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사 - 동학 농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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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1.09. 04:13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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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 - 동학 농민 운동
1. 교과서 속 주개념
1)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동학 농민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고부 농민 봉기의 원인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 때문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만석보를 수축한 후 수세를 강제로 징수하였다. 이에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의 주도로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수용 되지 않자 사발통문을 돌려 봉기 계획을 세우고 전봉준이 농민군(1,000여명)을 이끌고 고부 관아점령, 균전사(왕실에서 개간을 위해 파견한 관리, 농민에게 지대를 거두어 원성의 대상이 됨)를 폐지하였다. 이후 신임군수 박원명의 무마로 진정되어 해산되었으나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관련자를 역적으로 몰아 탄압하면서 전봉준이 손화중, 김개남과 함께 봉기(남접 중심)하면서 8,000여명의 농민군이 집결하게 되었고 이것이 1차 동학 농민 봉기이다.
농민군은 백산에 집결, 4대 강령과 격문을 발표하고 황토현전투(1894. 4. 7.)와 장성전투(1894. 4. 23.)에서 정부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점령(1894. 4. 27.)하였다. 이에 정부(민씨 정권)는 청에 원군을 요청하고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게 되었고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이유로 인천에 상륙하였다. 동학 농민군은 외국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하였다. 정부는 청·일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였다. 반면 농민군들은 전라도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안을 실천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 불이행과 일본의 경복궁 점령 및 개혁 강요와 청일전쟁 도발로 전봉준 지도의 남접과 손병희 지도의 북접이 연합하여 삼례에서 재봉기를 하였다. 하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전봉준 주력부대)와 충주성 공격(김개남 부대)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우세한 화력 앞에 패배하면서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2) 동학 농민 운동의 성격과 의의 및 영향
초창기에 벌어지던 산발적인 농민 봉기가 이후 조직적인 농민 전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 나라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민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은 노비 문서 소각 및 토지의 평균 분작을 요구하는 등 봉건적인 지배 체제에 반대하여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후에 갑오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건 질서의 붕괴를 촉진하여 조선이 근대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려는 반외세, 반침략 민족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 후 잔여 세력이 을미 의병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며 활빈당, 영학당 등 농민 무장 결사 단체를 조직하여 반봉건, 반침략 투쟁을 계승하였다. 이것은 이후에 벌어질 의병 투쟁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동학 농민 운동은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어 동아시아의 정세를 변화시켰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 인해 청 세력이 조선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일본이 조선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즉 조선 왕조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는 사상적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농민층 이외의 보다 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2. 확장 개념
1) 고부 봉기 사발통문
"각 동네 동학(東學) 지도자에게 보냅니다. 다음과 같은 격문을 사방에 알리니 의논이 분분하였습니다. 매일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기를, "낫네 낫서 난리가 낫서", "에이 참 잘 되얏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어디 백성이 한 사람이나 남아있겠나" 하며 기약한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하라.
2.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하라.
3. 군수에게 아첨하여 인민을 침학한 관리를 응징하라.
4.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직접 향하라.
<고부 봉기 사발통문>
2) 농민군의 창의문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양반과 지주의 앞에서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는 하급 관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호남창의대장소 백산에서, 「동학사」]
3) 농민군이 집강소에서 한 일
① 탐관오리의 징계, ② 신분 해방운동과 사회 신분제의 폐지, ③ 횡포한 부호의 응징, ④ 삼정의 개혁, ⑤ 고리채의 무효화, ⑥ 미곡의 일본 유출 방지, ⑦ 지주 제도에 대한 저항, ⑧ 재판권 행사, ⑨ 관리의 문서 검열, ⑩ 동학의 전도와 농민군의 강화, ⑪ 농민군의 무기와 말 공급, ⑫ 군수품과 군량미 비축···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근현대사 배움책]
3. 관련 지식
1) 전봉준 격문
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전연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려고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의 앞에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오지영, 〈동학사〉]
2) 4대 강령(1894. 3)
1. 사람과 남의 물건을 해치지마라.
2. 충효를 다하고, 세상을 구하고 평안하게 하라.
3.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깨끗이 한다.
4. 군대를 몰아 서울로 올라가 권세가와 귀족을 없앤다. [정교 〈대한계년사〉]
[네이버 지식백과] 동학 농민 운동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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