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효의 눈치를 살피는 동선이 윗목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재효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쭈그려 앉은 동선이 다리가 저린지 부스럭거리며 앉음새를 고칠 즈음 재효가 입을 떼었다.
/이름이 무엇이더냐?/
/예, 어르신, 이름은 모르옵고 그냥 재밌는 이라고 불렀사옵니다./
그럴 수가 있는 일이었다. 당시의 사당패들 대개가 자기 신분을 감추어야할 사연들이 한 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고 보면 본명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고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도 사당패라는 떠도는 패거리에 들어가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밝히는 것이 일종의 불효라고 생각하여 바른 이름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이라, 거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구나. 그만 가 보아라./
동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려고 문지방을 넘었을 때 재효가 문득 동선을 불러 세웠다.
/얘야./
기왕에 재밌는 이에 대해 언급을 했을 냥이면 뭔가 다른 말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쓰다달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를 내보내는 처사가 분명 동선이 생각하는 어르신의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갸웃뚱하고 나가던 참이었다.
동선은 마치 떡을 나눠주던 사람이 제 차례를 건너뛰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떡을 주는 듯 반가운 심경이 되며 시급히 몸을 돌려세웠다.
/예, 어르신/
/그 재밌는 이 말이다. 따로 갈 곳이 마련될 때까지 만이라도 마당살림이나 맡겼으면 한다만/
/그러시게요, 어르신 참으로 그러시게요. 고마우시구먼요. 그러면 사랑으로 들라 이를까요./
평소의 동선이 아니었다. 늘 침착하고 말수를 아끼던 동선이었다. 그래서 어른이 불렀을 때 어떤 기대감에 부풀었었는데 재밌는 이의 일에 일언반구 없이 나가라니 어리벙벙하고 섭섭하기도 하던 것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의아심이 일시에 풀리며 다급한 소리가 튀어 나오고 말았다.
/어르신, 고마우시고 송구하구먼요./
동선의 말에 두서가 안 잡혔다. 그리해놓고도 동선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개면적어 했다.
/그려, 그렇게 하도록 하자./
그 무렵 재효의 가산은 이미 백묘지원십묘지택을 자랑하고 있었고 소출이 천석군이라 소문이 자자했으며 사랑방에는 과객 몇 명쯤이 항상 딩굴고 있을 때였다. 그만한 소문이고 보면 홍문거리 아래에서는 쩌렁한 부자인 것이다. 재밌는 이는 참으로 부지런할 뿐 아니라 일의 규모와 순서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조실부모하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영민하였던지라 만일 제가 집을 장만하고 살게 될 양이면 이건 이리하고 저건 저리하리라는 요량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것이 비록 제집은 아닐망정 신가(申家)의 배려로 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으니 더없이 기쁜 심정이 되어 제 집을 가진 것 마냥 부지런을 떨었다. 아니 심혈을 기울였다는 편이 마땅할 것이다. 마당의 높낮이를 손질하여 빗물 고이는 곳을 말짱하게 고쳐놓는가 하면 흩어져 굴러다니는 돌맹이 하나도 소홀하게 다루는 법 없이 채곡하게 정돈을 했고 비긋해진 담장도 그대로 두질 않았고 숫자란 초목들도 자잘하게 가꿔주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흠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흥얼대는 콧노래가 춘향가 가운데 어느 대목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자주 부르는 대목이
“제미 씹 개좆으로 열두다섯번 나온 녀석은 얼음에 자빠진 경풍한 쇠눈깔 같은, 어러산 신 머루 따먹은 덩덕새 대가리 같은 녀석이 생 고자 맹크로 소리는 몹시 질러 하마터면 애보가 떨어질 뻔 했네”라던가
춘향과 이몽룡이 초례를 치루는 방사장면을
“춘향이 두 가랑이 쫙 벌리고 자지러지자 몽룡이가 서슴없이 올라타 헐레벌떡 헐레벌떡 개 헐레를 하득기 정신없이 찔러대는디 아고아고 청량산 벌집 터져 윙윙대는 날개소리, 육칠월 장마 터져 동천강 넘치는가 물소리 철철거리고 노쇳문 문설주가 동지섣달 설한풍에 자리 잃고 흔들리는가 삐걱 소리 요란하고 디딜방아 방앗고가 청맹과니 흡사하니 좌로 한번 우로 두 번 찧고 찧어도 성이 안차 놋돌 향방 가로질러 돌확에 부딪는 소리 씨그렁 딱딱 숨 가쁘더니 종당에는 제 부모상을 당해 곡성이 낭자하다. 문틈으로 훔쳐보던 향단이 오금을 딱 붙이고 허벅지를 부벼대며 사대육신 뼛마디가 노글거리는지 온몸을 이리 틀고 저리 틀며 침을 갤갤 흘리더니 고쟁이 속으로 제 손을 집어넣으니 제가 벌리고 제가 찔러대는 형국이라 그것이 지랄이여” 하는 따위로 불러대니 듣는 귀들이 여간 거북살스러운 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천성이 부지런한 그인지라 소리 또한 끊이질 않았고 목소리 마자 작지 않으니 이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 안마당을 손질하며 소리를 지를 때 하필이면 점잖은 이들이 자제들을 동반하고 손님으로 와 있을 때도 있어 집주인 된 입장에서 여간 거북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살아 숨 쉬는 목숨이 유일하게 즐기는 노릇을 못하게 한다헐 수도 없고 입을 틀어막을 수는 더더구나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것 참, 어찌한다. 내치고 보면 저 사람 달리 갈 곳도 없을 텐데-/
며칠을 고심하던 재효는 한 순간 무릎을 쳤다.
