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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의 여유 스크랩 길에서 시를 쓰다
오강식 추천 0 조회 36 08.04.03 14: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레이디경향 2007년 4월호
[프런트 에세이]길에서 시를 쓰다
봄내음 가득한 꽃길에서 시인 김용택이 들려준 이야기

초등학교 갈 나이에 처음 발걸음을 익힌 그 길
저문 산그늘 속 흰 토끼풀과 자운영은 때로 까닭 없이 울게 했다

내가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어 그 길에 처음 발걸음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 그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강물이 굽이쳐 흘러오는 강굽이를 따라 그 길은 나 있었다. 길 아래는 파란 강물이 때로 굽이치고 때로 부서지며 흘러가고 강 위로는 논이었다. 파란 모가 누런 벼가 되고 하얀 눈 속의 어린 보리 잎이 파란 보리 잎으로 너울거리며 익어갔다.

집에서 얼마쯤 가면 작은 논들이 나오고 논들을 다 지나면 넓은 강변이 나왔는데, 그 강변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있었고 소나무 아래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또 그 소나무 아래는 가랑나무 가랑잎들 속에 물새들의 작은 알들이 숨어 있었다. 산철쭉이 붉게 피어나면 꽃뱀들이 길을 건너 다녔다. 칡넝쿨이 넓적한 칡잎을 달고 길게 땅으로 뻗어 있었고, 산딸기가 칡넝쿨 속에 빨갛게 익어 있었다.

나는 봄을 좋아했다. 강변에 찔레꽃이 피고, 붓꽃이 피고, 아그배나무 꽃이 피어났다. 저문 산그늘 속에 흰 토끼풀 꽃과 자운영 꽃은 감성이 풍부한 나를 때로 까닭 없이 울게 했다. 산그늘 내린 자운영 꽃밭 속을 맨발로 걸어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내 정신을 깨웠다. 여름이면 길섶에 자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내 옷깃을 적시고, 서리가 내린 가을이면 서리 가루들이 내 신발에 떨어지고, 눈이 발목을 파묻었다.

때로 나는 자운영 꽃밭에 앉아 시를 쓰고 강물로 사라지는 눈을 보며 강가 바위에 앉아 시를 썼다. 그 작은 솔숲에서 겨울이면 산토끼가 뛰쳐나갔고 때론 노루들이 뛰쳐나와 작은 들을 질러 큰 산으로 겅중겅중 뛰어 올라가면 우리들은 토기를 쫓다가 지각을 하기도 했다. 그 강변 솔밭 끝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호수로부터 흘러오는 작은 도랑에는 징검돌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호숫가로 난 길은 아름다운 모래밭길이었다. 호수는 깊어서 들어갈 수 없었으며, 가물치, 잉어, 붕어가 살았고, 사람들은 용이 못 된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그 징검돌들
봄이면 강물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얼음이 녹고 새 물이 흘렀다

