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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改過遷善)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된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됨 점은 바로 잡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改 : 고칠 개(攵/3)
過 : 지날 과(辶/9)
遷 : 옮길 천(辶/12)
善 : 착할 선(口/9)
(유의어)
개과자신(改過自新)
출전 : 주역(周易) 하경 42괘인 풍뢰익(風雷益)
지나간 허물은 고치고 착하게 된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됨 점은 바로 잡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바른 길로 들어섬 또는 과거에 지은 악업을 진심으로 참회 반성하고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아니하며 선업(善業)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과오를 저지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잘못이 없이 완전하고, 남의 잘못은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미주알 고주알 나무란다. 남의 눈 티끌은 보여도 제 눈 들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부형청죄(負荊請罪)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고치기까지 한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걸왕(桀王)을 내치고 상(商)을 건국한 탕왕(湯王)은 과실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改過不吝/ 개과불린)고 했고, 공자(孔子)도 잘못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고 가르쳤다.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改過) 착한 사람이 된다(遷善)는 성어는 글자대로는 아니지만 여러 곳에서 비슷한 용례가 확인된다.
먼저 주역(周易) 하경 42괘인 풍뢰익(風雷益)에 나오는 ‘바람과 우레로 이루어진 것이 익괘의 상이니, 군자는 선함을 보면 곧 실행에 옮기고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風雷益 君子以見善則遷 有過則改/ 풍뢰익 군자이견선즉천 유과즉개)’라는 말이 가장 오래일 것이다.
당(唐)나라 재상을 지낸 문장가 육지(陸贄)라는 사람은 임금에 상주한 글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글귀 중에 ‘지혜로운 사람은 허물을 고쳐 착하게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智者改過而遷善 愚者恥過而遂非/ 지자개과이천선 우자치과이수비)’는 것은 오늘날 쓰이는 뜻과 유사하다.
이외에 직접 출처는 아니라도 예화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진(晉)나라 주처(周處)다. 그는 태수의 아들로 태어나 재주도 뛰어났지만 10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제멋대로 커 골칫덩이였다.
영특하고 힘이 좋아도 남을 괴롭히는 데만 사용해 마을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 교룡과 함께 삼해(三害)라 부르며 멀리 했다. 주처가 자라면서 차차 철이 들어 사람들이 왜 자신을 멀리 하는지 물어보니 삼해 때문이라 했다.
이에 주처는 믿음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악전고투 끝에 맹호와 교룡을 처치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미심쩍어 완전히 마음을 열어주지 않자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겠다며 길을 떠났다.
동오(東吳)지역의 대학자 육기(陸機), 육운(陸雲) 형제를 찾아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육운이 충고한다. ‘옛사람들은 아침에 허물을 들었으면 저녁에 뉘우치는 것을 귀하게 여겼네(古人貴朝聞夕改/ 고인귀조문석개).’
주처는 앞날이 밝다는 말을 듣고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다. 당태종(唐太宗)이 방현령(房玄齡) 등을 시켜 펴낸 진서(晉書)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개과천선(改過遷善)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결의를 실천하여 마침내 이룩함을 이르는 말이다.
진서(晉書) 본전(本傳)에 있는 입지담(立志談)이다.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양흠 지방(地方)에 주처(周處)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태수(太守) 벼슬을 한 주처(周處)의 아버지 주방(周紡)이 그의 나이 열 살 때 세상(世上)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어 하루종일 하릴없이 방탕(放蕩)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사람을 꺾을 정도여서 걸핏하면 남을 두둘겨 패는 포악한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남산의 호랑이,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더불어 삼해(三害)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주처(周處)가 철이 들면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고쳐서 새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痛改前非, 重新做人).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피하기만 하자,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의 말을 믿어 주겠느냐며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남산(南山)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장교(長橋) 밑에 사는 교룡(蛟龍)을 죽인다면 자네의 말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눈엣가시 같은 주처(周處)가 호랑이와 교룡에게 죽기를 바라고 이런 제안을 한것이다. 목숨을 건 사투(死鬪) 끝에 호랑이와 교룡을 죽이고 마을로 돌아왔으나 아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실망한 그는 마을을 떠나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면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격려를 해주었고, 주처(周處)는 이에 용기를 얻어 이후 10여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학자가 되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개과자신(改過自新)이라고도 한다.
