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 를 아우른 길, 양평 물소리길은 양평군을 대표하는 자연 친화적 도보여행길이다.
양수역에서 용문역까지 70여㎞에 이르는 길이다. 새로운 시작, 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정답게 만나는 양수리에서 시작된다.
양수리역에서 만난다.
굴다리를 통과한다.
물소리길 종합안내소다. 문이 닫쳐있다.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용담마을로 들어선다.
오늘의 리딩은 길동무에 실루엣(박훈태)님^^
월계골입구다. 부용산 등산로입구이기도 하다.
정창손 묘역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창손은 1426년(세종 8) 식년문과, 1447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였고 고려사, 세종실록, 치평요람, 등을
편찬하였다. 1455년(세조 1) 좌익공신 2등에 책록된 뒤 우의정과 영의정을 지냈다. 1468년(예종 즉위) 익대공신 3등, 1471년(성종 2) 좌리공신 2등으로 책록되었으며, 1475년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정창손의 묘역은 원래 광주 방이동에 있었는데,
그가 죽은 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폐비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부관참시되고 신도비와 석물이 파손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신원되어 묘역을 개장하고 석물을 다시 세웠으며, 1623년(인조 1)에는 신도비를 다시 세웠다. 정창손과
부인의 묘역은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방이동의 도시계획으로 종중에서는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면서 하나의 봉분으로 합장하고 이전의 석물과 새로 제작한 석물을 함께 배치하였다. 석물은 묘비 2기, 문인석 2쌍, 신도비 1기, 석양 1기가 남아
있으나 이전작업으로 묘역의 모습이 심하게 변하였다. 1994년 4월 20일 경기도문화자료 제55호로 지정되었다.
물소리길 편의점이다.
한음 이덕형 신도비다. 이덕형(1561~161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한음이며 어렸을 때 이항복과 막역한 사이로 많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여러 관직을 거쳐 1602년에는 영의정에 올랐으며 잠시 한직에 있다가 1608년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삭직되어 양근에서 병사하였다.
임야길의 시작되면서 5월의 아가씨 검은등뻐꾸기가 능청을 부린다. 겨울내내 얼마나 참았기에 저렇기 벗기를 좋아할까 ㅋㅋ,
검은등뻐꾸기는 5월에 찾아오는 철새로 뻐꾸기와 비슷하나 배의 검은색 가로줄이 굵고, 머리와 가슴은 회색이며, 등과 꼬리는 균일한 어두운 회갈색이다. 꼬리 끝 부분에 검은색의 띠가 있으며 끝은 희다. 눈의 테두리가 다른 뻐꾸기류에 비해 뚜렷하지 않다. 야외에서는 주로 소리로 구별한다. 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두견이 등과 함께 주로 산림에서 서식한다. 다만, 뻐꾸기보다 산 정상부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
징검다리를 통과한다.
옛날 옛적에 누군가가 냇가에 발담구고 술잔을 기울렸을 것 같은 ㅎㅎㅎㅎ
전원일기마을 쉼터다.
부용산 약수터에는 하계산으로 비박을 하려고 오르는 비박팀들이 잠시 쉬어가고 있다.
부용산약수터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위치한 높이 366m의 부용산은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양평 청계산과 형제봉을 가까이 한다. 산 정상에 자리한 부용산성은 임진왜란 당시에 개군면 상자포리에 소재한 파사성과 상응교신하여 용진(북한강)을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벽은 거의
붕괴되고 하단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지금도 봉수대 흔적을 볼 수 있다. 마을명 부용리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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