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9.5m봉 넘어 수미마을 가는 길에서 조망
․ 멀리 보이는 산과 산. 매혹의 발광체
․ 걷기 쉬운 능선을 따라 이 마루턱에서 저 마루턱으로 올라가자면 어쩐지 낮은 담을 넘어 사
람 없는 이웃집에 몰래 들어간 기분이다.
․ 길의 고마움을 아는 자는 길이 없는 데를 걸어본 자뿐이다.
--- 오오시마 료오끼치(大島亮吉, 1899~1927), 『산장 ․ 모닥불 ․ 꿈』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1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0명(자연, 숙이, 스틸영, 드류, 감악산, 화은, 대간거사, 제임스, 인샬라,
신가이버)
▶ 산행시간 : 8시간 39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2.7㎞
▶ 교 통 편 : 두메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25 -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佳水里) 고재벌, 산행시작
11 : 32 - △755.1m봉
12 : 19 ~ 12 : 55 - 문밭재 전전안부, 점심
13 : 30 - 문밭재
14 : 30 - 닭이봉(계봉, 1,028m)
14 : 58 - ┣자 갈림길 안부, 이정표(정상 120m, 계봉 600m)
15 : 12 - 988.5m봉
15 : 25 - 가탄마을 가는 ┤자 갈림길 안부, 자연 님 탈출
16 : 25 - △859.5m봉
17 : 40 - 일몰
18 : 04 - 수미(水美)마을 새절교, 산행종료
18 : 20 - 가탄(佳灘)마을, 자연 님 구조 진행
23 : 00 - 정선군 남면 광덕리 음지마을 음지교, 구조 종료
1. 고재벌 동강 건너편 풍경
▶ 문밭재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호법I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자 고속도로는 몰려드는 차량으로 이
른 아침부터 대홍수다. 시월상달 호시절을 맞아 너도나도 단풍놀이 가는 행렬이다. 엉금엉금
기어간다.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주차장과 식당이 만원이다. 붐비는 행락객들 옷차림 먼
저 울긋불긋 단풍들었다.
고래로 산은 설악산, 강은 동강이라고 했다. 암벽 두른 첩첩 첨봉 사이를 구불구불 교묘하게
파고드는 동강이다. 가수리(佳水里). 그 뜻을 알겠다. 물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가탄(佳灘)마
을과 수미(水美)마을의 두음(頭音)을 빌은 이름이라고 한다. 명실상부하다.
가수리의 명산인 곰봉과 닭이봉(계봉)을 한두 번 오른 것은 아니지만 요컨대 어느 코스로 올
랐느냐를 분별한다.
닭이봉에서 서쪽을 내려다 볼 때마다 곰봉 아래 문밭재에서 고재벌 물도리동으로 길게 미끈
하니 뻗어 내린 도상 5.4㎞의 능선을 가고 싶어 신열이 나도록 발싸심하였다.
오늘 거기를 간다. 벼르던 고재벌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너른 강폭의 동강과 수직으로 맞닿
은 기암절벽이 가경이다. 강변 언덕은 노란 산국이 활짝 핀 꽃밭이다.
성급하였다. 길옆의 야산에 들어 가시덤불을 애써 뚫었더니 농로가 가로 지나고 옥수수 밭이
나온다. 농부 내외가 옥수수를 걷고 있다. 수대로 덕담 겸한 인사하고 산속으로 일로 직등한
다. 추초(秋草)인 탓도 있겠지만 무육(撫育)한 숲이라 양팔 벌려 풀숲 헤치는 수고를 덜었다.
인적 뜸한 등로는 그나마 햇낙엽으로 가렸다.
