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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의 룰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든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의 승리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골리앗은 정정당당히 칼을 부딪히며 싸우는 전통적인 전투의 룰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존의 룰을 거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도망다니며 싸우지 않았고 강력한 무릿매를 던졌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마치 칼을 든 사람을 총으로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골리앗은 다윗이 이길 수 없는 큰 위기였지만,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다윗에게 골리앗은 오히려 큰 기회였습니다.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에 벌어진 강대국과 약소국의 200여 건의 전투에서 다윗이 승리한 경우가 50%를 넘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강자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다윗처럼 새로운 룰을 따랐을 때 일어난 결과입니다.
신생 IT기업 애플이 절대적 강자 노키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룰 때문입니다. 세상의 잣대를 따를 때 크리스천은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하늘나라의 잣대를 따를 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의 승리자입니다.
크리스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능히 세상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말씀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룰을 따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하소서
하늘나라의 원리로 사는 능력의 승리자가 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훌륭한 인격의 조건
인문 심리학의 창시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 박사는 「훌륭한 인 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첫 번째 /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 두 번째 / 생각하는 그대로 말하고 살아가는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 세 번째 /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말하는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 네 번째 / 다른 사람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기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로저스 박사는 훌륭한 인품을 만드는 이 네 가지 특징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성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온유함입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과 다른 이를 높이며, 말씀대로 믿고, 죄를 지은 상대라 하더라도 배려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예수님 이 제자들을 믿으셨던 것처럼 동역자와 다음 세대를 믿고 응원하는 것이 훌륭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품위와 인격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삶과 성품, 모든 것을 더 좋게 변화시킵니다.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더욱 풍성 하게 열립니다.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수록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마음에, 우리 삶에 강물처럼 흘러넘 칩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배워 훌륭한 인품을 가꾸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말씀과 삶을 생각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살게 하소서.
나에게는 훌륭한 인격의 네 가지 특징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말씀 따라, 말씀대로
미국의 철학자이자 복음주의 운동가인 프랜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가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말씀과 너무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였습니다.
쉐퍼는 자신의 저서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례(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말씀을 외친 이유는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고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도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당시의 신앙생활이 말씀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질 때 신앙도, 세상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은 완전히 갈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고쳐서 사용 한다'는 뜻입니다.
고치고, 바꾸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모두가 개혁을 외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대로 살아갈 때 심심한 음식에 맛을 내는 소금처럼,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빛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정한 개혁의 방법임을 깨달으십시오. 아멘!!!
주님, 성경의 말씀 안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일수록 성경 말씀을 되새기며 답을 찾읍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믿어지는 은혜
교회를 습관적으로 출석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성경도 열심히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진짜 전능하다면 한 번 믿게 해보시죠"라는 생각으로 무미건조한 신앙생 활을 이어갔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나갔고 청년부 회장을 맡을 정도로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독실한 교회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의문이 전부 풀리면 제대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의 집회를 찾아가 궁금한 점을 메모지에 잔뜩 적어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써놓은 질문이 화면에 뜨는 순간 갑자기 마음에 큰 감동이 임하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계속해서 나를 의심할지라도 나는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 없고, 잊은 적이 없다."
변증가의 해답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날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경험한 후에는 모든 일에 의심보다 믿음이 먼저 생겨나며 진정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방법, 어떤 경로로든 지금 교회에 다니며 주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 말씀이 믿어지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나를 잊지 않으시고 늘 함께 계시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깨닫고, 모든 말씀이 믿어지는 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풍성한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께 풍성한 은혜, 놀라운 은혜의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십자가의 유산
교향곡 작곡가가 되고 싶은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한 시골 고등학교의 음악선생으로 취직했습니다.
'딱 4년만 하고 그만두겠다'라고 마음먹었던 음악 교사 일을 무려 30년이나 한 그는 퇴임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작은 시골에서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며 성장하는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4년은 30년이 되었습니다.
음악가는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며 착잡한 심정으로 퇴임식에 참석했습니다. 퇴임식 축사는 주지사가 맡았는데 그는 선생님에게 클라리넷을 배우며 열등감을 극복한 제자였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꿈을 포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바로 선생님이 쓰신 교향곡입니다."
