부르는데, ‘왕검’의 ‘왕’자는 실은 ‘王’이 아니라 ‘천간 임(壬)’자라고 합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열 개를 천간(天干)이라고 하지요? 거기에 아홉째로 나오는 ‘임’자인데, 우리가 ‘임금 왕’자로 잘못 알아서 단군왕검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으로 읽으면 어떻게 됩니까? ‘단군 임검’ 곧 ‘단군임금’입니다.
2) 한자(漢字)는 중국 한족(漢族)만의 문자가 아니고 고대에 우리 민족(桓民族=韓民族)의 역사와 생활과 문화와 철학이 녹아있는 우리의 생활문자입니다.
① 중국인들은 지금 한자(漢字)의 자의(字意)구성과 역사적인 내용을 다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활경험이 전혀 없었던 글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 대표적인 것이 ‘집 가’(家)자인데 이 글자는 보통 갓머리라고 하는 ‘지붕 면’(宀)자와 ‘돼지 시’(豕)자를 합자(合字)한 것으로 이는 고대에 뱀 같은 파충류가 집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집 아래 지상에 땅을 파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던 환민족(桓民族)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글자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은 한문자는 중국문자가 아니고 東方文字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답니다. 중국의 학자들도 한문자의 대부분을 환민족이 만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답니다.
② 인제대 석좌교수로 국제한자진흥협의회 3대 회장이 된 진태하(陳泰夏) 교수의 <동방문자뿌리>라는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한문자는 중국의 고유문자인데 우리가 빌려 쓰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한자는 중국 한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이 한족의 나라라고 하는 진나라와 주나라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한민족의 옛 조상인 환민족[桓民族] 곧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인 상왕조(商王朝), 즉 은(殷)나라 시대에 거북이나 짐승의 뼈에 글자를 새겨 썼던 것으로, 이른바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쓰였던 것을 <은허(殷墟)>라고 하는데, 이는 은나라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③ 한자에서 ‘글자’의 뜻으로 쓰고 있는 文字의 ‘글월 문’(文)자는 ‘무늬’이고, ‘글자 자’(字)자는 파생의 뜻이었을 뿐 글자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것인데 훨씬 후대에 와서 글자의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漢字라는 ‘한수 한’(漢)자도 은나라 때에는 없던 것이랍니다. 은나라에서 처음으로 글자의 뜻으로 쓰인 글자는 ‘홰 걸(桀)’자 형태인 글자였는데 뒤에 ‘큰 대(大)’자를 더하여 ‘맺을 계(契)’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契자의 음은 본래 ‘글’입니다. 글(契)이라는 글자는 본래 고조선의 역사와 더불어 생긴 것이며 뜻은 나무에 칼로 금을 그어서 말(語)을 대신할 수 있도록 부호문자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갑골문자이며 죽서, 죽간(竹簡)으로 남겨진 것입니다. 이 글(契)자를 <글>이라고 그대로 발음하는 민족도 우리 한민족뿐입니다.
④ 글(契)이라는 글자를 만든 민족은 중국의 한족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옛 조상인 桓民族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큰 민족으로서 ‘환하다. 밝다. 희다. 크다. 높다. 하나다. 제일이다.’라는 뜻인 <환(桓)=한(韓)>이라는 글자를 민족이나 나라이름에 썼고, 또 ‘밝다, 환하다, 희다’는 뜻의 박달산(朴達山), 백두산(白頭山), 불함산(不咸山)을 민족의 진산 이름으로 쓰고, ‘선(鮮)’이라는 글자를 나라와 민족의 이름으로 써서 오늘날 ‘조선’(朝鮮)이 된 것입니다.
3) 한국은 소리글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뜻글 한자(韓字/漢字)를 보유한 문화강국입니다.
