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녀 탄생으로 삶이 평온하고 기쁨에 넘친 날들이었다. 태어난지 백일 무렵 처음 얼굴을 보고 왔다. 매일매일 눈에 아른아른 거려서 손녀 동영상 보는걸 낙으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 손녀를 안고 현관문을 들어오는 막내딸과 사위. 손녀가 태어난지 135일 만에 삼척으로 첫 가족여행을 갔다가 깜짝 이벤트로 연락도 없이 들렀단다. 생각도 못했다가 이렇게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아이들 크는 건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손녀는 한달 사이 부쩍 자라 있었다.
막내딸 부부는 원래부터 소꿉놀이하듯 아기자기하게 살았다. 딸이 태어나니 더 신이 난 모양이다. 5개월도 안된 딸을 파라솔 의자에 앉혀 선글라스까지 척 올려 사진 찍어주느라 바쁘다. 손녀는 엄마 아빠 좋으라고 울지도 않고 장단에 꽤 잘 맞춰준다. 가만히 있는걸 보니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났다. 피는 못 속인다고 아무래도 야외 체질인 나를 딸이 닮고, 그 기질이 손녀에게 까지 전해 진거 같다.
그렇게 꿈같은 주말이 갔다. 2주 후 막내딸이 휴가를 받아서 이번엔 다같이 제천 리솜 리조트에서 가족여행을 하기로 했다. 시간을 한꺼번에 맞추기는 힘들어서 릴레이식 가족 여행이었다. 첫날은 우리 부부랑 둘째딸과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은 막내딸이 시아버지를 초대해 바깥사돈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퇴근 후 맏딸과 맏사위가 합류하기로 했다.
제천 리솜리조트는 수목원처럼 숲이 우거졌다. 오솔길을 따라 힐링하기에 아주 좋은, 숲캉스로 유명한 리조트다. 독채형인 포레스트와 호텔형인 레스트리로 나뉘는데 우리는 아직 손녀가 어려 이동이 편한 레스트리에 묵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숲속 언덕길을 따라 나섰다. 조형물 의자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쓴 정성이 보인다. 산 아래 멋진 풍광의 펜션을 운영하면서 남들은 우리집에서 힐링 한다는데, 나는 밖에 나오니 힐링이다. 풀과 나무냄새와 신선한 공기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다음 번에는 숲속에 있는 포레스트 독채에서도 조용하게 한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산책하고 전망좋은, 분위기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숙소로 왔다. 매번 장소를 옮겨가며 밥을 사먹는 게 경제적으로나 메뉴 선택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집에서 김밥과 유부초밥 수육과 김치, 과일 등을 준비해갔다. 산책한 후라 모두들 꿀맛이라고 맛있게 먹는다.
다음날 새벽에는 사위와 둘째 딸과 함께 좀 험한 트레킹 코스를 택했다. 사위는 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손을 잡고 걷는다. 와이프 빼고는 다른 여자 손은 생전 처음 잡아본다고 너스레를 떤다. 평소에도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분위기 메이커다.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에 숲속의 공기조차 달게 느껴졌다.
그렇게 산책을 끝내고 간단하게 아침까지 먹었다. 딸들과 함께 이 숙소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스파 수영장에 갔다.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는 가본적이 있지만 산에 둘러싸인 수영장은 처음이다. 야외 수영장에 스톤 스파와 와인탕, 녹차탕, 찜질방, 족욕장, 실내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파도타기, 물 폭포, 미끄럼틀 등 테마 별로 다양하다. 간단한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아쿠아바도 있다.
야외 숲속에 만들어 놓은 따뜻한 커플 노천탕에 들어가니 물은 따끈따끈 하고 가을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지상낙원이 따로없다. 여기는 포토존으로 인기있는 곳이라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렇게 오전 수영 후 바깥사돈 만나 리조트 내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혈색좋은 사돈과 모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후 정원을 산책하면서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아버지 팔장을 끼고 다정하게 사진도 찍고 살갑게 챙겨드리는 모습을 보니 막내딸이 기특했다.
그렇게 손녀와의 첫 여행에 바깥 사돈과의 식사까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남편과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바깥사돈은 저녁식사를 하시고 세 자매들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과한 용돈을 주시고 어둠이 깔릴 즈음 서울로 떠나셨단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멤버는 큰딸과 큰사위. 우리는 펜션 손님 때문에 중간에 와야했지만, 세 자매가 만나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2박 3일을 제천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우리집에 다시 들러 여행의 회포를 풀었다.