/그래. 그 길이 있었구먼./
그것은 다름 아닌 소릿말을 바꿔주는 일이었다. 저 우직스런 총생이 세상을 살아가는 낙이라고는 오로지 소리하는 낙 하나일 진데 그 소리를 못하게 막아버린다면 얼마나 삭막해할까. 그건 너무 혹독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재효는
/여보시오. 재민이/ 그를 불렀다. 창졸간에 재민이라고 불린 그는 처음에는 뜨악해 하다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고 재효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선
/어르신 이놈을 불렀을깝소./한다.
/그러오. 임자를 재미있는 이라고 부르기 여간 번거롭지 않으니 이제부터 재민이라 하는 게 좋을 드싶어서 말이오. 왜 듣기가 거북하시오?/
/아닙죠. 아니고 말굽쇼. 이놈도 그 이름 땜시 늘상 거북스러웠던 참이로구먼요. 헌데 어르신께서 재민이라고 불러 주시니 마치 께름칙한 짐을 벗은 듯 시원하구만요. 암요./
그렇다니 다행이오. 헌데 말이요. 그짝이 부르는 소리가 작히 좋기는 헌디, 듣는 귀가 좀 거북해서- 어흠/
/그렇습죠? 이놈도 그 소리를 하면서 늘 그리 생각을 허긴 했아온데- 달리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요./
/그렇다면 내가 과히 듣기 싫지 않을 말로 고쳐보면 어떨지?/
/예- 그럴 수가 있을 깝쇼? 그리만 된다면야-/ 하다가 말을 꿀꺽 삼켜버린다. 그럴 일이었다. 재민은 자신이 도무지 배운 것이 없는 천둥벌거숭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저- 하온데 어르신/
/음, 역시 주저되는 바가 있으시다?/
/아니옵니다. 천부당만부당이옵니다. 다만 이놈의 천하고 무지악스런 목구멍이 어른께서 고쳐주시는 소릿말을 망치지나 않을까 그것이 걱정되어서 이옵니다./
/ 글쎄, 되고 안 되고는 나중 일이고 어쨌거나 한 번 해본단 밖에/
그로부터 보름 쯤 지난 뒤 난삽한 말꼴을 말끔하게 다듬어진 소릿말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재민은 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다. 글 읽는 광경을 어깨 너머에서도 본 일이 없는 재민이 글자를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 어르신, 제가 워낙 까막눈이라서 말씀입죠./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소. 그러니 내가 일러주는 대로 머리에 집어넣고 입이 닳도록 익혀보는 수밖에/
그로부터 재효의 집 대청마루에서는 때 아닌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천명에 이른 재효가 재민을 상대로 소릿말을 읽어주고 재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익히는 광경은 가히 볼만한 풍경이었다. 그것은 소릿말의 어느 부분을 고치는 정도의 작업이 아니라 춘향가의 전체적 분위기와 품격을 높이는 일이었고 아무 때고 튀어나오는 재민의 상스러운 입을 틀어막자 하는 재효의 의도였다.
“저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짓는다. 홍영자공 산호편 옥안금천 황금록 청홍사 고운 굴레 상모 물려 덥벅 달아 앞뒤 걸쳐 질끈 매고 칭칭다래 은엽등자 호피 돋음이 보기 좋다. 도련님 호사헐 제. 옥골선풍 고운 얼굴 부세수 정히 하고 채긴 머리 곱게 땋아 갑사댕기 들였네. 성천 통의주 겹저고리 당모시 상침바지 외씨 같은 고운 발 극상세목의 버선 받쳐 남수갑사 대님 매고 진안모시 통행전 쌍문 겹동 옷
문 겹동 옷 청중치막에 도포 받쳐 당분합 띠 매고 갑사복전에 맘석당혜 나귀등 선뜻 올라 뒤를 싸고 앉은 후 쇄금당선 좌르르 펼쳐 일광을 가리우니 하릴없는 선동이라. 관도성남 너른 길 봉하에 나는 티끌 광풍 좇아 펄펄, 도화점점 붉은 꽃 보보향풍 뚝 떨어져 쌍옥제번의 네 발굽 걸음걸음이 생향이라. 일단선풍 도화색 위절도적표마가 이 걸음을 당할소냐 가련인마상광휘에 만성견자수불애라. 취과양주귤만거라 두목지풍체로구나. 호호거라고 나갈 제, 광한루 당도하여 나귀내려 풀 뜯기고 도련님 누각에 올라 경치를 둘러 보시더니 “잉O 방자야 처음 보는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구나. 네가 자세히 좀 일러라.” 방자 팔을 들어 낱낱이 고하는데 동편을 가리키며 저 건너 보이는 산이 지리산 내맥인데 신선 내려 노던데요. 북편을 가리키며 교룡산이 저기 온디, 좌도관방 중지옵고 서편을 가리키며 “엄숙한 뜬 기운이 관왕묘를 모셨으니 영이한 일이 많사옵고 남쪽을 가리키며 ” 저 산 너머 구례가 접경이온데 화계 연곡 명승지옵고 저 집 이름은 영주각이요. 저 다리 이름은 오작교라 하옵니다.
도련님 들으시고 “네말 듣고 경치 보니 예가 어디 인간처냐? 내 몸이 우화하여 천상으로 등선했지. 저게 만일 오작교면 견우직녀 상봉헐 터,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누가 될꼬? 좋다 좋다 호남의 제일루라. 방자야 이런 좋은 경치에 술이 없어서야 무미하구나. 술상 어서 차리거라. 방자 술상 갖다 좋고 술 부어 올리니 이삼배 마신 후에 취흥이 도도하여 글 한 수를 지었으되 춘향 상봉할 글을 지었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