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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방송 수필】
망우(亡友)
― 젊은 나이에 하늘에 별이 된 친구를 그리워하며
윤승원 수필가
■ 필자의 말
나는 30대 젊은 시절에 여러 매체에 다양한 글을 썼다. 1990년 순수 문예지 『한국문학』 지상(誌上) 백일장에서 장원 당선(심사위원 김윤식 서울대 교수, 전상국 소설가)된 이래,
KBS 1라디오 문학프로그램인 『시와 수필과 음악과』를 통해 시와 수필을 다수 발표했다.
이 문학프로그램에서는 수필전문지 『한국수필』과 공동으로 작품을 공모했는데, 이때 수필이 당선(심사위원 : 서정범 경희대 교수, 오창익 인천대 교수)되어 등단 기념패를 받았다.
등단 후에도 이 문학프로그램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스스로 좋아서 쓰기 시작한 글이지만 방송 수필을 계속 써야 할 의무감도 생겼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등단했으니, 작품 선정 과정에서 졸고를 뽑아준 심사위원과 프로그램 제작자에 대한 감사의 뜻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매력은 무엇보다 성우가 내 글을 낭송해준다는 기쁨이 컸다.
새벽차를 타고 상경한 적도 있다. 등단 작가 인터뷰를 했다. 라디오 국장실에서 등단 기념패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귀한 말씀을 들었다.
“이 기념패는 그동안 좋은 작품을 써준 데 대한 보답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열심히 써달라는 주문도 담긴 기념패라고 생각해 주세요.”
▲ 방송 수필 등단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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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격려와 각별한 축하가 담긴 라디오 국장과 담당 PD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뒤로도 틈틈이 글을 썼다.
방송 원고 분량은 길지 않았다. 수필 원고의 경우 10장 내외였다. 보통 15장~20장이 일반적인 수필 원고 분량이지만, 방송 수필은 10장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쓰는 사람도 부담이 적거니와 청취자들도 그 정도 분량이면 지루하지 않게 듣는다고 한다.
그런데 남모르는 애로가 있었다. 원고를 방송국에 보내면 나의 작품이 방송되는 날, 실시간으로 라디오를 청취하기 어려웠다.
당시 일선 경찰관으로서 야간 비상근무가 잦았던 나는 심야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을 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는 아내가 가정에서 카세트로 방송 전파를 잡았다. 당시 아내가 녹음해 둔 나의 시와 수필이 23편.
▲ 서재 책장에 간직해 온 필자의 방송 녹음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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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었다. 멀리 망망대해에서 파도와 싸우며 힘들게 근무했던 형님도 동생의 방송 수필을 들었다고 한다.
전파를 타로 흘러나오는 동생의 수필을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형님은 따뜻한 정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36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 그 소중한 방송 수필을 다시 들을 수 없다.
테이프는 낡고 늘어져 재생이 어려운 것도 있는 데다가 ‘디지털 시대’에 그것을 다시 돌려볼 오디오마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사 다닐 때도 빠뜨리지 않고 애지중지 보물처럼 간직해 온 나의 방송 녹음테이프. 승용차에도 비치하고 틈만 나면 들었던 방송 녹음테이프. 공테이프를 사다가 복사하여 지인들에게도 나눠주었던 방송 녹음테이프.
이제 세월의 무게를 아는지 서재 책장 한구석에서 마치 ‘근대사 유물’처럼 필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낡은 방송 테이프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윤 선생! 그처럼 애지중지해 왔던 우리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복원이나 재생할 기계가 없다고 그냥 버리실 건가요?
이제 칠십을 훌쩍 넘긴 연세인데, 장차 방송 테이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요?
부인과 그 멀리 사시는 형님께서 정성스럽게 녹음해 준 이 귀중한 방송 테이프를 어떻게 처분하실 건가요?”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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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시 내 글을 가슴 촉촉하게, 때론 애틋하게, 온갖 감정을 실어 낭송해준 KBS 성우(박규웅 님, 황재경 님, 홍성헌 님)의 귀한 목소리를 어디로 떠나보낼 순 없다.
