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말글 사랑, 리대로. 원문보기 글쓴이: 나라임자
1. 머리말
한글은 만든 의도와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긴 글자이다. 인류사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의사소통체계이며,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결과도 감동적이다.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낸 원리는 그 체계나 성질에서부터 이미 다른 글자의 역할이나 표기 기능을 뛰어넘었다. 그림으로부터 진화해온 대부분의 글자들과는 그 갈래 자체가 완전히 다른 체계이다. 우주의 이치를 형이상학적으로 모방했고, 탁월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소통체계를 세웠다. 하늘, 땅, 사람의 어울림을 상징화했고, 무한확장이 가능한 표현력까지 갖추었다. 쉬운 이치와 단순한 원리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기호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발상과 표현의 극치이다. 어디 그뿐인가. 글자를 만든 시기와 사람, 창제 원리와 사용 방법 등을 한 권의 책 《훈민정음》에 담았다. 이 책은 주로 새로 만든 글자에 대한 해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창작에 대한 명쾌하고 남다른 철학까지 전하고 있다. 우리 전통 미학을 살려낼 중요한 실마리이다. 이처럼 한글은 단순하게 말이나 소리를 표기하는 보통의 소리글자가 아니다. 진화하는 예술품이고, 정신문화의 깊은 뿌리이다. 한글 관련 정책을 바로 세우고 펼치려면, 한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글에 대한 태도나 한글 산업화에 대한 시각은 서로가 조금씩 다른 듯하다. 과연 한글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어 정책의 그늘에 가려온 한글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2. 한글의 문제
2.1. 모호한 개념
한글에 관련한 여러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의 한글에 대한 이해 수준은 한국어와 한글의 개념이 뒤섞일 정도로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말과 문법만 잘 살려서 쓰면 덩달아 한글도 살아날 것처럼 오해하는 예도 자주 보인다. 한글과 국어 발전을 위해 제정했다는 국어기본법에서조차 한글에 관한 내용은 단 두 줄에 불과하다.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와,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가 그 내용의 전부이다. 국가 차원의 한글에 대한 태도가 마치 오늘의 한글이 빈틈없이 완벽한 글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수준이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토론회, 발표회, 전시회 등의 각종 행사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한글 사랑 의식도 자연히 높아지고 한글도 저절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2.2. 부실한 교육과 소통 체계
지나친 애국심 때문인지 맹신적으로 한글을 최고라고 떠받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한글의 특성이나 우수성을 오히려 미심쩍어하는 분들도 있다. 관련 교육 내용과 체계가 부실한 것도 문제이겠지만, 한글 활용 실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말이나 글로는 여기저기에서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글씨 쓰기 교육 체계와 일상의 글자 활용 체계가 서로 긴밀하게 통합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 둘 의혹이 생기는 것이다. 만들 때에는 소리, 꼴, 뜻의 이치가 하나로 이어지도록 공을 들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런 이치가 많이 틀어지고 적당히 변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나 내용이 글자로 생산∙소비되는 과정을 가볍게만 살펴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에 대한 관리 기관이나 전문 인력도 아예 없어 보인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각종 한글 교구나 교재의 내용도 다양성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혼란스럽고, 특히 유아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까지의 한글 익히기 과정과 글씨 쓰기 교육 체계는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휴대폰을 포함한 각종 단말기 입력 방식도 스무 가지 이상이고, 아직도 여러 단말기 화면에서는 글자꼴이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리며 조합되고 있다. 근본이 의심스럽고 무질서한 활자꼴이 버젓이 지방자치단체 전용 글꼴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도시나 국가를 대표하는 글꼴의 중요성과 역할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바른 말 고운 말에 대해서는 사회적 개념도 있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있으나, 바른 꼴 고운 꼴은 개념조차 부족하다.
