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고로 자동차보험료를 많이 할인받는 고할인계층이 사실은 사고를 더 내 손해보험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업계가 최근 집계한 2003회계년도(2003년 4월~20004년 3월) 할인할증별 손해율 현황에 따르면 보험료를 적게 내는 고할인계층(장기 무사고운전자, 할인할증률 40~60%)의 평균 손해율은 88.1%로 저할인계층(70~90%)의 평균 손해율 72.2%보다 15.9%포인트나 높았다. 손해율은 수입 보험료에서 지급 보험금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험사들이 설정하는 예정손해율은 72% 수준이다.
할인할증 계층별로 손해율을 보면 7년 이상 무사고운전 등으로 보험료를 가장 많이 할인받는 40% 계층의 손해율은 92.5%, 45% 계층은 93.1%, 50% 계층은 88.0%, 60% 계층은 78.9%, 70% 계층은 74.0%, 80% 계층은 73.2%, 90% 계층은 69.5%, 최초 가입자가 많은 100% 계층은 69.1%였다. 무사고 등으로 보험료를 많이 할인받을수록 손해율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는 셈. 사고가 많아 할인할증률이 100%를 넘는 계층의 손해율은 69.1%에 그쳤다. 결국 사고다발자보다 고할인계층이 보험사의 경영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고할인계층의 손해율은 2002회계년도보다 더욱 나빠졌다. 2002년 40% 계층의 손해율은 84.1%에 불과했으나 1년만에 8.4%포인트 상승했다. 2002년 고할인계층의 평균 손해율도 2003년보다 3.6%포인트 낮았다. 게다가 고할인계층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여서 보험사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고할인계층의 비율은 회계연도 기준으로 2000년 46%에서 2002년 50%로 늘었고, 2003년에는 또다시 55%로 증가했다. 2003회계년도의 경우 40% 계층의 비율은 28%, 45·50·60% 계층은 각각 9%였다. 70~90% 계층의 비율은 30%, 100% 계층은 10%, 100% 초과 계층은 5%였다.
고할인계층의 손해율이 나쁜 이유는 더 이상 무사고로 받을 수 있는 보험료 할인혜택이 없거나 적어 사고가 나면 자비보다는 보험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해서라고 손보업계는 분석한다. 또 차를 오랫동안 탄 운전자들이어서 자신의 실수로 차에 손상이 생기면 보유불명사고로 처리하는 등 보험을 ‘활용’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손보업계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그 동안 고할인계층이 다른 보험사로 옮기는 걸 어렵게 만드는 등 이들에 대한 인수지침을 강화해 왔다. 최근들어서는 전통적으로 기피했던 사고다발자나 손해율이 높은 지역의 가입자를 고할인계층보다 선호하는 방향으로 인수지침이 바뀌고 있을 정도다. 비록 금융감독원과 손보업계의 반발로 무산되기는 했으나 지난 1월 일부 보험사가 고할인계층의 보험을 인수하는 대리점에는 수수료를 적게 줘 결국 대리점이 고할인계층을 홀대하게 만드는 ‘수수료 지급체계’를 도입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금감원과 손보업계는 보험료의 60%까지 할인받는 최고 할인율 도달기간을 현행 무사고 7년에서 12년으로 늘리는 요율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 방안은 고할인계층에 대한 보험사들의 인수기피를 막고, 보험사들의 손해율 부담도 줄여주기 위해 2003년부터 논의돼 왔다. 현재 외국의 최고 할인율 및 도달기간은 독일 25년(71%), 프랑스 13년(59%), 일본 8년(60%), 미국 6년(42%)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순탄하게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이 방안이 보험사에만 이익을 주고 그 피해는 보험 가입자에게 돌아오게 만든다는 반발이 강하게 일고 있어서다. 또 최고 할인율 도달기간이 늘어나면 보험료 할인폭이 감소돼 손해를 입게 되는 가입자들의 불만을 무시할 수도 없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명 사무국장은 “고할인계층의 손해율이 높다고 하지만 이는 그 동안 무사고로 손해율 안정에 기여했던 측면을 무시하고 당해연도 기준으로만 손해율을 산정했기 때문”이라며 “가입자 피해를 주는 요율제도 변경보다는 가짜 환자와 병원 과잉진료, 과다 정비요금 청구 등 손해율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고치가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