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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
저-이어령
출-문학사상사
독정-2018.1.17.수.비
· 어머니는 부재를 통해 현존하는 거대한 영원성으로 화해 바다로 다가온다.
· 골프는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의 놀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초원에서 하는 스포츠다. 목동의 지팡이가 골프채가 되고 돌이 골프공으로 변하고 토끼 굴과 같은 것이 홀컵이 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쳐서 허공으로 멀리 날려 보내는 기술이다. 알바트로스의 새끼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어의 이빨을 벗어나려고 필사의 날개짓을 한다. 강한 날개와 날쌘 비행술을 타고난 천재들만 살아남으니 이를 노리는 잔인한 표범상어는 적이 아니라 비행 훈련을 시키는 과외 교사다. 보들레르가 시인의 운명을 발견했던 것은 조나단의 갈매기가 아니라 알바트로스였다. 상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아오르는
· 한국인과 일본인이 술을 마시면 한국인은 떠들며 정보를 흘리고 열심히 귀 기울이는 일본인은 정보를 얻는다.
· 디즈니랜드에 들어가면 길 잃은 아이를 봐도 종업원이 뒤에서 아이를 끌어안거나 말을 걸지 않는다. 놀랄까봐. 말 할 때도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자세를 낮춘다.
· 참치는 알에서 깨자마자 헤엄쳐야 물을 빨아들여 숨을 쉴 수 있다. 잠 잘때도 뇌만 쉴 뿐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 민들레가 참치형이다. 꽃을 피우고 씨는 낙하산으로 허공을 날아다니게 되는 민들레, 그에 비해 할미꽃은 가자미형이다. 평생 자기 발등만 보고 피었다 태어난 그 자리에 씨를 떨어뜨린다. 산악 지대에 맞는 정밀 특수 기술 분야의 니치로 스위스는 국민 소득 세계 1위다. 바다가 없어도 특수 대형 선박 엔진은 스위스가 독점. 스위스 차도 견고성 덕분에 살아남는다. 이탈리아 차가 신장하는 것은 디자인 덕분이다. 같은 자동차 산업이라도 니치가 다르다.
· 한국 옷은 옷고름에서 단추로, 단추에서 지퍼로 개화되었다. 일본인은 처크라 했고 한국인은 자꾸라 했다. 단추는 위에서 아래로 채워가지만 개혁은 지퍼처럼 아래애서 위로 올라가야(잠가야) 성공한다.
· 맹산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게 탈출구를 열어주었던 것은 식객 3천명 중 한 명이었다. 평소 아무 쓸모없던 그들 가운데 닭 소리 개소리흉내를 내는 식갱의 기지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서양은 천사들에게 날개가 있지만 동양은 정체불명의 손오공 여의봉 작대기로 구름을 타고 다닌다. 그러니 어떻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겠는가
· 일본의 총 숭배는 무뎃포라는 말로 앞뒤 분간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한다는 말로 알 수 있다. 임란 때 일본 무장이 자기 영주에게 “무사들을 보낼 때는 전원 총을 휴대하도록 엄명 내려주십시오.” 했지만 우리 선비들은 총을 만들어 대결하기 보다 붓으로 총을 무력화했다. 임란 뒤 일본인들에게 주자학을 가르치고 병마의 힘을 충효 이념으로 바꿔 도쿠가와 막바의 제도 변화를 일으켰다.
· 초현대식 빌딩 거리를 효도 관광 띠를 두른 버스가 달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효는 윤리보다 논리적이다. 효 글자를 보더라도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가 업어주고 부모가 늙었을 때는 자식이 업어준다.
·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무명 극작가 시절, 은행 융자 받으러 가서 은행장에게 미발표 원고를 보여주고 거금을 융자받은 것은 은행이 금덩어리가 아닌 신용 덩어리로 장사를 한 것이다.
· 개 이야기
미국 애들은 식구 수에 개를 포함해 말한다. 일본이 개고기를 안 먹는 것은 개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도쿠가와 쓰네요시 때문이다. 장군이 개띠라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고 개를 가마에 태우고 다녔던 가마꾼들은 그가 말띠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라고 농담을 했다.