요즘 나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 그렇게 그리웠던 둘째 딸과 함께하고, 바라고 바라던 손녀가 세상에 태어나 준 것만도 고마운데 착하기까지 하니 너무 좋다. 이렇게 자주 손녀를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그런데 다음 날, 막내딸 부부는 오랜만에 운동을 함께 다녀오고 싶다고 5시간만 손녀를 봐달라는 게 아닌가. 귀여운 손녀를 보는 건 좋은데 엄마아빠 없이 울면 어쩌나. 과연 5개월 아기를 우리가 잘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임신 기간 부터 지금까지 고생한 딸을 위해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손주를 키워주는 부모도 있는데 그 몇시간도 못할까. 대신 손녀가 심하게 울면 바로 달려올수 있게 멀지 않은 곳으로 다녀오라로 했다.
그렇게 집에 남편과 나, 갓난 아기 손녀만 셋이 남았다. 애들 키운지는 40년이 다 됐고 손주들 봐준것도 최소 15년이 지났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손녀는 얼마나 순한지 우리와 잘 놀아준다. 하늘아래 이렇게 착하고 예쁜 손녀는 없을 것 같다. 조바심 할 딸에게 분유도 먹이고 잘 놀고 있으니 여유롭게 즐기다가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손녀의 순한 기질과 사위의 철저한 육아교육 결과였다. 손녀는 50일부터 통잠의 기적을 이뤄냈다고 한다. 침대에 눕혀 놓으면 혼자 놀다가 금새 잠이 들 정도로 수면 교육을 잘 시켜놓았다. 우리가 육아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3시간 뒤에 막내 사위는 손녀 보느라 고생했다고 저녁 메뉴로 포장된 찌개와 먹거리를 사들고 온다. 잠시 우리가 독점했던 손녀가 잘 놀아주니 더 기특하고 예뻤다.
이튿날은 서울로 가는 길에 틈새 시간을 이용해 단양 다누리아쿠아리움에 함께 갔다. 5개월된 손녀에게 민물고기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다. 딸들이 하나같이 역마살과 취미를 나를 쏙 빼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 래서 결혼하려면 그 집안에 내력을 본다는 말이 맞나보다. 손녀는 구경을 좋아하는 할매의 피를 닮아서 울지도 않고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열심히 구경을 하더니 쌔근쌔근 잠이든다. 얼마나 예쁜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산소와 같다.
구경을 하고 사위가 육회 비빔밥을 사주어 먹었다. 4일 동안의 색다른 여행을 마치고 손녀와 헤어질 시간이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운했지만 황혼에 벅찬 행복으로, 세상이 온통 무지개 빛 처럼 채색된 삶을 안겨준 선물 같은 손녀와 딸이 고맙다. |
첫댓글 손녀가 순하기는 순한 모양입니다! '손녀가 울었다'라는 말은 한번도 못 들어 봤네요!
썬그라스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순하게 생겼어요~
혈색 좋은 바깥사돈! 손녀가 예쁘게 자라고 있으니 혈색이 더 좋아지시겠습니다~
가족 모두 강건하소서~~
손녀가 큰아이 같았어요
누워서 혼자 노는 버릇을 길러서 혼자 잘 노는데
우리는 이뻐서 안고 어르니 얼마나 좋겠어요.
까르르 웃고 좋아하는 모습에 할매가 기절할 번 했어요.
딸이 엄마 힘든데 뉘어 놓고 놀라고 해도 자꾸 안아주고 싶도록 예뻤어요.
안아주면 버릇 나빠진다는 소리는 안하더군요
손녀가 상황에 따라 적응을 잘하니까요.
바깥 사돈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그 얼굴속에 행복이 가득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당(未堂)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의 네 단락(段落) 중 첫째 둘째 단락인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가
<104/ 색다른 가족 여행>을 읽으면서 떠올랐을까요?
세 자매(姉妹)를 양육(養育)하시어 영애(令愛)들의 입지(立志)를 원하는대로 이루었으며,
성가(成家)시키어 행복(幸福)한 가정(家庭)을 이루기까지에는, 덕은형님 부부(夫婦)의
오상고절(傲霜孤節)과 각고(刻苦)의 노력(努力)이 함께했기에 꽃을 피운 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불철주야(不撤晝夜) 동분서주 (東奔西走)가 있었기에 오늘의 미소(微笑)와 환희(歡喜)가 있는 겁니다.
진인사(盡人事)하여 이룬 자식복(子息福)이기에 천만금(千萬金)보다 소중(所重)하니,
늘 가슴 한가득 안으시고 안락(安樂)과 평강(平康)의 나래를 펴십시오.
인생의 喜怒哀樂을 확실하게 느끼면서 산 인생이지요.
초년에 꿈 같은 날로 시작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고스라니 느끼며 살았지만
노후가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될 줄은 몰랐어요
자식들이 효도하고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어요..
모두가 착해요
거기다가 사위들까지 얼마나 잘하고 착한지, 인복과 먹을 복 하나는 끝내줍니다.
사람들이 창고가 넘치도록 아낌없이 막 펴줘요
황혼에 아직까지는 더 바랄 게 없는 삶이지요.
김선생님은 저의 힘들었던 삶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아시기에
저렇게 정성이 가득한 댓글로 표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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