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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째 7월 25일
LA에서 출발해 5시간을 날아 아침 8시경 볼티모어워싱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최선생의 동생 미키님과 딸 길화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승용차로 1시간을 달려 엘리코트시의 자택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부인 안지희님은 한국인이라 대화할 수 있었고 아침겸 점심으로 식사를 하고 스리마일 원전을 방문하기 위해 떠났다. 2시간 반이 걸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원전내로 가서 사진을 찍다가 경비직원에게 걸려 가벼운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다시 연락을 해서 우리를 안내해 줄 에릭씨를 만났다. 1979년 사고를 낸 2호기는 가동이 중지 되어 폐로 단계이지만 1975년 가동을 시작했던 1호기는 계속 가동중이라고 한다. 냉각탑에서 계속 흰 수증기가 나와 의아해 하던 의문이 풀렸다. 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고 스리마일 사고에 관한 동판 설명이 설치되어 있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종 계축기 들이 설치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익은 송전탑에 송전선로가 이어져 있다. 뉴저지를 비롯해 3개 주에 전력을 공급해 왔다고 한다. 2014년 원자력대국 미국이라는 NHK가 제작한 다큐멘타리를 통해 알게 되어 연락해 만나게 된 것이다. 비용 문제로 동부지역 방문여부를 고심하다가 사전에 충분한 의사소통을 못해 주민들과의 만남을 준비못해 아쉬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앞으로 계속 방문할 수 있도록 해 보려고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스스로 격려를 했다. 다시 볼티모어 시내로 들어와 꽃게찜레스토랑으로 갔다. 바닷가 출신 답게 큼직한 게를 열심히 먹었더니 반가워하신다.
12일째 7월 26일
일요일 오전은 집에서 여유를 갖고 쉬다가 미키님의 승용차로 워싱턴D.C 를 방문했다. 먼저 백악관 주변을 돌아보는데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십자가로 표현하며 일인자전거 시위를 하는 중년남성의 모습에 감동했고, 이어서 1981년부터 백악관앞에서 나홀로 텐트 농성을 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을 옹호하는 미국을 비판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지지성금도 내고 사진도 찍었다. 백악관 앞에서 일행과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이어서 웰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고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보고 싶었다. 우선 전사자를 추모하고 더 나아가 전쟁을 애국으로 때로는 평화수호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있는 점도 생각해 보았다. 각국의 추도시설, 중국의 혁명열사능 특히 모스크바의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와 어떤 차이가 있을가? 부산의 유엔군묘지 동작동이 국립현충원과도 비교해 보게 된다. 별다른 장군묘역은 보이지 않는다. 병사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데 표지석만 차이가 날 뿐이다. 정부에서 기본표지석을 세우되 각자 추가묘비석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같다. 중국군 혁명열사능원묘지와도 다르다. 링컨기념관 앞에 설치된 한국전쟁 야외전시장 그리고 베트남전쟁 전시장이 전쟁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2차세계대전 후의 양대 전쟁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모두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었다. 특히 베트남전쟁은 패배한 전쟁이었다. 들꽃교회에서 야외 전시장앞 잔디밭에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어 반갑게 합류했다. 예배후 한국전쟁 종전캠페인에 동참했다. 아평과 AOK 대표자격을 부여해 주었고 통일보자기도 전해 주었다. ANSWER Coalition의 동부지역 책임활동가 베커 Brian Becker 가 연대사를 했다. 지난해 1월 SF에서 서부지역 ANSWER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반가워 한다. 행사를 마치고 이재수 미주희망연대사무총장 승합차로 페어펙스 사무실로 이동했다. 윌리엄 조 평화센터는 미주한인협회(NAKA)가 건물주인데 미주희망연대 그리고 정토회 들꽃교회 등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고 공동공간도 널찍하다. 워싱턴D.C에 사무실을 설치가 마땅치 않고 버지니아주 페어펙스에 한인들이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배경이 되는 것 같다. 근처 한식당으로 이동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경 메릴랜드주 엘리코트에 사는 민순영 정토회 해외사무국장 부부의 승합차로 집으로 이동했다.
13일째 27일
오전 여유을 갖다가 볼티모어에 있는 미키상 사무실로 이동해 베트남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미키상이 운전해 그린벨트역에 태워주었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워싱턴유니온역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려 택시를 타고 UMC회관으로 마크해리슨을 방문했다. 회의실에 둘러앉아 1시간 가량 이야기 했고 김용복박사도 스카이프를 통해 참여해 의견을 이야기 하셨다.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동일성체성에 관한 것인데 해리슨은 핵발전 반대에 관해서는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미국의 입장을 비쳤다. 방문목적을 설명했고 2016년 상반기 중 국제심포지엄 개최와 관련해 제안설명을 했다. 2016년 워싱턴에서의 Advocacy Day(3.26 예정)에 관해 설명하면서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함을 확인했다.