공자(孔子)는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며, 허물을 알았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천하에 도가 있으면, 도둑이 제일 먼저 변해서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하셨다. 도둑은 모두 성기(性氣)를 지니고 있는 자이니, 어찌 스스로 그 잘못을 모르겠는가. 다만 깨우쳐 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니, 착한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그 변화의 속도는, 보통 사람들이 따라 갈 수 없다.
설봉(雪峯) 허정(許掟)이라는 사람이 하루는 길을 가다가 은자(銀子) 100냥을 주워 해가 저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급히 달려와서 찾는 자가 있어 물어 보았더니 바로 그의 은자(銀子)였다. 그리하여 그 은자를 돌려주자, 그 주인은 보따리를 풀어 그 반을 쥐어 주었다.
설봉(雪峯)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은자를 탐냈다면,어찌 네가 반을 주기를 기다리겠느냐?”
그러자 그가 은자 보따리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큰 소리로 통곡하는 것이었다. 설봉이 깜작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저는 도둑입니다. 은자를 훔쳐 가지고 오다가 술에 취해 길에서 잃어 버렸는데, 지금 공(公)께서는 은자가 절로 굴러들어 왔는데도 가지지 않으시니, 저는 어떤 사람이기에 훔친 은자(銀子)를 여기까지 찾으러 왔단 말입니까, 이 때문에 통곡하는 것입니다.”하니
설봉이 대답하였다. “네가 너의 잘못을 아느냐? 안다면 이것은 매우 쉬운 일이니,그 은자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마라.”
도둑은 즉시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착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청성잡기(靑城雜記) 제3권 성언(醒言)에 나오는 글입니다.
개과자신(改過自新)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된다.
중국 서진(西晉) 때 황보밀(皇甫謐)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 집에서 자랐다. 본래는 부귀한 집안이었으나 그 아버지 때에 와서 집안이 몰락하여 가난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게으른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일도 하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다. 매일 놈팽이 애들과 어울려 나쁜 짓이나 하고 다녔다. 숙부나 숙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황보씨 집안 망칠 자식이 나왔네”라고 흉을 보았다.
그래도 숙모는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어느 날 황보밀이 저녁에 돌아오면서 참외를 갖고 와 숙모에게 맛보라고 했다. 아마도 남의 참외를 몰래 따온 것이었다. 그 뒤에도 또 참외를 가져와 맛보라고 했다.
점점 커 가는 조카를 이런 식으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숙모는 자극이 가도록 따끔하게 훈계를 하였다.
“효경(孝經)이라는 책에, ‘매끼 세 가지 종류의 고기로 부모를 섬겨도 효도가 되지 않는다(三牲之養, 猶爲不孝)’라고 했다. 음식 잘 챙긴다고 효도가 되는 게 아니다. 참외 가져온다고 효도가 되겠느냐? 너는 열 몇 살이 되었는데, 이렇게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여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데, 내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나?”
숙모는 탄식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맹자(孟子) 어머니는 집을 세 번 옮겨가며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방법이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이렇게 사람이 안 되니, 내가 헛고생만 한 것 같다. 공부를 하고 덕행을 닦는 것은 너 자신이 하는 것이지, 사실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러고는 황보밀을 본 체도 안 하고, 자기 방에 가서 베 짜는 일을 계속했다. 베틀 찰까닥 찰까닥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황보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한 올 한 올 애써 베를 짜서 나를 먹이고 입히는데, 내가 헛되게 살아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자신을 돌이켜 보니 부끄러움과 뉘우침에 견딜 수가 없었다. 행실을 고치기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놈팽이 친구들과 관계를 다 끊고, 인근의 큰 학자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학업이 날로 발전했다. 매일 이른 새벽 논밭으로 일하러 나갔다. 책을 들고 가서 농사일을 하다 쉬는 여가에 책을 보았다. 밤에도 늦게까지 읽었다.
