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화요일, 맑음. 전통문화연구회 발표회에
오전에는 다시 병원 보청기실에 가서 보청기 성능 테스트를 하고서, 퇴계학연구원에 나가 있다가 오후에 거서서 하는 강의를 하였다. 끝난 뒤에 늦었지만 프레스센터에서 하는 전통문화연구회 발표회장에 수강생 몇 명과 함께 가 보았다. 마지막 부분의 발표를 좀 듣고 나오려는데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해서 발표자 등 몇 명과 그 회의 임원 몇 명과 함께 발표장 곁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회식을 하였다.
오늘은 손자 병법 등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완역한 것을 기념하여 출판기념회를 겸한 발표회인데, 그 책에 관한 이야기는 국방대학원의 어떤 교수가 하였고, 이화대학교의 정재서 교수가 역시 이 기관에서 내고 있는 《안씨가훈顔氏家訓》에 관한 발표도 있었는데, 둘 다 늦게 가서 직접 듣지는 못하였으나 발표문은 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밖에도 거기서 낸 딴 책 두 가지와, 시루떡 2통에, 거마비 1봉까지 받고, 또 기념사진까지 함께 찍고 왔으니, 참 늦게 간 것이 미안해지기도 하였다.
아마 내가 작년 겨울에 여기서 강의를 2달 동안 한 적이 있어, 완전히 한 식구로 대접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안씨가훈顔氏家訓》에 관한 글은 다 읽어 보았다. 남북조 말기라는 난세에 3차례나 섬기던 나라가 바뀌고, 그때 마다 포로가 되어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구차하지만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하였던 지식인이 후손들을 위하여, 오로지 학문을 하는 것만이 그래도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는 교훈을 모아 둔 책이 이 책이라고 한다. 그의 교훈을 받들어 당 나라에 가서 안사고(경학자), 안근례(서예가), 안진경(서예가, 장군) 같은 명사들이 이 가문에서 잇달아 배출되었다.
경북대학의 임대회 교수가 번역한 《중국의 역사【위진 남북조】》(경도대 가와카스 요시오川勝義雄 교수 원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책을 인용하면서, 중국이 역사를 이끌어 나간 문인文人 가문의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을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는 근래 한국의 선비가문에서도 가끔 역경을 이겨내는 후손들이 나오는 것을 볼 때 마다 이 《안씨가훈顔氏家訓》이라는 책을 늘 떠올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 원문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는데, 지금 한국어로 좋은 번역이 나온다고 하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속히 완간되기를 빈다.
11월 26일 수요일 맑음. 대구 내왕
대구에 가서 강의를 하고 왔다. 갈 때 마다 수강하는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밥도 사주고 차도 태워주니 정말 고맙다. 얼굴을 보는 것도 반갑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저녁은 본죽의 비빕밥을 한 그릇사서 차 안에서 먹고, 집까지 오니 8시 반쯤 되었다. 오늘은 동대구역에서 떠나 3시간 만에 집까지 들어온 것이다. 좀 춥고 나른하기는 하지만 견딜만 하다.
첫댓글 선비가문에서 학문을 해 가문의 명맥을 잇는 안씨가훈의 정신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인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