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
조선시대에 아비가 쉰 살이 되면 자식들은 청려장(靑藜杖)을 바쳤다.
예순이 되면 마을에서 선사했다. 일흔이 되면 나라가 주었고 여든이 되면 왕이 하사했다.
청려장은 명아주라는 잡초로 만든다. 한해살이풀이다. 뿌리째 뽑혀 솥에 찌고 껍질이 벗겨져 사포질, 기름 먹이기로 숨 막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옻칠로 빛을 입고 재탄생한다. 단단하기가 쇠지팡이 이상이다.
가정의 달, 장청년(壯靑年 56~79세)과 노년(路年, 80세 이상)의 1000만 시니어들에게 청려장을 바치고픈 마음을 가져보았다. 장청년들은 두 번째 청년을 맞이한 기념이다. 노년은 인생의 길이 되어 주신 기념이다.
다음은 청려장을 받아든 시니어로서의 다짐이다.
첫째 ‘큰일’보다 ‘아름다운’ 일에 마음을 쏟는다.
성경의 시인은 고백한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 131:1) 장청년의 존재 이유는 ‘우리 가슴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는 데 있다. 뒤늦게야 알았다. 아름다운 일이 큰일임을.
둘째 ‘자필(自筆) 이력서’보다 ‘타설(他舌) 이력서’를 쓴다.
전도자는 ‘칭찬은 남이 해 주는 것이지, 자기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잠 27:2) ‘드러내면’ 냄새요 ‘드러나면’ 향기다. 온갖 경력과 학력, 수상 이력을 적어내는 자필 이력서는 던져버린다. 타인의 입으로 전해질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산다.
셋째 남은 인생, ‘재(財)태크’보다 ‘우(友)테크’로 승부를 건다.
“60세까지의 인생은 산책, 이후의 삶은 여행, 이 여행이 성공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제르바이잔 속담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다. 다짐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 가까이 오게 하련다.”
넷째 ‘입’으로 설득하지 않고 ‘귀’로 설득한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에 살해당한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말이 많으면 꼰대소리를 듣는다. 귀명창이 소리꾼을 만들 듯 경청이 나를 설득의 명장(名匠), 소통의 장인(匠人)으로 만든다.
다섯째 ‘전문지식인’보다 ‘상식 성자’로 산다.
전도자가 이른다. “친구여, 명료한 사고와 건전한 상식을 목숨 걸고 지켜 잠시라도 놓치지 마라. 그러면 네 영혼이 생기를 띨 것이다. 너는 건강과 매력을 유지할 것이다.”(잠 3:21~22) 상식 아홉에 신앙 하나를 버무린 영성을 매력 자본으로 삼는다.
여섯째 ‘네 탓’보다 ‘내 탓’을 더 자주 고백한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나 때문에’, 괜찮은 일이 생기면 ‘우리 때문에’,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 덕분’이라고 말하겠다. 네 탓으로 상대방을 고치려 들지 않고 내 탓으로 나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겠다.
일곱째 ‘육체 건강’에서 ‘마음 근육’을 키운다.
내 몸 안에 26개과 주치의가 상주한다. 하지만 의사도 못 도와주는 것은 마음 근육이다. ‘마음먹기’란 말이 있듯 나는 결심한다. ‘무(無)서운 사람’으로 살기로. 내게 찾아오는 섭섭이, 삐질이, 버럭성질은 내가 고쳐 산다. 나를 살려낼 명의는 바로 나 자신이다.
여덟째 ‘가르치기’보다 ‘배움에 목마른 자’가 된다.
춘추 시대, 길 잃은 군대를 이끌어 낸 것은 늙은 말이었다. 여기서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이 탄생했다. 갈증으로 허덕이는 병사들에게 우물로 안내한 것은 개미였다. 훗날 한비자(韓非子)가 말한다. 그들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 삼아 배우고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아홉째 ‘채집 인간’에서 ‘나눔 인생’으로 전환한다.
“사람은 받은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주는 것으로 인생을 꾸린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가 아닌 ‘기브 앤 모어 테이크(Give, & (more) Take)’로 산다. 내가 주고 갈 것은 참으로 많다. 실패의 경험, 기회비용, 친절, 배려….
마지막으로 인생은 ‘원더풀’, 떠남은 ‘뷰티풀’로 산다.
밀물과 싸워 이길 사람은 없다. 봄을 이겨낸 겨울도 없다. 성경시대에도 쉰 살부터는 회막 일을 하지 않았다. 레위인조차 옆에서 도울 수는 있어도 직접 일을 맡아 하지 못했다.(민 8:25~26)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
기사원문 ;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