어디 그뿐인가. 진행 아나운서(이규항 님)의 부드러우면서도 중후한 목소리를 어디 다른 길로 함부로 떠나보낼 수 없다.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가보(家寶)처럼 물려주려고 한다.
한 시대 한 가정의 아버지가 어떤 사유(思惟)의 삶을 살아왔는지, 단편적이나마 가족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손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아, 잠깐!
글을 마치려고 하니까, 젊은 나이에 하늘에 별이 된 고향 친구가 “한 마디하고 싶다”고 한다.
“자네의 방송 수필 중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쓴 글도 있네. 1992년 2월 26일 밤 11시 10분~12시 사이, KBS 1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그 수필을 다시 들어보고 싶네.
자네 『블로그』에 올려 주게.
뭐라고? 방송국 성우와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제작된 녹음테이프는 ‘저작권 문제’가 따른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당시 방송 수필 원고 원본을 그대로 올려 주게.
자네를 참 좋아하셨던 우리 부모님께도 읽어드리고 싶네.” ■
2026. 9. 22. 추석 명절을 앞두고
윤승원, 고향 친구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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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 방송 수필 중에서 『망우(亡友)』
- 1992.2.29. KBS 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방송. (필자 나이 30대 중반에 쓴 글)
※ 필자 주 : 이 글은 KBS 성우 홍성헌 님의 따뜻한 목소리로 낭송됐다. 그분의 정겨운 목소리로 이 글을 들으면 위로가 된다. 그 옛날 친구의 부친 목소리도 그처럼 푸근하고 인정이 넘쳤다. 언제 만나 뵈어도 예(禮)가 반듯하신 어른이었다. 자식 또래인 내게도 하대하지 않았다. 충청도 명문가의 선비 어르신이었다. 감정이 풍부한 성우의 목소리로 이 글을 들으면 더욱 생생하게 현장이 그려지고, 슬픔이 가슴에 촉촉이 스며든다. 그러나 묘하게도 위로가 된다.
▲ 필자의 방송 수필 중에서 <亡友> 녹음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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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亡友) 윤승원 얼마 전 시골에 갔다가 우연히 옛 친구의 부친을 뵈었다.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저세상으로 간 친구의 아버지이시다. 어른께서는 참으로 반가워하셨다. 마치 객지에 나갔던 자식이 돌아 온 것처럼 내 양손을 꼭 잡으시며 “이게 얼마 만인가? 하셨다.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가 큰절을 올리자, 어른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닐세, 단명(短命)한 자식을 두어 내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애써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시려는 그 말씀 한마디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죽은 자식의 친구를 만나 오히려 ‘면목이 없으시다’라고 하시는 어른. 그분의 마음을 나는 무어라 위로 드릴 수 없었다.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북망산천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라고 했던가. 부모를 두고 앞서간 친구. 그 친구가 야속하기만 하다. 돌이켜 보면 그와의 우정은 각별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고, 객지에 나와 잠시 자취 생활도 함께했던 친구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그의 결혼식 날 내가 사회를 보았던 일이다. 많고 많은 친구 중에 그의 부친이 유독 나를 지목하여 사회를 보게 한 것은 평소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그의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가장 친한 친구분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와의 우정도 영원히 변함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의 미망인과 가족을 스스럼없이 찾을 수가 없다.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직접 찾아가진 못했다. 물론, 이 세상엔 망자(亡者)의 가족을 혈육처럼 돌봐주고 있는 따뜻한 우정도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산 사람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혹여 나의 존재가 그의 가족들에게 작은 부러움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나만의 기우에서일까. 망각의 세월.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분들께 한 점 마음에 파문이라도 드릴까 조심스럽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둘째 형을 잃고 한평생 가슴앓이로 사셨다. 어머니의 가슴은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파도와 같은 것이었다. 심할 때는 그 격랑을 이기지 못하고 몸져눕곤 하셨다. 난 그와 같은 어머니의 증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쩌다 형의 친구들이 어머니 앞에 나타나는 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만나면 어루만지면서 그토록 반가워하시는데, 떠날 때는 뒷모습을 보며 망연히 옷고름 적시던 어머니. 그래도 내색지 않으려고 이렇게 당부하셨다. “자주 들리렴, 변함없이 살자꾸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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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 작품은 단순히 36년 전 방송 원고를 복원하는 글이 아니라, 한 작가의 문학적 출발점과 우정, 부모의 슬픔, 가족의 기억, 그리고 오래된 목소리의 시간을 한데 묶어 놓은 문학적 기억의 복원 작업으로 읽힙니다.
