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여의도 면적의 80% 정도이고 인구는 약 3만 명인 영국령이다. 영국에서 총독을 파견하지만,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통치권은 자치정부가 행사한다.
지브롤터 해협의 어귀 부분의 낭떠러지에 있는 동상인 헤라클레스의 기둥.
해안에는 길이와 높이가 각각 약 4㎞, 400m인 바위산이 있다. 헤라클레스 기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헤라클레스가 황소를 잡으러 왔다가 산을 부수어 지중해와 대서양 물길을 트고 해안에 바위기둥을 박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대인은 지브롤터를 지구 끝으로 여겨 해협을 벗어나면 지구 바깥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헤라클레스 기둥은 안전을 위해 더는 나아갈 수 없음(Non plus ultra)을 알리는 경고판 역할을 했다.
지브롤터라는 이름은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을 점령한 8세기 초에 붙었다. 이슬람군은 사령관의 이름을 따 '자발 타리크'로 불렀는데 후대에 지브롤터로 바뀌었다고 한다. 스페인에 다시 넘어간 것은 이슬람 최후 거점 그라나다가 함락된 1492년이다.
유럽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최대 전성기를 누린 카를 5세(1500~1558년) 스페인 국왕은 지브롤터를 어느 지역보다 중시했다. 스페인이 그토록 애지중지 했지만 머잖아 영국에 빼앗긴다.
카를 5세 스페인 국왕은 지브롤터를 어느 지역보다 중시했다.
카를로스 2세 국왕을 이을 후계자 문제를 놓고 프랑스와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연합군이 벌인 전쟁으로 영유권을 잃은 것이다. 왕위계승 전쟁(1701~1713)은 12년간 이어지다가 프랑스 출신 필리프에게 스페인 왕위를 넘기되 스페인 지위는 유지하면서 끝난다. 다만,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남아 해군 거점으로 활용된다. 수에즈운하가 개통된 1869년 이후에는 지브롤터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된다. 인도양에서 아프리카를 돌아갈 필요 없이 홍해를 거쳐 유럽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군사적 가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입증된다.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오가는 연합군 함정을 강력하게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종전 이후 영유권 분쟁은 사그라지는 듯했으나 1969년 다시 불거진다. 스페인이 지브롤터 국경을 차단한 채 모든 상품 이동을 봉쇄한 탓이다. 포클랜드를 영국에 빼앗긴 아르헨티나와 연대해 영유권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려고도 했다
지브롤터를 되찾으려는 스페인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주민 투표에서 영국 보호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경은 폐쇄 명분을 잃어 1985년 다시 열리게 된다.
영유권 갈등은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계기로 재점화했다. EU가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에 "새로 체결하는 영국·EU 자유무역협정은 스페인 허가를 얻어야 지브롤터에 적용한다"고 규정한 게 불씨였다. 스페인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지브롤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반색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력 행사까지 하게 된다. 해군 초계함이 지브롤터 영해를 침범한 것이다. 영국은 단호하게 맞선다
스페인과 영국은 당장에라도 결딴을 낼 듯이 거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갈등 국면은 당분간 악화할 수도 있으나 파국은 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페인은 영국보다 군사력이 뒤지는 데다 지브롤터 주민이 영국 잔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1580년 점령한 모로코 세우타와 멜리야를 현재까지 반환하지 않은 것도 약점이다.
힘으로 빼앗은 약소국 땅을 돌려주지 않은 채
영국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면 국제사회를 설득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