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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2) 오도 카젤 (상)
전례의 신학적 개념 규명과 일반화에 기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입문성사인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성사 생활, 폭넓게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함께 거행하는 전례에 참여할 때가 아닐까 한다. 소비문화와 물질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믿으며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오늘도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전례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구원 사업을 지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살아간다면 신앙인으로서 기쁨이 생겨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새 길을 제시하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11.24.) 첫머리에 이렇게 복음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지속성과 깊이 면에서 복음이 주는 기쁨에 비길 수가 없지만 그 기쁨의 달콤함과 자극성이 사람들을 금방 빠져들게 하며 중독성을 지닌다. 반면에 복음의 기쁨을 맛보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또 그 맛은 그렇게 달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세상의 것보다 훨씬 강한 매력에 빠진다. 이런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첫째 장소는 교회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전례 공간이다.
복음의 기쁨은 그것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때 가능하다.
미사 말씀 전례 중 ‘복음 환호송’을 외칠 때는 모두 일어난다. 왜 일어날까. 앉고 일어나고 하는 동작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동작은 보이지 않는 실재의 의미를 담은 상징 동작이라고 전례학자들은 말한다. 복음 환호송을 바치면서 일어나는 동작은 복음을 맞이하는 기쁨과 환호, 그리고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다. 예수님은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전례헌장」 7항). 예수님께서 2000년 전 팔레스티나에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교회가 세세대대로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사들, 폭넓게 이야기하면 전례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당신의 약속을 지키고 계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복음의 핵심은 구속의 신비이며 교회는 그것을 계속 기억하며 은총을 충만하게 전한다.
가톨릭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는 전례주년이다.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한 해의 흐름을 통하여 지정된 날들에 하느님이신 자기 신랑의 구원 활동을 거룩한 기억으로 경축하는 것을 자기 임무라고 여긴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실현하신 신비 전체를 인간 역사에 자연스럽게 접목해서 일상화했다. 그럼으로써 “구속의 신비들을 기억하며, 자기 주님의 풍요로운 힘과 공로가 모든 시기에 어떻게든 현존하도록 그 보고를 신자들에게 열어 신자들이 거기에 다가가 구원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한다”(「전례헌장」 102항).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신비를 통해 이미 인류를 구원하셨으면서도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하시려고 지금도 당신의 사제직을 교회가 드리는 전례를 통해 지속하고 계신다(「전례헌장」 7항 참조). 전례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인해 가능하게 됐다.
전례 본연의 개념과 의미를 되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이 이룬 사건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전례를 통한 이 심오한 신학적 원리, 곧 예수님의 현존(Præsentia), 기억(Anamnesis), 그리고 신비(Mysterium)라는 개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래의 중요한 요소 대신 외적인 예식 절차와 세부 규칙 등 부수적 요소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면서 잊고 지낸 것이다. 그러다가 계몽주의와 고고학, 인쇄술의 발전이 원전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이는 전례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적 영향으로 전례 쇄신을 위한 전례운동이 일어났다.
전례운동은 전례의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례운동이라는 용어는 1894년 독일 신부 A. 쇼트가 쓴 Vesperale에서 나왔다. 여기서 전례운동은 “‘오늘’을 위해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의 표징으로 생겨나 성령께서 당신 교회 안에서 이끄시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말을 요약해 “거룩한 전례를 증진하고 쇄신하는 열정”(전례헌장 43항)이라고 전례운동을 정의했다.
전례운동의 흐름을 좀 좁혀서 살펴보자면 피스토이야 주교회의(18세기), 신학적 각성과 수도회 쇄신(19세기), 새로워진 교회 개념(20세기) 등을 들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17세기까지 이어온 전통적인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이념들을 배척하고 새로운 이념들을 추구하던 계몽주의를 받아들여 이를 교회에 적용하였다. 그들은 가톨릭의 가르침과 삶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 교의를 아주 순수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피스토이야에서 열린 주교회의(1786년)는 이 관점을 전례에 적용했다. 비록 얀세니즘의 영향이 있었고 1794년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7가지 항목이 단죄되기는 했지만, 이 주교회의의 많은 결정사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례 쇄신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 들어와서 영국에서는 뉴만 추기경과 키블 그리고 푸세이 등이 중심이 돼 옥스퍼드 운동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몇몇 원칙들과 잃어버렸던 원천들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또 독일에서는 요한 세일러, 요한 묄러, 마티아스 시번과 같은 저술가들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 Christi)로 보는 교의를 강조했다. 이 교의는 전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 개념이 된다. 프랑스 솔렘과 독일 보이론에서 있었던 수도회 쇄신도 큰 역할을 했다. 전례운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솔렘 수도원의 프로스페르 게랑제(1805~1875)는 전례를 기도하고 삶으로 실천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성음악을 재정립해 신자들도 쉽게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보이론 수도회의 창설자인 마오로 플라치도(1825~1890)와 볼터(1828~1908) 형제, 벨기에의 마레수 수도원, 루벵의 몽 세자르 수도원들이 게랑제의 영향을 받아 전례운동을 이어갔다.
