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 리장 옥수채/동파만신원
◎ 옥수채↓
해발 3,000m에 위치한 옥수채(玉水菜)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纳西族)의 중부지역 동파성지이며, '여강의 발원지' 또는 '나시문화의 발원지'로 여강고성의 근원지이다. 옥수채는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이곳에서 흑룡담을 거쳐 여강으로 흘러드는 식수의 발원지로, 이곳에 떨어지는 폭포들이 구슬 빛 같다고 하여 옥수채(玉水菜)라 불린다. 옥룡설산의 옥玉자와 물 수水자를 따서 지은 마을 이름으로 그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옥수채 동파문화 계승기지로 나시족의 전통과 고풍스럽고 수수한 면모를 보존해오고 있다.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여러가지 색채가 폭포와 호수에 서로 어우러져 비치는 풍경이 아름답다.
나시족 (納西族)은 티벳북동부에 살던 유목민으로 고대 강족의 한 부류로 알려져 있으며 인구는 약 31만명이다. 모계 중심의 부족으로 일처다부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다. 그 예로 한 집안의 최고 연장의 여성이 사는 방을 [할머니방(祖母部屋)]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선조의 제단 등이 있으며 집안 내의 미성년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산다. 나시족은 주로 샤머니즘으로서 무술사(巫術師)인 톰바가 의식을 집행하며,이는 티벳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동파문자'라고 하는 상형문자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적으로 만 사용할 뿐이고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1957년에 제정된 라틴문자로 표기를 한다. 동파문자는 지금도 종교의식에 사용되고 원시불교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져 '세계 유일의 현존하는 상형문자'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나시족은 당나라 때에는 티벳과 남조(南詔)의 지배를 받았고, 원.명나라 때에는 나시족 수령이 관리로 임명되어 중국 왕조의 간접지배를 받았으나, 청나라 때는 이 지역에 관리를 보내 직접통치를 하였다.
심 산
리장(여강)의 원천 표지석 ↓
◎ 동파문화 ↓
나시족의 친환경 정신은 그들이 믿는 동파교(東巴敎)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파는 나시족 말로 '지혜로운 사람 또는 큰 스승'을 뜻한다. 동파교는 하늘과 바람과 '수(署)'를 숭배한다. 청개구리 머리에 인간의 몸, 뱀의 다리를 한 '수'는 자연을 관장하는 신이다. 먼 옛날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자 분노한 수는 홍수와 지진, 역병으로 인간을 응징했다. 그러나 이 둘은 동파교 교주의 중재로 계약을 맺었다. 즉 인간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는 재앙을 거두기로 약속한 것이다. 나시족은 지금도 매년 음력 2월께 수에게 제사를 올린다.
나시족의 독창성은 동파문(東巴文)이라는 상형문자에서 도드라진다. 7세기께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파문은 주로 동파교 경전을 기록하는 데 쓰였으나 지금도 주위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리장 고성 내 점포 간판엔 한자·동파문이 나란히 적혀 있다. 돈을 받고 상형문자를 써주는 곳도 있다. 한자로 내밀면 이름도 써준다.
상형문자는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학습(學習)을 뜻하는 글자를 보면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는 천진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사랑 애(愛)자는 남녀가 나란히 앉은 모습이다. 그림만 봐도 뜻을 짐작할 수 있으니 한글이나 알파벳 같은 표음문자에 비해 보는 시각적 재미가 쏠쏠하다.
나시족은 윈난 성 북서부와 쓰촨 성의 경계에 살고 있다. 언어는 시노티베트어계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한다. 원래 동파문자와 가파의 2종류의 문자가 있었으나 1957년 로마자 형식의 문자를 만들었다. 나시족의 종교인 동파교는 산, 물, 바람, 불 등의 자연현상을 숭배한다. ‘동파’는 동파교의 사제를 뜻하는 말로 이들은 법률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약초로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이들에 의해 사용된 동파문자는 뜻과 음을 갖는 상형문자로 현재까지 1,400여 개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나시족은 동파문자로 자신들의 신화, 종교의례, 천문역법, 풍습, 의학 등을 기록한 동파경을 남겼다. 2003년 동파문자와 동파경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옥수채 화합원 ↓
◎ 동파만신원↓
만신원은 동파교가 믿는 온갖 신을 모신 곳이다. 동파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민족 조상신에 불교·도교를 가미했다. 만신원 한복판엔 대립과 혼돈에서 화해와 질서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이 계단을 따라 길게 그려져 있다. 맨 아래 칼·창을 든 괴물이 사라지고 코끼리와 부처님이 나타나면 그곳이 곧 극락이다. 좌우 너른 평원엔 비목(碑木)이 즐비하다. 순간 기원전 중남미의 마야 문명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인디오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스마트폰의 전파가 온 세상을 뒤덮기 전, 인간과 자연이 둘로 갈라지기 전, 원시(原始)에 발을 들여놓은 듯 아득한 기분이 참 달콤했다.
만신원 뒤에는 옥룡설산(玉龍雪山)이 버티고 있다.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은 나시족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산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심술쟁이 마귀가 태양을 여러 개 만들어 온 산하를 불태웠다. 돌멩이에도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 이때 잉구(英古)라는 용감한 처녀가 용왕과 왕자의 도움으로 마귀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를 본 신선이 설룡(雪龍)을 만들어 가짜 해를 삼켜 없앴다. 설룡은 마귀를 깔고 앉았는데 이것이 바로 옥룡설산이다.
한편 왕자는 잉구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슬픈 나머지 잉구가 묻힌 곳을 몸으로 감싸 흐르니 그것이 곧 냇물이 됐다. 잉구가 마귀와 싸우다 쓰러진 곳을 사람들은 잉구툰이라 불렀는데 나시족 말로 이는 곧 아름다운 강, 리장(麗江)이다. 나시족은 잉구가 어깨에 걸쳤던 적삼에 7개의 별을 파넣었다. 지금도 나시족 여인들은 잉구의 영웅적인 업적을 기리기 위해 별을 달아 어깨에 거는 '칠성피견(七星披肩)'을 입는다.
잉구로부터 이어진 나시족의 용맹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 장정(長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국민당 군에 쫓기던 홍군은 리장 스구전(石鼓鎭)에 도착했으나 양쯔강의 원류인 진사강(金沙江)의 거친 물살에 길이 막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때 나시족이 마오를 도와 인민해방군을 도강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나시족이 희생당했다. 마오는 고마운 마음에 나시족의 전통 모자를 인민해방군의 모자로 삼았다. 통상 인민모라고 부르는 바로 그 모자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