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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씨족문화연구소
 
 
 
카페 게시글
장흥위씨 관련/ 칼럼,기고,기타 만회재공 회답사로 심양 방문 전후 주변국 정세/ 무곡 위상환
야운처사 위이환 추천 0 조회 15 23.06.10 22:23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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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6.11 22:49

    첫댓글 세나라의 국내외 정세가 복잡미묘합니다. 너무나 좋은 자료입니다. 적용력이 특출하십니다.

    ▼아래는 만회재공 녹권록입니다. 호를 만회당으로 기록하고 있네요./ 벽천

  • 작성자 23.06.11 22:50

    위윤기 님
    책자가 목판본이네요. 원본도 있을 듯하고 필사본도 있을 듯합니다./ 야운

  • 작성자 23.06.11 22:50

    야운 위이환 님
    이책 제목으로 만회재공 아호를 부르게 되었답니다. 참판공보다 만회재공 멋지지 않나요? ✔호를 부른 전거가 있거나 선사용자가 있다면 그 의견를 존중해야 합니다. 최고직책은 병조참판이었지만요. 해주최씨와 해남윤씨 문중에 가니 선조중에 참판공이 계시던데 너무 여러 곳에서 사용하니 식상한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요람과 천년세고엔 만회재공인데,
    ✔어느날 갑자기 병조참판으로 혼용해 혼란이 심해요. 호는 여러개를 사용한다손 치더라고해도요./ 벽천

  • 작성자 23.06.11 23:02

    위윤기 님
    동의합니다. 선조 존칭을 호나 벼슬명을 많이 사용하는데, 차제에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존칭이 '선생'입니다. 선생은 책을 쓴 이에게 부여되는 존칭이죠. 선생을 쓰려면 아호가 제격이죠. 그러니 상황에 따라서는 직함 보다는 겸손으로 아호를 빌려서 쓰는 것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야운

  • 작성자 23.06.11 23:02

    야운 위이환 님
    책자의 사진은 위성 방촌유물관 명예관장님께서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벽천

  • 작성자 23.06.11 23:03

  • 작성자 23.06.11 23:03

    결과론적인 얘기입니다만,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정권이 인조를 옹립하고는 국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어 조선땅에서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백성들의 생활과 안위가 임진왜란에 이어 또다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유비무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곡

  • 작성자 23.06.11 23:03

    심양이 함락된 1621년 이후 심양을 탈출한 난민들의 일부는 조선의 국경 봉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와 경기도까지 살길을 찾아 내려 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전쟁이나 질병을 피하기 위한 백성들의 이동등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교류는 끊임없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우리 성씨의 경우는 정식으로 나라의 초청을 받고 도예지사로 온 선조님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된 경우지요./ 무곡

  • 작성자 23.06.11 23:04

    후금의 누르하치가 부족을 결속하는 등으로 힘을 길러 후금을 건국하고 명나라를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누르하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명나라에 군인신분으로 있을때 명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뿌리깊은 원한도 크고 깊게 자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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