오도 카젤(1886~1948)은 예수님의 구원 신비가 교회 전례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밝혀낸 신비신학자다.
전례운동의 본격적 시작은 1909년 벨기에 말린에서 개최된 가톨릭 회의다. 이때 랑베르 보뒤엥(1873~1960) 신부는 전례 쇄신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는 「미사경본」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신자들의 주요 기도서로 배포할 것을 호소하면서, 가톨릭 신앙은 미사와 성무일도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들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신앙은 전례에 기반을 둬야 올바로 성숙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또 그레고리오 성가와 성가대의 영적, 전례적 기능을 장려할 것을 호소했다.
독일에서는 일데폰세 헤르베겐(1874~1946)이 전례총서 「기도하는 교회」(Ecclesia Brans)를 창간했고, 로마노 과르디니(1885~1948)은 「전례 정신」을 저술했다. 또한 벨기에의 오도 카젤(1886~1948년)은 그의 유명한 신비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전례운동가들의 노력은 서서히 전례 쇄신의 바탕을 이뤄 비오 12세의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 1947)를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첫번째 헌장인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963) 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가 단순히 외적이며 법률적인 예식 체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공적 예배임을 온 교회에 선포했다. 이로써 엄숙하면서도 장엄하며 잘 연출된 연극 같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예식은 이제 주례자를 마주보며 그가 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또 자신들의 언어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대해서 좀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됐다. 미사가 이제 더는 평신도들이 못 알아듣고 성직자만이 아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예식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들 앞에서 구원의 신비가 펼쳐지는 위대한 사건으로 인식됐다.
지금까지 전례 변화의 역사적 과정을 전례 운동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이 전례의 신학적 개념을 밝혀내고 일반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오도 카젤은 누구이며, 그의 연구 업적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3) 오도 카젤 (중)
전례에서 현재화되는 그리스도 구원 신비 설명
오도 카젤(Odo Casel, 1886-1948) - 전례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신비를 깨닫게 한 선구자
추운 겨울 밤새 내린 눈으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산인지 모르는 새벽에 홀로 어제의 길을 기억하고 흰 눈을 치우면서 길을 찾아내 그 길로 편안하게 다닐 이웃들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 사람. 오도 카젤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중세라는 질곡의 시간을 지내면서 교회에 묻은 많은 때와 이끼들을 걷어내어 숨겨져 있던 구원의 신비를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선구자라고 하겠다.
오도 요한네스 카젤(Odo Johannes Casel)
▲ 1886년 9월 27일: 독일 코블렌츠-뤼첼에서 출생
▲ 1905년: 마리아 라악 베네딕도 수도원 입회
▲ 1907년 2월 24일: ‘오도’(Odo)라는 이름으로 수도서원
▲ 1911년 9월 17일: 사제 수품
▲ 1912년: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성 유스티노 순교자의 성체 교의’ 논문으로 박사학위 획득
▲ 1914년: 「가톨릭」(Katholik)지 94호에 논문 게재
▲ 1918년: 「기도하는 교회」(Ecclesia orans) 시리즈에 첫 논문 「고대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주님에 대한 기억」 (Das Gedchtnis des Herrn in der altchristlichen Liturgie) 출간
▲ 1919년: 본에서 「그리스 철학에서의 신비스런 침묵에 대해」 (De philosophorum graecorum silentio mystico) 논문 발표하며 철학 연구 마쳐
▲ 1921~41년: 「전례학 연보」(Jahrbuch fr Liturgiewissenschaft) 잡지 책임자 역임
▲ 1922년: 두 번째 논문 「신비 기념으로서의 전례」(Die Liturgie als Mysterienfeier)를 「기도하는 교회」시리즈로 출간, 헤르스텔레의 베저 강 유역에 있는 성 십자가 베네딕도 여자수도원의 영성지도신부로 부임
▲ 1932년: 「신비의 그리스도교 예배」(Das christliche Kultmysterium) 출간
▲ 1941년: 논문 「그리스도교 축일 신비」(Das christliche Festmysterium), 「신앙, 영지 그리고 신비」(Glaube Gnosis und Mysterium) 출간
▲ 1948년 3월 28일: 심근경색으로 선종
마리아 라악 수도회에서 싹튼 전례신비신학
독일의 본(Bonn)과 유서 깊은 도시 코블렌츠(Koblenz) 중간에 위치한 마리아 라악(Maria Laach)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우리는 전례에 그 본연의 원리를 부여한 첫 시도들을 찾을 수 있다. 오도 카젤이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이 수도원의 보호 아래 카젤은 수도원 독방에서 지내며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가르침을 전통의 원전들에서 찾아 충실하게 해석함으로써 전례에 그 본연의 원리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 도미니코회의 페스튀지에르(A. J. Festugire, 1898~1982)와 「전례와 본당의 문제」(Question liturgiques et paroissiales) 잡지를 제작한 벨기에 몽 세사르 베네딕도 수도회의 보뒤앵(L. Beauduin, 1873~1960)의 뒤를 이어 참된 전례 신학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전례의 신학적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는 힘든 작업이었다.
