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박사, 역사는 포괄적으로 해석
〇 역사를 왕이나 커다란 사건으로 정리한 것에 익숙하다가, 청년 때 옷과 옷 색으로 역사를 풀어쓴 책을 읽고, 생각의 폭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사는 없다』는 도전적인 책을 발견하고 숨가쁘게 핵심을 찾아보았습니다. 저자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기후와 국제정세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되었습니다.
우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알게 된 것은 고구려가 광활한 땅을 포기하고 아래로 방향을 잡은 이유가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선택이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신라를 강하게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〇 내용요약
=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은 왜 곰이 아니고 호랑이가 되었는가?: 단군신화에 곰은 우리 민족에 편입되었고, 호랑이는 역사적으로 친숙한 적이 없고 호환이라고 하여 재앙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호랑이는 88올림픽, 평창 동계 올림픽, 한국 축구 국가 대표의 마스코트이다.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반도를 토끼에 비유한 것에 반발하여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 호랑이를 부각한 것이다.
= 낙랑을 다루지 않는 이유: 고조선이 망하면서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들어서기 전까지 400년 동안 낙랑군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잘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땅을 빼앗긴 아픈 역사를 들추기 싫어서이다.
= 기후변화: 중국, 낙랑, 백제, 가야, 왜로 이어지는 해안 무역을 통해 해당 국가들이 번영을 누렸는데 기후가 추워지면서 고구려는 만주에서 남진하여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중국도 기후 변화로 유목민들이 초장을 찾아서 아래로 밀려들면서 오후십육국이 세워지는 혼란기를 겪었다. 낙랑이 무너진 후 기존의 서남해 무역 루트가 막히고 고구려-신라-가야를 통한 동남해 무역이 발전하면서 신라가 성정했다.
= 광활한 만주 땅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넓은 땅을 포기하고 한반도로 내려온 이유: 대동강과 한강 지역이 풍요롭다 한들 만주의 넓은 땅과 비교할 수 없음에도 한랭해진 기후 때문이었다. 장수왕은 적극적으로 중국에 들어섰던 많은 국가들과 외교를 끊임없이 하여 외교의 승리로 백제와의 전투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 고려는 결혼을 통해 세력을 키웠고,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나주를 공략하여 견훤의 해외무역(돈줄)을 억제하여 통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몽골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고 원나라가 중아시아까지 뻗어나가면서 거대 제국이 되는 흐름 속에서 다민족 국제 교류가 활발해졌다.
=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지면서 한랭기로 농업 생산능력이 떨어진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상업을 억제하였다. 명나라가 해외 무역을 원나라와 달리 금지하고 오로지 조공 때만 무역을 진행하였기에 동아시아의 경제력이 다소 위축되었고 기존의 해상 무역 종사자들은 먹고 살길이 어려워지자 왜구가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인도 다수 포함된 왜구가 득실 득실하기 시작했다.
명나라가 쇄국을 하니 나라가 바뀌어 고려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한랭기의 어려움에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노비를 자처하는 양인들이 많아졌다.
이후에 들어선 조선도 당시 국제 질서인 명나라의 조공 무역에 목 멜 수밖에 없었다.
= 대항해 시대에 흐름을 잘 탄 일본은 조선을 넘어서기 시작했고,연은 분리법이 조선에서 발명되었지만 조선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기술이 일본에 유출되어 일본의 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다. 일본은 은으로 서양 국가들과 무역을 활발이 하였다. 일본은 명나라와 무역을 하고 싶었으나 명이 쇄국을 하였기에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 빙하기는 아니지만 추운날씨가 지속되는 소빙기가 다시 와서 여진족이 조선을 침략(병자호란) 할 때, 우리나라는 보급기지가 되어 명나라 침략을 도왔다. 결국 명은 망하고 청이 들어섰고, 소빙기 영향으로 양반들보다 양인과 노비가 사용하던 온돌을 사용하게 되어, 산이 빈둥산이 되었다.
= 처음에는 조선이 일본에 여러 가지 문물을 보내는 형태이었지만, 왜는 스스로 학문을 발전시키는 풍토가 자리 잡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주자의 성리학의 나라, 보수적인 나라였다. 통신사는 외교관 역할을 했지만 통신사를 끊은 후 나라 잃을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 러시아와 영국의 대립에서 러시아의 진격을 막고자 했던 영국과 일본의 이해가 맞았고 조선은 그저 예전처럼 눈치 보며 강한 나라에 붙어 있게하겠다는 외교로 친미, 친청, 친러, 친일로 이리저리 휘둘렸다. 일본은 스스로 강한 나라가 되어보자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놓친 조선이 안타깝다.
〇 느낀점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 변화를 부인하여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광활한 만주 벌판을 버리고 남진 정책을 채택한 이유가 기후 변화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되었습니다. 외국은 높은 곳에 있는 주택이 고가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평지보다 상대적으로 저가인 것이 현실입니다. 필자는 높은 곳에 있는 퇴촌 한옥에서 작년 여름을 보내면서 우리나라도 외국과 같이 높은 곳을 곧 선호하게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 고려가 제주도 목장을 통해서 원나라가 필요한 말을 공급하고, 원의 부마국의 지위를 왕건의 상업적인 배경을 통해서 세계에 알려졌다는 명확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2025년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상황에 발빠른 대응은커녕, 총리마저 탄핵당한 상황이 지속되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 대양시대에 일본은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세계화 흐름을 타서 강대국이 되었지만 우리는 반대의 길을 걸어서 결과적으로 일본강점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아픈 역사적 사실에서 게으름! 지적게으름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댓글 유성은, 『한국사는 없다』,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역사-, 페이지2북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