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의 생태영성 생활
신현태 목사 (생태수도원) / 2020.5.8. 개신교 수도원 연합회 강의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헬. 파트 크리시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And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 (NASB. 막16;15)
< NIV. all creation. 모든 피조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2;7)
코로나 19의 소식은 “하나님의 천둥소리”입니다. (John Stephen Piper)
우리나라 비롯한 전세계적인 심각한 문제입니다. 생각을 ... 행동을... 사고를... 존재를 전폭적으로 바꾸라! (회개)
바꾸지 않으면 죽음이 임할 것임을 전지구적으로 탄식하며 깨우치는 하늘의 소리입니다.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은 전폭적인 존재의 변화, 사고의 획기적인 변화를 “거룩한 삶”으로 이해했습니다. (벧전1;15)
성경의 거룩은 “깨끗”이란 말로 이해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5;3,8)
현 상태가 “깨”어져서 “끝”이 나아만 깨끗할 수 있는 법입니다. 깨끗의 반대는 더러움입니다. 다석(多夕)에게 더러움은
“덜 없음”입니다. 덜 치워서 덜 없는 것이 더러운 것입니다. 그 더러움을 피조세계를 통해 화들짝 일깨우시되 생명과 존재 전부를 걸고서라도 깨우시는 하나님의 소리, 바로 천둥 소리입니다.
상대계가 끝이 나도록 깨트리면 진리인 절대가 드디어 나타납니다.
여기서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순전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입니다. (w. 거널)
그 마음 잃어 버리면 진리를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마음, 이웃을 뵙는 마음, 자연을 우주를 뵙는 마음..
참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빈탕(없이 계신 하나님, 자기 비움의 하나님)한 데 맞혀 노는 삶이 수도자의 삶이 아닐까요?
세상 맛 버리고 진리에 쏙 빠져 맛들여 사는 삶!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 이 세상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비워 내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기쁨으로 여기며, 나 채움의 극한에서 나 비움으로의 길로 진리를 안내하셨으나
하도 듣지 않으니, 바쁘게 돌아 다니는 삶을 멈추게 하시고, 자가 격리로 나 비움의 삶을 살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온 세계를 그저 수도자의 삶으로.. 수도자의 영성으로 코너로 몰아 넣으시는 자비를 통해 눈물을 쏟습니다.
빈탕의 성삼위 하나님 앞에 오롯이 성찰하게 하신 은총이 아니던가요? 그 은총을 우리는 알아 듣기나 하는 걸까요?
코로나 19로 사라진 바다의 돌고래들이 돌아오고 생명들이 부시시 깨어나는 순간들!!
중국의.. 런던의.. 인도의 세계 곳곳의 뿌연 미세먼지들이 걷혀지고 시야가 회복되는 순간들입니다.
무거운 재앙과 두려움 속에 숨겨진 은총의 그림자들입니다.
이정배 교수는 다석(多夕) 선생처럼 생태학적 회심을 말한 사람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도... 수도자도 덜 없음 (더러움, 그것이 완전과 일치를 추구하는 바리새적 숨겨진 오만이라할지라도)을
철저히 자각하고 더욱 깨끗함(거룩함, 비움, 텅빈 충만, 성삼위와 춤추는 삶)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피조물의 고통과 탄식소리 들으며 그 소리의 울림이 우리 존재 전체를 흔들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생명의 길로 치우침이 없는 말씀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나아오라하시는 주님의 깨우침이 아닐까요?
우리는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어.. ” (롬3;12)
도무지 다른 어떤 이들 보다 나을 것이 없는 죄 아래 있는 존재입니다. (롬3;9)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자신이 무척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채로 소리를 마구 내어 지르는 것도 모르고 나 밖의 것들을 향해
소리친 소음을 되돌려 확성기로 먼저 듣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비생태적인 삶을 회개합니다.
생태적인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생태(生態, 날생, 모양태, ecological, 생물이 자연계에 살고 있는 모양이나 상태, 삶)
와스와 불트는 생물의 종류를 6가지로 분류합니다. (진정세균, 고세균, 원생생물, 동물, 식물, 균류등)
지구상에는 약 150만종의 생물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생명들이 멸종되고 사라지고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삶이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 친화적 삶입니다.