신비 개념을 통해 구원 사건과 이를 현재화하는 거행과의 관계를 신학적-전례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다
마리아 라악 연구소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보다 특징적 측면을 알려주는 옛 원전들을 연구하며 가톨릭 전례 문헌에 잠재된 형태를 재발견하고 깊이 있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전례의 상징들과 예식들의 베일 뒤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활동의 실재를 드러낸다. 이 수도원 수도승들은 예배 행위 안에 현존하는 구원 활동을 교회 전통에 들어 있는 풍부한 내용과 영광스러운 역사의 표현인 ‘신비’(Myterium)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특별히 1921년부터 펴내기 시작한 「전례학 연보」 (Jahrbuch fr Liturgiewissenschaft) 잡지를 통해 카젤은 전례를 외형적 관점에서만 이해함으로써 신비 개념을 무효화하는 위험한 경향에 맞서 이 신비 개념을 빠르게 전파했다.
그러나 카젤은 전례에서 신비라는 용어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신비의 근본적인 측면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용어들, 예를 들면, 기억, 거행, 그리스도의 현존 같은 표현도 사용했다. 이런 신비 개념을 통해 카젤은 구원과 이를 현재화하는 거행의 신학적-전례적 의미를 제시한 주창자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세 주요 시기에 따른 카젤 작품들의 특징
카젤의 작품들은 세 가지 주요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기는 1912년에서 1926년까지로 연구와 탐구의 조용한 국면이었다. 둘째 시기인 1926년에서 1932년까지는 반대론자들과 생동감 넘치는 논쟁을 벌이는 시기였다. 1932년에서 1948년까지의 마지막 시기는 연구로 되돌아와서 성사적 신비와 상징의 의미라는 넓은 지평에서 교부들과 학문, 그리고 종교의 현상학의 원전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가르치는 시기였다.
1926년 이전 첫째 시기의 카젤 작품들에는 그의 신학적 성찰의 근본적 인식들이 보다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고 카스파니 교수(P. Caspani)는 평가한다. 첫째, 인간 존재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근본과 연관되며, 그리스도교 신비들은 인간의 근본적 기대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둘째, 카젤은 성체성사의 주제를 언급하면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예배를 지향하는 “신비 행위”의 특징을 재확인한다. 성체성사는 구원자이신 예수를 기념하고 현재화한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의 상징적이고 극적인 표현이다. 셋째, 모든 참된 예배는 신비가 목적하는 바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신비들은 하느님과의 일치, 그분과의 소통, 마지막으로 늘 인간이 추구해온 지복직관 외에 다른 것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례적이고 성사적인 신학의 질료에 카젤 사고의 근본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둘째 시기에 카젤은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반대자들과 논쟁했다. 하나는 신비적 현존이고, 다른 하나는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신비의 관계에 관한 물음이다. 이와 관련, 카젤은 자신의 유명한 「오늘날의 신비」(Mysteriengegenwart)를 썼는데, 이 글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원리적이고 더 완성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기에 카젤은 그리스도교 세례의 원천들에 대한 질문들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마리아 라악 수도원의 헤르베겐(I. Herwegen) 아빠스의 요청으로 1932년 레겐스부르크에서 「신비의 그리스도교 예배」를 저술했다. 이 책은 1924년과 1932년 사이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다만 첫 장은 전체적으로 새롭게 썼는데 신비 신학에 추가되는 ‘역사적이고 영성적인’ 상황을 개괄하고 있다.
셋째 시기는 카젤 작품의 마지막 국면이다. 카젤은 1938년 「고전 그리스도교 부활 예식의 종류와 의미」(Art und Sinn der ‘ltesten christlichen Osterfeier)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파스카 축제의 의미와 구조에 관해 서술하는데, 초기 그리스도교의 파스카 신비를 재발견하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했다. 이 글에서 그는 신비적 예배와 그리스도교 전례의 관계에 대한 본연의 시각을 강조한다.
카젤은 또 「신앙, 영지 그리고 신비」에서 영지(gnosis)인 신학과 또한 예배의 신비와 신앙과의 관계를 재발견한다. 첫 부분은 교부들 문헌 연구를, 둘째 부분은 종교에 관한 학문과 현상학을 바탕으로 하며, 셋째 부분에서는 성사의 표징적 규범에 대한 논쟁, 곧 상징적 가치를 없애지 않은 성사적 표징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넷째 부분은 신비신학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제공한다.