2.3. 보이지 않는 정책과 조직
정부 주요 부처나 각종 단체, 관련 학회나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한글을 자랑삼아 내세우고 있고, 한글 수출, 한글 산업화에 대한 논의나 사업도 일부 전개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한글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나 체계적인 지원 사업은 아예 없다고 할 수준이다. 한글 산업화만 하더라도 그 기본이 표준화이고, 표준화를 하려면 종합적인 기초연구가 따라야 하는데, 준비는 없고 산업화나 수출만 외치고 있으니,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꼴이다. 이런 처지이니 문화유산 한글이 버려져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한글을 지속적으로 총괄하는 부서나 담당자는 한 사람도 없는데, ‘한글박물관’이 세워지고 있고, '한글마루지'가 추진되고 있으니, ‘한글진흥원’이 더욱 아쉽고, ‘한글진흥특별법’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글자꼴 창작자의 생존권과 같은 한글 활자꼴 저작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컴퓨터 문서편집기에선 호환성 부족한 한글이 널려 있는데, 이런 상황은 누가 바로 잡을 것인가. 아직도 통신망에서는 이쪽 글을 저쪽 컴퓨터로 옮기다 보면, 알아볼 수 없는 특수문자가 나타나거나 글의 부분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예도 있다. 이대로 두면 머잖아 미국제 한글에 일본제 한글, 각종 외제 한글 쓰는 날을 또 겪을 판이다.
3. 한글 진흥의 방향
3.1. 기본 태도
한글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한글 진흥의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 더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47세의 세종 이도가 570여 년 전에 오늘의 서울 광화문 안쪽 경복궁 어딘가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었나? 목숨까지 걸 정도의 지극 정성으로, 더 쉽고 더 편리하고 더 쓸모 있게 만들었다. 왜? 진정한 나와 우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모든 면에서 중국이라는 큰 나라의 눈치를 보던 시대에, 작지만 바른 나라, 온전한 조선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 정신문화의 독립 선언이었고, 그 실행의 출발이었다. 그런 바탕 없이는 국민과 진정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원활한 소통이 있어야 이상 국가 건설이 가능함을 깨달은 것이다. 새로운 문자 창제로 우리를 살려냈고 깨우쳐 주었다. 그래서 한글을 민족 최고의 선물이라 하는 것이고, 고귀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글진흥정책의 방향은 바로 이 기본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세종 이도와 같은 태도와 열정으로 한글의 가치를 끝까지 끌어내어 온 누리에 알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금보다 더 나은 한글, 더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자와 의사소통 체계의 중심 국가를 꿈꿔야 하고, 더 나은 의사소통체계로 새로운 문명을 나누겠다는 확고한 방향을 세워야 한다. 이런 이상을 가져야 지극정성의 태도와 열정, 창조성과 실행력이 따라오는 것이다.
3.2. 핵심 대상
한글 진흥의 핵심 대상은 글자다. 말과 글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대중 소통을 위한 실용적인 글씨 쓰기와 가장 널리 활용되는 보편적인 글자, 활자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른바 곱고 바른 글자꼴이다. 이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하고 이를 위한 시민운동, 연구, 개발, 보급하는 사업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 이런 일이야말로 한글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한글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좋은 글자꼴은 그저 모양만 예쁘게 다듬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법과 자법에 맞아야 하고, 도구나 매체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
3.3. 한글진흥원의 꿈
한글 진흥 정책은 한글에 대한 최고의 기능과 권한을 가진 곳에서 특별하게 계획하고 펼쳐야 한다. 이곳을 통해서 여러 관련 기관, 단체, 전문가들의 능력을 모아야 한다. 한글이 언어는 언어이지만 단순한 문자 언어가 아니고, 예술은 예술이지만 단순한 차원의 예술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철학과 과학이 어울려야 하고, 공학과 기술이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다. 고도의 능력이 축적된 최고의 문화유산을 특정한 정부 기관 하나 없이 지키고 진흥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오늘의 한글은 거대한 매머드로 성장했고, 갈수록 연결망이 늘어나고 복잡해지고 있다. 특정 분야의 몇몇 전문가들이 도맡기엔 너무나 크고 어려운 숙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글 진흥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몇 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
첫째, 한글은 곧 대한민국이다. 한글의 표정과 활용 여건과 환경은 곧 국가와 민족의 상징과 이미지로 연결된다. 한글 조형과 한글 사용 환경이 쌓이고 모여서 국가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한글이 진흥하면 대한민국도 더 당당해진다. 나라의 가치와 품격, 국격을 높이는 데에 큰 힘이 된다. 국가가치 전략의 핵심 요소이자 대표적인 매체가 바로 한글이다. 둘째, 의사소통 체계가 원활해진다. 단순히 글자 소통 체계만 원활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 전반의 체계가 매끄러워진다. 한글엔 이미 그런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과 통합적 의미의 소통 체계가 잘 짜인다면, 이것은 행복한 삶,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트는 셈이다. 셋째, 한글의 가치가 높아지면 국민의 자긍심도 따라서 올라간다. 자부심과 자긍심이 높아지면 자연히 존재감도 높아지고, 존재감이 높아지면 창의력이나 실행력도 따라서 향상된다. 이는 곧 나라 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진다. 넷째,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다. 문자 이전과 이후 인류의 삶이 다르고, 한글 이전과 이후의 우리네 삶이 달라진 것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한글을 만드는 일은 곧 더 나은 인류의 삶을 꿈꾸는 일이다. 이것은 국가 비전으로 삼을 만한 매력 넘치는 이상이다. 역사와 전통 가치에 대한 재발견의 기회이고, 창조적 성장의 원천 동력을 만드는 대사업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국립한글진흥원(가칭)을 세울 명분과 이유는 분명하다.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 없이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모든 국민이 한글 진흥의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적극 안내해야 한다. 공감을 넘어 감동을 끌어내야 한다. 현재의 문제점도 알려야 하고, 한글의 특성이나 우수성도 더 이해하기 쉽게 끌어내야 한다. 수준별, 대상별 교육 체계도 세워야 한다. 한글을 알리는 일이 바로 감동을 나누는 일이고, 그런 감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잘 알려야 한다.