봄이면 그 길에 커다란 자라들이 알을 낳으려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우리들이 가면 물로 풍덩 빠져들었다. 우리들은 모래를 파고 자라 알을 찾기도 했다. 여름이 되어 알에서 나온 작은 자라들이 깊은 물로 빠져들어 물속으로 들어가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호수엔 노란 개연 꽃이 솟났고, 눈이 오고 얼음이 짱짱하게 얼어 우리들을 유혹했지만 우리들은 무서워서 큰 돌멩이를 던져 얼음장만 쩌렁쩌렁 소리가 나게 울렸다. 호숫가에는 들판 쪽으로 아담한 산이 있었고 그 산에 봄이면 진달래꽃이 피어 호수에 어른거렸다. 호숫가를 한참 지나면 작은 시내가 나오고 그 시내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물이 불어 징검돌이 넘으면 우리들은 동생들을 업고 건너기도 했고, 때로 잘못하여 징검돌에서 미끄러지면 강물에 풍덩 빠져 옷과 책이 다 젖어 울며 집으로 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그 징검돌들, 그 위에 눈이 소복! 소복 쌓여 있을 때의 징검돌 모양들이 흐르는 물에 어른어른 비쳤다. 더러 우리의 책보나 신발을 빼앗아가기도 했던 징검다리를 건너면 아주 작은 오두막집 주막이 두 곳에 있었고 거기 할머니 두 분이 각각 두 오두막집을 차지하고 술과 고기를 팔았다. 아버지들이 이따금씩 그 집에서 술과 고기를 먹다가 우리들을 만나 고깃국을 사주기도 했다. 그 집을 지나면 바로 신작로였다. 자갈돌이 뒹구는 신작로 길에 이따금 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 길 어디쯤엔 아무리 냄새를 맡지 못하는 코맹맹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더덕 냄새가 났다. 아무리 찾으려야 찾지 못했던 그 더덕 냄새는 내가 어른이 되어 선생을 오래 할 때까지 내 코를 벌름거리게 하다가 자갈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뀌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봄이면 강물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얼음이 녹고 새 물이 흐르면, 강가에 새소리가 들리고 새 풀잎이 돋아나고 풀꽃들이 피어나 강물에 어리면, 학교 길에 강물에 발을 적시며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함박 딸기가 풀잎 뒤에 익어가는 길, 못밥을 얻어 먹는 찔레꽃이 피어나는 길, 붓꽃이 파란 풀밭에서 서늘하게 솟아나던 길, 풀잎들이 노랗게 색이 바래면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다 쓰러지던 길, 바람이 불고 하얀 눈송이가 산을 내려와 강물로 겁 없이 사라지던 길, 큰물이, 새파란 큰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내달려오던 길, 그 길에서 나는 초등학교 6년을 울고 웃으며 보냈다. 그리고 나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그 길에 들어서서 동네 아이들과 20여 년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길은 사라졌지만
그 길에서 쓴 시들은 아직도 옛길에 풀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 길도 많이 변화했다. 섬진강 댐 공사 자재를 이 길로 가져 갔고 강이 크게 막히니 물의 양에 변화가 생겨 그 푸른 물결이 사라지고 강변엔 풀들이 우거져 강을 잡아먹어갔고 그 넓던 강변은 논이 되었고 그 파란 호수도 메워져 논이 된 채 사라졌다. 길들은 아무렇게나 변해버렸고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걸어 다녔다. 그래도 그 길엔 억새가 피어 지는 해를 받아 아름다웠고, 눈이 왔으며, 비가 내렸고, 봄이 왔으며 가을이 왔고, 바람이 불었다.

눈에 익은 아름다운 길이 사라지고 변할 때마다 나는 너무나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며칠 밤을 뒤척였으며 사는 맛을 잃기도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징검돌들이 파헤쳐지면 나는 어디다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곤 하는 날들이 지나며 나는 또 새로 변한 길을 사랑했다. 나는 그 길들 어딘가 마른 풀밭 속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꽃들 곁에 앉아 시를 쓰고, 저문 산그늘에 앉아 시를 썼다. 강변은 한없이 따사롭고 추웠으며, 외롭고 쓸쓸했으며 내게 한없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죽였다.

나는 그 길에서 자랐고 그리고 그 길에서 슬픈 시인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 길에 들어설 수 없다. 그 길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경지 정리를 하여 그 길을 밀어버렸다. 볼썽사나운 시멘트 옹벽이 강둑을 만들어 사람의 길을 죽이고 찻길을 만들었다.

어느 해부터 동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아이들이 그 길에서 사라진 어느 해 나는 그 아름다운 강 길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울었다. 아이들과 고기를 잡고, 딸기를 따먹고, 토끼를 쫓고, 허방을 만들어 어른들을 넘어지게 하던 길, 고구마를 캐 먹고, 무를 뽑아 먹다 들켜 논두렁을 뛰던 길, 집에 가다가 느닷없이 소낙비를 만나 옷과 책을 다 적시며 친구들과 집으로 뛰어가던 길, 어른이 되어 집에 가다가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만나 해 저문 논두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길 그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길이 사라진다. 산과 들과 이웃마을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들이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의 길이 사라진 것이다. 아름다운 자기 발소리를 들으며 자박자박 걷던 길이 사라지고 이제 차가 질주하는 도로만 남았다. 길이 없고 도로만 있는 세상은 삭막하고 황량하고, 아이들이 사라진 시골길은 더 쓸쓸하고 슬프다. 차를 타고 씽씽 달리는 길은 길이 아니다. 어디를 둘러볼 수 없이 바삐 달리는 찻길에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키우겠는가.