카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첫 요소는 바로 구원자로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그리스도교는 단순한 교의, 가르침, 철학, 세계관, 그리고 최소한의 윤리적 계명을 모은 법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든 측면은 없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중심에 들어 있는 의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역사에서의 하느님 활동은 영원하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행동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의 현실화다. 또 하느님의 활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뤄질 뿐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늘 새로운 목적을 지니며, 그 활동의 원인은 하느님 자신이시다. 그리스도교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다.
카젤은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의 신비와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가 일치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이 종교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첫 요소는 교의가 아니라 인간 역사에서 구원자로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그리고 예배는 인격으로 인간에게 다가온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카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교의 기본 요소는 구원자로서 활동하시는 인격자 그리스도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이 분의 활동은 인간 조건에 맞추어 전개되는데, 그것이 바로 전례라는 것이다. 카젤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가 전례 안에서 어떻게 현재화하고 있는지를 신비 개념으로 설명해 준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4) 오도 카젤 (하)
그리스도 구원 신비, 교회가 거행하는 예식 통해 드러나
신비와 전례의 관계
오도 카젤은 신비와 전례의 관계를 정립한 전례신학자이다.
신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였다면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교회의 행위이다. 카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비는 육화한 아들의 행위와 교회의 구속과 치유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로서 하느님이 영광스럽게 되시고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완전하게 되는 때, 곧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갈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예배의 신비 안에서 실제로 전달되고 이루어진다. 예배 안에서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시고 성령 안에서 현존하시면서 선한 뜻을 지닌 모든 사람들 위에서 활동하신다(루카 2,14 참조). 이 신비를 거행하는 이는 주님 자신이시다. 주님은 당신의 신부인 교회와 함께 그 신비를 거행하신다(에페 5,14-20 참조). 그리고 주님은 교회에 당신의 모든 보물을 전달해주며 교회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전달한다.
치프리아노 교부가 “교회의 단일성에 대하여”(de Unitate Ecclesiae)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이후로 교회를 어머니로 모신다. 교회는 여인(하와)이 첫 번째 아담의 배우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리스도의 동료가 되고 구속사업의 협조자가 되었다.
교부들은 우리에게 주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를 통한 신비를 말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에서 태어났고 신비는 교회와 함께한다고 가르친다(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해제’ Tractatus in Ioannem 120,2 참조). 그래서 교회와 신비는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이 예배의 신비가 전례가 된 결정적 요인이다.
전례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신비
전례(Liturgia)라는 그리스어의 의미는 도시에 봉사하는 개인 활동을 의미했다. 예를 들면 ‘전쟁에 쓰일 배를 만든다든가, 디오니시우스의 명예를 다룬 비극을 공연하는 합창단에 지원하는 일 등이었다. 이 용어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들어오면서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공적 예배에서의 개인적 활동을 뜻했다. 이런 관점에서 전례는 구약과 신약에서 사용되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전 안에서 그의 전례를 수행했다(루카 1,23). 로마의 성 클레멘스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구약성경에서 전례는 신약성경의 봉사 모델이 되었다. 신약성경이 삶 전체의 거룩함과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다루었다면, 교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공통된 예배행위에 특별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예식적 의미에서 구약성경에서의 전례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궁극적이고 가장 완전한 옛 계약의 완성을 드러내는 명백하고 고귀한 실재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그 신비를 교회의 고유한 예배의 신비로서의 전례로 가져왔을 때, 옛 계약은 새롭고 더 높은 차원의 실재를 형성하고 표현하며 새로운 예식 안에서 완성하였다.
신랑인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로 인해 생겨난 신부인 교회의 전례
우리가 신비와 전례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았을 때 신비는 ‘예배의 신비’로 사용되며 이때 신비와 전례는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 하겠다. 신비는 전례행위의 심장 곧, 주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행위들을 통해 약속했던 부활하신 주님의 구속 사업을 의미한다. 전례는 ‘사람들의 일, 봉사’라는 본래의 언어적 의미와 연결되어 교회의 활동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와 연결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신비 안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활동한다. 그러나 이렇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활동을 명확하게 분리할 수 없어도 신비는 신랑의 활동으로, 전례는 신부의 활동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교회가 외적인 예식들을 거행할 때 그리스도는 그 예식들에서 내적으로 활동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실제로 신비를 거행한다. 교회의 신비 거행은 여전히 교회의 예식적인 행위를 드러내기 위한 고유한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전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새로운 계약의 신비는 어떻게 전례가 되었는가?