① 또 한자를 한자(韓字)라고 할 중요 이유는 중국 등 한자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와는 달리 우리만의 읽고 소리 내는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70%가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발음법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릅니다. 또한 중국은 간자(簡字), 일본은 약자(略字)라 하여 획수를 주려서 간략하게 새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글자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나라는 대만과 우리나라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한글이 있어서 의사 표현에 불편함이 없기에 한자를 약자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자는 약자로 만들면 그 본래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그대로 두어야 의미가 고스란히 보존됩니다. 또한 옛날의 우리 조상들이 써놓은 책들도 어려움 없이 읽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큰 장점입니다.
② 그래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로 ‘어음(語音), 곧 말소리가 중국과 다름’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입니다. 가령 ‘北京’을 한국인은 ‘북경’이라고 읽지만 중국인들은 ‘베이징’이라 발음합니다. 따라서 ‘베이징’ ‘상하이’라고 하면 우리는 전혀 못 알아듣게 됩니다.
③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세계적인 소리글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뿌리가 깊은 뜻글자 한자를 보유한 문화강국입니다. 오늘날 배우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한자를 가르치지도 않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보물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조금 힘이 들더라도 잘 배워놓으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넉넉히 써먹을 수 있는 큰 재산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2. 한자(漢字)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1) 한자의 가장 큰 특징은 표의문자라는 점입니다. 표의문자란 그림문자인 회화문자나 사물의 특징을 그대로 본떠 그린 상형문자와 같이 시각에 의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문자입니다. 따라서 글자의 모양[字形]만 보면, 나타내고자 하는 뜻[字義]을 직접 알 수 있는 글자입니다. 한자는 글자를 하나하나 모두 읽지 않더라도 눈으로 한번 훑어보면 문자의 뜻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자수가 너무 많고, 형태가 복잡하여 기록하거나 읽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단점도 있지만, 한자가 표의문자로서 갖는 장점으로는 조어력 함축성 상징성 기억력 추리력 지각력 등이 표음문자에 비하여 훨씬 뛰어나다는 점은 놀라운 장점입니다.
① 포괄성(包括性) - 한자의 부수(部首)를 보면 그 부수에 해당하는 한자는 모두 포괄적인 동질성을 띄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음 빙(氷) 부수가 들어간 한자는 차갑거나 얼음에 관련된 성질을, 풀초 초(艹) 부수가 들어간 한자는 모두 풀과 관련된 뜻을 가진 경우가 많으므로, 부수 또는 그 부수의 조합을 보고, 그 한자의 개략적인 뜻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② 변별성(辨別性) - 한글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많으므로 한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뜻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고등학교가 시합에서 삼연패를 했다고 하면 세 번 연속하여 졌다는 뜻인지(三連敗), 삼년 계속하여 우승했다는 뜻인지(三連覇)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원수라는 말도 국가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같은 元首인지, 군인 계급의 오성장군인 元帥인지, 마땅히 복수해야 할 적군인 怨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방화라고 하면 불을 지른다는 放火인지, 화재를 막자는 防火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③ 함축성(含蓄性) - 한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한자와 조합할 경우, 그 경우의 수만큼 많은 어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초한자 1800개로 약 10만 개의 단어가 이루어지고, 3000자를 알면 약 60만 개의 단어를 만들 수 있으며, 또한 의미를 확장할 수 있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 있는 조어력이 뛰어납니다. 비행기를 처음 보고, 해당되는 뜻의 한자를 조합하여 비행기라는 단어를 즉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한자밖에 없을 것입니다.
