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랑 같이 요가를 하는 캐나다 친구들하고, 이 근처에 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두 가족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산개구리 알무더기가 있던 다랭이논 위로는 벌써 2미터 높이의 흙을 덮어놓았고, 도롱뇽 알주머니가 수백 개 있던 미나리꽝은 반쯤 흙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다급하게 이것 저것 사진을 찍고 나서, 그전같으면 만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을 산개구리와 도롱뇽을 일부러 찾아내서 보여주었습니다. 며칠 뒤면 모두 몰살될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원에 이사를 왔던 4년전쯤부터 저는 이곳을 자주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남도청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 안될만큼 도심 속에 있고, 가로세로 20미터가 될까말까한 작은 미나리꽝과 개울일 뿐이지만, 이곳에 여러 생명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하나하나 살펴 보는 게 저의 한가로운 낙이었습니다.
알과 올챙이때만 물에 살고, 다 자라면 산에서 살기 때문에 산개구리로 불리는 친구들이 매년 이곳 미나링꽝과 다랭이논에서 알을 낳았습니다. 미나리꽝에는 도롱뇽 알이 어찌나 많은지, 도롱뇽 알을 밟지 않고는 미나리를 수확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그 작은 미나리꽝에 천 개 이상의 도롱뇽 알주머니가 있었을 겁니다. 도롱뇽 한 쌍이 두 개의 알주머니를 낳는 걸 생각해보면, 이 작은 미나리꽝은 이 일대 넓은 지역에 사는 도롱뇽들이 떼로 몰려와 번식을 하는 짝짓기장소임에 틀림 없습니다.
미나리꽝과 붙은 개울에는 이급수 이상의 맑은 물에만 살 수 있고, 우리 나라에만 산다는 토종 물고기인 갈겨니가 수백 마리 삽니다. 물이 하도 맑아서 그냥 봐도 쉽게 보입니다. 또 자세히 보면 갈겨니를 잡아 먹는다는 동사리도 보입니다. 역시 우리 나라에만 있는 토종 물고기입니다. 갈겨니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물이 맑기도 하지만, 우선 이들을 잘 숨겨주는 검정말같은 수중식물이 풍부하고, 이들의 먹이가 되는 생물들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봄이면 해오라기와 백로들이 이 물고기들을 잡아 먹으려고 왕버들 그늘에 앉아 물 속을 노려봅니다. 자운영이 보라색으로 피어난 논두렁에는 꼬마물떼새와 큰오색딱다구리가 나타나 벌레를 잡기도 하고, 모를 내기 전 부드러운 논의 진흙은 제비가 입으로 물어다 집을 짓는 데 쓰기도 합니다. 벼를 수확하고 나면 쇠오리와 흰뺨검둥오리가 나타나 낟곡을 주워먹기도 하고, 근처 창원대학교의 솔숲에 사는 고라니가 물을 마시러 오기도 합니다. 또한 논두렁을 뛰어다니는 도마뱀을 잡아먹으려고 때까치가 날아오기도 하고, 딱새는 일년 내내, 방울새는 겨울에 많이 보입니다.
물 속에는 재첩조개의 사촌쯤 되는 엷은조개가 발견되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논고둥이야 다른 데서도 흔히 보이니 여기 있는 것도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손톱보다 작아 다른 물벌레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 민물고둥이 초여름쯤 미나리꽝을 가득 메우면 그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늦봄부터는 날벌레들이 알을 낳으려고 난리법석을 피웁니다. 미나리꽝은 수심이 얕고 수질이 좋으면서 동시에 물살이 약해서 개구리 도롱뇽은 물론 날벌레들도 알을 낳기에 제일 좋습니다. 계곡물이 수질은 좋지만 물살이 빠르면 알들이 더 떠내려가기 때문에 알을 낳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놓았지만, 오히려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좋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미나리꽝은 요즘의 개발과는 전혀 다릅니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모범입니다.
어떤 생명인들 아름답지 않은 게 있겠습니까마는, 이곳 창원천 미나리꽝에서 제 눈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날벌레는 검은물잠자리입니다. 잘 갈아놓은 먹물처럼 검은물잠자리는 검푸른색으로 빛이 납니다. 늦봄부터 이 친구들은 짝을 짓고 알을 낳으려고 미나리꽝을 수놓습니다. 아름답기로는 연두색을 자랑하는 아시아청실잠자리도 대단하고, 가을로 접어들면 밀잠자리에 왕잠자리, 고추잠자리 등 여러 종류의 잠자리가 이곳을 찾습니다. 그래서 물 속에는 몇 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는 잠자리 유충도 많습니다.
