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4】 6
9, 일체법지신통(一切法智神通)
(1) 양변(兩邊)을 떠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一切法智通으로 知一切法의 無有名字와 無有種性과 無來無去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을 아는 지혜신통으로, 일체 법이 이름이 없고 성품이 없고,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을 아느니라.”
▶강설 ; 일체 법을 아는 지혜신통[一切法智神通]이란 일체 법은 양변(兩邊)을 떠나 중도(中道)의 원리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일체 법이 중도의 원리로 존재한다면 모든 사람도 역시 중도의 원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며, 가장 불교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라면 세존이 처음 정각을 이루고 바라나시 녹야원에 와서 처음으로 다섯 명의 같이 수행하던 사람들에게 설하신 내용이 곧 중도선언(中道宣言)이었다고 한다. 즉 일체 존재는 이것이 아니면서 곧 이것이므로 사람의 삶도 향락에 젖어 살아도 바른 삶이 아니고 고행에 젖어 살아도 역시 바른 삶이 아니므로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적 삶을 사는 것이 곧 바른 삶이라고 하신 내용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그 많은 가르침 중에서 가장 수준이 높고 깨달음의 궁극적 말씀이라고 하는 이 화엄경에서도 보현의 보살행원 다음으로 존재의 원리를 설파하는 내용으로는 대단히 많은 양을 차지한다. 이 단락에서는 중도를 철저히 설파하였다.
非異非不異와 非種種非不種種과 非二非不二와 無我無比와 不生不滅과不動不壞와 無實無虛와 一相無相과非無非有와 非法非非法과
“또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가지가지도 아니고 가지가지 아닌 것도 아니며, 둘도 아니고 둘 아닌 것도 아니며, 나[我]도 없고 견줄 것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흔들리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진실도 없고 허망도 없으며, 한 모양이고 모양 없음이며,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님도 아님을 아느니라.”
▶강설 ; 중도(中道)를 말할 때 흔히 중론(中論)의 팔불중도(八不中道)를 설한다. 또 스스로를 중도광(中道狂)이라고 말하는 성철스님은 쌍차쌍조(雙遮雙照)와 차조동시(遮照同時)를 입에 달고 살았다.
먼저 중론의 팔불중도란 개별존재의 생겨남과 사라짐에 대한 부정으로서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존재의 영원함과 단절됨에 대한 부정으로서 불상부단(不常不斷)과 존재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부정으로서 불일불이(不一不異)와 존재의 개별 원인과 개별 결과에 대한 부정으로서 불래불거(不來不去)를 설하였다.
또 중도광인 성철스님은 쌍차쌍조(雙遮雙照)란 예컨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를 함께 부정[雙遮]하고, 다시 그 둘을 함께 긍정[雙照]하여 궁극에는 긍정과 부정이 같이 하면서 서로 원융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遮照同時]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화엄경에서는 이와 같이 일체 명제에 대해서 먼저 부정하고 동시에 긍정하여 원융무애하게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不隨於俗非不隨俗과 非業非非業과 非報非非報와 非有爲非無爲와 非第一義非不第一義와 非道非非道와 非出離非不出離와 非量非無量과
“또 세속을 따르지도 않고 세속을 안 따르지도 않으며, 업도 아니고 업 아닌 것도 아니며, 갚음도 아니고 갚음 아님도 아니며, 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첫째 뜻[第一義]도 아니고 첫째 뜻 아님도 아니며, 길도 아니고 길 아님도 아니며, 벗어남도 아니고 벗어나지 않음도 아니며, 한량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님을 아느니라.”
非世間非出世間과 非從因生非不從因生과 非決定非不決定과 非成就非不成就와 非出非不出과 非分別非不分別과 非如理非不如理하니라
“또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며, 인(因)으로 난 것도 아니고 인으로 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결정도 아니고 결정 아님도 아니며, 성취함도 아니고 성취하지 않음도 아니며, 나옴도 아니고 나오지 않음도 아니며, 분별도 아니고 분별 아님도 아니며, 이치와 같음도 아니고, 이치와 같지 않음도 아닌 줄을 아느니라.”
▶강설 ; 그러나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선사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에서는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불법 이해와 수행에 나아가서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 중도를 밝혔다.
