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에서 만난 사람들 / 김석수
아침 일곱 시 반에 호텔 앞으로 관광버스가 왔다. 서양과 인도 사람이 많이 타고 있다. 가이드는 영어가 서툴렀다. 그는 가는 동안 여행 일정만 말하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버스가 호찌민 시내를 빠져나올 무렵 옆좌석에 앉은 서양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이며 이름은 산트로(Santro)라고 한다. 이탈리아 밀란 대학교수로 일하다 은퇴했다. 지금은 중국 쑤저우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다. 도시 계획을 전공했으며 도시 설계를 직접 해본 경험이 있다. 그는 “서양 건축 양식의 70퍼센트 이상이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메콩강 하류 삼각주 근처까지 왔다.
호찌민에서 메콩강 선착장까지 버스로 두 시간쯤 걸렸다. 강은 크고 넓은 호수 같다. 강물은 황토색이다. 잔잔하게 흐른다. 티베트 고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곳까지 흘러왔다. 중국과 동남아 다섯 나라에 걸쳐 있는 강이다. 최근에 상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댐을 만들어서 물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곳은 땅이 기름져서 곡식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강변과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많다. 크고 작은 배가 사람과 물건을 싣고 다닌다.
버스에서 내려서 매표소로 들어갔다. 가이드는 표를 주며 강 건너가는 배를 타라고 한다. 나는 머리가 하얀 서양 사람 옆 좌석에 앉았다. 그는 반갑게 인사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으며 지금은 은퇴해서 태국에서 산다고 한다. 이름은 호세(Jose)라고 소개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시각 장애인을 돕는 비영리 기관에서 관리자로 20여 년 동안이나 일했다. 방콕에서 차로 세 시간쯤 걸리는 화인(Hua Hin)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베트남은 처음 왔으며 물가가 싸서 좋단다.
내가 작년에 퇴직했다고 했더니 참고하라며 그의 은퇴 생활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취미는 오토바이와 승용차 운전이다. 집에 오토바이 두 대와 차 한 대가 있다. 날마다 오전에 오토바이와 차를 번갈아 타고 해안가 도로를 달린다. 경치 구경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비치발리볼을 즐긴다. 경기가 끝나고 일몰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그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한 달 생활비는 집세 포함해서 천 오백 불(약 2백만 원 정도)이다. 미국 생활과 비교하면 가성비가 높아서 만족한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늘을 쳐다보니 파랗고 뭉게구름이 둥둥 떠 있다. 강은 짙은 황갈색이지만 더럽지는 않은 것 같다. 건너가니 코코넛 농장이다. 잎이 축 늘어진 야자수와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사이를 지나니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코코넛으로 만든 과자와 우뭇가사리를 시식하라고 권한다. 열대 과일과 코코넛 과자도 한번 먹어 보라고 한다. 나는 코코넛으로 만든 캐러멜을 맛보았다. 먹을 만해서 한 봉지 사려고 하니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농장에서 나와 베트남 민속 공연 장소로 갔다. 두 명의 여자 가수와 네 명의 남자 악기 연주자가 공연했다. 가수는 슬픈 곡조로 노래를 불렀다. 베트남 말을 몰라서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 얼굴 표정으로 봐서 한을 노래하는 것 같다. 맨발의 남자는 해금처럼 생긴 악기를 빠른 손놀림으로 연주한다. 다른 사람은 만돌린과 기타처럼 보이는 악기를 연주했다. 공연이 끝나자 뱀을 목에 건 남자가 나왔다. 그는 관람객에게 만져 보라고 손짓한다. 나는 징그러워서 고개를 돌렸으나 딸은 손으로 만져 보고 뱀이 냉혈 동물이라 차갑다고 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밀림으로 들어가 곤돌라를 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탔던 것과 비슷하다. 한 배에 네 명 혹은 세 명을 태운다. 배마다 노를 젓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능숙하게 운전하면서 알 수 없는 말로 흥얼거린다. 한쪽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배를 매끄럽게 운전한다. 십여 분 지나니 숲에 집 한 채가 있다. 짧고 서툰 영어로 자기 집이라고 한다. 장독대가 있다. 강에서 잡은 고기로 젓갈을 담근다고 한다.
밀림 투어를 마치고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 식당으로 갔다. 창문이 없고 지붕만 있는 간이 시설이다. 큰 원형 식탁 아래 의자가 여러 개 있다. 내 옆에 산트로와 호세가 앞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두 사람 앉았다. 스웨덴에서 사는 인도 사람과 독일 베를린에서 온 젊은 남녀도 있었다. 호주 브리즈번과 영국 런던에서 온 사람도 함께했다. 채소 무침과 수프가 먼저 나왔다. 다음에 물고기와 닭튀김이다. 흰쌀밥도 큰 그릇에 한 대접 주었다. 술과 차도 마실 수 있다. 기대보다 푸짐했다. 인도 사람은 채식주의자라 다른 그릇에 따로 차려 주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소개한 다음 식사하면서 즐겁게 이야기했다. 호세와 산트로가 말이 많았다. 우리 셋이 나이가 비슷하고 다른 사람은 대부분 젊다. 차를 마시면서 각자 여행했던 베트남 이야기를 했다. 서양 사람이 생각하는 베트남을 알 수 있은 좋은 기회다. 이구동성으로 물가가 싸서 좋다고 한다. 어디 가나 젊은이가 많다. 신선한 열대 과일이 많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친절하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했다.
안 좋은 면을 이야기하면서 화제가 교통 문제로 옮겨 갔다. 산트로는 여기에서 차 운전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호찌민 시내 도로에 중앙선이 안 보인다고 했다. 안전하게 운전하도록 도시 계획을 세워 도로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세는 중앙선은 있으나 지키는 운전자가 없다고 한다. 시민이 교통 법규를 지키도록 경찰이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여기서 운전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교통질서가 잘 지키면 경제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메콩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호세를 만나러 태국에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