축사를 마치자 무대 뒤 커튼이 걷히며 지난 30년 동안의 제자들이 제 각각 악기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작곡한 유일한 교향곡 「아메리칸 심포니」 초연을 자신들을 위해 꿈을 포기한 선생님에게 선물로 올려드렸습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홀랜드 오퍼스」(Mr. Holland's Opus)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제자들과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듯이 우리도 주님이 주신 이 소중한 유산을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남기신 십자가의 유산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며, 전하며 살게 하소서,
내가 주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서열 정리
개는 집단생활을 했던 서열 동물이기 때문에 집에서 반려견으로 키워도 가족들을 서열화합니다. 배가 보이도록 눕힐 때 개가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은 개보다 서열이 높은 것이고 반항하거나 으르렁대면 자기 보다 서열을 낮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집단생활에서의 서열화 작업이 인간 세상에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속칭 '파워 게임'이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회사, 학교, 단체, 어떤 집 단에서도 "누구의 서열이 가장 높은지", "누가 실세인지", "누가 가장 일 을 잘하는지" 등으로 암묵적인 서열이 매겨집니다.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도 누가 가장 달리기를 잘 하는지, 누가 가장 싸움을 잘하는지, 누가 전교 1등인지···. 마치 개가 집안에서 서열을 매기듯이 우리는 평생 사람들을 '잘하는 사람'. 혹은 '못 하는 사람'으로 나눠서 평가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방법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주권자는 주님이시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 하더라도 그 재능을 주신 분 역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C.S.루이스(C.S.Lewis)는 교만한 사람은 발밑의 사람을 보느라 하늘 위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나, 가정, 회사, 학교, 교회, 그 어디든지 절대자는 하나님 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을 같은 형제와 자매로 섬기며 겸손히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으뜸으로 모시는 이들을 존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에서 잘 살도록 재능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성령이 충만할 때
에베소서 5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런데 왜 하필 성령과 술 취함을 함께 언급했을까요?'
이 말씀을 깊게 고민한 한 성도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공통점」입니다.
1. 말이 많아진다.
2. 노래한다.
3. 다른 사람에게 끈질기게 권한다.
4. 갑자기 운다.
5. 용감해진다
6.지배당한다.
7. 중독된다. .
8. 냄새를 풍긴다.
공통점이 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의 삶은 피폐해지고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로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다른 사람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삶에는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주님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성령의 열매입니까? 내 만족과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세상의 열매입니까? 세상의 쾌락과 유혹을 멀리하고 술보다. 다른 그 어떤 즐거 움보다 주님을 따라 살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의 쾌락과 유혹을 멀리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소서.
그 어떤 즐거움보다 주님을 따라 살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결국은 죽는다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특별히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자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죽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천국에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있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열정을 다해 설교를 마친 목사님은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네, 이제 죽어야 해요."
맞습니다. 천국은 죽어야만 갈수 있는 곳입니다. 결국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일들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자랑과 정욕에 대해 매일 죽어야 합니다.
구원은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지만, 그 선물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일 경건의 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 이 어디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마음으로 오늘을 가꾸십시오. 세상에 대 해 죽고, 예수님으로 인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게 하소서.
돌아갈 본항이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감사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승리의 순간, 패배의 순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박사는 일을 성취하는 단계가 다이빙에 도전하는 단계와 똑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이빙에는 크게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 첫 번째 / 쳐다보는 단계입니다.
다이빙대의 높이는 11m로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높이입니다. 밑에서 바라만 봐도 도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고심하며 쳐다만 보는 단계입니다.
· 두 번째 / 계단을 올라가는 단계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행동은 곧 도전입니다. 성공을 위한 작은 전진을 이룬 단계입니다.
· 세 번째/ 다이빙대에 서는 단계입니다.
계단을 올라가 다이빙대에 섰다면 이제 최종 단계입니다.
다이빙대에 선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아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뛰어내리든가, 아니면 뒤로 돌아 내려가든가입니다. 뛰지 못하고 도로 내려가는 계단을 두고 다이빙계에서는 '실패의 계단'(the steps to defeat)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뛰는데 성공했다면 '성 공에 뛰어들었다'(the dive to victory)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당당히 성공을 향해 뛰어드십시오. 아멘!!!
주님,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이든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오히려 좋아
번번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되는 사자성어는 ‘새옹지마’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바뀌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그렇게 된다. 나이를 먹어야 깨치는 삶의 진리라고 생각했는데 총명한 MZ세대는 벌써 감을 잡은 듯하다. ‘오히려 좋아’라는 표현이 자주 들리는 걸 보면.