사람 눈에는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새들에게는 고마운 먹이감이 되는 벌레들도 이곳에서 알을 낳습니다. 날도래, 강도래, 깔다구와 각다귀, 장구애비, 소금쟁이같은 친구들입니다. 제가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이 친구들도 하나의 종이 아니라 각각 여러 종이 있습니다. 여덟 다리를 펴봐야 손톱만큼밖에 안할 만큼 작고 가벼워서 물 위를 빠르게 걸어다니는 늑대거미들도 이곳에선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생물들 얘기할 거냐고요? 목사님, 조금만 더 읽어주십시요. 이 친구들 이제 다 죽을 친구들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을 세 번이라도 불러준다는데, 이제 죽을 이 친구들 이름 한번이라도 불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울에 그늘을 만들어 한여름에도 물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왕버드나무가 이 곳의 대장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왕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개울의 다른 쪽으로는 밭주인이 울타리로 심은 탱자나무가 좋습니다. 우리 애들 아토피로 고생할 때 이곳의 탱자를 따다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질소 고정을 시켜 줘서 땅심을 길러준다는 자운영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암에 탁월해서 신이 준 선물이라고 불리는 곰보배추도 논두렁에 보입니다. 논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개망초, 마디풀, 큰개불알풀, 소리쟁이, 지칭개, 고마리, 쑥, 광대풀, 물칭개, 쑥부쟁이, 고들빼기, 개구리밥. 이건 겨우 몇 사람이 찾아낸 식물들의 목록일 뿐입니다. 제가 몰라서 못 찾아낸 식물들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물 속에서는 염주말이라고 하는 희한한 생물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몸이 모두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원핵생물이랍니다. 20억년전 지구에 생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나타난 생물일지도 모르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도 여기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친구 이름을 알아내려고 찾아보는 중에 생물분류학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이 친구말고도 물 속에는 파래같은 조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목사님, 이제 다 되었습니다. 전부다 열거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사랑했던 친구들 이름을 대략 불렀습니다. 이제 이 친구들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미나리꽝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몇몇 친구들에게 부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목사님, 파괴되어가는 곳이 너무 많아서, 이런 작은 곳은 도저히 신경을 쓸 수가 없더랍니다. 전국의 모든 작은 하천들이 “생태하천”을 만든답시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큰 강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목사님도 잘 아시겠지요? 전국의 수많은 갯벌들이 매립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만 해도 마산만이 계속해서 매립되고 있고, 산허리는 왼통 도로로, 계곡은 왼통 댐으로 잘려 나가고 있습니다. 핵발전이 그렇게 위험하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계속 핵발전을 하겠답니다. 이렇게 온통 생명이 죽어가는 일들만 벌어지고 있으니, 이 작은 미나리꽝을 지키려고 보탤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난 3월 11일 이후로 참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는데, 저런 상황에서 평화롭게 사는 게 꼭 죄를 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일본 사고는 수십만명을 원자력 피폭에 의한 질병으로 숨지게 할 것입니다. 체르노빌에서 그랬듯이요. 그러니 저런 거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손바닥만한 미나리꽝에 살던 도롱뇽이 죽어가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보내기에 그 미나리꽝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나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뭔가요? 목사님 좋아하시는 무위당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무위라는 거, 그게 정말 뭔가요? 상황이 이러한데도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정말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2011년 3월 26일 장용창 여쭘.
첫댓글 아난다님의 아픈가슴이 안타까움이 아픕니다 아..
목사님께 여쭙는 글인데 제가 이래도 되는지 싶네요
생명들을 돌아보게한 그대의 눈에 감사드리고,
자판을 찍은 그대의 손에 감사드리고,
함께하는 그대의 존재에 감사드리며,
아픔을 함께 합니다.
먹먹해 오는 가슴- 글 고맙고 고맙습니다.
여기저기 모두 가슴 아프네요.
좋은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제가 너무 이기적인것같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위의 현실들은 잔인하게 암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