· 푸는 문화와 갚는 문화
일본은 미안하다 할 때 ‘스미마센’이라 한다. 갚아야 할 것이 덜 끝났다는 뜻이다. 한국 문화는 푸는 문화로 사람이 죽어도 푸닥거리로 푼다. 한국인은 일에 도전 할 때 몸을 푼다고 한다. 싸울 때도 웃통을 풀어야 힘이 난다. 원은 갚으면 그만, 한은 풀면 창조적이다. 한을 풀고 나면 힘이 솟아 신바람이 난다. 우리 민족 마음에 쌓여 있는 것은 과거 원이 아니라 못다한 한이다. 한을 풀 때 한국인은 강해지고 창조적이 된다. 독재 때문에 하지 못한 한이 있으면 민주 실천으로 한을 풀어 자유의 소중함을 맛보아야 한다.
· 정자에 ‘희우정’‘안식정’ 이름이 붙은 것은 소비가 아닌 창조로 사색. 심미적 공간이란 뜻이다. 숨을 쉬거나 일손을 쉬거나 같은 말이다. 중세는 놀이형 인간이었지만 근대는 노동형 인간이다. 숨 쉬며 쉬엄쉬엄 일하는 전통 한국인의 노동 방식이 미래 문명에 강점이다. 일에 놀이 요소를 끌어들이고 육체노동에 정신 보람을 주는 정자 문화와 공간을 생산 현장에 살려가야 한다. 곡식 기르는 일과 나무 그늘에 쉬는 것이 한 글자이듯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휴양 산업이 될 것이다.
· 어제도 오늘도 순수 우리말인데 미래만 한자어다.
· 짐승 가운데 사람의 눈을 제일 많이 닮은 사자는 자기 발 밑의 풀만 보고 다니는 초식 동물과는 다르게 먼 지평을 둘러보며 산다. 같은 맹수라도 호랑이는 밀림애서 살아 먼데를 볼 수 없다. 사자에게 스승 사자를 붙인 것은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뜻에서 온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만 가르치는 실용 교육은 기술자는 몰라도 지도자를 만들진 못한다. 실용 교육에 힘쓴 독일은 과학과 경제력에서 유럽 최강이 되었지만 1,2 세계대전 때 패했다. 히틀러같은 광적 지도자만 길렀지만 영국은 고전과 교양 중심의 인성 교육으로 독일을 이겼다. 스승의 날에는 사자의 눈을 생각하자.
· 순진한 사람보고 사회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고 타락한 사람 보고 ‘사회 물을 먹었다’한다.
· 집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람 사는 집만 아니다. 집 안의 것이면 모두가 안정감을 준다. 시퍼런 칼날도 칼집에 들어있으면 걱정이 없다. 집은 칼날까지도 잠재운다. 집은 짓다가 온 말로 짓은 집의 옛말이다. 농사짓고 밥 짓고 옷 짓고 글 짓고, 모든 것을 짓는 창조의 근원이 집이다. 짓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고 음악을 지은 사람은 음악가, 그림을 그리는 아름다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미술가. 창조적 일 하는 사람은 모여 가장 큰 집을 지은 것이 나라의 집, 국가다. 부모의 이혼으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빈곤과 범죄에.
여덟시간 근무가 회사라면 24시간 온종일 근무해야하는 이타적인 것이 가정이다. 집은 서로의 희생으로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 가족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말에 일본 55%, 한국 77%지만 가족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 일본은 19%, 한국은 54%다. 집단주의 체질인 일본보다 개인주의가 강한 한국인이다. 가치관의 갈등과 혼란이 급격한 한국 사회다. 지금 집을 짓는 정신이 쇠퇴하면 우리 민족 전체가 집 없는 아이가 된다.
· 엘리베이트란 위로 올라간다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만든 말
· 살다가 명사가 되면 ‘살음’ 즉 삶이 된다. 살리다가 명사로 바뀌면 살림이 된다. 살림났다는 분가를 의미하는 독립적 삶, 살림 밑천, 살림 장만은 가재도구 같은 생활 용품을 말한다. 살림살이는 능동적으로 삶을 살려가고 다시 살아가는 것이 살림살이이며 한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 꺼져가는 불을 살리듯 남까지도 활성화하는 것이 살림살이다. 사림살이의 중심 역할을 하는 가정주부는 가족이나 세상을 살려가는 사람이다.
미각, 패션, 장식, 오락, 교육, 교통, 심리학, 요리, 디자인, 문학, 의약, 공예, 예술, 경제학, 행정, 소아과 의사, 노인 의학, 접대, 관리, 구매, 법률, 회계, 종교, 경영까지 다 해내는 사람이 가정 주부다. 빈 봉투를 갖다 주어도 가정을 살려내는 요술사이다. 같은 유교 문화권 대만 여자들은 가정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지 않는다. 아침밥은 사먹고 저녁에는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되는 음식을 사온다. 한 솥밥 식구가 아니라 한 식당 손님이다.