* 모든 수행[萬善]을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말고 중도에 입각해서 하라[萬善同歸中道頌]
1, 보리심은 내는 것이 없이 내며,[菩提無發而發]
2, 불도는 구함이 없이 구한다.[佛道無求而求]
3, 아름다운 행동은 행함이 없이 행하는 것.[妙用無行而行]
4, 참다운 지혜는 짓지 않고 짓는 것.[眞智無作而作]
5, 연민심을 일으키되 나와 한 몸임을 깨닫고,[興悲悟其同體]
6, 자비를 행하되 인연이 없는 곳에까지 이르라.[行慈深入無緣]
7, 주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며,[無所捨而行檀]
8, 지키는 바 없이 계를 지키라.[無所持而具戒]
9, 정진을 닦되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고,[修進了無所起]
10, 인욕을 닦되 손상됨이 없음을 알라.[習忍達無所傷]
11, 반야는 경계가 생멸이 없음을 아는 것.[般若悟境無生]
12, 선정은 마음이 머물지 않음을 아는 것.[禪定知心無住]
13, 몸이 없음을 보되 모양을 잘 갖추고,[鑒無身而具相]
14, 말 할 것이 없는 이치를 알고 설법한다,[證無說而談詮]
15, 물에 비친 달그림자의 도량을 건립하고,[建立水月道場]
16, 본성이 텅 빈 세상을 잘 장엄하라.[莊嚴性空世界]
17, 환상과 같은 공양꺼리를 많이 장만하여,[羅列幻化供具]
18, 그림자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 올리라.[供養影響如來]
19, 참회는 죄가 본래 없는 줄을 알고 하며,[懺悔罪性本空]
20, 법신은 항상하지만 오래 머물기를 권청하라.[勸請法身常住]
21, 회향은 얻을 것이 없는 줄을 알고 하며,[迴向了無所得]
22, 누구나 복은 진여와 같지만 따라서 기뻐하라.[隨喜福等眞如]
23, 남을 찬탄하나 너도 나도 텅 비어 없는 것.[讚歎彼我虛玄]
24, 부처님과 같기를 발원하지만 실은 평등하다.[發願能所平等]
25, 그림자와 같은 법회에 예배하고 동참하여,[禮拜影現法會]
26, 도량을 거닐되 발은 늘 허공을 밟으라.[行道足躡虛空]
27, 향을 사르되 생멸이 없는 이치를 잘 알고,[焚香妙達無生]
28, 경전을 읽되 존재의 실상을 깊이 통달하라.[誦經深通實相]
29, 꽃을 뿌리는 것은 집착이 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것.[散華顯諸無著]
30, 손가락을 퉁기는 것은 번뇌를 버리는 것을 표현한 것.[彈指以表去塵]
31, 메아리와 같은 육바라밀을 행하고,[施爲谷響度門]
32, 허공 꽃과 같은 만 가지 덕목을 닦으라.[修習空華萬行]
33, 인연으로 생기는 성품 바다에 깊이 들어가,[深入緣生性海]
34, 환상과 같은 법문에서 항상 노닐라.[常遊如幻法門]
35, 본래 물들지 않는 번뇌를 맹서코 끊고,[誓斷無染塵勞]
36, 유심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라.[願生惟心淨土]
37, 실제적인 이치의 땅을 밟고,[履踐實際理地]
38, 얻을 것이 없는 관법의 문에 출입하라.[出入無得觀門]
39, 거울에 비친 그림자의 마군을 항복받으며,[降伏鏡像魔軍]
40, 꿈속의 불사를 크게 지으라.[大作夢中佛事]
41, 환상과 같은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여,[廣度如化含識]
42, 적멸한 보리를 다 함께 증득하라.[同證寂滅菩提]
(2) 법을 설하여 이익을 얻다
此菩薩이 不取世俗諦하고 不住第一義하며 不分別諸法하고 不建立文字하야 隨順寂滅性하며
“이 보살이 세속의 이치를 취하지도 아니하고 제일가는 뜻[第一義]에 머물지도 아니하며, 모든 법을 분별하지도 않고 글자를 세우지도 않아서 적멸한 성품을 따르느니라.”
▶강설 ; 세속의 이치란 곧 세속은 세간 일반이란 뜻이며 제는 진리, 또는 사실이란 것이니 세간 일반의 도리나 사물로 세속적 지혜의 대경(對境)이 되는 것이다. 제일가는 뜻[第一義]이란 가장 수승한 도리이며 궁극적인 진리를 뜻한다. 보살은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아니하며, 문자를 세우지도 아니한다. 달마대사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창한 것도 화엄경이 근거가 된다. 세속의 이치나 궁극의 진리나 모든 법이나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가 차별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따르지 아니하고 적멸한 성품, 즉 참나와 참사람과 진여자성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