④ 시각성(視覺性) - 한자는 그림글자이기 때문에 보는 순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잘 모르는 한자라도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곁에 있는 글자요, 사내 남(男)은 “밭(田)에서 사람이 힘써(力) 일하니 남자”라는 식으로 눈으로 글자를 보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한자문화권에서는 어느 곳을 가든지 종이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하는 필담(筆談)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소리글인 표음문자는 머릿속에서 일일이 발음을 해서 의미를 파악하므로 더디고 힘듭니다. 즉 눈의 정보처리 속도는 귀의 1000배 이상이므로, 한자는 이런 점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⑤ 축약성(縮約性) - 긴 단어는 간단히 줄여서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한국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전교조로, 중앙정보부를 중정으로 쓰고 누구나 쉽게 이해합니다. 이는 언어의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유리합니다. 그러나 영어나 한글에서는 이를 구현하기 힘듭니다. 영어에서는 very important person을 고작해야 V.I.P.라고 나타내는 정도인 것처럼,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 고유명사들은 줄여서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⑥ 예술성(藝術性) - 한자는 글자 자체의 형태에 조형미와 예술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筆法이 생겨났고, 마침내 문자예술의 단계인 書藝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쓴 글씨를 達筆이라 하고, 품격과 아름다움을 갖춘 글씨를 名筆이라 하고, 고도의 예술성을 갖추어 入神의 경지에 이른 글씨를 神筆이라 합니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수양과 인격의 완성을 그 목표로 삼습니다. 秋史 김정희의 글씨나 王羲之의 글씨는 그 자체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글자 자체로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한자가 유일하며, 영어나 일어 등은 아무리 잘 써도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기는 힘듭니다.
2) 한자의 둘째 특징은 단음절어라는 것입니다. 즉 한자는 각각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로 되어 있는데, 영어와 같은 표음문자의 단어가 다음절어인 것과 구별됩니다. 예를 들면, 영어의 [beautiful]은 [beau-ti-ful]의 세 음절로, [water]는 [wa-ter]의 두 음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에 해당하는 한자는 아름다울 [美], 물 [水] 등의 한 음절로 되어 있습니다.
3) 한자의 셋째 특징은 고립어(孤立語)라는 점입니다. 한자는 어순이나 문장의 전후 관계에 따라서 그 뜻이 달라질 뿐, 글자 자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어와 같이 시제나 품사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굴절어(屈折語)나, 우리말처럼 명사에 조사를 붙이거나, 어미를 활용하는 첨가어(添加語)와는 구별됩니다. 한자는 명사의 단수와 복수, 대명사의 격변화, 시제나 인칭에 따른 변화가 없는 고립어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수가 많게 됩니다. 따라서 문법적 기능은 문장 안에서의 어순에 의해서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水淸]이라고 하면 [물이 맑다]는 뜻이며, [淸水]는 [맑은 물]이 됩니다. 한문에서는 어순이 이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 한자가 우리의 구원과 어떻게 상관 됩니까?
앞에서 한자의 일반적인 특징을 살펴보았는데, 제가 성경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한자에는 놀라운 특징이 더 들어 있습니다. 곧 어떤 사물을 글자로 표현할 때에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이유나 원리에서 철학적인 의미, 또는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싱가폴의 중국인 C. H. Kang이 중국이 아직 공산화되기 전 기독교병원 선교사로 있을 때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문제와 씨름하다가 배 선(船)자가 노아의 여덟 식구가 탄 배로 분해됨을 발견하고 연구 시작했고, 미국의 병리학자 E. R. Nelson 박사는 한자의 기원에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를 시작하여 두 사람이 함께 「창세기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써서 52개의 한자를 창세기 내용과 연관시켜 풀이해 놓았습니다.
1) 한자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나 섭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① ‘금할 금’(禁)자를 봅시다. ‘나무 목’(木)자 두 개 밑에 ‘보일 시’(示)자를 썼습니다. 두 나무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단순히 우연히 된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 이 두 나무가 에덴동산에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이것을 아담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것을 택할 것입니까? 이 ‘금할 금’(禁)자의 의미를 깨달아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아담이 왜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낙원을 잃어버렸을까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② ‘배 선’(船)자에도 성경적 의미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배 주’(舟)자 옆에 ‘여덟 팔’(八)자와 ‘입 구’(口)자로 되어 있습니다. 배에 사람 여덟 명이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 글자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이것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 글자를 만든 분은 노아의 사적을 익히 알고 있었던 분이고, 그 당시 사람들이 이를 다 알았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③ ‘벗을 라’(裸)자는 ‘옷 의’(衣)자 옆에 ‘열매 과’(果)자를 썼습니다. 금단의 열매(果)를 따먹고 벗은 줄을 알게 되어 옷(衣)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한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이 가득하게 들어 있습니다.