내가 세우는 계획이 정말 선할까. 확신할 수 없다. 그 계획엔 현생에서 채울 수 없는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남들 시선 때문에 억지 춘향으로 맡은 일거리도 들어 있다. 계획부터 어설픈데 실현이야 말할 것도 없다. 뭐라도 이뤄보려고 발버둥 치다 작년에 번아웃을 겪었다.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난 뒤에야 선하신 하나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26년의 절반을 보내며 새해를 시작할 때 내가 뽑은 성서 말씀 카드에 시선이 갔다. 잠언 16장 9절이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남은 6개월은 내 보기엔 꼭 이뤄져야 할 일이어도 그분은 허락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성탄 즈음엔 “오히려 좋아!”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그 고백을 통해 그분께 조금 더 가까이 닿기를.
정혜덕 작가
양심을 훈련하라
구약시대 아람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으나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찾아갔으나 직접 마주하지도 않은 채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무시당했다고 여겨 분노하며 다메섹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 순간 부하들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라고 간곡히 진언했고 그대로 행한 나아만은 한센병에서 나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이름을 빙자해 나아만에게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냈습니다. 그 탐욕과 거짓의 죄로 한센병 환자가 됐고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른다”는 저주까지 받게 됐습니다.
신앙 훈련과 성경 지식이 아무리 철저해도 양심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매일 기도하고 찬송해도 순간의 탐심으로 넘어지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신앙의 외형보다 양심을 깨끗하게 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선한 양심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신앙도 빛나게 됩니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한 사람을 위한 기차역
일본 홋카이도의 간이역인 가미시라타키역은 적자가 계속돼 폐쇄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살던 한 여고생에게 이 역은 학교를 오가는 통학 수단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철도회사는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역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열차 운행은 하루 두 번, 등하교 시간이었습니다. 2016년 학생이 졸업하면서 역은 문을 닫았습니다. 마지막 운행 날 그동안 역을 지켜준 직원과 주민들, 그리고 학생이 모여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효율과 이익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성경 속 이야기들만큼 비효율적인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요. 무엇보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이번 한 주, 우리도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간이역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계산기를 잠시 내려놓고 한 영혼에게 따뜻한 불을 밝혀주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다시 시작해요… 더 늦기 전에
장영희 교수는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6년간 매달려 쓴 학위 논문 가방을 도둑맞은 일화를 들려줍니다. 식음을 전폐할 만큼 절망했던 그는 끝내 다시 일어나 논문을 끝낸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를 배웠고,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는 것, 넘어져 주저앉기보다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형이 내려진 절망의 순간 눈물로 노래합니다. “당신은 나의 희망, 나의 생명. 우리 다시 시작해요. 더 늦기 전에.” 이는 무대 위 대사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속에 머물러 있는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고백입니다.
한 해의 반을 보내고 새로운 반을 시작하는 7월의 첫날입니다. 지나간 시간이 어떠했든 흘러간 물처럼 이미 지나간 일일 뿐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분의 눈과 마음으로 지난 일들과 우리를 둘러싼 관계를 새롭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나를 받아들이기
며칠 전 모닝커피를 들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몰아붙일까.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올 상반기 나는 박사 논문을 쓸 때처럼 많은 책과 논문에 파묻혀 연구에 몰두했다. 좋은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노력은 좋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됐다. 결국 오랜 고질병이 재발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파르르 떠는 나 자신이 참 불쌍하게 느껴졌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 이후 공부하는 양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극심했던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나는 이번에 알았다. 노동과 안식의 전문가인 내가 정작 나 자신에게는 인색하다는 사실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의심이 들었다. 하나님은 죄 많은 나를 이미 받아주셨는데 나는 왜 아직 부족하다고 나를 다그칠까. 하나님은 아프도록 일하는 나를 정말 좋아하실까.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향유하는 나를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받아주신 나를 나도 받아들이자. 그 뒤로 연구 속도는 느려졌지만 몸과 마음은 편해졌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뜻을 정한 인생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됐습니다. 황제가 정해준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들은 뜻을 정하여(단 1:8) 명령을 거부합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목표를 세우고 흔들리지 않을 좌표 하나를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분명한 뜻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소명 의식이 있어야 뜻이 세워지고 실천력이 뒤따라오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으십니까. 생을 다하기 전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위대한 성취를 볼 때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이 품었던 원대한 꿈과 단호한 결단력을 보아야 합니다.