고향에 사는 일이 때로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으며, 감당하기 힘든 고역이기도 했다. 나는 고향이 부서지는 것을 다 보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길이 사라지고 강변이 부서지고 강물이 죽어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보며, 그 고통이 때로 분노로,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길은 사라졌지만 그 길에서 쓴 나의 시들은 아직도 그 옛길에 풀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이 된 이후 중·고등학교만 빼고 내 일평생을 이 학교에서 보냈다. 그 강길에 또 봄이 오고 있다. 이따금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그 아름답고 정다웠던 길을 다시 그려본다. 사라진 그 길을… 나는 그 사라진 길을 다시 시로 쓸 것이다.

편·집·후·기

요즘 그 길에선

청량리 역사 앞, 높은 백화점 건물 옆으로는 성매매 거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일명 ‘청량리 588’로 불리는 이 집창촌이 생겨난 것은 한국전쟁 이후라고 한다.

스무 해 넘게 줄곧 청량리 인근에 살고 있는 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명 덕을 톡톡히 봤다.
한창 성적 호기심이 대단한 ‘머스마’들에게 내가 학교를 오가며 곁눈질로 본 풍경들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딱히 말재주가 없었음에도 투명 유리 너머 곱게 앉아 있는 누이들 이야기는 인기가 좋았다. 한데,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란 게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억지 이야기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속에 아스라이 자리한 청량리가 요즘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구는 재개발을 하기 위해, 윤락업소가 늘어서 있는 청량리역 주변 일대 건물을 연말까지 허물고 도로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한데, 협의가 마무리된 곳은 10개 동도 되지 못한다고 한다.

학창 시절 내 주위로 친구들을 모아줬던 누이들이 빈손으로 떠난 자리에 생기는 넓고 깨끗한 새 길이, “억대 권리금을 찾기 전까지는 못 나간다”며 버티고 있는 성매매 업소 포주들의 모습 때문에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김용택 프로필
전북 임실 출생/ 순창 농림고 졸업/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1997)등 수상/1982년 창작과비평사 발행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등 8편 발표 등단/ 시집 [섬진강] [꽃산 가는 길][누이야 날이 저문다][그리운 꽃 편지][그대 거침없는 사랑][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나무]동시집[콩, 너는 죽었다][나비가 날아간다],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등

진행 / 김성욱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이달에 만난 시인 김용택
시를 배달합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가의 덕치초등학교에서 시인을 만났다. 공차는 아이들 사이에 제일 신나 보이는 사람만 찾으면 되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이 강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스무 살 시절, 오리를 키우다 망해먹고 서울로 도망갔던 일이 유일한 방랑 기록. 시를 쓰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택시 운전을 했을 거라는 그의 희망사항은 이때 생겨났다. 40년 전 바람이 이루어져 택시를 몰았다 해도 시인의 택시엔 아이들이 가득했을 것 같다. ‘애들만 보믄 이뻐 죽겄어’ 하는 시인의 말이 오래도록 귀에 젖는다.