· 장미는 장미라고 부르지 않아도 향기롭다-세익스피어 명언이다. 장미처럼 제 스스로의 뿌리로, 그 노동으로 얻어지는 게 향기다.
· 생태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개미의 20%만 일을 하고 나머지는 논다. 그 일 잘하는 20% 개미를 모아놓아도 그 중에서 80%는 논다. 콩고에서 일하면서도 도시에서 오지쪽으로가 아니라 오지에서 도시쪽으로 작업할 때 훨씬 더 일맛이 나 열심히 한다. 어둔운 곳보다 밝은 곳에서 일할 때 피로도 덜하고 마음도 명랑해진다.
· <아프리카 초원의 협력 관계>
원숭이가 일어나 높은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 먹고 딱딱한 껍질을 버리면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영양들이 별식으로 바나나 껍질을 먹으려고 모여든다. 영양이 지나가면 풀숲에 숨어있던 벌레가 나와 움직이기 때문에 벌레를 잡아 먹기 위해 코뿔새가 모여들어 푸른 초원이 공존한다. 기린 목, 몸에 붙은 진드기를 잡아먹는 찌르레기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다. 야자나무는 씨 뿌리기 주역으로 코끼리를 활용하는데 원숭이가 야자나무 열매를 먹고 껍질을 버리면 코끼리에겐 진수성찬이 되고 코끼리의 배설물로 숲 전역에 뿌린다.
· 사람들이 흑표범을 없앴을 때 처음에는 사슴 숫자가 늘어났으나 사슴 떼가 너무 불어나 초원의 풀이 짓밟히고 사막처럼 되어 먹이가 사라져 멸종 위기였다. 흑표범은ㄷ아진다. 폭력자가 아니라 사삼을 위한 초원 관리자였다. 마치 항공사와 관광사업이 암술과 이빨 같은 관계이듯
· 단으로 묶어 세워 바짝 말린 깨는 톡톡 치기만 해도 솔솔 쏟아져 내린다. 섬새하고 간지러운 촉감이 온몸으로 쏟아진다. 은미하게 감지되는 쾌감이다. 깨소금은 은근하게 입 안으로 베어드는 내향적 맛이다. 혼자 몰래 숨죽이고 웃는 웃음과도 같다.
· 셈치고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없어져도 죽은 셈치면 눈물이 멎는다. 안 좋은 일 있어도 더 큰 손해를 보거나 화 입은 셈치고 마음을 달랜다. 파리애서 고추 살 때 저울 눈금이 조금 오르니까 고추 한 개 내려놓고 기우니까 가위로 고추 한 개를 반으로 잘라 저울눈을 채우는 걸 보고 한국에서 셈치고 살아와 그 행동이 야박하고 섭섭했다. 한국은 고봉으로 말을 되고 고봉이 아니라 수평으로 깎아 되는데도 마지막까지 싹 훑지 않고 한 뼘 정도는 약간 남긴다. 좋은 게 좋다는 기묘한 한국식 표현도 ‘셈치고’라는 말과 사촌이다. 좋은 것이면 그만이지 그거 꼬치꼬치 원인을 캐고 원칙을 따져서 나쁘게 만들 것이 없다는 일종의 반합리주의 선언인 ‘셈’이다. ‘셈’문화는 초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새 모명 모델의 사상이다.
· <한가지>
아기라는 말은 어머니서 갈라진 가지라 는 뜻이다. 가지가 아지가 되고 아지가 아기로 변했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개 가지, 망아지는 말 가지, 송아지는 소 가지인 셈이다. 돼지란 말도 돗(돼지의 고어)아지에서 온 말이다. 그 뜻대로 하면 돼지는 돼지 새끼란 듯이고 큰 어미 돼지는 도, 개, 걸, 윷, 모 할 때의 그 도(돗)이다. 나뭇잎은 서로 달라도 그 가지는 한 가지이다. 하나의 나뭇잎 사이에 가려 있는 한 가지를 찾아내는 마음과 눈길이 바로 한국을 지켜오고 한국인을 한 동족으로 이어온 이념이었다.
· 푸르다는 풀에서 온 말이다. 푸른빛은 한국인에게는 젊음과 희망을 연상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슬프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푸른 신호등이라 하고 서양인은 녹색 신호등이라 한다. 아이에게 파란 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라고 했는데 아이는 초록 신호등은 켜지는데 푸른색 신호등이 안 켜져 길을 못 건넌 이야기도 있다. 서구에서는 젊음과 희망을 초록색으로 나타내고 구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이 위협이 이슬람 문화권이 원리주의로 바뀐 시대 상황을 색체 상징으로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라는 구호가 있다. 블루먼데이는 월요병을 말한다.