수도자로서 생태적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을 일상과 남다른 이웃들과 무한한 신비의 자연 속에서 매순간 느끼며 사는 삶입니다.
돌보고 가꾸고 함께 친구로서 (요15;14) 동반자로서 사는 삶이 아닐까요? 그 친구들의 순명을 겸허히 배우면서요....
노아 방주에서의 구원은 노아 8식구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구원의 드라마 이기도 합니다. 나만의 구원도.. 교회만의 구원도... 이기적인 치우침의 율법도 아닌
우주적 생태적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자비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생태신학(Ecological Theology)이란 무엇입니까?
대형교회중심,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선교 확장으로 줄달음치다가
이웃도, 자연도, 우주도, 거시적이고 통전적인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전체성의 구원론을 잃어 버린 현대교회를 향한 통전적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향을 모색하는 신학을 뜻합니다.
이는 마치 태양의 빛을 받은 달이 그 빛을 고요히, 겸허히 되돌려 반사하여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영과 육, 교회와 세상, 나의 종교와 타종교를 선명히 구분하여 둘로 나누는 영성은 기독교적이지도 않고
생태적이지도 않습니다. 무슨 국수주의나 종교다원주의나 구원 왜곡주의가 아니라 전혀 뜻밖의 눈길... 제 삼의 눈으로
세상과 우주와 삶과 성삼위 하나님을 다시 뵈옵는 순간이 아닐까요?
사경회란 이름으로 반복되는 문제 중심의 성서 연구
현란한 음악과 밴드와 기계적 음향으로 자극하는 극감성중심의 찬양과 예배
아름다운 옷입은 사람들의 율동과 워쉽을 통한 새로운 드라마적 몸짓
비디오 화상 화면을 통한 공연적 기획들... 그 목적과 방향의 순기능이 다소간 있기는 해도
모두 인간중심적으로 조작적이고 세속문화 자본주의적 냄세가 가득해서
인간의 눈을 자연으로 우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인 형상을 깨끝케하는 중인지 모릅니다.
생태학이란 종말로 치닫고 있는 생명공동체를 함께 힘 합하여 치유하는 학문입니다.
1) 전체관계성 (귀속감) 2) 지속성 3) 해방과 치유의 역사를 가능케하는 사고와 행동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생태학적 영성은 수도자의 삶의 안팎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전지구적 우주적 하나님의 깨우심을
절감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수도자들입니다. 자기 부정과 십자가의 길로만 따르라하셨으니...
수도자로 명시적인 부르심을 받은 그 지극하고 특별한 은총에 너무도 감읍하여 더욱 낮아짐의 자리에서 주님을 우러릅니다.
나의 호흡 한 자락 (예수 기도처럼)
생각 한 자락, 나의 발걸음 한 걸음 걸음이 어쩌면 그 분의 거니심과 보조를 맞추고
성삼위와 춤추듯 사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완벽한 손 이끄심에 보조를 맞추어 춤추는 삶!
그 춤사위 속에는 성삼위의 현존과 우주의 피조물과의 하나됨의 신비로까지 나아가게 만듭니다.
자연은 그 자체가 신(神)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하나님의 존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능력과 신성... 거룩함이 섬세하게 숨겨진 보석처럼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함부로 대하고
돌보고 섬기고 가꾸고 경작하고 풍성하게 더욱 환히 빛나도록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참회가 필요합니다.
지구 위에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시편 104편의 찬미처럼...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지금 이 거룩한 순간 이 땅에서도...
그리고 장차 오셔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해 더욱 온전하고 완전하게 회복하실 그 때까지...
수도자의 생태적 회심과 참회와 더불어 간절한 중보적 삶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도자의 생태영성 생활-수정.hwp
보낸사람: 비전나눔 <stevenk@hanmail.net>
받는사람: <abbeykim@daum.net>
날짜: 20.05.02 16:42 GMT +0900
제목: 수도자의 생태영성생활 - 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