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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원교구 산북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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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열아홉번째 성지순례(해미성지)
은방울꽃 추천 0 조회 77 12.04.01 18:0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해미성지 

해미성지는 천주교 박해 100년동안 무려 3천명으로 추정되는 천주교 신자를 참혹하게 죽인 순교 현장이다. 특히 많은 천주교인을 처형하기 힘들자 하천변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여숫골 )을 하였고, 때로는 수장(진둠벙) 시켰던거룩한 순교터다. 

 

주소:충남 서산군 해미면 읍내리 274-22해미읍성:충남 서산군해미면 읍내리32-2 

              

 

 

 

 해미성지

해미 읍내에는 순교 기념지가 여러곳에 있다. 공식 형장은 서문밖에 있었던 것 같고 옥터 , 그리고 생매

장 지가 전해 지는 조산리다.

 

 

 

해미성지....... 여숫골

조산리는 해미읍에서 1.2km 떨어진 하천 건너편 벌판에 오리 나무와 버드나무 숲이 있었는데 여기가 

현제 해미 성지로 조성된 곳이다.

 

 

 

 1866년부터 1882년 사이 박해때는 1천여명의 신자를 생매장 하였다.

 

 

 

해미 진영의 서녁 들판에 십수명씩 데리고 나가서 아무데나 파기 좋은 곳을 찾아 그곳에 모두 생매장하였다. 생매장 시 죽음에 앞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예수 머리로 알아 들은 주민들이 이를

'여숫골' 이라 불렀다고 한다. 실제 유해 발굴시 유해가 하나같이 서있는 형상이어서 구덩이에 뛰어들어

서있는 채 매장 되었음을 보여준다.

 

 

 

진둠벙...............

생매장 시키러 가는 길에 큰 개울을 만나게 된다. 그 밑에는 물길에 패인 둠벙이 있었다. 두팔을 뒤로

묵고 끌려 오는 죄인들을 외나무 다리위에서 둠벙에 밀어 넣었다. 

 

 

 

진둠벙..............

묶인 몸으로 곤두박질 당한 죄인은 둠벙속에 처박혀 죽었다.동리 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이라 일컬어

지다가 오늘날에는 '진둠벙' 이라 부른다.

 

 

진둠벙................

 

 

진둠벙.......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무명 생매장 순교자 들의 묘

산 사람들이 묻히던 어느날  함께 묻힐 동아리 가운데에 어여쁜 규수가 있었다 한다. 묻기를 명할 찰나

에 형장의 눈에 들어온 규수의 자색은 그 형장의 연민을 자아내었다.

 

 

해미 순교탑

어여쁜 얼굴에 어찌 사학을 하여 죽는 몸이 되었느냐고 살려 줄 터이니 사학을 버리라고 꾀었으나,

입술을 깨물고 그 규수가 먼저 구덩이에 뛰어 내리니 동아리 가운데 한사람도 빠짐없이 구덩이에 묻히

더라고 구전으로 전해 오고있다.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

다고 한다.

 

 

 

야외 제대 앞에서..... 

 

 

십자가의 길............... 제 2처에서....

 

 

십자가의 길...........

 

 

 

활짝핀 코스모스와 함께..........

 

 

해미 읍성............

1491년 (성종 22년 ) 축조된 것으로 둘레에 1800m 성높이 5m 넓이 2십만 평방미터 이다.

영장을 두고 서해안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해미 읍성......... 진남문........... 해미 읍성이 정문이다.

내포 일원의 해안 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 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해미 동헌 입구 호서 좌영

원래 조선 왕조의 군사적 요충지 진영에는 중앙에서 종3품의 진영장이 파견되었다.

 

 

해미 동헌...........

그러나 해미의 영장은 종 6품의 해미 현감이 겸임 한것으로 홍주 진관에 속하며 홍주 영장(종3품) 의

지휘를 받았다. 

 

 

 

해미 동헌 안...................... 해미 현감 주재 회의중..... 

 

 

해미 읍성 내 옥터.............

고문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순교자들의 몸이 스러져 가던 감옥 

병인박해때 이 감옥 사정을 목격한 이주필씨는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해미 읍성내 옥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 순교자가 옥사한 곳.

 

 

감옥내 순교자 모습............

성 중앙에 담을 길반이나 넘도록 쌓아 올린 세칸 와가 가 있으니 그것이 옥이다. 그 속에 30~40명 가량

갇혀 있었다.

 

 

 

감옥내 순교자 모습.....

그 옆에 또 바깥옥이 있는데 역시 세칸 와가 이다. 그 안에는 십자 패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는데 문을

열어 놓아도 도망치는 사람이 없었다.그들이 천주학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맺힌 호야나무............... 

 감옥에 갖힌 신자들을 끌어 내어 고문하던 호야 나무는 많은 이들이 고문에 못이겨 숨져간 곳으로 동쪽

으로 뻗어있던 가지 안쪽에는 아직도 철사줄이 감겨져 있던 흔적이 있다.

 

 

 

호야나무 ................

 

 

 

호야나무................ 