모임을 마치고 밖을 나와 비를 피할겸 잠시 옆에 있는 대법원을 방문했다. 시민방문에 개방되어 있었고 역사등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잠시 후 길화씨가 차를 타고 버지니아주의 길화씨 집으로 이동했다. 종로감리교회의 김연희선배가 카톡으로 인사를 나누다 만나겠다며 집으로 와서 주변 커피점에서 1시간 가량 만남을 가졌다. 1981년 부모와 함께 이민와서 딸 둘과 함께 산다고 하셨다. 마침 가까운 곳이라 이렇게 만날 수 있었는데 거의 40년만의 해후였다. 약속된 스테이크 전문레스토랑에 데려다 주시고 돌아가셨다. 길화씨 약혼자가 와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최승구선생의 집안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 근대 이민사를 떠 올리게 된다. 일본으로 이주 정착 거기서 다시 홍콩등 해외 여러 곳으로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아메리칸과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그러하다. 길화씨가 예약해준 우버택시로 1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14일째 28일
아침을 먹고 안지희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미키상이 그레이하우드 버스 터미널로 태워주셨다. 여러모로 감사했고 신세를 졌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챙겨준 옥수수와 과일로 점심을 대신하고 뉴욕 42번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진섭님의 요청으로 신부님께서 현지 자매를 통해 숙소를 마련해 주셨기에 만나 이동했다. 복잡한 맨하탄거리에서 작은 호텔 반지하 4인실방을 준비해 주셨다. 기차역 가까운 곳이어서 여러모로 편리했다. 옛날에는 역 주변 여인숙으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했는데 가격이 엄청 비쌌다. 짐을 풀고 저녁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 워싱턴광장 근처 기억과 나눔센터 1층 커피숍에서 요시히로 다케다님과 세인님을 만났다. 요시히로는 작가였고 이야기를 나누다 동갑이라 좀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Indian Point Safe Energy Coalition과 관계하며 활동하는 일본인들이 중심이었다. SF의 존 소개로 만남이 가능해 진 것이다. 터키계인 세인은 이런저런 자료를 챙겨 복제해 주셨다. 통역을 도와 줄 나경환선생과도 인사를 나눴다. 모임장소는 작으마한 공간인데 주로 일본인들이 와 주셨고 류영철목사께서 시간 맞춰 참석해 주셨다. 20명 가량모여 세명이 발표를 하고 질문과 토론을 했다. ‘PEACE ACTION’ 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아유미상을 비롯해 작가로 활동하는 요시오상 등 몇 분과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본인들의 활동을 이해하고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뉴저지 남쪽 스탠프드 근처에서 사시는 나선생과 함께 근처 한국식당으로 이동해 1시가 넘도록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5일째 29일
어제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어 조금 여유있게 오전을 보냈다. 인디언포인트 원전 방문을 기대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 포기하고 오후에는 잠시 뉴욕 관광을 하게 되었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더운 여름날에 주마간산으로 이동하는데 한국어 통역이 되지 않는 버스라 조금 아쉬웠다. 교통체증이 심각성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사진도 찍고 잠시 들러 보기도 했다. 센트럴파크 그리고 허드슨강가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맨하탄의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한인 상가과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작은 코리아타운에서 냉면과 짜장 짬뽕 등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24시간 찜질방도 있어 다음에는 이용해 보리라 생각했다. 한인 관련 사업을 하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16일째, 7월 30일
숙소 가까운 펜실베니아역에서 기차로 베이사이드로 이동했다. 한 시간 가량 이동하던 중 비가 쏟아지는데도 야구 경기가 있어 사람들이 몰려간다. 문헬렌자매의 소개로 미주기독교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 1층 입구에 한미 국기를 교차한 사진을 포함한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기념사업회 뉴욕지회’ 홍보판이 설치되어 있어 낮선 분위기에 눈길을 주게 된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방송인 김영호선생이 진행자였고 녹화방송이라 조금 여유있게 30분 대담을 했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시 맨하탄으로 이동해 남수경변호사를 만나 원전피해주민 소송, 원전제조사 소송, ‘도모다치작전’ 사건 집단소송 등에 관해 설명하고 향후 계속 관심을 가져줄 것을 의논하였다. 그리고 다시 세인을 만나 미국에서의 활동과 관련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17일째, 7월 31일
