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헌책방 골목 - 풍요 속의 빈곤
‘부산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권고와 근사한 사진들.
심지어, '안 가봤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라는 어떤 블로그의 극찬에 한 번 둘러보았다.
책방 골목 - 어릴 적 뛰어놀던 그 골목과 닮았다.
규모가 큰 책방도 있으나, 대부분은 구멍가게 수준이고,
고서점 1,2 곳을 제외하면, 유럽처럼 작지만 특화된 서점 같은 곳은 없다.
이곳은 풍수지리를 '인문학'으로 대접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용물을 확인하고 산다는 측면에서, 책도 분명히 인증용 소품이며,
저런 문구 자체가 책을 소품으로 취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지 않을거면, 만지지도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동행했던 친구는 책을 뒤적이다 ‘주인 할머니의 살벌한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새책도 클릭 몇 번에 집안까지 배달되는 마당에, 뒤져보는 재미도 없는 헌책방에 뭣하러 가겠는가?
이곳도 여느 서점과 마찬가지로, 중/고등학생 참고서, 공지영/이문열 소설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철학/인문/사회과학 서적은 1980, 1990년대에 굴러다니던 그대로였고, 어떤 변화/추가 같은 것은 없었다.
무서운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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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학가 헌책방 주인은 책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접한 사람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여기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는 책을 '절대' 읽지 않는듯한 인상이다.
동행했던 친구는 어시장 호객꾼들만 잔뜩 몰려 있다고 푸념한다.
요즘 세상에 책 팔아먹고 사는 일 자체가 투쟁일테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일단, 80, 90년대 초반 대학가의 인문/사회과학 헌책방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인터넷을 뒤져도 없는데, 여기는 있겠지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다시 말해, 동네 헌책방 몇 개 나열된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사람, 책이라면 무조건 환영하는 사람, 책방이 몰려 있는 상황이 달가운 사람,
약간 빈티지한 골목을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둘러봐도 괜찮겠다.
그러나 부산이나 인근 지역에 산다면,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으니, 가급적이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좋다.
용두산 공원의 공영 주차장 요금이 살인적이기 때문이다.
차를 갖고 오는 경우, 헌책방 골목 맞은편에서 유료 주자창을 찾을 수 밖에 없는데,
눈에 불을 켜고 의자에 앉아있는 아저씨들을 발견했다면, 그 옆에 주차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태종대
따끈따끈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낚는 재미로 헌책방을 들락거린 시절이 있었고,
사진 촬영, 공간, 분위기, 책 냄새.... 이런 것보다 ‘책’ 자체에 관심이 있는 본인은
‘풍요 속의 절대 빈곤’을 체험함에 따라,
멀지 않은 바닷가에서 도합 4시간의 운전과 살인적인 주차비로 인한 허탈감을 달랬다.
'부산의 명소',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그 많은 블로그는 업계 관계자들의 농간인가?
아니면, 아파트 공간에서만 살아온 도시 샌님들의 발광인가?
첫댓글 그나마 바다의 풍경이 위로를 해 주어서 다행이었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