발걸음이 느긋하더니 398m봉을 넘자 등로가 사나워진다. 능선 마루금은 바위 섞인 잡목 숲
이다. 번번이 사면으로 비켜간다. 숲속 등로가 내내 환한 건 샛노란 생강나무 잎 덕분이다. 공
제선 첨봉을 연속하여 넘는다. 펑퍼짐한 사면이 나오면 더덕대형을 펼친다. 더덕은 벌써 동면
(冬眠)할 채비를 마쳤다. 줄기를 붙들면 뇌두에서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자 능선 분기봉. 풀숲에 산불감시망루가 있다. △755.1m봉은 오른쪽(남쪽)으로 300m 떨어
져 있다. 당연히 삼각점을 보러간다. 대평원의 끄트머리다. 대평원 샅샅이 뒤져 삼각점을 찾
아낸다. 412 재설, 77.7 건설부. 능선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 온 길을 거슬러 가는 건 우리
성미에 맞지 않는다. 사면으로 돈다.
너무 일찍 능선을 잡았다가는 운치리 설논으로 빠지거나 골로 간다. 멧돼지들이 사면 헤집어
등로 흔적을 지워버리기도 했지만 사면을 너무 돌았다. 닭이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가파르게
떨어지기에 주위 살피니 오른쪽 저편으로 가야 할 능선이 우뚝한 것이 아닌가. 헛웃음이 다
나온다. 여기서 땀 뺀다.
둥그스름한 봉우리 넘어 안부. 일행들이 모여 점심자리 펴고 있다. 즐거운 시간이다. 가을 소
풍 온 기분 난다. 강화 부대찌게 끓이고 그 국물에 느타리버섯 넣어 라면까지 삶는다. 천고아
비(天高我肥)의 계절이기도 하다.
느타리버섯이 화근이었다. 오늘 아침 오는 차안에서 지난주 산행 마치고 뽕느타리버섯인가
개금버섯인가 삼겹살 불판에 구워먹다가 덜 익은 것을 먹어 이틀간이나 복통을 앓았다고 누
누이 고지하고 아울러 날로 먹을 수 있는 버섯(송이, 계란버섯 둥)을 열거하였음에도 건성으
로 들었는지 자연 님이 방금 전에 느타리버섯을 따면서 날로 먹어보았다고 한다.
문밭재로 가는 긴 오름길이 자연 님에게는 큰 고역이었다. 구토와 발열이 간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산은 발로 가는 것. 발이 성하여 간다. 갈 수밖에 없다.
굳이 문밭재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능선에 이르는 왕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사면을 대 트래버
스 한다. 도로(徒勞)다. 빙 돌아 문밭재 가는 능선이 나온다. 그리고 묵은 임도. 문밭재다.
2. 옥수수(Zea mays), 수확하는 옥수수 밭에서
3. 산구절초(山九折草, Chrysanthemum zawadskii)
4. 백운산 자락과 동강
5. 750m 고지에서 첫 휴식
6. 문밭재 가는 길
7. 닭이봉, 닭이봉 가는 도중 871m봉에서
▶ 닭이봉(계봉, 1,028m), 수미마을
문밭재에서 곰봉 정상까지는 420m다. 일부 일행이 곰봉을 다니러간 사이에 자연 님에게 소
화제와 따듯한 매실차를 들게 한다. 닭이봉 가는 길. 닭이봉 암봉이 나뭇가지에 가려 감질나
게 보인다. 저기서 더 잘 보일까 걸음 재촉하여 기웃거리다보면 871m봉 넘어 바닥 친 안부다.
된 오름이 이어진다. 쉴 때는 가을이지만 오를 때는 한여름이다. 덥다.
가파른 사면을 대각선으로 올라도 가파르다. 몇 번이나 걸음 멈춰 가쁜 숨 고른다. 닭이봉 정
상. 서쪽과 북쪽이 발아래 일망무제로 확 트인다. 또한 고재벌에서 오른 능선이 장히 보이고
수미로 가는 능선은 울근불근하여 두 주먹 꽉 쥐게 한다. 닭이봉 연봉을 넘는 등로는 릿지를
닮았다. 왼쪽 사면은 수직절벽이고 트래버스 하여 지나는 오른쪽 사면도 상당히 가파르다.
