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우리 가족의 먹거리가 자라고 있는 텃밭의 야채들도 올여름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온갖 식물들이 길러 낸 자식들을 허락도 안 받고 수확하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하는 텃밭이다.
"너, 정말 훌륭하다! 고마워, 미안해!"
식물들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하며 조심스럽게 수확한다. 그래야 마땅하다는 듯 텃밭의 식물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나만의 표현 방식이다.
시장에 온 것처럼 수확이 가능한 것들을 따낸다. 오이 두세 개는 매실액과 미역을 넣은 냉국이 되고, 가지 서너 개는 데쳐서 들기름을 넣어 무침이 된다. 상추와 풋고추는 삼겹살 구이와 쌈이 된다. 향긋한 깻잎은 양념장을 만들어 바르고, 아욱으로 된장국까지 끓여 차린 식탁은 최고의 밥상이 된다.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우리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들로 만든 것이다. "우리 텃밭이 기른 거예요" 한 마디면, 어떤 반찬도 "맛있다"라며 통과다.
엄마가 어느 해에, 고추 7,000주를 심으셨다. 나도 근무하던 때라서 평일은 어렵고, 주말에는 무조건 엄마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어려서부터 들일을 해 버릇해서 손이 빠른 나는 모종도, 줄 치고 묶거나 고추를 따는 일에도 큰 소용이 되었을 것이다. 허리도 어깨도 무릎도 어디랄 것도 없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큰 농사를 혼자 도맡아 하시는 엄마가 행여나 힘들어서 쓰러지시면 어쩌나 늘 걱정이 앞섰다. 내 집을 팽개쳐놓고 엄마한테 달려가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농사를 지어보니 알겠다. 온갖 정성으로 키운 결실들을 제때에 수확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었다는 것을.
벅찬 농원일 중에서 텃밭은 내 쉼터다. 씨앗을 심어 놓고 싹이 올라올 때를 기다리는 마음, 여리디 여린 순들이 땅을 불끈 밀어 올리고 올라오는 것이 경이롭다. 순들이 자라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새싹은 힘이 세다', '지구를 뚫고 오른다' 등의 동시들도 있지만, 흙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고 기특해서 흙을 치워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작은 씨앗들이 무거운 흙을 들어 올리며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식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이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늘 바쁘고 또 바쁜 것은 텃밭에서 수확한 식물들로 요리를 하느라 그런 것도 큰 몫을 한다. 농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도 텃밭에서 가져온 것들을 다듬고 볶고, 김치를 담는 등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있어서 쉴틈이 없다. 자급자족을 부르짖는 남편이지만, 반찬 하나라도 만드는 것은 모두 내 일이다. 대신, 설거지는 책임져 주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 몫의 일이 항상 더 많다.
딱, 그만큼. 텃밭만큼의 소소한 농사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속의 텃밭을 벗어나 농원 주변으로 호박넝쿨이 자라고, 감자밭도 생기고, 그 자리가 콩밭과 들깨밭이 되는 등 점점 욕심이 생겨서 텃밭이 늘어나고는 있다. 비단, 텃밭을 늘리고 싶은 욕심만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를 온갖 풀들이 차지하게 돼서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심게 된다.
엄마께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힘드시니까 농사를 짓지 마시고 편하게 지내시라고 누누이 말씀드려도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시는 이유가 그것이다. 빈 땅으로 놀리는 것을 못 견디시는 것이다. 땅을 놀리면 벌이라도 받는다고 생각하신다. 그 자리에 작물이 아닌, 풀이 자라나는 것을 못 보시겠다는 것이다.
엄마는 평생을 그렇게 풀보다 더 부지런하게 사셨다. 손을 놓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 힘들어도 흙이 있는 곳, 작물들이 있는 곳으로 노구를 유모차에 의지해서라도 스스로 찾아가시는 이유다. 텃밭의 효용은 자그마한 땅이라도 심을 곳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크다고 생각된다. 좋아하는 식물을 심고 가꾸는 소확행으로서 최고의 기쁨이겠다. 식물들이 씩씩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엄마도 나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첫댓글 텃밭이 주는 행복!
너무 공감이 가네요.
마트가 된 텃밭, 고마운 텃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