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야구의 답을 찾고자 떠났던 오재원의 미국행2017.12.22 오전 09:47 | 기사원문
해외야구 이영미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오프시즌 동안 미국 LA를 다녀온 오재원.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타격 레슨을 해주는 덕 래타 코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오재원은 시즌 중에도 자신의 타격 영상을 모아 래타 코치에게 이메일로 보낸 후 조언을 받은 적이 있었다.(사진=이영미)> 오재원(32·두산 베어스)은 최근 미국을 다녀왔다. 시즌 마치고 여동생 결혼식까지 챙긴 후 곧장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뜻 보면 여행처럼 비춰졌지만 평소 비행기 타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그가 장시간의 비행도 감수하고 미국을 찾은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을 법 했다.
그는 시즌 중 타격폼을 찾고자 이메일을 보내 인연을 맺기 시작한 덕 래타 코치를 만나기 위해 LA를 방문했다. 덕 래타 코치는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의 개인 코치로 유명해진 인물이다(관련 기사 참조). 황재균은 시즌 중에, 추신수는 시즌 종료 후 LA로 날아가 래타 코치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다. 오재원은 시즌 중 래타 코치와 화상 통화로 타격폼에 대한 조언을 받다가 시즌 마치고 자신이 LA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시즌 종료 전에 이미 래타 코치와 레슨 스케줄을 잡았다고 한다. 야구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났던 미국행. 그는 과연 답을 구해 왔을까. 오재원이 운영하는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 내용을 들어봤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머물렀나.
“2주 일정으로 떠난 여정이었다. 원래 장시간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하는데 야구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LA로 향했다.”
시즌 중 래타 코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타격폼 관련해서 조언을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영상 통화나 메일 등으로 연락했지만 직접 만나서 자세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솔직히 내 길을 찾고 싶었다. 시즌 중 엉켜버린 타격폼을 바꾸려 래타 코치를 찾은 건데 타격폼을 바꾸기 보단 야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운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몰랐던 야구의 안 좋은 습관들을 버리는 작업도 병행했다. 타격폼의 변화를 떠올리면 다리를 들고 안 들고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해왔던 야구의 문제점, 시각의 변화를 갖는 시간들이었다.”
구단에서도 미국 여정을 알고 있었나.
“당연하다. 김태형 감독님한테도 직접 말씀드렸다. 감독님은 평소에 단순하게 야구하는 걸 선호하시는 편인데 내가 생각이 많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미국에 가서 생각을 단순화시켜 오라고 조언해주시더라.”
그래서 답은 찾은 건가.
“야구 그만둘 때까지 그 답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다. 선수 생활 자체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재미있게 훈련하고 대화 나누면서 내 마음 속을 정화시킬 수 있었다.”
훈련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됐나.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2시간 30분가량 연습을 반복했다. 메이저리그 유명 선수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명성과는 달리 훈련장이 소박했고 아담했다. 처음 3,4일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안 좋은 습관들을 버리기 위해 타격폼을 고쳐나갔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많이 답답해 하니까 래타 코치가 타격폼 찍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알기 쉽게 조언을 해주셨다. 폼의 변화를 주는 이유와 함께 왜 팔을 내려야 하는지, 다리는 왜 들어야 하는지, 그렇게 다리를 들었을 때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는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갔다. 래타 코치 말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레슨 받으러 왔다가 자신과 종종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고 하시더라. 그만큼 선수가 갖고 있는 지식과 래타 코치의 가르침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얘기이다.”
그럼 언제부터 그의 훈련법에 적응해 나갔나.
“여섯, 일곱 차례 정도 레슨을 받고 나니 조금씩 래타 코치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그 열정이 대단해 보인다.
“아프리카였다고 해도 찾아갔을 것이다. 야구를 잘 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았다. 20년 동안 야구를 했는데 내가 없었다. 지난 1년 반, 2년 사이에 오재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합은 계속 나갔고 결과에 집착하다 보니 안 좋은 버릇들이 생기고 잔부상이 나타났으며 몸의 밸런스가 깨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서 이런 날 보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코치님을 비롯해서 다른 선수들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그 조언대로 탈출구를 모색하다보니 내가 없어진 것이다. 한 번은 타석에 들어섰는데 어떻게 쳐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내가 어떻게 쳤었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점점 늪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2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귀국할 때 쯤 소감이 어떠했나.
“래타 코치와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굉장히 친절하셨고 따뜻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계속 연습을 이어갔다. 래타 코치로부터 배운 부분을 내 걸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즌 중 인터뷰에서 ‘올해를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대로 이뤄진 건가.
