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훔쳐가고 공책 찢어가고, 고1들은 서로 못 죽여 안달났습니다.”(ID:고1학생) “수학 65점, 3등급 안에도 못 들거다. 자살한 애들 심정 이해된다. 13시간 후 내 자살뉴스도 올라온다.”(ID:이게 학교냐) “89년생 이 저주받은 운명! 교육부에 89년생 자식 가진 사람 있습니까?”(ID:89년생)….
지난 주말 교육인적자원부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오른 고등학교 1년생들의 글들이다. 지난 30일 오후 처음 이런 글이 올라오더니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교육당국을 성토하는 비슷한 글이 순식간에 4000여건이나 게재됐다. 이로 인해 한때 홈페이지 접속이 어려울 정도였다.
고교 1년생들의 아우성은 교육부에만 쏟아지는 게 아니다. 청와대, 각 시·도 교육청 등 관련 기관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도 고1들의 ‘분노’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간고사가 한창인 고교 1년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은 ‘내신(內申) 전쟁’을 촉발시킨 2008학년도 새 입시제도의 첫 대상자다. 올해 초 잇따라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이 속출하더니 마침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절망, 분노를 담은 격한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인 ‘다음 인터넷’에는 지난달 30일 ‘내신등급제 반대추진’이라는 제목의 카페가 개설됐다. 이 카페 회원 수는 하루 만에 3000명을 넘었다. 카페 운영자이자 고교 1학년인 ‘아이리스’와 ‘베로니카’는 “전국의 고1학생들과 같이 활동해 내신등급제를 폐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네티즌 청원 코너인 ‘다음 아고라(agora·광장)’에는 지난 1일 고1 학생들의 이름으로 ‘내신등급제 폐지’가 발의되자마자 역시 4000여명이 서명했다. 이 코너에는 “열일곱에 피말리는 전쟁을 경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뛰어내리게하사 경쟁자를 물리쳐주심에 감사합니다. 몇 명이나 더 죽어나가야 정신 차리시겠습니까?”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김민경’이라는 이름의 네티즌은 이 코너에서 “오는 5월 7일과 8일, 14일과 15일(주말), 일제히 교육부 인터넷에 접속해 F5(새로고침)를 계속 눌러 서버를 다운시키자”는 내용의 ‘교육부 테러 홍보문’을 올렸고, 네티즌들은 이를 각 사이트로 퍼나르고 있다.
이런 분노들이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오가면서 감정이 증폭됐는지, 고1들 사이에서는 “오는 7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에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대부분 1989년생들인 고교 1년생들. 이들은 ‘저주받은 89년생’이란 말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간 90년생들은 “어머니 저를 한 달만 늦게 낳지 그러셨어요”(ID:빠른90)라며 비관하고 있다. 또 이들은 내신등급제를 ‘배틀로얄’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배틀로얄’은 무인도에 납치된 같은 반 중학생들끼리 한 사람만 남을 때까지 서로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게임을 계속하는 내용의 일본공포영화 제목이다.
‘고1재학’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친구들이 남 못 보게 책을 가리고 수업을 듣습니다. 또 각 반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물함을 다 쓸어가 불태워버렸답니다”라고 전했다. ‘죽고싶은 고1’이라는 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내신 때문에 고1생 12명이 자퇴를 했다며 교육당국을 향해 “우리는 당신들의 장난감이 아닙니다. 질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돼지고기도 아닙니다. 우리는 겨우 17살일 뿐입니다”라고 절규했다.
100명이 훨씬 넘는 고1들은 또 2008년 내신등급제를 만든 정봉주 의원(열린우리당)에 대한 ‘홈페이지 공격’도 감행하고 있다. 실명을 밝힌 한 고1 학생은 “정 의원의 배후에 전교조가 있으며, 이들은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명분 아래 수행평가 등 학생에 대한 평가권을 틀어쥐고 교사의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