닭이봉 주봉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암봉을 올랐다가 뚝 떨어지면 ┣자 갈림길 안부다. 등벤치
가 놓여있다. 이런 험로에 대체 누가 오는지 궁금하다. 988.5m봉이 가까이서는 더욱 첨봉이
다. 릿지가 나온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로가 있다만 그리로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겠다. 릿
지 직등. 절벽을 나무뿌리 잡고 살짝 트래버스 하여 암릉을 긴다. 실한 한 피치다.
988.5m봉 정상은 사방 나무숲 둘러 조망할 수 없다. 자연 님이 여전히 불편하여 탈출을 생각
한다. 988.5m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 왼쪽 사면으로 가탄가을로 내리는 길이 보인다. 햇낙엽
이 깔려 희미하다. 자연 님에게는 초행길이겠지만 오지산행은 예전에 그리로 내린 적이 있다.
가탄마을 굽어보며 내릴 수 있다. 제임스 님의 GPS도 여기서 가탄마을 내리는 등로를 가리키
고 있다.
자연 님 혼자서 탈출한다. 이때가 15시 25분. 자연 님으로서는 전혀 뜻밖으로 장장 5시간이나
혼자서 산속을 헤매는 고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수미마을로 능선 따라 진행하는 것도 힘
들다. 바위 섞인 첨봉을 6좌나 넘어야 한다. 암릉을 오른쪽 비탈진 사면으로 길게 돌아 쭈욱
내렸다가 봉봉을 넘어 △859.5m봉이다. 삼각점은 정선 318, 2004 복구.
봉마다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무척 심하다. 면계 벗어나 신동읍으로 방향 트는 암봉 가파른
슬랩을 오를 때였다. 16시 45분. 대간거사 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꼭 이런 때 전화가 오다
니 하며 스텝 무너뜨리고 나무에 기대어 전화를 받았다. 자연 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다 내
려갔다는 전화겠지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열었다. 주위가 소연하다. 예상하지 못한 대화가 오
간다.
폭포와 절벽이 앞을 가로 막았단다. 도저히 더 내려갈 수가 없어 당초 탈출지점인 주능선으로
물러나야겠으니 데리러 오라는 얘기다. 사면을 자세히 살펴 등로를 찾아보고 어쨌든 능선을
잡아 내릴 것을 주문한다. 불안하다. 여태 의기양양하던 산행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무엇보다
말수가 적어진다.
어떡해야 하나. 줄달음으로 내리던 걸음을 멈춘다. 온 길 되돌아 구조하러 가려고 자연 님에
게 전화 걸어 그곳의 현재 상황을 묻는다. 길이 보인단다. 안도한다. 우리도 하산을 서둔다.
17시 40분. 역광으로 발길 어지럽게 하던 해가 마침내 진다. 누군가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들
려 반갑다고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동강 건너 북대마을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스퍼트 낸다.
18시 06분. 새절교 앞이다. 자연 님으로부터 전화 오지 않는 것이 수상하다. 어떡하고 있는지
전화 건다. 불안은 적중한다. 앞도 좌우도 절벽이어서 오도 가도 못하겠단다. 구하러 가겠으
니 부디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 당부하고 가탄마을로 이동한다.
8. 등로 주변의 단풍(Acer palmatum)
9. 닭이봉 연봉
10. 왼쪽 가운데 능선이 우리가 오른 길
11. 가운데 동강이 돌아가는 곳은 유지마을
12. 닭이봉 연봉, 안부 건너편이 988.5m봉, 닭이봉에서
13. 스틸영 님, 닭이봉에서
14. 오른쪽부터 자연 님, 숙이 님, 닭이봉에서
15. 닭이봉 연봉
16. 닭이봉
▶ 가탄(佳灘)
가탄마을 억조식당 앞. 자연 님이 119에 자신의 조난을 신고하였다. 그와는 별도로 우리도 비
상식량으로 허기를 급히 때우고 여력이 있는 4명이 구조하러 나선다. 헤드램프 켜고 가탄마
을 골짜기를 중심으로 왼쪽의 능선이 예전에 우리가 내려온 등산로다.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
따라 오른다. 억조식당 주인이 그랬던가. 우리더러 오른쪽 능선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는 연락
이 왔다. 방향 틀어 골짜기 건너고 오른쪽 능선에 붙으려 꽤 가파른 농로를 오른다.
