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번쩍거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다. 아주 격렬한 충격만 느꼈을 뿐이다. 전극에 몸이 닿았을 때의 느낌과 동시에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무(無)로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떠올린 것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생각해 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조지 오웰 <카탈루냐 찬가>)
<동물 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36년 말 파시스트 반란군에 맞서 공화국 정부를 수호하기 위한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다. 다행히 상처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고, 그 사건을 전후한 그의 참전 경험은 <카탈루냐 찬가>라는 보고문학 작품을 낳는다. 조지 오웰만이 아니었다. 앙드레 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빌리 브란트, 시몬 베유 등을 포함한 4만여 명의 외국인 용병이 국제여단의 이름으로 참전했고, 또 다른 2만여 명은 후방에서 의료와 보급활동에 매달렸다. 말로의 소설 <희망>,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은 이처럼 직접 참전 경험에서 나온 전쟁문학이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60여 년 전 스페인 내전 당시를 연상케 하는 전세계 양심 세력의 결집을 불러오고 있다. 물론 스페인 내전 때처럼 소총과 수류탄을 들고 전선에 나가는 방식은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전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은 ‘인간 방패’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들어가 미국의 미사일을 온몸으로 막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시위와 항의성명, 반전 예술작품 창작,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연대라는 방식으로 ‘간접 참전’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소설가 오수연씨를 이라크 인접지역에 파견했고(<한겨레> 3월17일 치 31면 및 24일 치 7면 참조), 박노해 시인은 개인적으로 요르단 암만으로 향했다. 작가회의 소속 문인 100여 명은 2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반전 집회를 열고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작가회의가 가두행진에 나선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저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이끄는 ‘Z네트’( www.zmag.org)라든가 ‘전쟁에 반대하는 시인들’( www.poetsagainstthewar.org)과 같은 인터넷 사이트도 전세계의 지식인과 문학인을 반전 대오에 결집시키고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25일의 종묘 집회에 나온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말대로 “수십 억 인류의 반전 목소리를 합친다면 반드시 이 미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이 전세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