① 죄(罪)라는 글자를 봅시다. 넉 사(四)자 밑에 아닐 비(非)자를 썼습니다. 곧 죄란 네 가지 아닌 것,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 이 글자를 만들 당시에는 율법이 네 가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 후인 단군 시대에는 8조 금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죄가 많아져서 여덟 가지를 금했다는 것입니다.
② 무엇이 악입니까? 악(惡)이라는 글자도 보면 ‘버금 아’(亞) 밑에 ‘마음 심’(心)자를 썼습니다. 곧 모든 일에 우리는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처음 떠오르는 좋은 마음이 있고, 바로 이어서 그것을 반대하는 다른 마음이 떠오르는데, 그 둘째 마음은 악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나쁜 뜻의 ‘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첫째로 찾아오는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③ 의(義)란 무엇입니까? ‘양 양’(羊)자 밑에 ‘나 아’(我)자를 썼습니다. 내가 양을 머리에 얹은 모습입니다. 또는 양 밑에 내가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옛날에 제사를 드릴 때에 양을 제물로 잡아서 머리에 얹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이 아닙니까? 나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우리도 제물 양을 머리에 얹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잘 몰랐고, 옛날 우리 조상들도 잘 몰랐던 그 제물양이 신약에 와서 드디어 밝히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에 얹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④ 어떻게 해야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새 신’(新)자를 파자하면 ‘설 립’(立)자 밑에 ‘나무 목’(木), 그 오른편에 ‘도끼 근’(斤)자로 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오른편에 도끼가 놓여 있는 형상입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말씀이 아닙니까? 열매 맺지 못하면 도끼로 찍어버린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사람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⑤ ‘구원할 구’(救)자를 봅시다. 간구한다는 의미의 ‘구할 구’(求)자 옆에 ‘아비 부’(父)자를 썼습니다. 구원이란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께 간구해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옛 어른들이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와를 속여서 타락시켰던 마귀는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⑥ 거룩하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거룩 성’(聖)자는 어떻게 씁니까? ‘귀 耳’자와 ‘입 口’자를 나란히 쓰고, 그 밑에 ‘천간 壬’자를 썼는데, 이 글자는 ‘밝을 제’라고도 읽고, ‘착할 청’자도 됩니다. 곧 거룩함이란 무엇보다도 귀와 입이 밝아야 한다, 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⑦ 내가 누구입니까? ‘나 아’(我)자를 세로로 둘로 나누어서 보면 ‘손 수’(手)자와 ‘창 과’(戈)자로 되어 있습니다. 곧 “손에 창을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조각목, 곧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카시아와 같다는 뜻입니다. 풍도의 설시(舌詩), 곧 “혀에 대한 시”에 보면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인간의 참 모습임을 글자를 통해서 잘 표현한 것입니다.
3) 글자 하나하나에도 이런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다면 성경에는 얼마나 놀라운 진리와 비밀이 들어 있겠습니까? 이 깨달음이 우리를 십자가 진리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지 않습니까?
① 이렇게 글자 하나하나를 연구해 볼 때에 옛 사람들의 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신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이런 글자가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놀라운 글자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했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靈感)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비록 배우기가 좀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힘들여 배운 것일수록 더 큰 가치와 유익을 주지 않겠습니까?
② 그런데 이 놀라운 글자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했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靈感)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비록 배우기가 좀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돈도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학문의 세계는 어떠하겠습니까? 힘들여 배운 것일수록 더 큰 가치와 유익을 주지 않겠습니까? 실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편하게 사는 사람은 인생의 가치가 적습니다. 어렵게, 고난을 많이 받으면서 산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③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눈에 보이는 분으로 나타나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마치 우리가 말하려는 것을 글자로 쓴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로 나타난 성경을 통하여 만나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요 5:39)이 아닙니까? 이제 우리 눈이 열려서 한자의 글자 하나하나 속에 나타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나아가 그 글자 하나하나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아가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뜻 없는 소리가 없고, 뜻 없는 글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깨달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 모두가 열린 눈으로 살면서 세상이 온통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것을 새롭게 깨닫고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0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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