곧 7월입니다. 여러분의 지난 상반기는 어떠셨나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남은 하반기를 어떻게 채워 가느냐에 따라 멋진 역전을 이뤄낼 수도, 굳건하게 승리를 지켜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다시 한번 뜻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뜻을 향해 다니엘처럼 묵묵하지만 힘 있게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생명을 향한 타락된 발버둥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7월 5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은 구름으로 아무래도 한 번쯤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때 천주교에서는 승용차 뒷유리창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원죄 중 하나는 ‘핑계’와 ‘책임전가’입니다. 어쩌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보다 더 큰 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거나 책임전가하지 않고, 그 즉시로 하나님께 그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더라면 그 불순종의 죄도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그 잘못을 떠넘겼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를 놓고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게 된다면, 이 세상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절대적 수치와 두려움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됩니다. 아주 쉬운 길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길로 향합니다. 아담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신의 수치와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시도합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은 수치와 두려움을 ‘혼자서’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닌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뒤로 숨지 않고 하나님 이외의 것인 ‘나무’ 뒤로 숨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처럼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해서 자신의 수치와 두려움을 숨기려는 모든 시도가 무속(巫俗)입니다. 타로점 뒤에 숨는 행위, 굿 뒤에 숨는 모습, 점을 보면서 점쟁이 말 뒤에서 안정감을 얻으려는 시도 등입니다.
무속에 의지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 무속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내 마음의 영원을 채우려는 모든 시도는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꼭 점을 보러 가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이 시도하는 모든 영적 활동은 본질적으로 무속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무속에 빠지는 것은 분명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악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함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무속을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한없이 약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약함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무속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차라리 약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 없이 안정감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 의지하지만 불안한 상태가 더 복 있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결핍이 있고 슬프고 목마르고,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이 하나님 앞이라면 복이 있는 상태입니다. 불안하면 불안한 채로, 무지하면 무지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혼자서 미래를 알려고도, 길흉화복을 점치려고도 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연약한 상태로, 불완전한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어떤 시도도 위험합니다. 내 인생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출처 ; 빛과 소금 2026년 7월호에서, 김민철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안디옥에 간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 흥분과 기쁨에 넘쳐, 신도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뒤따르더라도 주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라고 격려하였다.[행11:23]
●방황하는 마음이야말로 위대한 창의력을 이끌어내고,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문제의 답을 찾아준다.(다니엘 레비틴)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기대하지 않는 다정함
나에게 다정함이란 ‘기대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보낸 다정함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 실망합니다.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손해를 봤다고 여기고 그러한 삶과의 작별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중학생이 물었습니다. “친구에게 만 원짜리 선물을 했는데 제 생일엔 5,000원짜리 선물을 돌려받았습니다. 그 친구와 절교해야 할까요?” 나는 그때 ‘다정함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친구에게 선물을 한 이유는 뭔가요?” 그는 친구의 생일이었고 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그 친구가 선물을 받고 기뻐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 선물했다면 이미 돌려받은 것 같고, 무언가를 돌려받기 위해 선물을 했다면 거래를 하려고 한 거니까 못 돌려받은 거고요. 학생이 하고 싶었던 건 거래였나요?”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했다고 믿는 선택조차도 그러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기에 내 태도의 완성과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 이렇게 했다, 나는 너에게 주면서 나에게 다 받았으니,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면 나는 덜 상처받으며 내가 옳다고 믿는 태도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에게는 실망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됩니다.
그 중학생은 거래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비슷한 선물을 돌려받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그의 말도 좋았습니다. 나도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늘 잘되지 않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중학생인 그가 기대하지 않는 다정함을 이해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만, 좋은 태도를 가지고 그에 기반한 선택을 해 나갈 때, 우리는 더 좋은 어른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다정함을 삶의 거래 수단으로 삼으면, 우리는 주고받을 것만 계산하며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만큼 손해 보는 인생 같은 것도 없습니다.
언젠가 만났던 그 중학생의 잘됨을 바랍니다. 좋은 태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면, 그는 나이가 많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을 믿습니다.(출처 ; ‘김민섭의 다정함에 대하여’에서, 김민섭 작가)
물맷돌
아아 잊으랴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다. 침에 들어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이 말을 모른다. ‘아밀레이스’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시행 이후 바꿨다. 한 청년은 “2002월드컵의 함성을 ‘전설의 짤’로만 보다가 올해 월드컵을 생눈으로 보게 돼 감격적”이라고 했다.
8년 동안 출강했던 대안학교에 놀러 갔다. 그 학교에서는 6·25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당일에 주먹밥을 급식으로 먹는다. 다른 반찬도 없이 꾸역꾸역 맨밥을 먹으니 당연히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다. 일부는 몰래 김이나 핫소스, 볶음김치를 챙겨온다. 차라리 감자를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 올해부터는 감자도 준다고 했다.