아침 일찍 갈메기 소리에 이끌려 허드슨강 수변공원을 걸으며 산책시간을 잠시 가졌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조깅하는 사람 산택하는 뉴요커들이 보인다. 진작 알았더라면 아침마다 산책이라도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형 빌딩을 건축하는 입구에는 출근하는 건축노동자들이 줄을 선다. 조금 여유있게 호텔을 나와 펜실베니아 기차역에 도착해 수속을 하고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국제열차인 셈이다. 토론토까지 간다고 하니 다움에는 이용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있게 자리를 잡고서 풍경을 즐기자고 했다. 출발 초기에는 허드슨강변의 풍경이 좋았다. 허드슨강 북쪽 지역에서 인디언포인트 원전을 볼 수 있었다. 1068년 가동을 시작해 최근 변압기 사고로 1기가 가동을 중단한 적도 있고 주민들의 폐로요구가 거세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방문기간 중 승용차로 베어 마운틴에 올라가다 멈춰서 본적이 있어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꿔보면 뉴욕주립공원지역을 지나면서 커다한 호수의 멋진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중간에 국경검문소를 지나 해질 녘 생로랑강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몬트리올역에 도착했다. 택시로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18일째, 8월 1일(토)
전화로 연락해 둔 고온에드워즈 박사를 만나기 위해 숙소 가까운 집을 방문했다. 지난 6월 방문했던 바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핵공학자로서 기업이나 정부편이 아닌 입장에서 조사 연구 활동하는 분임을 확인했다. ‘나는 왜 반핵활동가가 되었는가’ 라는 인터뷰 동영상을 본 상태라 최고의 반핵활동가라는 평가도 떠올랐다. 최승구선생과 원전메이커 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진 후 카나다 10개 주에서 ‘우라늄모라토리움 선언’을 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고리원전 피해소송 일부 승소 사례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준비해준 축하 샴페인을 들었다. 잠시후 도착한 동료이자 사진작가인 길버트를 소개했다. 그의 사진첩에는 핵무기제조에서부터 핵발전 사용후 연료 등 각종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수십년간 핵재앙 사진을 찍어온 일본작가도 알고 있었다. 사진작가자료집 한 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미국 에너지성의 보고서도 한 권 받았다. 카나다는 우라늄생산 1위국가였었고 일본에 투하된 원폭에 사용된 우라늄도 카나다 북부 그레이트베어호수가 Sahtu-Dene 광산에서 채취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1991년 히로시마를 방문해 자신들의 지역에서 채굴한 우라늄이 맨하탄계획을 통해 원폭재료로 사용된 점을 사과했었다. 지난 4월 퀘벡시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참가국 공동으로 우라늄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었다. 카나다는 반핵운동에서 특별히 우라눔광산개발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충남도의 우라늄광산 개발 불허결정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개발 이익보다 환경보전과 주민의 재산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우라늄광산 개발관련해 중요한 판결이어서 3월의 몽골 방문중 소개했었다. 향후 관심갖고 접근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지하철로 이동해 구몬트리올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노틀담성당 차이나타운 그리고 생로랑강변 등을 돌아봤다. 비가 오기도 해서 조금 있기도 했지만 예술광장(플라스 데자르)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러 택시로 이동해 도착하니 사람들이 운집해 있고 비가 약간 오락가락하기는 했지만 점차 그치면서 사람들도 늘어났고 각국별로 전통복장을 한 소그룹이 민속춤과 노래를 소개했다. 몬트리올에 사는 여러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되는 것 같다. 돌아가는 길 주변에는 데자르뎅신용협동조합 빌딩과 현금인출기가 있어 반갑게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는 방문해 봐야 할 곳이다. 지하철로 이동해 숙소에 돌아오다 역 주변 슈퍼마켓에 들러보았다. 지하철역에 출입구가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인구가 많지 않아 그런지 매우 간단하고 소박해 보인다.
