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소스 궁궐 터이다. 기둥이 서 있는 것은 이집트의 영향이다. 뒷 벽면에 그림이 보인다.
이때의 포도주는 오늘처럼 말간 술ㅇ 아니고 포도와 뒤섞여 있고, 알콜 도수도 낮아서 배고플 때 칼로라 보충으로 퍼마셨다. 알콜 도수가 있는 미숫가루 물에 타먹는 느낌이라고 할까.식사도 되었다는 것이다.
홀 안의 여러 행사를 주배하였으리라고 본다. 행사는, 정치적인 것도, 종교 의례도 있었으리라 한다.
화산재에 묻힌 크노소스 궁이 드러나다
대서양의 어딘가에 아틀란티스라는 낙원의 섬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 섬은 헤라클라스의 기둥(지브랄찰 해협)의 바깥에 있다고 하였다. 그 섬에 가 본 사람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플라톤 시대에 이미 옛날이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초기 그리스 문명에 대한 향수 심리가 작동하였으리고 본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플라톤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가 한 말이라면 사실이라고 믿었다.
기원전 1520년 경에 테라섬(지금의 크레타 섬의 산토리니)에서 화산의 대폭발이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화산재는 크레타 섬을 뒤덮었고, 크노소스 도시를 화산재 속에 묻어 버렸다 초기 미노아 문명도 잿더미 속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덕택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플라톤 시대의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건물이며, 건물 벽의 벽화를 우리는 더 생생히 볼 수 있다.(화산재가 뒤덮어서 훼손당하지 않고, 잘 보존되었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에 의하여 그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재의 모습에 상상을 보태서 그렸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그 시대의 건물을 복원할 수 있었고, 아주 세밀하게 그린 그림도 복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시대의 그림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은 문양이 대부분이지만, 풍경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도 만날 수 있었다. 야자수, 파피루스 크로커스, 백합 등등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서쪽 저택이라고 부르는 건물의 벽은 섬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거의 세밀화 수준이다. 여기는 평평한 지붕을 한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의 모습, 털 옷 입은 목동이 양과 영소를 모는 그림, 전투를 축복하는 의식을 올리는 전사의 모습, 뒤집어진 배와 표류하는 선원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그 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원전2000년에서 기원전1000년까지 크레타에는 3개의 훌륭한 궁전이 있었디. 초대형의 홀이 있고, 둥근 기둥이다. 벽은 회칠을 한 다음에 간단한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붙이고 하였다. 이곳을 최초로 발굴한 사람은 영국의 아서 에번스 경이다. 그 뒤에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하였다
그림 설명 -- 그 궁전 내부의 큰 방(메가룐)에 큰 의자가 있고, 벽화가 있다.
궁궐에서 치루는 행사가 이 방에서 이루어졌으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