농로가 끝나고 키 훌쩍 넘는 덤불숲이다. 사방이 캄캄하다. 길에서는 서치라이트로 환하던 헤
드램프가 산기슭 숲에서는 반딧불만도 못하다. 이래서는 진행불가. 아무래도 등로 따라 오르
는 편이 낫겠다 싶어 다시 골짜기를 건너려는데 차에서 연락이 온다. 119 구조대가 왔으니 그
냥 내려오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이 근방 지리에 완전 훤하다는 억조식당 여주인의 안내로 119 구조
대원 3명이 나선다. 동오리 쪽에서 접근하겠다고 한다. 우리도 따라 나서려 하자 괜히 거치적
거리지 말고 제발 잠자코 기다리라고 한다. 그들이 떠나자 억조식당 사장님 꾀어 사장님 차로
우리도 119 구조대 차량이 주차한 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산등성이 농로가 끝나는 데에서 차는 더 올라갈 수 없다. 119 구조대 불빛이 산속에서 내려오
고 있다. 불빛을 세어보았다. 4개다. 자연 님을 아직 구하지 못했구나.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다급히 경과를 물었다. 자연 님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냈다고 한다. 구글어스
와 지도상의 위치를 가리켜 준다. 988.5m봉 정상 부근 릿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
이다.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린다. 자연 님은 가탄마을로 내려간다고 하고 지도와 나침반이 없이 헤
매고 헤맨 끝에 우리와 함께 지나온 988.5m봉을 다시 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988.5m봉
을 오를 때 릿지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했던 터라 릿지가 생소할뿐더러 앞도 왼
쪽도 오른쪽도 절벽일 수밖에 없다.
988.5m봉 릿지는 닭이봉 반대쪽인 남면 광덕리 수령마을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119 구조
대는 그 인근에 사는 안내자를 수배함과 동시에 경광등 번쩍이며 달려간다. 우리 차는 농로로
이어지는 수령마을까지 들어갈 수 없어서 음지마을 삼거리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밤공기가
제법 차다. 우러러 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왠지 낯설어 보인다.
드디어 무사히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뒤이어 구급차와 119 구조대 차량이 도착한
다. 도열하여 박수로 맞이한다. 정선소방서 119 구조대는 자연 님을 내려놓고 그만 휑하니 떠
난다. 그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은 물론 고맙습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
밤 23시.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직까지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다. 배고프지만 왁자하며 서울
로 향한다.
(이튿날 텔레비전 뉴스에 10월 13일 정선에서만 조난을 포함하여 15건의 산악사고가 있었다
고 한다)
17. 닭이봉
18. △859.5m봉 가는 길에서 넘어온 산릉을 뒤돌아 봄
19. △859.5m봉 가는 길에서 조망
20. △859.5m봉 가는 길에서 넘어온 산릉을 뒤돌아 봄
21. △859.5m봉에서 조망
22. 역밭마을 주변
23. 역밭마을 주변
첫댓글 구조하러 가는데 응당 먼저 나서야 하는데 발목이 부실하여 그러지도 못하고...이래저래 죄송스럽고 고단하기도 한 하루, 기억에 오래 남기는 하겠네요.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런!! 큰 고생들 하셨군요...그래도 무사히 내려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사연이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수령마을 지나 988.5봉 전의, 벤치있는 안부로 이어지는 산길 들머리까지는 시멘트포장이 되어서 차가 갈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본 계봉만은 참으로 멋지네요.....
자연님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모두들 고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