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
2024. 3. 23.
입석 주차장 – 응진전 – 어풍대 – 감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봉 – 뒷실고개 – 자란봉 – 하늘다리 – 선학봉 – 장인봉(3시간30분) - 선학봉 – 하늘다리 – 자란봉 – 뒷실고개 – 청량사 - 입석주차장
청량사(淸凉寺)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잘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누뫙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산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 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중심전각은 유리보전(琉璃寶殿)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판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 왔을 때 쓴 친필이라 전해온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 때인가 소실 등으로 인하여 거의 없으지고 현재 신라시대 대찰의 모습은 없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다. 또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건칠불상인 “청량사 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919호)” 과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제1666호)”, “청량사 건칠문수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1호)”등의 불상이 있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김생굴(金生窟)
경일봉(擎日峰)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서예가 김생(金生, 711~?)이 글씨를 연마하던 장소인데, 상하가 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중앙으로 수십 명을 수용 할 만한 반월형의 자연 암굴로 형성되어 있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金生筆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의 종조(宗祖)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굴 앞으로는 김생암(金生菴)터가 남아 있으며, 굴 옆으로는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김생폭포(金生瀑布)가 위치하고 있다.
하늘다리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높이 70m, 바닥폭 1.2m로 설치된 현수교량이다.
청량산(淸凉山)
청량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1982년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2007년 3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3호로 지정되어 학술적, 경관적,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었다. 또한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현재까지도 많은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청량산의 문화유산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청량사 유리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