전쟁은 어린이 노인 여자를 먼저 덮친다. 전쟁이 명분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사이에 가난한 이들은 소리 없이 스러진다. 전쟁을 게임이나 영화, 책으로 본 이들은 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아밀라아제와 2002월드컵은 알아도 ‘아아 잊으랴’로 시작하는 노래는 따라불렀던 기억만 흐릿하다. 하지만 지구는 오늘도 전쟁 중이다. 예수님은 전쟁의 피 묻은 손으로 드리는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는 말을 붙잡는다.
정혜덕 작가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
1951년 전쟁의 포화가 한반도를 휩쓸던 때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이 땅을 밟았습니다. 6개월 선교 여행 중 그는 폐허가 된 거리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버려진 고아들을 보고 가슴 깊이 아파했습니다. 귀국길 비행기에서도 ‘저 불쌍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까’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곧 한 후원자로부터 1000달러의 수표가 전달됐습니다. 그가 그 돈을 한국의 선교사에게 보낸 것이 바로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의 시작이며 그 뜻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스완슨 목사는 6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만2625명의 전쟁고아를 돌보았고 400여명의 개척교회 교역자를 지원했습니다. 그가 뿌린 작은 씨앗은 오늘날 세계 29개국 240만 어린이를 품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한때 도움을 받던 한국은 이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우뚝 섰습니다. 한 사람의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 스완슨 목사의 이름은 오늘도 수많은 아이의 꿈속에 따뜻한 희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사랑의 레시피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는 미국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완벽주의자 케이트가 등장합니다. 자신만의 레시피로 주방을 꾸려가던 케이트는 언니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조카 조이와 함께 살게 됩니다. 사고의 충격으로 식욕을 잃은 조이는 케이트가 정성껏 만든 요리에 입을 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주방장 닉이 대충 만든 파스타를 들고 조이의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먹었고, 그 모습을 보던 조이가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케이트는 완벽한 요리가 아니라 조용히 곁에 앉아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슬픔 앞에서 우리는 위로의 말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논리적인 설명 대신 함께 우셨습니다.(요 11:35) 완벽한 답을 주시기보다 슬퍼하는 이들 곁에 가만히 머무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합니다.(롬 12:15) 오늘 우리 곁에도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슬픔을 홀로 견디는 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듯한 위로의 언어보다 그저 곁에 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레시피가 아닐까요.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해마다 이맘때면 동족상쟁의 비극과 상흔을 기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이면에는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하루 전, 경북 영덕 장사리 해변에 비밀리 투입된 772명의 학도병이 있었습니다. 미숫가루 두 봉지와 최소한의 탄약만으로 사투를 벌인 이들의 희생은 오랜 세월 기밀에 부쳐졌다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려한 승리를 이끈 맥아더 장군만을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탁월함 이면에는 이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숨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이 가능했습니다. 아무런 보상 없이 자신을 던진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영웅입니다.
세상 역사도 그렇지만 교회의 역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기주의와 갈등이 판치는 이 시대,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를 지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묵묵히 주님의 좁은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주님만 바라보며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당신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아름다운 죄 고백
고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읽으면서 궁금했다. 자기의 추악한 모습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아직 익지도 않은 배를 훔쳐 돼지에게 준 절도죄를 고백하면서 오직 죄를 즐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치 재판관이 피의자의 죄를 상세하게 진술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는 것 같이 자기 죄를 기록했다. 그의 죄는 이 유명한 책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에 박제됐다. 우리도 꽁꽁 감춰놓았던 죄를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책으로 써서 후대에 남길 수 있을까. 교회 독서 모임에서 우리는 그의 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무도 자기 죄를 고백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봤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청사에 길이 남을 고백을 했을까.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고백마다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찬양이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결국 자기 모습을 통해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오래 기다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죄 고백이 오히려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그 사랑 때문이었음을 나는 알게 됐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영적 무게감
인생은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고난 때문만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성공 앞에서도 인생은 흔들리게 돼 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짓누르고 성공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내면이 약한 사람은 고난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돈과 명예를 손에 쥐면 부력을 이기지 못하고 떠오릅니다. 고난과 성공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오죽하면 잠언의 저자는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 지나친 가난과 과도한 부유함을 경계한 이 기도 안에는 삶을 꿰뚫는 통찰이 있습니다. 균형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어떤 외부적 압력이나 자극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내면에 영적 무게감을 갖춰야 합니다. 그 묵직함을 지닌 사람만이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고 출렁여도 휩쓸리지 않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강을 누리고 자신의 내면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영적 무게감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