■ 「망우(亡友)」에 대한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
― 한 사람의 죽음에서 부모의 슬픔과 인간의 도리까지
윤승원 수필가의 「망우(亡友)」는 짧은 방송 수필이면서도 그 안에 우정과 죽음, 부모의 마음, 살아 있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을 깊이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젊은 시절의 글을 칠십을 훌쩍 넘긴 작가가 다시 꺼내어 바라본다는 점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30대 중반의 윤승원이 쓴 「망우」에는 친구를 잃은 젊은이의 슬픔이 있었다면, 36년 뒤의 윤승원에게는 그 슬픔을 넘어 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마음이 더해졌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는 단순한 녹음물이 아니다. 그것은 젊은 작가의 목소리와 가족의 정성, 친구의 우정, 그리고 한 시대의 방송문화가 함께 봉인된 시간의 유물이다.
1. 「망우」의 핵심은 죽음보다 ‘남겨진 사람’에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친구의 죽음 자체가 아니다.
친구의 부친이 아들의 친구를 만나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다.
“단명(短命)한 자식을 두어 내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참으로 역설적인 말이다.
아들을 잃은 부모가 오히려 아들의 친구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죄책감, 미안함, 허망함, 그리고 친구를 통해 죽은 자식을 다시 만나는 듯한 애틋함이 함께 들어 있다.
작가는 이 말을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바로 이 절제가 작품의 힘이다.
슬픔을 크게 외칠수록 독자의 감동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설명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윤승원 수필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절제된 감정의 표현이다.
2. 친구의 죽음에서 어머니의 슬픔으로 확장되는 구조
「망우」는 친구를 추억하는 글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작가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이동한다.
이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친구의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이야기하던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 역시 둘째 아들을 먼저 보내고 평생 가슴앓이를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경험은 하나의 보편적인 정서로 확대된다.
친구의 아버지 → 죽은 친구 → 작가의 어머니 → 먼저 떠난 형 → 살아남은 가족
이 연결고리를 따라가면 작품의 주제가 ‘친구의 죽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망우」가 말하는 것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작품 후반부의
“어머니의 가슴은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파도와 같은 것이었다.”
라는 비유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파도’라는 이미지가 앞부분의 망망대해를 떠올리게 하면서, 훗날의 방송테이프와 형님의 이야기에까지 연결되는 점도 흥미롭다.
이 작품 전체에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기억이라는 정서적 이미지가 흐르고 있다.
3. ‘찾아가지 못한 마음’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윤리
이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매우 섬세한 부분은 친구의 미망인과 가족을 찾아가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이다.
작가는 그 가족을 외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찾아가지 못한다.
“혹여 나의 존재가 그의 가족들에게 작은 부러움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나만의 기우에서 일까.”
이 문장은 작품의 핵심적인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
친구는 죽었고 자신은 살아 있다.
그 사실 자체가 살아남은 친구에게 일종의 미안함으로 남는다. 특히 친구의 가족에게 자신의 건강한 모습이 혹시 상실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아닐까 조심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우정은 무조건 찾아가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우정에도 상대방의 상처를 헤아리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윤승원 수필의 인간미다.
거창한 교훈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작은 망설임을 통해 인간의 도리를 보여준다.
4. 마지막 문장 “자주 들리렴”이 작품 전체를 완성한다
「망우」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말씀이다.
“자주 들리렴, 변함없이 살자꾸나.”
이 문장은 매우 평범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읽고 나면 전혀 평범하지 않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자주 들리렴”에는 죽은 아들을 대신해 친구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변함없이 살자꾸나”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당부가 있다.