계속 이렇게 하니 웬만한 책은 다 읽었다. 전날의 놈팽이가 착실한 청년 학자가 되었고, 마침내 서진을 대표하는 큰 학자가 되었고, 많은 제자를 길렀다. 의학에도 뛰어나 ‘침구학(鍼灸學)의 시조’로 추앙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흠이 있고 모자라는 점이 있다. 그러나 잘못을 고쳐서 새롭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방탕한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것은 황금과도 안 바꾸어 준다(浪子回頭金不換)’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지금까지의 잘못을 알고 고치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각자 잘못이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고쳐서, 새해부터 더욱 새롭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 改(고칠 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己(기, 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己(기, 개)는 굽은 것이 바로 펴지려고 하는 일의 뜻으로, 후세의 起(기; 일어나다)와 같은 글자이다. 등글월문(攵)部는 손이나 몸으로 동작하는 일, 즉 굽은 것을 바로잡다, 태도를 고치다, 개선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改자는 ‘고치다’나 ‘바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改자에서 말하는 ‘바꾸다’라는 것은 ‘고쳐서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다. 改자는 己(자기 기)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改자의 갑골문을 보면 巳(뱀 사)자와 攵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巳자는 사전상으로는 ‘뱀’이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본래는 태아를 그린 것이다. 다만 갑골문에 쓰인 巳자는 ‘태아’가 아닌 ‘어린아이’로 해석해야 한다. 改자는 회초리로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고치다’나 ‘바꾸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改(개)는 ①고치다 ②고쳐지다 ③바꾸다 ④바뀌다 ⑤만들다 ⑥다시 ⑦따로 ⑧새삼스럽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될 화(化), 고칠 전(悛), 바꿀 역(易), 고칠 경(更), 변할 변(變), 가죽 혁(革)이다. 용례로는 새롭게 뜯어 고침을 개혁(改革), 잘못을 고쳐 좋게 함을 개선(改善), 단체의 조직 따위를 고치어 편성함을 개편(改編), 이미 정했던 것을 다시 고치어 정함을 개정(改定), 내각을 고쳐 짬을 개각(改閣), 잘못을 뉘우쳐 개심함을 개전(改悛), 나쁜 점을 고쳐 좋게 함을 개량(改良), 헌법의 내용을 고침을 개헌(改憲), 제도나 기구 등을 고치거나 폐지하는 것을 개폐(改廢), 원고를 고치어 씀을 개고(改稿),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침을 개정(改正), 고쳐서 오히려 나빠짐을 개악(改惡), 두 번째 고침으로 다시 고침을 재개(再改),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을 회개(悔改), 고치는 것을 꺼림을 탄개(憚改), 새롭게 뜯어 고침을 혁개(革改), 바꾸어 고침을 변개(變改), 글자를 지우고 고침을 말개(抹改), 써 놓은 글자를 문질러 지우고서 고침을 찰개(擦改),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일컫는 말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령모개(朝令暮改),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 짐을 일컫는 말을 개과자신(改過自新),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의미의 말을 과이불개(過而不改), 만 가지로 깨닫게 가르치다는 뜻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만단개유(萬端改諭) 등에 쓰인다.
▶️ 過(지날 과, 재앙 화)는 ❶형성문자로 过(과)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咼(와, 과; 입이 삐뚤어짐)의 뜻이 합(合)하여 바른 길을 지나쳤다는 데서 지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過자는 ‘지나다’나 ‘경과하다’, ‘지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過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咼(가를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咼자는 ‘뼈’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過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지나갔음을 뜻하기 때문에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지나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過자는 ‘초과하다’나 ‘넘치다’와 같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확대되어 있다. 그래서 過(과)는 지나치는 일, 통과하다, 도를 넘치다, 과오(過誤) 따위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지나는 길에 들르다 ③경과하다 ④왕래하다, 교제하다 ⑤초과하다 ⑥지나치다 ⑦분수에 넘치다 ⑧넘다 ⑨나무라다 ⑩보다, 돌이켜 보다 ⑪옮기다 ⑫허물 ⑬잘못 ⑭괘(卦)의 이름 ⑮예전 그리고 ⓐ재앙(災殃)(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력/역(歷), 지날 경(經),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지나간 때를 과거(過去), 예정한 수량이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음을 과잉(過剩),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격(過激),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과열(過熱), 잘못이나 그릇된 짓을 과오(過誤), 지나간 일을 과거사(過去事),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빎을 사과(謝過),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사물의 한도를 넘어섬을 초과(超過), 공로와 과오를 공과(功過), 대강 보아 넘기다 빠뜨림을 간과(看過), 때의 지나감이나 시간이 지나감을 경과(經過), 모르는 체 넘겨 버림을 묵과(默過),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한다는 교왕과직(矯枉過直),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관과지인(觀過知仁),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공과상반(功過相半) 등에 쓰인다.