4. 한글진흥원의 기능
한글 진흥의 방향과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위하여 한글진흥원 설립을 가정하였고, 이 기관에서 추진해야 할 사업의 내용을 정책과 제도, 연구와 개발, 지원과 교육, 한글 아카이브, 기타로 구분하여 대략 열거하였다.
4.1. 정책과 제도
• 한글 관련 정책의 종합계획 수립과 추진
• 한글 관련 법령, 제도, 글자 규범의 수립과 운영
• 한글 심의회 구성과 운영, 한글책임관 운영과 평가
• 한글 관련 정보화 정책 수립과 시행
• 글자와 글자활용, 전문 글자꼴 등의 표준화
• 공공 글자꼴 품질 향상과 글자 사용 환경 개선
• 국민의 글자 활용 능력 향상과 글자 활용 소외계층 지원
• 한글과 관련된 유산 보존, 옛 활자꼴 발굴과 보전
• 한글문화원 지정과 지원, 한글 보급기관의 설치와 지원
• 한글문화 생활화, 한글가치 확산과 홍보
• 한글 교사 자격제도, 외국인·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한글 교육
• 한글 관련 기구, 단체, 인재의 육성과 지원
• 한글 연계 기관, 장소, 공간 발굴과 협력 체제 운영
•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한 한글 체계 정비
• 한글 관련 저작권, 특허권 보호와 활용
4.2. 연구와 개발
• 《훈민정음》과 한글, 문자학, 세계 문자 연구: 훈민정음 연구와 홍보, 세계 문자와 한글 비교
• 글자 한글: 곱고 바른 한글꼴 연구와 개발, 각종 활자꼴 표준화 연구
• 예술 한글, 문학 한글: 시, 소리(창), 회화, 조각, 공예, 소설, 영화, 연극, 춤, 패션, 타이포그래피
• 철학 한글: 한글 미학, 서법과 자법, 예악과 한글, 동아시아 철학과 한글, 국가와 한글, 정치와 한글
• 과학 한글, 언어 한글, 의사소통체계 한글: 음성학, 언어학, 국어학, 문자학, 기호학
• 한글 관련 공학과 기술: 인간 공학과 손글씨, 글자의 가독성과 판독성, 글꼴 개발 도구
• 한글 교육 체계와 교구 교재 연구: 아동심리와 교육, 놀이와 교육, 한글과 상상력
• 한글 산업화: 각종 폰트 연구와 개발, 상품과 제품, 생활용품, 문화상품, 예술상품 등
• 한글 관련 역사, 인물, 장소, 공간에 관한 발굴, 연구와 개발
• 한글 교육과 홍보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매체 연구 개발: 키오스크, 이동식 꾸러미 개발 등
4.3. 지원과 교육
• 한글 관련 기구, 단체, 인재의 육성과 지원
• 연구와 개발 결과 보급에 대한 각종 지원과 교육
• 개발 방향과 방법 지원, 작품 발표와 행사 지원, 국제교류
• 연구, 개발, 행사 관련 교육
4.4. 한글 아카이브
아카이브 구축은 인재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한글과 관련된 각종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보존되고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기본 방향이나 내용 구성에는 한글에 대한 국가의 태도와 비전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 옛 문헌, 세계 문자, 세계의 의사소통 체계, 시각 기호 등의 자료
• 글씨, 서예, 폰트, 예술 작품, 영상, 전시 등을 포함한 기타 자료
• 세종 이도를 비롯한 한글 관련 인물
• 각종 상품, 장난감, 교육용품, 생활용품, 문화상품, 예술상품 등의 자료
• 관련 도서, 잡지, 출판물, 예술 자료
• 각종 자료의 분류 체계와 자료관리 표준화
• 국내외 관련 아카이브 네트워크 구축
4.5. 기타
• 국가 차원의 한글 관련 정책을 통합 조정하고 결정하는 기능
• 한글 진흥과 산업을 위한 클러스터 구축: 관련 연구소, 벤처 기업 운영 권장과 지원
• 교육과 홍보 기관의 역할
5. 마무리