 

 

아직도 가지 안쪽에 철사 줄에 매인 흔적이 보인다.

 

 

 

뒷산에서 본 동헌과 아문.......

진영장이 호령하던 옛 동헌과 그 옆자리에 아문과 호소좌영의 옛 모습이 복원 되어 있고 당시 호령 소리

곤장치는 소리 비명 소리를 고목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관아터로 부터 남서쪽으로 옛 저작 거리가 있다. 순교자 들이 온갖 조롱과 욕설을 온몸에 묻혀 형장으로 호송되는 길이다. 

 

 

서문밖 순교 성지 ...................

해미 읍성에서 저작 거리를 따라 서쪽 하수로의 다다르면 '재앙을 떨쳐 내는 문' 서문이 비껴있다. 

이 문은 순교자 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던 마지막 문이다. 

 

 

 

서문 밖 순교지에서 순교자들의 목숨을 빼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였다.   

 

 

자리 갯돌.................

이곳 서문 밖 사형장의 개울위에 있던 돌다리다 길이 420cm 너비 150cm 두께 30cm로 몇명의 병사가

신자의 몸을 들어 올려서 내려 뜨리면 머리가 깨져서 죽어갔다..

 

 

 

자리갯돌 ..............지금도 그때 순교자들이 굳센 믿음이 바위에 서려 있는 듯 하다.

특히 잔인하게는 돌다리 위에 연약한 순교자를 서너명의 군졸이 들어 올려 자리 개질 (태질) 하여 머리와

가슴을 으스러 지게 하였다.

 

 

자리갯돌................

1986년 9월 해미 진영 서문 밖에 옮겨 놓았다가 다시 해미 성지 안에 옮겨 놓았다.

 

 

형구 돌................

돌 구멍에 줄을 꿰어 목에 옭아 지랫대로 조여 죽이기도 하였다. 또는 묶어서 눕여 놓은 여러명을

돌기둥으로 내리눌러 죽이기도 하였고, 얼굴에 맥지를 덮고 물을 뿌려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였다.

 

 

 

해미 읍성 서문 ............. 현제 보수중,

서문 밖 앞에 70평이 좁은 순교지에 1989년에 세운 순교 현양 비가 있다. 하지만 그 일대의 순교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던 상태다.

 

 

                                                   後期

 

11시 미사중....... 신부님 강론

 

 

11시 미사중.......... 영성체

 

 

해미 순교자 성지 기념관....................

유해 참배실을 마련하여 순교자 들의 유해를 안장하였다. 

 

 

 기념관 내 입구에 들어서자 순교자들이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스러웠다..

 

 

 십자가를 가슴에 묻은 순교자의 모습은 신비스럽다

 

엄마 치마를 붙들고 같이 기도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가슴이 아려온다..

 

 

 호야 나무에 머리채를 묶어놓은 순교자 들의  석고상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시 발굴된 치아 (조산리 유해 발굴)

 

 

 

 

해미 순교자 묘 발굴과 바로 신부

바로 신부는 어느날 봉성체 중에 병환 중에 있는 교우가 영하지 못한 성체를 대신 영하고 결국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시복 시성 대상 순교자...........

이언민 마르티노 , 김진후 비오, 이보현 프란치스코

 

 

상: 1800년대 말 공소에서 종 대신 사용하던 뿔 나팔

중 : 휘광이 칼, 진둠벙 위쪽 뚝 밑에서 발견

하 : 호야나무, 2004년 수술시 제거된 부분 일부

 

 

진남문 성문 지키시는 할아버지

 

 

동헌 뒷산에는 노송 들이 울창하였다.

 

 

동헌 안에 있는 노송들의 가지가 태풍으로 많이 부러져 있었다.

 

 

해미 동헌 입구 호서 좌영 앞에 있는 고목............ 족히 50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객사............ 객사는 중앙 정청에 '궐' 자가 새겨진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 ,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의 대한 예를 올렸던 곳..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인천에서 해미성지 순례를 다녀왔는데, 전혀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며 시간

또한 자가용 이용시 보다 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일찍 일어나 새벽 부터 서둘러야한다는 점과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마음 가짐으로 성지 순례를 하면 더욱 은혜로운 성지

순례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인천터미널 서산(직통)-> 첫차 06:55분 (30분 간격)-  1시간 20분 소요(해미까지..)

서산 공용 터미널에서 해미 -> 시내버스 15분 간격으로 승차  20분 소요(성지까지)

해미 성지까지 도보로 10분 소요-> 해미 성지에서 해미 읍성까지 도보로 20분 소요

그리고 성지 전체를 도보로 읍성까지 도보 순례하는데 11시 미사보고 점시먹고 짐덤벙에서

묵주기단 5단 바치고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하고 전 순례지를 꼼꼼히 순례하였는데도,

오후 3시에 마칠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V.A. - Anonymous: Gregorian Chant For Good Friday - T..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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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4.01 18:06

    첫댓글 겨우내 수고하신 쌍화차 봉사자님들 성지순례지'라고 해서 먼저 알아 보고 가면 좋을 것 같기에 가져왔습니다. 먼저 공부하고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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