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천공소
1956년 3월 설립
아천공소를 설립 시에는 황금성당 관할이었고
현재는 대신성당 관할 공소이다.
금릉군 어모면 옥율동에 박팔문의 집안들이 살고 있었다.
1950년 6.25때 그의 누나가 교우였는데
평택에서 친정으로 피난생활을 할 때에 그 가정에 전교하였다.
황금성당의 최재선 요한신부 재임 시,
아가다 회장이 매주 방문교리를 실시하여
1952년에 박팔문의 아들 박희철이 영세하였다.
1953년 3월 김수환 스테파노신부 재임 시, 박팔문이 세례를 받고
공소회장으로 활약하며 가정집을 공소로 꾸몄다.
그때 신자 수는 약 70여 명이었다.
22. 송죽공소
1973년11월 황금동성당 13대 노규채(아우구스티노)신부님 재임시
구성면 송죽리에 한옥기와 한동을 구입하여 송죽공소로 사용하고
초대공소회장을 권덕조(안셀모)형제를 임명
송죽공소는 한옥을 구입하여 공소로 활용하였으나
대중교통 발달과 신자수 감소로 인하여
1990년경에는 사실상 공소로 활용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2008년 4월 "재단법인 대구구 천주교 유지재단" 앞으로 증여하였으며
현재 황금동 소속 신자인 1급 시각장애인이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다
본 건물은 흙벽돌및 목조로 건축한지 50년 이상이 경과되고(건축년도 미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가 새는 등 시각장애인의 거주가 곤란한 상태였는바
2016년 12월 "법부부 소속 법사랑위원 김천.구미지역 연합회"에서
금1,6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하였다.
23. 상신공소-성주
가천성당 관할 공소였으나
선남성당이 2000년에 설립되면서 선남성당 관할이 된다.
24. 용암공소
설립 당시에는 성주성당 관할이였으나
선남성당이 설립되면서 선남성당으로 이관됨
공소 건물을 독일 신부 알빈이 국내 활동했을 때에 건축하고,
프랑스 신부 앙드레 부통 신부의 성화들이
1971년 11월에 그려진 점을 고려하자면
설립 시기가 1960년 말쯤에서 1971년쯤으로 여겨진다.
25. 명포공소
설립 당시에는 성주성당 관할 공소였으며,
선남성당이 2000년에 설립 되면서 선남성당으로 이관된다.
독일 알빈 신부가 1967년에 건축했다는 자료가 있으나
이 시기가 설립과 동일한 연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26. 법전공소
1964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1964년 주택을 공소로 매입하기 이전에는
현재 법전공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동수(방지거)씨의
부친 박기숙(야고버, 초대 공소회장)씨와 외조모가
자신의 집에서 공소예절을 하면서 공소 연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4년 마을의 기존 주택을 공소로 구입하여 사용하다
오래전부터 공소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최근까지 박동수 공소회장(2대 공소회장이면서 법전공소의 마지막 공소회장)
누나가 거주하며 관리해오다 돌아가시면서 비어있는 상태로 있다가
현재는 마당에서 소를 키우고 공소 건물은 농자재 창고처럼 사용하고 있다.
27. 동원공소 - 성주
1967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공소 경당 왼쪽에 보이는 한옥에
형제님 부부가 살고 있으면서 공소를 관리하고 있었다.
자매님의 말로는 공소를 사용하지 않은 지가 약 15년 정도 된답니다
28. 신부공소
경북 성주군 선남면 신부길 235-9
공소 경당 상량문을 보면
'단기4285년 음 5월 3일 상량'이라고 쓴 글이 있고,
서기로 보면 1955년이 된다.
1955년에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으니 1955년 전이거나
아니면 1955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측해본다.
29. 보월공소
1967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폐쇄된 공소로 건물만 남아있다.
30. 오천공소
1968년 설립
1978년 폐쇄
관할본당: 가천성당
1965년경에 신자들이 모여(당시 70여명) 공소예절을 지냈으나
공소 설립은 1968년에 이루어졌으며,
1971년 경에는 공소 사택도 구입했다.
공소 설립 후 신자 수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신자들이 도시로 이주하고 냉담 신자가 늘어나면서
1978년도에 공소가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