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 동굴들은 모두 자수정 광산 폐광 후 그 동굴에 세운 사찰 송운사 경내이다.
이곳은 내가 결혼하기 전 무역회사에서 근무할 때의 추억이 있어 꼭 가보고 싶었다.
숙소를 찾아 들어 오는 길에 자수정 동굴사찰이라는 안내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가 보자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심드렁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추천해 주어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20대에 삼도물산이라는 무역회사 부산지점에서 바이어 서포트를 맡았다.
본사의 영업사원들이 해외 세일즈를 하여 오더를 따와 우리나라 여러 공장에서 제품들을 생산한다.
그 제품이 부산에서 생산하게 되면 제품이 완성되어 선적을 마칠때 까지 해당 바이어를 돕는 일을 했던 것이다.
제품이 생산 라인에 들어가면 동행하여 통역을 맡았다.
그들의 제품은 삼도물산 뿐 아니라 조광무역, 대우산업등 여러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 되었고 나는 회사에서 제공한 접대용 럭셔리 세단을 가지고 그들을 모셨다.
당연히 운전기사가 딸려 있었다.
그런데 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회사일은 물론, 일상생활을 돕는 일까지 해 줘야 했다.
한 독일 바이어가 감기에 걸렸었을 때에는 병이 다 나을 때 까지 부산대학병원에 데리고 다녔던 적도 있다.
마침 독일에서 유학하고 오신 박사가 있어 병원에선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 시절 내가 담당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언양과, 경주에도 있었다.
그래서 경주 언양을 자주 다녔고, 외국 바이어들에게 선물을 장만하기 위하여 자수정 광산을 직접 방문하여 원석을 구해다가 세공사에 맡겨 선물했던 것이다.
그 때 이곳은 들어오기도 험했고 먼지 투성이, 자갈 투성이에 시끄러운 소리가 요란 했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선물하면 비용도 저렴해 지지만
특별한 선물이 되어 그런 방법을 취했다.
바이어를 직접 데리고 가 생산 과정을 보여주고 원석을 사오는 것이다.
비이어들은 자색을 띄는 거친 돌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세공이 마치고나면 너무나 예쁜 보석으로 바뀌어 있는 과정을 보며 기뻐했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이 어린 곳을 방문하여 참 감회가 새로웠다.
그 시절1년이이상 한국에 머물며 가까이 지내던 바이어들이 생각난다.
15년전 아들이 마련해 준 여행 기회로 독일에 갔을 때 미스 렉하드라는 분을 찾아 보았는데 그분이 바로 내가 20대때 40살이었던 바이어다.
그녀는 80이 넘어 자율 요양원에 있었다.
자율요양원은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들어가는 요양원이다.
그녀의 회사 이름을 알았기에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95살. 아직도 살아 있을까?
40년전 나를 스몰 미스 신이라고 부르며 참 예뻐해 주었다.
부산에 사는 큰언니 집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으로 리고 가 아주 평범한 한국 주부의 점심도 경험 시켜 주었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있기가 곤혹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80세에도 미스였다.
15년 전 기적처럼 만났을 때 나를 알아 보고 함박처럼 입을 벌리고 반가워 했다. 아니 놀라워 했다.
나도 놀라웠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40년 전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막 성장하는 시기였다.
해외 여행은 어려운 시기 였던 때
한국, 일본을 일터로 일년에 몇 번씩 드나드는 그들이 참 부러 웠었다.
그때는 내가 독일 을 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독일에 가서 상품으로만 접했던 화사들... 씨 앤 에이, 링크론 그런 이름이 걸린 매장에도 가 보았다.
또 가고 싶다.
이번엔 20년쯤 나이가 어렸던 레팅스 마이어를 찾아보고 싶다.
그는 한 70쯤 되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