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 야만인의 구별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정치권을 들여다보면 더 가관입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은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기에 가뜩이나 덥고 습한 날씨에 국민들을 더 짜증나게 하고 있습니다.
인도 폼베이에서 출생하여 인도 영자신문 부주필을 역임하고 영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키플링’이라는 영국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영국 제국주의를 옹호하여‘애국시인’이라고 불려지기도 했으나, 조잡한 작품으로 그의 말년은 평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인도의‘정글’을 배경으로 쓴‘정글북’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필연적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는‘정글북’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떠나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삶의 모습을 정글이라는 세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모글리’라는 늑대 소년으로, 옛날 고분에서 코끼리의 진퇴를 명령하는데 사용되는‘앵커스’라는 지휘봉을 가져 옵니다. 아주 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손에 들어갔을 때 인간은 물욕에 눈이 어두워 서로 죽이고 죽여 하루에 6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동물에겐 본능이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 먹고자 하는 식욕과 성욕 등이 그것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이 본능을 억제하며 윤리와 도덕을 이루어 가는 것을 인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본능을 억제하며 다스려 가면서 윤리와 도덕으로 승화시키는데 있습니다.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본능의 지배를 받아 행동하는 것을‘하등동물’이라 합니다.
신사복에 최신 유행의 구두와 훌륭한 장식구로 단장을 했다고 문화인이고, 맨발에 하의만 걸쳤다고 야만인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식탁에서 칼과 포크로 식사해야 문화인이고,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다고 야만인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금 신사복에 최신 유행을 따르며 호텔 식당에서 양식을 즐기는 문화인 속에 동물적인 본능의 지배를 받아,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자기 의(義)만 내세우는 야만인이 도시 한복판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밀림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도 배가 부르면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 속에 문화인이라고 자처하는 야만인의 욕심의 배는 지구를 통채로 삼켜도 만족이 없습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잠 30:15,1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는 정글(밀림)로 보낼 수 있지만, 양복 입은 야만인은 어디로 보내면 좋겠습니까? 정글속의 야만인보다 도시 속에 야만인이 더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