   
  아이들이 웃는다 
  그도 웃는다


   시인이 골라준 
 최근 시
 지상낭독회


세희

꽃 떨어지고 새 잎 난다. 아이들이 날리는 저기 꽃잎을 따르고
세희가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따뜻하고 작은 손, 이 아이의 아버지를 내가 가르쳤다.
가난은 배고픈 봄날처럼 길고 멀다.
빈손으로 고향을 떠난 지 이십년,
아내는 떠나고, 버린 고향에다가 어린 두 딸을 또 버린다.
마을 앞 솔밭 솔잎은 푸르고, 빈 논에 네 잎 자운영은 돋는다.
시린 새벽, 잠든 너희들을 깨워 데리고 와
잠든 너희들을 두고 마을을 빠져나간다. 솔바람 소리 따라다니던 내 청춘,
내 어찌 눈물을 감추랴. 한점 꽃잎처럼 살아 있던 우리 집 불빛이 진다.
아! 어머니, 강물에 떨어지는 불빛은 뜨거운 내 눈물입니다. 아버지의 가난은 때로 아름다웠으나, 나의 가난은 용서받은 곳이 없습니다.
무너진 고향의 언덕들, 어디다가 서러운 이내 몸을 비비랴.
흐린 길이다. 어스름 새벽,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서울 길을 달릴,
아, 초행길처럼 서울은 낯설고 멀기만 하리라.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표지가 너덜거리는 공책에 글씨를 쓰던 남루한 네 모습을 내 어찌 지우겠느냐. 이 슬픔과 부끄러움, 이 비통함과 분노가 내 일생이다.
세희의 손을 꼬옥 쥔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들의 손은 어찌 이리 작고도 따사로운가.
꽃잎들이 맨땅을 굴러간다.
세희가 내 손을 놓고
꽃잎을 따라간다. 나는 날마다 꽃잎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환생을 꿈꾼다.
세희의 온기가 남은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온기가, 남은 온기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세희야 날아와!
세희야 날아와!
이리 날아오라는, 말이 안 나온다. 꽃 지고 새 잎 나는 봄, 어둠속에 떨어진 나무 가지같이 기가 막힌 나의

손.
‘창작과 비평’ 2008 봄

시인이 일러준
이 시를 느끼는 법

이름을 조금 바꿨지만, 세희는 우리 학교 학생입니다. 세희의 아버지도 내가 가르쳤으니, 세희한테 나는 할아버지뻘이죠. 세희의 부모는 몇 해 전 이혼했습니다. 세희는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집에 삽니다.
우리 학교에는 이런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마을 전체로 따지면 더 많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우리 학교로 전학 온 아이들은 표정이 없어요. 다 죽어있어요. 아이들 일기장에는 엄마, 아빠라는 말이 아예 없습니다. 작년 우리 반엔 네 명이 그랬는데 정말로 다 없더라고요.
세희는 꼭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에 갑니다. 밭일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습니다. 엄마도 없이 밥을 먹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안스러워 저도 많이 웁니다. 학예회 연습하는데 식구가 아무도 안 온 한 아이는 학교 뒷마당에서 울다가 제게 들켰지요. 보듬고 같이 울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는, 다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용택(金龍澤)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82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그 여자네 집’ ‘나무’ ‘그래서 당신’ 등이 있음.

  현대시 100주년 특집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송시 100편

 
여성조선이 선택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송시 100편을 매월 20편씩 선정,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이달은 두 번째로 제 21편부터 40편까지 목록을 드립니다.

21 김억 봄은 간다
22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23 김용호 오월의 유혹
24 김종길 성탄제
25 김종삼 묵화
26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27 김춘수 꽃
28 김현승 플라타너스
29 노천명 사슴
30 문덕수 꽃과 언어
31 박남수 새
32 박노해 노동의 새벽
33 박두진 해
34 박목월 나그네
35 박용철 떠나가는 배
36 박인환 목마와 숙녀
37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38 박종화 청자부
39 백석 고향
40 변영로 봄비 
(시인의 이름 가나다순임)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1941~)
시인은 민족 시인인 중 대표적 인물이다. 1974년, 유신독재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위반 및 내란선동죄로 구속돼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당시 그의 체포는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 되었고 석방을 요구하는 위원회가 일본, 독일,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일어났다. 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으로 유랑, 투옥, 도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 사면과 석방 등의 고난을 걸었던 작가다.

꽃과 언어   문덕수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문덕수(1928~ )
시인은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침묵’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그의 시는 감정도 사상도 배제된 순수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6·25 참전 외에는 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홍익대 명예교수이자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2007년,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낼 정도로 창작활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봄비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변영로(1898~1961)
수필가와 영문학자, 기자로도 활약한 시인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영역해 해외로 발송하는 등 국내 사정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1920년 ‘폐허’로 문단에 데뷔, 다작의 시는 물론, 수필집 ‘명정 40년’등을 집필했다. 월간지 ‘신가정’ 편집장 시절에는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 찍은 사진을 게재 ‘조선의 건각’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일제의 탄압에 시달려야했다. 이후, ‘우리의 것’을 알아보기 위한 일환으로 백두산에 올라 관련 시 10여 편을 발표하는 등

취재 양소영 기자 사진 김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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