교회 전례는 주님에 의해 명령됐고 성령을 통해 내적 충만성을 유지한다
새로운 계약의 신비를 드러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그 신비를 제공하셨다. 곧 신비의 본질적인 내용과 형식은 주님께서 직접 설립하셨고 명령하셨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행해야 하는 바를 알려주셨는데, 무엇이 필수적인지 혹은 공동적인 예식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언급하지 않은 채, 행해야 하는 바를 알려주셨다. 다만 교회에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시어 교회에게 그러한 능력들을 부여해주셨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위탁한 그 신비로부터 찾아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보물을 암시하셨다. 또한 새로운 언어들과 표현들을 통하여 그것을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를 움직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찬양하도록 한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선함은 교회가 후손들을 충실히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도록 이끌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그래서 성령과 사랑의 충만함으로부터 태어난 전례는 아름다움과 현명함의 활동이 된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인간학적 조건 안에서 표현된다
신비의 고유한 요소는 그에 합당한 행동과 주님께서 직접 전해주신 말씀으로 이뤄진다. 주님께서는 가르치거나 새로운 구원을 알려주기 위해 전혀 새로운 방식을 만들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오래된 방법을 사용하셨고, 그것을 변형하고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세례에 대한 생각과 어떤 형식들은 대부분 인류 안에서 존재하던 것으로 죄를 정화하거나 새롭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표현하거나 사실화할 때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특히 외적인 예식과 사용된 재료들은 삶의 자연적인 활동과 연관되어 있으며 자연이 생성한 것으로,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정착된 것들이다. 예를 들면, 물은 물이다. 물이 정화의 자연적인 예식에 사용되거나 고도로 정교해진 예식에 사용된다 하더라도 물은 물이다.
말은 자유롭고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또한 그것이 형성되어온 언어와 연관된다.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례 역시도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의 표현방법과 방식을 사용한다. 예식에 사용되는 텍스트들은 성경의 하느님 말씀에 따른 것이다. 예식에서 성령은 스스로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고 인간의 입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한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차원을 생성하는 가운데에서도 성경은 전례 안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그 최초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카젤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교 예배의 신비」(Das christliche Kultmysterium)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님 안에서 충만하고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진리에 따라 완성된 그리스도의 신비는 우리 안에서 상징적 형태들로 실행된다. 이것들은 단순한 외적 이미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은 새 생명의 실재에 의해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특별하게 참여하는 것은 한 부분은 상징이고 다른 부분은 실재이다. 예전 사람들은 이를 신비라고 부른다. 신비는 단순한 이미지와 참되고 본래적인 실재 사이의 어떤 매개체(quid medium)이다.”
비록, 과거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원사건과 현재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 사이의 효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며, 헬레니즘의 신비에 대한 개념과 너무나 유사하기에 생기는 우려 등이 있기는 하지만, 카젤은 그리스도께서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신 약속을 성령의 활동 안에서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를 통해 지키고 계심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으로 완성된 구원 신비가 교회에서 상징적 예식을 통한 예배 신비로 드러났음을 이해하고 전례에 능동적으로 온전하게 참여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례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삶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또 다른 ‘그리스도의 신비’로 살아가기를 오도 카젤은 원할 것이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9) 토마스 베리 (상)
종교 · 과학 아우른 우주론으로 생태적 회복 추구
토마스 베리의 생애
토마스 베리는 1914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 열세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33년에 예수 고난회에 들어간 그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토마스라는 이름을 수도명으로 택하였다. 그리고 1942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쟘바티스타 비코의 역사 이론에 대한 연구”로 미국 가톨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토마스 베리는 1948년에 북경의 보인(輔仁) 가톨릭대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득세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시아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서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라틴어ㆍ이탈리아어ㆍ스페인어ㆍ독일어까지 섭렵했다.
베리는 시튼홀대학교, 세인트존스대학교, 포담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아시아 문화와 종교의 역사에 대해 가르쳤는데, 특히 힌두교ㆍ불교ㆍ유교ㆍ도교 전통을 강의했다. 베리는 1970년에 리버데일 종교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1975년에는 미국 테이야르 학회를 창립하여 1987년까지 학회 회장을 지냈다. 베리는 8권의 저서와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고, 8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베리는 2009년 6월 1일에 선종하였고 그의 유해는 그의 사상을 따르는 수도자들의 의해 설립된 그린마운틴수도원에 안치되었다.
지구학자
토마스 베리의 학문적 여정은 동ㆍ서양 문명을 연구하는 문명사학자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점차로 인간 문명을 넘어 생태계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생태계 보전과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은 그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말년에 그는 스스로를 문명사학자 또는 신학자보다는 지구학자(geologian)라고 호칭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구학자라는 표현은 지구가 지닌 종교적 의미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토마스 베리의 생태사상은 많은 신학자뿐 아니라 경제인ㆍ정치인ㆍ교육자ㆍ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저서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들로는 「우주이야기」, 「지구의 꿈」, 「위대한 과업」,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그리스도교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이 있다.