그리고 36년 뒤 이 문장을 다시 꺼내놓은 작가는 이제 칠십을 넘겼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과거의 어머니가 했던 말인 동시에, 오늘의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되새기는 말처럼 읽힌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들었던 말이 이제는 세월을 살아온 노작가에게 “변함없이 살아온 삶을 어떻게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5. 이번 ‘방송 수필’에서 카세트테이프는 하나의 문학적 장치가 된다
이번 글의 후반부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오래된 방송테이프를 의인화했기 때문이다.
책장 한구석의 낡은 테이프가 작가에게 묻는다.
“윤 선생! 그처럼 애지중지해 왔던 우리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 대목에서 글의 분위기가 잠시 바뀐다.
앞부분의 「망우」가 죽은 친구를 향한 추억이라면, 현재의 글에서는 낡은 테이프가 지나가 버린 청춘을 호출하는 또 하나의 ‘망우’가 된다.
테이프는 늙어가고, 작가도 늙어가고, 그 시절의 방송인들도 세월 속에 변해갔다.
따라서 테이프의 낡음은 단순한 물리적 노후가 아니다.
한 시대의 노화다.
카세트테이프 속에는 젊은 날의 작가뿐 아니라 아내가 녹음하던 정성, 멀리 바다에서 듣던 형님의 외로움, 성우의 목소리, 아나운서의 목소리, 당시 라디오를 듣던 청취자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작가가 그것을 “근대사 유물처럼” 바라본다는 표현도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한 개인의 자료가 세월을 만나면서 개인사적 기록이 시대의 기록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6. 이 글에서 아내와 형님은 ‘기억의 보관자’다
특히 아내와 형님의 역할이 따뜻하다.
작가가 방송을 직접 듣지 못할 때 아내는 카세트에 방송을 녹음해 두었다.
그리고 먼 바다에서 근무하던 형님은 동생의 방송 수필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고, 녹음테이프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왔다.
이 장면은 참 아름답다.
아내는 작가의 목소리를 보존했고, 형님은 그 목소리를 먼 곳에서 들었다.
그러므로 방송은 단순히 방송국에서 청취자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고, 바다로 건너갔으며, 가족의 마음속에 저장되었다.
오늘날에는 클릭 한 번으로 녹음하고 복사하고 공유할 수 있지만, 당시의 카세트테이프에는 사람이 사람을 위해 직접 녹음하고, 복사하고, 우편으로 보내던 정성이 있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디지털 시대에는 쉽게 잊히는 아날로그 시대의 인간적 온기까지 복원한다.
7. ‘망우(亡友)’는 사실 두 번 쓰인 작품이다
문학적으로 보자면 이번 글의 가장 큰 의미는 이것이다.
젊은 날의 「망우」와 오늘날의 「망우」는 같은 작품이면서도 서로 다른 작품이다.
1992년의 「망우」는
친구를 잃은 30대 작가가 죽음과 부모의 슬픔을 바라본 작품이다.
2026년의 「망우」는
70대 작가가 낡은 테이프를 꺼내 들고 그 시절의 자신과 친구, 부모, 형님, 아내, 방송 관계자들을 다시 만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번 글은 단순한 재수록이 아니라 문학적 시간여행이다.
젊은 윤승원이 쓴 글을 늙어가는 윤승원이 다시 읽으면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서로 마주 앉는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갖는 특별한 문학적 가치다.
8. ‘방송 수필’이라는 장르적 의미
윤승원 수필가의 방송 수필은 일반적인 지면 수필과 조금 다른 호흡을 갖는다.
방송에서는 독자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다.
따라서 문장은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고, 장면이 선명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귀에 들어와야 한다.
「망우」에는 이러한 방송 수필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
- 짧고 선명한 대화
- 청각적으로 기억되는 문장
- 장면 중심의 서술
- 감정을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는 절제
- 마지막에 오래 남는 한 문장
특히 성우가 낭송했을 때 효과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게 얼마 만인가?”
“단명한 자식을 두어 내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자주 들리렴, 변함없이 살자꾸나.”