19일째, 8월 2일(일)
정리할 일들이 많아 외출을 포기하고 숙소에 머물다가 점심을 먹고 택시로 몬드리올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출국절차를 시작하는데 조금 복잡했다. 국내선으로 토론토에서 환승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하는 방식이었다. 가방에 대한 화물수수료를 징수한다. 지난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필라델피아를 경유해 토론토로 가는 중에는 따로 수수료를 징수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에어카나다에서 가방 하나당 수수료를 25불찍 징수를 한다. 미국에서 직접 입국수속을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토론토공항에서 환승하기 위해 대기하다 1시간여 연착이라 저녁도 먹고 여유를 갖기도 했다. 몬트리올에서 미국심사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별도의 입국수속 없이 통과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인 시빅센터 유스호스텔에 도착해 4인실 룸에 짐을 풀었다.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분위기가 유스호스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차이나타운이 가까이 있고 시내 중심가라 편리해 보였다. 맥주 한잔을 하면서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을
20일째, 8월 3일(월)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산책을 했다. 시빅센터역으로 가보니 유엔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청사와 아시아문화예술관 등이 나온다. 유엔광장에는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을 창립하기 위한 노력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세계평화를 꿈 꾼 사람들이 바닥에 새겨둔 문구가 인상적이다. 아마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나서 유엔을 창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또 유엔헌장을 합의하고 서명했던 곳이 바로 오페라하우스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이런 역사와 설치된 작품들을 전혀 몰랐다. 샌프란시스코의 정신을 보게 될 것 같다. 지하철역에 새겨진 유엔의 상징인 월계수지구본에는 창립당시의 관련 역사가 간략히 설명되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는 모습인데 바트를 기다리다 알아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일종의 무인 전철인 바트를 타고 버클리 북부역으로 이동해 김미영선생을 만났다. 이찬수목사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에 조금 충격을 받았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10여년만에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근처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버클리서부도서관에 도착했다. 치주와 스티브를 비롯해 남인숙님 자녀 둘과 세월호 관련 활동중인 샘 윤씨가 인사를 했다. 먼저 히로시마로부터의 보고라는 영화를 상영했고 2부에는 보고회를 겸한 모임을 시작했다. 1부로 히로시마 원폭투하 피해와 전쟁을 반대하는 인터뷰가 담긴 영화를 상영했다. 그리고 참가자를 소개하고 3주간의 평화순례에 관해 설명했다. 이진섭님은 다시 잠시 소송관련 소개를 했다. 최승구선생은 이번 방문의 성과를 소개했고 연락이 닿지 않있던 뉴멕시코에서의 핵실험과 나바호지역의 우라늄광산 관련 소식을 알고 있는 여성 리퐁이 참석해 자신을 소개했고 우리는 내년에는 방문하거나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5시 다시 김미영선생이 와주어서 집에 잠시 들렀다가 버클리를 설명하면서 금문교를 안내해주었다. 훌륭한 가이드역할을 해 주셨고 다음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면 집에서 머물라고 친절한 제안을 주셨다. 숙소에 도착해 기다리던 항일역사보전을 위한 글로벌 얼라이언스(GA)의 상임부회장인 이그나시우스 딩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토론토알파가 지난해 7월 방한했을 때 만났던 북미지역 여러 항일역사보전을 위한 화교중심의 조직과 유관하다고 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는 중국인들이 30%나 되며 정치적 진출도 활발했고 영향력도 상당해 보였다. 지난 4월 아베수상이 방문했을 때 대규모 시위로 연설도 못하고 돌아가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자료를 보니 당시에 한국과 중국계 시민들이 함께 항의집회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북미 여러 지역과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연결해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정부와도 당당하게 관계한다고 했다. 비판과 협력을 유연하게 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서부지역 개발에 중국노동자들의 노력이 컸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주류사회를 형성하고 선거시기에는 정치인들이 중국인집단을 먼저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미국의 3대 요소인 실리콘벨리 헐리우드 월스트리트의 실상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대국굴기하고 있는 중국의 능력이 미국사회 내에서도 이렇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와 관련해서도 잘 알고 있어 실천적인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본기업의 과거 징용에 관한 책임보상도 실력으로 쟁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의 대응방식과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능력의 차이가 느껴진다. 탈핵과 관련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GE나 웨스팅하우스의 엔지니어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중화주의를 또 다른 패권주의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와 협력적으로 일을 진행해 가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했고 화교들의 활동에 관해 기본적인 이해를 못하고 있는 수준이어서 또 하나의 도전이 된 것 같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역사문제와 관련해 한중일 협력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21일째, 8월 4일
마지막 날이다. 마무리하지 못한 정리와 인사를 하느라 조금 분주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유엔광장에 미련이 남아 사진도 찍고 조금은 설명도 해 주었다. 1945년 4월,5월과 6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UN이 탄생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실제로 6월 25일 유엔헌장 서명이 이루어졌다. 지하철 역 내부 벽에 유엔창설과정, 그 후 1975년 유엔광장이 시빅센터위에 조성되었으며 2005년 그리고 유엔광장/시민센터 역으로 명명되었다는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하마트면 지나칠 뻔한 내용이었다. 바트 기차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행이라 그런지 조금 비싸다. 이동하면서 3주전 도착해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설명들었던 풍경이 눈에 조금 들어온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니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 권혁인목사 이재수선생 남미숙 님 등 여러 분들에게 감사와 작별 그리고 앞으로 당부인사를 했다. 최승구선생과는 조금 시차를 두고 셋이서 먼저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바닷가 공항이라 활주로를 이동하는데 샌프란시스코 베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륙하면서 금문교와 태평양 풍경이이 차례로 조금씩 보인다. 이번 방문 중 겪었던 일들과 만났던 분들 그리고 미국 서부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이 비행기 창을 통해 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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