세 번에 걸쳐 연재하는 이번 기획에서는 베리의 핵심 사상을 (상)새로운 우주론이 필요하다, (중)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전환, (하)자연 속에 깃든 신성회복이 그리스도교의 과제를 주제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생태계 파괴의 원인
토마스 베리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는 현대 산업문명의 후유증으로 야기된 생태계의 파괴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계 파괴의 규모는 일찍이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것으로,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 파괴는 산업혁명 이후 발달한 과학과 기계 기술을 오용하여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연을 착취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리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을 방임하거나 조장하는 세계관이나 우주관에서 더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인도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우주론이 없다는 데에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며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우주론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우주론은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 주는 전체적 맥락의 역할을 한다. 인간은 우주론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다. 적절한 우주론이 없다면,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위치와 역할을 발견하지 못한다. 베리는 현대 인류에게 적합한 우주론이 없다는 것이 현대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특별히 현대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물 종의 멸종과 현대 과학의 통찰에서 얻은 진화론적 우주관은 현대인이 새로운 우주론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생물 종의 멸종
베리는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생태적 파괴 중에서 생물 종들의 멸종에 특별한 관심을 둔다. 현대 인류는 1년에 수천 종의 생물 종을 멸종시키고 있고, 멸종 속도는 갈수록 가속화하는 상황이다. 베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멸종의 규모와 속도는 지구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멸종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생물 종의 멸종을 초래하는 현대 인류의 능력은 지구 역사상 고생대를 끝내고 중생대를 시작한 힘이나, 중생대를 끝내고 신생대를 도입한 힘과 비견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베리는 신생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예측한 최초의 학자이며, 그의 이런 주장에 현재는 많은 생물학자도 동의하고 있다.
베리는 생물 종의 멸종과 다양성은 생물학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지닌다고 설명한다. 그는 생물 종의 멸종이 지니는 의미를 종교적 언어로 설명한다. 멸종은 영원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생물 종이 멸종한 다음에는 어떠한 힘도 그것을 되살릴 수가 없다. 어떤 하나의 생물 종의 멸종은 우주로부터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그것은 종말론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베리의 통찰이다.
또한, 생물 종의 다양성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와 관계가 있다고 베리는 설명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따라, 베리는 생물종의 다양성을 우주의 완전성으로, 또 멸종을 그 완전성의 결핍으로 설명한다. 우주 안에는 왜 많은 생물 종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하느님의 완전성은 하나가 결핍되면 다른 것이 보충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통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아퀴나스는 설명한다. 그리고 베리는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주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통찰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완전성과 아름다움을 잃는다면 종교적 체험의 기초가 사라지는 것이다. 때문에 자연의 완전성과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것은 원초적 종교 체험의 장을 보전하는 일이다. 베리에게 있어서 우주는 단지 물질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한 계시가 현존하고 있는 세계이다.
진화하는 우주
새로운 우주론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근대를 지나오면서 변했기 때문이다. 신화적이고 정적이고 순환적인 우주론은 현대 과학과 기계 기술이 발견한 경험적이고 동적이고 진화론적인 우주론으로 대체되었다. 다시 말해 우주는 더 이상 정적인 우주(cosmos)가 아니라 진화하는 우주(cosmogenesis)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우주론이 병존하고 있다. 하나는 종교적 우주론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우주론이다. 그러나 종교적 우주론뿐 아니라 과학적 우주론도 현대 인간에게 의미가 있는 우주론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전통 종교들이 가르치는 우주론은 세계와 우주를 신성한 것으로 제시하기는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 파악하는 우주의 발생론적인 과정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현대 과학의 경험적인 관찰로부터 유래하는 과학적 이론은 의미와 도덕적 영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리는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우주론은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신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그러한 우주론을 인류에게 제시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것의 하나로 베리는 1992년 물리학자 브라이언 스윔과 함께 「우주이야기」를 출판하였다. 베리가 제시하는 우주론은 우주 발생 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부터 유래하는 신빙성과 신앙 전통의 영성에 의하여 투과된 의미를 포함하는 새로운 이야기이며, 경험적 과학과 직관적 지혜가 씨줄과 날줄로 서로 엮여 있는 이야기이다.
종교와 과학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베리의 우주론은 인간 문명이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파괴적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문명사적으로 규명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회복을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치료책과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산업 문명을 극복하고 생태 문명으로 전환해야 하는 당위성과 방법론을 제공한다.
* 이재돈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1985년 수품)로 2004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생태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부터 207년까지 토론토대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아시아신학과 생태신학을 강의했고 2007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 ‘토마스 베리의 우주론 연구’ 등이 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0) 토마스 베리 (중)
인류 생존 위해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 제시
문명의 발전단계
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생태계 파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문명 형태로 생태문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부족/샤머니즘 시대, 종교/문화 시대, 과학/기계 기술 시대, 그리고 생태 시대로 분류한다.