한글과 《훈민정음》은 훌륭하고 거대한 문화콘텐츠이다. 이 속에 담긴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 철학과 이치는 오늘에도 여전히 창의적인 창작 소재나 내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글자를 만든 세종 이도의 극진한 배려나 창제 태도, 실행력, 추진력 등도 대대로 전할 만한 가치 있는 덕목이다. 만든 원리나 체계에서도 응용하고 발전시킬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음소로부터 음절을 이루는 조합 방식이나 표의성을 가진 소리글자의 특성조차 매우 소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일즉다와 이기불이의 철학을 담은 한글은, 요즘 말로 하면 원소스멀티유즈의 원조 격이다. 이런 가치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 한글을 적극 발전시키는 일은 오늘의 의사소통 체계와 환경을 개혁하는 대사업이다. 이것은 곧 인류를 위한 일로 통한다. 한글을 빛내어 가장 혜택 입을 나라와 사람은 대한민국이고 한국 사람들이겠지만, 이미 한글은 우리만의 글자가 아니다. 한글 진흥에 대한 열망도 대한민국만을 위한 꿈이 아니다.
한글 진흥이나 산업화는 수출의 관점도 필요하겠지만, 실용과 예술로 풀어내는 쪽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한글이 실용을 목적으로 한 하나의 예술품이고, 이를 만든 이도가 발명가이자 예술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도가 창작한 한글은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고정된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디에서나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소통과 참여형식의 혁신적인 작품이다. 500년 이상 변화됐고, 지금 이 순간도 7천만여 명의 공동 참여로 진화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살아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예술품이다. 이러한 관점의 미학적 연구도 있어야 하며, 인도주의자이자 전위적인 열정의 작가 이도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한글과 세종 이도를 문화관광자원으로 특화하고 싶다면, 한글 하면 이도, 이도 하면 소리 꼴 뜻을 통합시킨 전위적인 예술가로 강조해야 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각을 바꾸면 대한민국 전체가 예술의 거리가 되고, 우리 모두는 협력 작가가 되는 것이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앙코르와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빈센트 반 고흐?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한글과 이도가 있다. 이 분이 태어나신 곳 통인동 일대도 남아 있고, 지내시던 터전이자 한글이 태어난 곳 경복궁도 건재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잠들어 계신 여주 영릉도 잘 보존되어 있고, 이 밖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이도와 한글에 관련된 장소와 공간과 기록은 수도 없이 더 많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 가능성이 끝도 없다. 지금 세워지고 있는 한글박물관이나 한글마루지도 한글 진흥을 위한 또 하나의 콘텐츠이다. 이러한 내용을 조화롭게 잘 엮어서 살려나가고 관련 인재육성과 지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을 선물하겠다는 원대한 이상은 결코 헛된 꿈이 아닐 것이다. 의사소통체계의 개선으로 새로운 문명을 꿈꾸는 나라, 발명가와 예술가가 넘치는 나라, 한글과 이도의 대한민국,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끝-
한재준(2013). 더 좋은 한글, 어떻게 이룰 것인가?. 현장이 원하는 <새정부 문화정책> 연속 토론회. 문화의 국제기여와 경쟁력 강화. 4차 토론회. 주제 1: 한글과 산업. 자료집 21-28쪽.
주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문화정책학회
주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일시: 2013.5.16 (목)
장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지하3층 대회의실
2014년 1월 11일. 조금 더 다듬고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