“너무 많이 배웠다(웃음). 내 성격이 예민한 편이다. 스스로 파고 들어가서 헤맬 때도 많다. 어느 날은 수비할 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바람에 머리가 어지러운 적도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게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시즌 중 몇 차례 반등의 기회를 맞이하기도 했었다. 계기가 마련되면 한 경기에서 안타가 두세 개씩 쏟아지고 아웃될 공도 안타가 되는 등 행운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반등을 하겠다고 작정하면 내가 꺾이는 일들이 반복됐다. 팀에서 내 위치는 후배들도 챙겨야 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의 중간 역할도 소화해야 하고 내 것도 잘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도 잘 한 게 없었다. 내년이면 프로에서 선수로 뛴 지 12년이 되는데 내 걸 잃어버렸으니 그 마음이 오죽 답답했겠나.”
올시즌 성적이 타율 0.237 7홈런 79안타 40타점 43득점 7도루 OPS 0.685를 기록했다. 성적에 대한 실망감도 컸을 텐데.
“내가 뭘 했나 싶더라.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내가 후배들의 도움을 받는 게 한심했다. 야구를 잘했더라면 주장을 맡게 된 것도 즐거웠을 것이다. 모든 게 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시즌이었다.” <잃어버린 자신의 타격폼을 찾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오재원.>
선수 오재원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선수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사실 그런 평가에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다. 야구하면서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지금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들이 다른데 거기에 맞춰갈 수도 없고, 내가 해오던 대로 야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한국시리즈는 오재원 선수한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절박함 대신 부담을 내려놓고 KIA를 상대했었다. KIA의 기가 상당히 셌다. 뒤집을 수 있는 몇 차례의 포인트가 있었는데 말도 안 되게 넘어가더라. 5차전이 가장 아쉬웠고 흥미로웠다. 7-6으로 KIA가 1점 앞선 상황에서 양현종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올라왔는데 만약 그 게임이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면 6차전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궁금했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양현종이란 투수의 활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팀 투수였지만 멋진 선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프시즌 동안 두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칭스태프도 대폭 교체됐고 민병헌 선수가 FA 자격을 얻어 롯데로 이적했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프로는 비즈니스의 논리로 움직이는 곳이니 코치님들, 또 민병헌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다. 병헌이한테는 오히려 잘됐다고 말했다. 야구인생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선택을 한 건데 응원해줘야지 아쉬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린 또 야구장에서 만날 것이고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쿨하게 보내주고 싶었다.”
FA 유경험자로서 FA가 된 후의 부담과 책임감의 밀도 차이가 어느 정도였었나.
“그런 건 있더라. 아파도 참고 하게 되는 부분이 생겼다. 부담보다 책임감이 더 커졌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위안을 삼았다면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은 반면 수비에서는 제 몫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 더그아웃이나 라커룸에서도 팀을 위한 역할에 충실했다. 그 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재원 선수를 향해 ‘수비 반장’ ‘내야 반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만약 내 뒤의 우익수가 대수비로 나온 선수인데 경기 경험이 많지 않다면 그 선수를 이끌어줘야 한다. 수비 코치님하고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뒤의 우익수와 소통을 펼쳐간다. 우리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 선수인지, 포수와 어떤 사인을 교환했는지, 타석에 나온 선수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선수인지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잔디에 이슬이 맺혀 있는지, 공이 계속 같은 지점에 떨어져서 잔디가 푹 꺼졌는지, 파였는지에 따라 수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재호와 수비 시프트를 고민하는 것도 매 경기, 매 이닝, 매 타석마다 상황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수비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3-5로 뒤진 8회말 KIA 공격 때 선두 타자 최형우의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 올라 안타가 됐는데 이때 분을 삭이지 못하고 글러브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일명 ‘글러브 투척’ 사건으로 회자되면서 팬들의 상반된 반응이 나타났었다.
“야구장에 작은 언덕이 생겼다. 그로 인해 부상 위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2점차 승부였기 때문에 아웃 카운트 1개가 굉장히 소중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공이 불규칙 바운드가 되면서 안타로 기록되니까 순간 감정이 폭발했다. 공을 잡지 못한 것보다 그 언덕에 대한 화풀이였다. 덕분에 욕은 한바가지 먹었다.”
수비하면서 타석에 어떤 선수가 들어설 때 더 긴장이 되는 편인가.
“나한테는 딱 두 명의 선수가 있다. 왼손은 손아섭, 오른손은 김주찬 선수이다. 그들이 타석에 서면 타구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두 선수들 모두 발이 빠른 편이라 초긴장 상태로 수비에 임한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한 명 더 추가될 것 같다. 롯데의 민병헌이다(웃음).”
오재원과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지만 그는 거침이 없다. 어떤 질문에도 속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의 모든 부분은 야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빈틈이 있어야 여성과 데이트도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죠?”라고 대답한다. 즉 지금은 야구만 잘 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투수를 동경했다는 그에게 “지금 투수를 했다면 어떤 투수가 됐을 것 같으냐”고 묻자 “유희관처럼 구속보단 제구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투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야구를 지독히 좋아하는 오재원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인 2명과 동업한다는 카페가 꽤 근사했다. <미국 LA 근교에 위치한 덕 래타 코치의 훈련장. 오재원과 래타 코치의 모습.(사진=오재원 제공)> <이영미 기자>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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