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대구
누구나 어린 시절은 행복하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실제로 불행의 연속이었다. 3대악인 가난과 질병과 무지를 벗어려는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의 꿈도 다른 부모님들과 같았다. 일제 강점기의 불행을 겪으신 후에,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꿈에 매달렸다. 주변의 다른 가난한 친척과 다르게, 오직 고등교육에 대한 열망 하나로 지내셨다. 선친과 선비 모두 고아로서, 형제와 친척의 도움으로 사시던 식민지 시절에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대구도 다른 도시처럼 자녀 교육에 올인하셨다. 나의 여식과 동생들의 조카 10명도 모두 대졸하여, 직장에서 잘 근무하고 있다. 적어도 부모 세대의 무지를 일단 벗어났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가난과 질병은 자신들의 부단한 노력과 현명한 판단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부모의 역할이 가난을 물리치는 생활에 몰두하였으나, 지금은 교육과 직장 더 나아가 손자들 생활에도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집장만도 만만하지 못하다. 은행에 대출도 내야한다. 나는 인생의 행복은 여행에서 얻는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막내식구들과 추석연휴에 충청도(당양)에서 2박3일 지냈다. 오가는 동안에 교통지옥이고, 가서도 집처럼 편안하지 못하였으나, 마지막 날 산에서 새처럼 나는, 즉 페러 글라이딩(1인당 10만원)하는 사위와 외손녀(9살)를 보았다.
또한 여행중에 밤에는 야시장도 좋았고, 산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온 남녀노소의 생활상도 약간 옅보았다. 일상에서 탈출하여야, 평상시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가서 민폐가 되지않기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휴가철이나 명절때는 2박이면 50만원을 잡아야 보통의 숙소를 잡는다고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여행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일상탈출 이외에도 낯선경험이 주는 자극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빨리 커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였다. 어른들이 얼마나 명절에 대한 공포가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지나보아야 아는 법이다. 요사이도 친인척들과 교회 친구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모이거나, 전화나 카톡으로 서로 안부를 전한다. 모두 건강 인사가 거의 다이다. 행복의 기초로서, 내가 있어야 상대적으로 친구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동기 중에는 월남전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지원하였으나, 가지를 못하였다. 모두가 생활고에 시달려서, 군입대 후에 지원하였다. 특히 목에 총을 맞아서 말을 못하고, 휴대폰에 글을 쓴다음 대화하는 친구도 있다, 서울로 간 친구들 중에는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하거나 통일원 원장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과 불만 속에서 산다. 특히 불교에서도 인생은 고(고통)라고 했고, 성서의 전도서에도 솔로몬도 인생이 허무하고 허무하다고 노래하였다. 불안과 불만이 끊어지는 시기는 죽음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 모두에게 찾아오므로 평등하다고 한다.
따리서 인생은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지만, 다만 기쁨은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봉사와 감사하는 때에 주어지기 때문에, 행복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늘 다가와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