인류 역사의 각 단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부족/샤머니즘 시대는 우주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발달한 시기이며, 이러한 경험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베리는 설명한다.
종교/문화 시대는 소위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명이 발전한 시기로 사회의 계층화, 세련된 종교의식, 논리 정연한 이론들과 영성을 수련하는 방법들이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주된 특징은 인간의 관심이 우주의 현상세계보다는 초월적 절대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세기 말기에 서양을 중심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관심은 절대자에서 우주의 물리 세계로 전환하였고 그 결과로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는 발달한 과학과 기계 기술을 통하여 인류 생활을 향상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구 생태계를 대규모적이고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로써 인간과 지구 공동체와의 신비로운 유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 시대 이후에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로 베리는 생태문명을 제시한다. 생태문명은 인류 역사의 네 번째 단계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간의 갈등
지구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 앞에서 인류에게 현재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최첨단 기술문명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인간의 산업기술에 근거한 문명인 반면에, 생태문명은 지구의 자기 조직 과정인 지구 기술에 근거한 문명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조작하는 문명 형태이고, 생태문명은 지역 공동체가 자연과 함께 존재하면서 함께 진화하는 문명 형태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은 그 사고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양자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주도했던 문제가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정치 사회적 갈등이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문제는 자연을 계속 착취하려는 자본주의자들과 자연을 보전하려는 생태주의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다. 4대강 사업, 도롱뇽 소송, 밀양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등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지구 생태계가 미래에도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문명이 아니라 생태문명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생태문명 실현의 전제 조건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 의식의 근본적 변화와 지구적 차원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인간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사회 체제, 즉 정치ㆍ경제ㆍ교육ㆍ종교가 그 기본 원리를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바꿔야 한다. 인간중심주의로는 생태문명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문명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는 인간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다른 존재들의 가치와 권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인류 문명과 지구 상의 생명을 보전하는 데 실패하였다. 따라서 네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첫째, 현대의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베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가 국가나 인간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새로운 정치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구는 지구 전체 기능 안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부분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라들의 연합(The United Nations) 정도가 아니라 종들의 연합(The United Species)이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democracy)에서 생명주의(bio-cracy)로 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82년 유엔 총회에서 통과한 ‘자연을 위한 세계 헌장’은 새로운 정치적 법적 체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장은 모든 형태의 생명은 유일하며 인간에게 유용함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은 지구의 기능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기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특별히 필요하다.
둘째, 현대의 경제 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현대의 경제 체제는 자연 세계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사고방식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 세계의 엔트로피는 그 한계에 이를 것이고 현재의 경제 체제는 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류는 지구 경제학이 우선적이고 인간 경제학은 부차적이라는 새로운 경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구 경제학은 인간 경제학의 전제 조건이다. 지구 경제의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인간 경제 프로그램에서도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구 경제가 건강하다면 인간 경제도 건강할 수 있지만, 지구 경제가 부도에 이른다면 인간의 경제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현대의 교육 체제도 근본 원리가 변해야 한다. 사회의 지성적 체계인 대학은 새로운 세대에게 미래지향적 전망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적 내용은 인간과 자연 세계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양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세계가 지닌 어려움의 깊은 요인이다. 현재 대학의 교육 내용은 학생들에게 자연 세계와 친밀히 지내도록 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고 베리는 비판한다. 생태문명 실현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우주 이야기에 근거한 통합적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넷째, 종교도 그 가르침의 강조점이 변해야 한다. 그동안 종교들은 자연 세계가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계시적 경험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소홀하였다고 비판한다. 특별히 그리스도교는 창조 세계에 깃든 계시를 소홀히 한 채 성경을 통한 계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생태위기에 대하여 책임이 적지 않다고 베리는 지적한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종교는 자연이 단순히 경제적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이 깃든 신성한 창조 세계임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종교는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자살ㆍ살인ㆍ종족살해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 지구 파괴를 절대적 악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인간은 그 힘과 같은 정도로 책임감과 윤리 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핵심이다. 인류가 자연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적절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며, 그에 근거하여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종교의 근본적 원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변해야 한다. 생태문명은 인류의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진화된 문명 형태이다.