▶️ 遷(옮길 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늘에 오르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䙴(선, 천)으로 이루어졌다. '오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옮기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遷자는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遷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䙴(옮길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䙴자는 본래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遷자 이전에 쓰였던 글자였다. 䙴자의 금문을 보면 邑(고을 읍)자 옆에 새집을 옮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터전을 옮긴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䙴자가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소전에서는 여기에 辶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떠나 '옮긴다'는 뜻을 더하게 되었다. 그래서 遷(천)은 (1)벼루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옮기다 ②옮겨가다 ③떠나가다 ④내쫓다, 추방하다 ⑤벼슬이 바뀌다 ⑥달라지다 ⑦바꾸다, 변경하다 ⑧오르다, 올라가다 ⑨붙좇다, 따르다 ⑩천도(遷都) ⑪벼랑, 낭떠러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옮길 사(徙)이다. 용례로는 도읍을 옮김을 천도(遷都), 귀양살이하는 사람을 천객(遷客), 움직여서 옮김을 천동(遷動), 바뀜이나 변함을 천개(遷改), 죽은 혼령을 극락세계로 가게 함을 천도(遷度), 무덤을 다른 데로 옮김을 천묘(遷墓), 대가 바뀜을 천대(遷代), 나쁜 짓을 고쳐 착하게 됨을 천선(遷善), 변하여 바뀜을 천화(遷化),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삶을 천거(遷居),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난 성이 엉뚱하게 애매한 다른 사람에게 옮아감을 천노(遷怒), 미적미적 미루어 감을 천추(遷推), 관리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떨어짐을 좌천(左遷), 변하여 바뀜을 변천(變遷),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딴 곳으로 피난함을 파천(播遷), 무너져서 밀려남을 탑천(塌遷), 여기저기로 여러 번 옮김을 누천(累遷), 등급을 뛰어넘어 올라 감을 초천(超遷),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맹모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맹모삼천(孟母三遷), 맹모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3번 거처를 옮겼다는 고사로 생활 환경이 교육에 있어 큰 구실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천지교(三遷之敎), 봄이면 새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 위에 올라앉는다는 뜻으로 사람의 출세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출곡천교(出谷遷喬), 인간 세상의 변천이 쉬지 않고 흐름을 일컫는 말을 무상천류(無常遷流), 어떤 자리에 오래 붙어 앉아서 다른 데로 옮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좌지불천(坐之不遷), 고향을 떠나기를 좋아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토중천(安土重遷) 등에 쓰인다.
▶️ 善(착할 선)은 ❶회의문자로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다. 신에게 맹세하고 한 재판이란데서 나중에 훌륭한 말이 훌륭함, 좋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善자는 ‘착하다’나 ‘사이좋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善자를 보면 양과 눈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답은 ‘양의 눈망울과 같은’이다. 뜻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식으로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해석될 수 있겠다. 보통 착하고 선한 사람을 일컬어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善자는 그러한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目자 대신 言(말씀 언)자가 쓰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였다. 이후 善자는 변화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善(선)은 (1)착하고 올바르고 어질고 좋음 (2)정리(正理)를 따름. 양심이 있고 도덕을 갖춤 (3)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理想)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착하다 ②좋다 ③훌륭하다 ④잘하다 ⑤옳게 여기다 ⑥아끼다 ⑦친하다 ⑧사이좋다 ⑨착하고 정당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악할 악(惡)이다. 용례로는 착한 것과 악한 것을 선악(善惡), 선량한 마음이나 착한 마음을 선의(善意), 좋은 길로 올바르게 인도함을 선도(善道), 착하고 어진 벗을 선우(善友), 깨우치고 이끌어서 착하게 되도록 만듦을 선화(善化), 친절하게 잘 대접함을 선대(善待), 착하고 바른 덕행을 선덕(善德), 착한 마음을 선심(善心), 이웃 또는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지냄을 선린(善隣), 잘 막아냄을 선방(善防), 착하고 어짐을 선량(善良),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착하고 어진 행실을 선행(善行), 유종의 미를 거둠을 선종(善終), 잘못을 고쳐 좋게 함을 개선(改善), 가장 좋음이나 가장 적합함을 최선(最善), 자기 혼자만이 선으로 생각되는 바를 행하는 일을 독선(獨善), 본심에서가 아니라 겉으로만 하는 착한 일 또는 그것을 함을 위선(僞善), 착한 일을 여러 번 함을 적선(積善), 최선의 다음 정도를 차선(次善), 더할 수 없이 착함이나 지극히 착함을 지선(至善), 선의를 베풂을 자선(慈善), 서로 친하고 사이가 좋음을 친선(親善), 착하지 아니함을 불선(不善), 친구 사이에 옳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함을 책선(責善), 나쁜 짓을 고쳐 착하게 됨을 천선(遷善),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선남선녀(善男善女), 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악한 행실을 징계함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선후처치(善後處置)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