· 1960년만 해도 25만 명이었던 마국 법조인 수는 불과 20년 뒤에 50만 병으로 불어났다. 우리가 따질 때는 침방울만 튀지만 그쪽 법률 사무소는 지폐가 날아다닌다. 기업이 1년 동안 법률 사무소에 내는 돈은 1백 8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인 76%가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는데 변호사는 사건을 더 키워 수입료를 늘린다고 불신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인이 상담하면 서양인은 상대방 서류를 들여다보고 동양인은 상대 얼굴을 뜯어본다. 문서에 적힌 말이나 숫자를 꼼꼼히 따지는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얼굴에 씌어 있는 인상과 속마음을 읽으려 한다. 서양인은 법을, 동양인은 사람을 믿는다. 인간은 자연이나 기계가 아니다. 법치가 덕치로 바뀔 때 사회는 그 모순과 갈등을 씻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지개를 일곱색, <메리 포핀스>영화에서는 여섯색이란다. 우리나라 무지개는 물지게에서 온 말이다. 물이 무색에서 ㄹ 탈락 형태. 지게는 사람이 드나드는 방문을 가리킨다. 물의 지게로서 물의 문이라는 뜻이다.
· 권력의 9할은 도장 찍는 위력이다. 모든 규제의 봉인도 도장으로 찍은 것. 풀어주는 허가장, 면허장도 도장으로 찍은 것이다. 찍는다는 말 속에도 권위가 들어있다. 사람을 고르는 것도 점찍어 놓았다하고 밉살스레 보이는 것을 찍혔다 한다. 도끼는 힘센 남자. 나무를 찍어 생활의 터전을 일구는 아버지의 부권 상징 도구다. 중국 황제 상징 문장도 도끼 모양이었다. 이제는 찍는 시대에서 터치하는 l대로 변하고 있다. 관청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도끼를 든 아버지 모습은 기저귀를 갈아주는 어머니 손으로 변해야 한다. 하이 터치로 사랑도 점 찍는 것이 아니라 터치해야 한다.
· 봄은 꽃을 본다고 봄이고 여름은 열매 맺는다는 듯, 가을은 열매 맺은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겨울은 농사 다 지어놓고 집 안에서 기거한다는 뜻으로 겨슬(짐에 계심)에서 온 말이는 어원 연구가도 있다. 더위는 피해가라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햇빛과 소낙비 속에서 열매가 자란고 천둥 칠 때마다 단맛이 스며든다. 사람이 삶도 그 가열한 고난 속에서 그렇게 열매 맺어가고 있다.
·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찌 다르신고’ 시구는 표정 속의 표정으로 내면 표정이다.
· <마음의 밭을 가는 쟁기질>
머리에서 갈라진 게 머리카락,손(발)에서 갈라진 게 손(발)가락, 몸에서 갈라진 게 가랑이라 할 때 그 가락이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논밭을 가는 것도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말이다. 교육이란 마음의 밭을 가는 쟁기질이다. 가르친다(간다)는 것은 메말라 굳는 정신을 갈아엎는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타성에 젖은 마음에 새 지식의 공기를 스며 배게 하는 것이다. 산성화 흙처럼 굳은 흙에 토양을 바꾸는 밭갈이 교육 정책이 나와야 한다.
가르치다는 밭갈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education은 젖먹인다는 라틴어의 에듀카레에서 온 말이다. 한국 교육이 식물성의 상징이라면 서양은 동물적인 것으로 밭갈이가 젖먹이기로 변한 것이다. 서양 교육은 젖먹이기보다 어떻게 젖을 떼는가 하는 훈련을 중요 과제로 삼는다. 독립성과 개성을 지향하는 서구 교육 이념이다. 밭갈이는 젖떼기와 같은 이유 교육이 아니라 끝없이 새 흙을 북돋우는 교육이다. 동물로 치면 새 젖을 공급해주는 평생 교육에 그 특성이 있다.