이런 이유로 베리는 현재의 생태계 파괴를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위한 호기로 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호기이기도 하다. 베리는 생태문명을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이라고 선언한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1) 토마스 베리 (하)
자연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 되찾아 생태문명 추진
아퀴나스와 테이야르
토마스 베리의 신학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와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13세기 유럽에 새롭게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종합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적 관점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의 신학적 고정 관념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아퀴나스의 새로운 종합은, 중간에 갈등은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관 안에서 신앙을 되살리는 작업이었고 결국 중세 교회가 근대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대과학인 진화론과의 종합을 시도한 테이야르의 새로운 종합 역시 신학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테이야르는 진화론적 과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교리를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테이야르는 그가 살고 있는 두 세계의 분열에 관심이 있었다. 하나는 종교적 의미를 잃은 세속적이고 과학적인 세계와 다른 하나는 현대 인류와 소통하기를 실패한 그리스도교의 세계이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추구는 이 두 개의 세계를 통합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테이야르는 존재와 실체에 의존하는 창조론 대신에 되어감과 과정에 의존하는 진화론을 이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대한 테이야르의 재해석은 다윈의 진화론을 염두에 둔 해석이며, 그런 면에서 성서와 전통적 교리가 전제하는 정적인 우주관과는 다른 설명 방식이다. 테이야르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13세기 아퀴나스가 했던 시도의 현대판이라고 할 것이다.
베리의 생태사상과 신학사상은 테이야르의 우주관과 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주는 처음부터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주 이야기와 인간 이야기는 한 이야기의 두 가지 면이라는 것, 구원 과정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창조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다. 더 나아가 베리는 테이야르를 사도 바오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하나로 평가한다. 이런 의미로 베리는 근본적으로 테이야르 계통의 사상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베리는 생태적 관점에서 테이야르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베리는 테이야르가 인간 중심주의적 우주론에 근거한 진보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 태도를 지녔다고 비판한다.
역사적 추진력
베리는 현대의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에 필요한 것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과 그것에 근거해서 새로운 생태문명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역사적 추진력이라고 지적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베리는 그리스도교는 이미 강력한 역사적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 2009년 선종한 토마스 베리 신부의 묘비.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베리 신부의 묘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새겨져 있다.
베리는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더욱 강한 역사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천년왕국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있는데 그것이 역사성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 어느 종교보다도 그리스도교가 가장 강력해진 이유이다. 역사적 변화보다는 원형적 경험에 주로 관심이 있는 아시아 종교들과 달리, 그리스도교의 강점은 완성의 시간에 이를 때까지 역사적 발전에 대하여 의식하고 있고 그것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추진력이 서양 역사를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변화시켜 온 힘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베리는 생태문명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스도교가 지닌 역사적 역동성이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죄와 원복(原福)
그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요청되는 것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동안 하느님의 초월성은 강조하였지만 내재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소홀히 하게 된 것은 그동안 지나치게 구원 중심적인 영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원죄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구원 중심의 영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원죄만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내려 주셨다는 원복 개념도 있으며, 원복이 하느님께서 이 세계와 맺으신 더 근본적인 관계이다. 창조를 긍정하는 창조 중심의 영성이 회복할 때 창조세계에 깃든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
종교 간 대화와 협력
그리스도교가 자연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되찾기 위해 베리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자연이 지닌 신비,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삶은 아시아 종교들 안에서 더 발전하였기에 그리스도교는 거기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아시아 종교들로부터 자연 세계의 신성함,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 모든 생명체에 대한 깊은 사랑, 대우주와 소우주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배워야 한다고 베리는 강조한다. 그리고 인디언 같은 원주민들의 토착 종교들로부터 땅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깊은 유대를 배울 때 자연에 깃든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 속에 깃든 신성의 회복
우주 속에 깃든 신성을 체험할 때, 창조세계 안에는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그대로 새겨져 있고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배우는 첫 번째 학교이며 자연의 신비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체득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하느님을 체험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연 속에서 신비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 갖기가 어려운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어린이들을 보면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다. 많은 어린이가 인위적인 환경에서만 지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이럴 경우 자연과의 직접 체험이 없어서 하느님 체험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베리는 걱정하고 있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신비 체험은 종교 체험의 원형적 요소라고 할 것이며, 때문에 자연 보호는 종교인들의 첫 번째 과제가 되어야 한다.
생태신학 발전에 끼친 영향
베리는 일차적으로 문명사학자이며 생태사상가이지만, 그의 생태사상과 생태신학적 전망은 기존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이 그동안 고민해 왔던 신학적 주제들을 생태적 전망으로 확대해야 할 근거와 방향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전통적 신학 주제들을 생태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저서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범재신론 (panentheism)적으로 설명하면서 생태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성부는 초월적인 하느님을 드러내지만 성자와 성령은 창조 세계 안에 깃든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의 초월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재를 깊이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해방신학자들도 그 신학적 전망을 생태 문제로 확대하였다. 많은 해방신학자들이 처음에는 생태적 관심은 제1세계에 속한 부유한 사람들의 한가한 관심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생태계 보전과 생태정의의 실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긴박한 주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환경파괴의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생태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가 이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성신학자들도 생태신학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가부장제도가 여성 억압의 도구만이 아니라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 형태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연구되면서 여성의 해방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해방을 동반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로즈메리 류터나 샐리 맥페이그의 저서들은 여성신학이 여성생태신학으로 심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이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태문명에 대한 꿈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가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인도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을 회복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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