이런 문장들은 눈으로 읽는 문장이면서 동시에 귀로 들었을 때 더 큰 정서를 만들어내는 문장이다.
9. 이 작품에서 가장 귀한 것은 ‘기억을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결국 이 글의 중심에는 낡은 테이프가 있다.
그러나 작가가 보존하고 싶은 것은 테이프가 아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과 시간이다.
친구의 목소리는 이미 없다.
어머니도 떠나셨다.
형님도 이제 기억 속에 계신다.
당시의 방송 관계자와 성우들의 목소리도 세월 속에 묻혀간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겠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방송에 나왔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 테이프를 통해 후손들이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문학적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테이프는 작가에게 작은 가보(家寶)가 된다.
◆ 맺음말 ― 「망우」는 ‘잊지 않는 사람’의 문학이다
윤승원의 「망우」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기억’일 것이다.
친구를 기억하고,
어머니를 기억하고,
형님을 기억하고,
아내의 정성을 기억하고,
젊은 날의 자신을 기억하고,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담아준 라디오를 기억한다.
그래서 제목 ‘망우(亡友)’는 단순히 ‘죽은 친구’를 뜻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 글에서 망우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이 작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떠나도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목소리는 사라져도 마음에 남은 울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도 사랑으로 보관된 기억은 다음 세대에게 건너간다.
30대 중반의 윤승원이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며 썼던 「망우」가 36년 뒤 칠십을 넘긴 윤승원의 손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 자체가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역설이다.
죽음을 이야기한 글이 오히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살려냈다.
그렇기에 이번 「방송 수필」은 단순한 옛 원고의 복원이 아니라, 한 수필가가 자신의 문학적 생애와 가족의 사랑, 우정의 기억을 후손에게 건네는 ‘문학적 유산 목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고향 친구가 저 높은 곳에서 말을 건네는 장면은 압권이다. 작가는 친구를 잊지 않았고, 친구 역시 작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 순간 1992년의 「망우」와 2026년의 윤승원이 쓴 회고의 글이 하나로 포개진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가장 깊은 문학적 울림이다.
◆ 작가에게 드리는 말씀
이번 「망우(亡友)」는 참으로 특별한 작품입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윤승원이 쓴 글을 36년 뒤 70대의 윤승원이 다시 꺼내어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마지막 부분이 오래 남습니다.
“자네를 참 좋아하셨던 우리 부모님께도 읽어드리고 싶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가 저 높은 곳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이 한마디에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구, 그리고 한평생 이어진 인연을 잊지 않으려는 선생님의 마음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버리지 않고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마음도 참 좋습니다.
그 테이프는 이제 단순한 녹음자료가 아니라 윤승원 문학의 작은 유물이며 가족의 기억을 담은 가보가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망우」의 가장 아름다운 의미는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속에서는 다시 말을 걸어온다.
1992년의 친구가 2026년의 작가에게 다시 말을 걸어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죽은 친구를 추억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잊지 않음으로써 다시 만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오래 간직해 오신 그 낡은 테이프들이 앞으로 아드님과 손자에게 건너가면, 그들은 아마 녹음된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한 수필가가 후손에게 남길 수 있는 참으로 따뜻한 문학의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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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영진 교장선생님 답장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22.14:58
亡友는 윤 선생에게 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깊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이 지나서 잊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마곡사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옆의 친구가 “엄마 추워, 이불을 덮어줘”라고 했던 친구가 20세 전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금도 저의 기억에 亡友의 생각과 추억이 생생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애처로운 죽음을 맞이한 친구가 한둘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름과 친구와 가졌던 우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슬픈 이별의 한 장면을 문학가이신 윤 선생은 이모저모 세세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의 친구분 중에도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가 여럿 있군요. 그런데 먼저 간 친구보다 그 부모님의 애절한 심정을 글에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애절하지만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고 겉으로 내색지 않으시는 ‘언어의 품격’을 친구 부모님으로부터 가슴 뭉클하게 느꼈습니다. 부처님과 같은 자비와 인정으로 저의 졸고를 세밀하게 읽어주시고, 따뜻한 격려의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