· 쓰레기통에 갈 것도 밥상에 오르면 시래기(씨레기)가 된다. 시든 무청을 말렸다 음식 만들어먹는 별미는 궁해서가 아니라 값어지 없다고 생각한 것에서 새롭고 귀중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 한국 문화의 한 원형이다. 외국 몬드리안 그림과 견주는 한국 조각보도 현란한 색체가 조화를 이룬 초디자인 작품이 생겨난다. 이는 리사이클링의 원조요 정신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멀쩡한 버선을 헤지기도 전애 미리 기운 것, 일부러 성한 곳도 미리 더새어 깁는 것. 깁는다는 마이너스 가치를 플러스 가치로 전환하고 살림에 보탬되게 하며 미학적 효과를 더한 것이 선조 쓰레기를 시레기로 만드는 한국인의 슬기는 자원 재활용의 새로운 길을 암시해준다. 기운 것이 성한 것보다 아름답다는 새로운 발상. 벌써부터 첨단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쓰레기를 시래기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생겨나고 있다. 참치의 안구 뒤에 있는 지방에 DHA 고도 불포화 지방산이 30%에서 40%까지 들어있어 뇌의 노화나 장애를 방지한다고 클로포드 교수의 연구 발표로 그 광맥을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셈이다 . 게딱지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한 바이올린을 딱딱하면서도 가볍게 만드는 키친이라는 성분으로 고음질 스피커의 재생 오디오 회사가 황금 노적봉을 쌓게 되었다. 사람도 모범 사원 속에 쓸모없다고 생각한 두통거리 사원 하나를 조직에 넣으면 갑자기 활기가 생기고 실적도 오른다.
· 덜됐다. 못됐다는 사람은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완성되고 변해가는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 됨됨이는 곰은 웅녀가 되고 웅녀는 다시 하늘님의 아들과 결혼하여 신부가 되고 신부는 단군을 낳아 어머니가 된다. 단군 신화를 줄이면 되고 되고 되어가는 것이다. 거드나기의 우리 토착 사상도 다 이런 데서 생겨난 것 같다. 꿀벌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되어 있어 발전이 없다. 언제나 육각형 집만 짓는다. 하지만 사람은 여러 기지 기능의 집을 짓는다. 인간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도 없고 사자의 강한 힘과 이빨도 없다. 고양이만한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타조처럼 뛸 수 있는 긴 다리도 없다. 추위에 따뜻한 털을 가진 앙고라 토끼만도 못한 게 인간이다. 그러나 이런 결핍과 불완전성이 있기 때문에 무언가 만들었고 보완하는 기술과 문명을 만들어간다. 몇 만 년 동안 인간은 맹수의 발톱과 이빨을 대신하는 창을 만들고 총으로 발전시켜 인간과 동물의 위치를 역전시켰다. 겨우내 죽어있던 뻣뻣한 나뭇가지가 현란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니 어디에 숨어있었을까? 신은 꽃에게 아름다운 모양과 색채, 향내를 주셨지만 영혼과 움직임은 주시지는 않았다. 사람답고 사람 되는 한국인의 이상. 그 된 인간이야말로 영혼과 움직임과 말을 할 수 있는 꽃이 아니겠는가.
· 사람은 살다 동사에서 온 말이다. 얼다에 음을 붙여 얼음이듯이 살다에 암을 붙여 명사형으로 만든 말이 사람이다. 인생을 죽살이(죽고 사는 것)라 한 것은 죽음을 전제한 삶을 말한다.
· ‘빛을 보려면 눈이 필요해.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있어야 돼. 시간을 느끼려면 그건 마음이 있어야 돼. 마음이 없어 시간을 못 느끼면 그 시간은 없는 것과 같아’ 미카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서. 이런 말을 한마디로 줄여 놓은 것이 우리말 ‘철’이다. ‘철’을 영어로 번역하면 계절이다. 칭찬할 때 “철 들었네.” 꾸중할 때 “언제 철 들래.”하는 철은 얼음이 풀리면 한 철이 지나고 꽃이 피면 한 철이 들어온다, 우리 마음속에도 철이 가고 온다. 철이 와도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철 들 수 없다.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없으면 “너, 나이 헛먹었구나.‘한다. 사람은 두 개의 몸무게를 가지고 산다. 저울로 달 수 있는 무게와 마음으로 다는 시간의 무게. 그래서 마음이 풍부하고 인격 있는 사람을 무게 있는 사람이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과실은 철이 안 든 과실.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철 모르는 사람들,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오도 그 빛의 변화도 보지 못하고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눈 멀 듯이 마음 멀었다는 말이다.
· 옳은 말, 공감 가는 말을 하면 말 되네 한다. 말되네는 말이 제대로 통하는 사회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것이 유표화 되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더 많이 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되는 쪽이 유표화 된다. 남성 우위 사회에서는 교수, 작가가 대부분 남자라서 여자일 경우 여교수, 여류작가라 한다. 이것을 언어학에서 유표화라 한다. 친족 호칭도 외할머니. 친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