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그는 우리 문단의 거인이다. 27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가 우리 문단에 남긴 영향력을 나는 감히 누구와 비교해야 할지 의문스럽다.
김해경(金海卿). 이것은 이상의 본명이다. 그의 필명과 달리 본명에 대한 의문점은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의 필명 이상(李箱)은 아직도 그 유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건축현장에서 일본 인부들이 김해경의 성을 '이'씨로 잘못 알고 '이'씨의 일본식 발음 '이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있는 한편 최상 최선의 목표를 의미하는 理想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밖에도 많은 설들이 있지만 단지 설에 불과하다. '이상'이라는 필명이 유래한 것에는 아주 독특한 사연이 있다.
이상에게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생인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구본웅(具本雄). 구본웅은 몸이 불구이고 약해서 학교에 꾸준히 나가지 못해 나이는 이상보다 4살이나 위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꼽추이고 4살이나 나이가 많은 구본웅과 아무도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지만 이상은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었으며 이상은 구본웅을 4년 선배로 깍듯이 예우했다. 그렇게 그들은 특별하고도 아주 진지한 우정을 쌓아갔다.
동광학교를 거쳐 1927년 3월에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현재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다. 그의 졸업과 대학입학의 축하선물로 구본웅은 사생상(寫生箱)을 선물했다. 사생상이란 스케치박스를 말한다. 그간 사생상을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했던 이상이 사생상을 선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구본웅에게 고마운 나머지 자신의 필명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箱자를 넣겠다고 흥분했다. 김해경은 아호와 필명을 함께 쓸 수 있게 호의 첫 자는 흔한 성씨(姓氏)를 따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구본웅도 흔쾌히 동의하자 김해경은 사생상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성씨 중에서 그 성씨를 찾기로 했다. 두 사람은 권(權)씨, 박(朴)씨, 송(宋)씨, 양(楊)씨, 양(梁)씨, 유(柳)씨, 이(李)씨, 임(林)씨, 주(朱)씨 등을 검토했다. 김해경은 그 중에서 다양성과 함축성을 지닌 것이 이씨와 상자를 합친 '李箱'이라 생각했고 구본웅도 그 절묘한 배합에 감탄했다.
이상은 구본웅에게 아호의 동기와 필명의 유래에 대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상은 구본웅에게 그렇게 부탁하고는 아호의 유래를 묻는 사람에게 제각기 다르게 설명하고는 속으로 낄낄거리며 재미있어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구본웅이 입을 다문 까닭에 당대의 문필가들에 의해 전해진 이씨설(李氏說)이 정설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구본웅은 그의 숙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결국 진실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시인들의 시를 읽고 느끼고 감동 받지만 정작 그 시인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단지 시뿐만 아니라 그 시를 지은 작가에 대해서 작가가 왜 시를 지었는지, 그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하는 것들을 좀 더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출 처 : [도서] 신동아 2002년 11월호 p.630 ~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