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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구분 - 시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과 공간
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
예술의 분야는 문학, 음악, 미술, 건축, 무용 등으
로 매우 다양하다.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은 : 문학, 음악, 무용
공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 : 회화, 조각, 건축
고전주의(절대주의) : 이성을 통해 그림을 그리
려는 화풍. 조화, 균형, 비례, 법칙을 강조한다.
낭만주의(상대주의) : 개인의 내면과 개성을 존
중해 화가의 주관적 표현 방식을 중시하고 격
정적이고 정서적인 모습을 보인다.
현대 미술(회의주의) : 회화의 내용적인 측면부
터 형식적인 측면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고대미술 - 그리스 미술, 헬레니즘, 로마미술
고대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대표로 한다.
이집트인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드러
내고자 했던 것이 신의 속성으로서의 영원성이었
다면, 그리스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
들은 조화와 균형을 통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수
단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은 조각이나 건축에서 성
과가 컸다.
그리스 미술이 한층 더 변화하고 발전 할 수 있었
던 계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 건설이었
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건설된 대제국의 문화를 헬
레니즘이라고 한다. (헬레니즘 : 그리스 문화와 같
은 문화)
그리스 문화에 기반하지만 대제국 건설로 인해 서
양과 동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되었고, 교류
와 융합을 거쳐 새로운 미술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후 대제국의 헬레니즘문화는 알렉산드로스 대
왕이 서른세 살에 요절하면서 와해되어갔고,
결국 신생 제국으로 떠오르던 로마에 흡수되었다.
정리해보면 고대 미술은 그리스 미술, 헬레니즘,
로마 미술로 이어지는 예술로서,
기본적으로 그리스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다양한 소재와 기교 속에서도 그 근본은 조화와 균
형, 비례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그리스 정신
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미술 : 그리스 미술 -> 헬레니즘 -> 로마 미술
중세 미술 -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 로마
네스크, 고딕
중세가 되면서 아래 두가지 이유로 그리스, 로마
미술은 자취를 감춘다.
1. 중세 초기라 할 수 있는 5백여 연간은 전쟁과 약
탈이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이러한 정치
적 혼란 속에서 예술이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2. 그리스도교의 탄생 배경과 관련된다. 그리스도
교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은 종교와 관련
되지 않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세 초기의 미술은 단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
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었다.
11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그리스도교가 유럽 전역
을 장악하자 거대한 교회 건축이 빈번해지고, 이
에 따라 건축술과 예술도 함께 발전한다. 당시 건
축과 미술 양식을 로마네스크라고 한다.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건축물로는 이탈리아의 피
사에 있는 피사 대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가 이렇게 두껍고 육중한 모습을 띠게
된 데는 종교 해석적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이유가 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당시의 교회는 지상에 만든 신
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교회라는 공간은 실제로 신이 내재할 수 있는 곳으
로, 악한 세계로부터 종교적 이념을 보호하는 전
투적 공간이었다.
건축상의 이유로는 아직 건축 공법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던 까닭에 건물을 높게 올리기 위해
서는 그 무게를 지탱할 기둥과 벽도 함께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다.
11~12세기의 2백여 년 동안에 로마네스크 양식
이 유행했다면, 이후 2백년 간은 고딕 양식이 유행
했다.
천장이나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과 골격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벽의 두께는 얇아졌고, 높고 아찔한 첨탑들이 들
어섰다. 벽이 얇아지면서 큰 창문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창을 막은 유리에 장식을 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크고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의 샤르트르 대성당
르네상스 미술 -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로코코
르네상스는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 대한 저항으
로부터 시작되었다.
중세의 주인공인 왕과 영주들은 물질적으로 장원
을 소유함으로써 지배 권력을 획득하고,
정신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얻었
다.
이들과 대립하며 성장한 부르주아는 새로운 생산
수단으로서 공장을 소유하면서 물질적 측면에서
권력 기반을 확보했으나, 정신적 측면에서는 아직
종교에 종속되어 있었다.
부르주아는 신을 대체할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탐
색했고, 결국 인간의 이성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
다.
부르주아가 인간 이성의 회복을 위해 지향한 문화
는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였다.
르네상스는 '부활'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데, 여기
서의 부활과 재생은 도개 문화의 부활과 재생을 말
하며,
동시에 인간적 가치의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이 문예부흥운동은 전 유럽
으로 확산되었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변화 시도)
초기 르네상스 미술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인
체를 묘사하려고 노력했고, 정확성에 치중했다.
화면 속의 개별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
러진 반면 그림 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에는 아직 소
홀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로,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그는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인
물이었다. 평생 동안 삼십 구 정도의 시체를 해부
함으로써
인간의 골격이나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히 이
해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인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또한 공기 원근법의 이론을 정립해서 2차원의 평
면에 깊이감을 강화하기도 했다.
원근법은 선원근법과 공기 원근법이 있다.
선원근법 - 평면에 대각선을 그려서 물체가 점
점 작아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소실점을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앞의 물체는 크게, 뒤의 물체는
작게 그리는 방식
공기원근법 - 가까이 있는 물체는 선명하게 보
이지만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공기로 인해 푸른
색이 가미되고 채도가 낮아져 윤곽이 희미해지
는 현상을 표현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이외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미
켈란젤로다.
레오나르도가 회화에 집중한 반면, 미켈란젤로는
조각에 집중했다
르네상스 미술은 교회에 종속되어 있던 수단으로
써의 예술에서 벗어나,
미켈란젤로 - 피에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예술 그 자체의 가치
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14~16세기의 르네상스 미술 이후 17세기와 18세
기는 각각 바로크와 로코코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미술이 이성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바로
크와 로코코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 사조였다.
다만 바로크는 무겁고 어두운 반면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는 차이가 있다.
르네상스 미술이 고전적인 균형과 조화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바로크는 유동적이고 강렬하며 장식적인 예술을
추구했다.
카라바조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루벤스 - 십자가에서 내려지심
18세기가 되면 바로크의 감성적 측면을 이어받지
만,그 표현의 무게감과 강렬함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섬세하며 에로틱한 로코코가 등장한다.
로코코는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전 유럽에 유행했
는데, 그것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789년 프랑스혁명 무렵 왕권이 약화되고 부르주
아가 세상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예술가들도 왕실을 위한 그림보다는 부르주아나
귀족이 향유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그림은 부르주아와 귀족의 주거 장
식을 위해 아늑하고 감미로운 동시에
에로틱한 감성의 밝은 화풍이 주를 이룬다.
초기 근대 미술 -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초기 근대 미술은 로코코의 퇴폐미에 대한 저항으
로 시작된다.
로코코의 감성적이고 유약하며 여성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이 다시 예전의 고대 미술이나 르네상스
의 이성적이고
강인하며 남성적인 모습으로의 회귀를 낳은 것이
다.
이들은 예술의 뿌리가 되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
술로 돌아가고자 했기에
'신고전주의'로 불린다. 그리스, 로마 미술로의 복
귀가 이들의 추구 점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왕이었던 루이 16세의 정책에
있다.
루이 16세는 프랑스 로코코의 향락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엄숙하고 계몽적이며 애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국가적 차원에
서 화가를 양성했다.
이 아카데미에 소속된 화가들은 매년 두 차례 열리
는 살롱전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 살롱전에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품은 언
제나 성경, 신화, 고대사 등을 다루는 역사적 작품
이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살롱전으로 프랑스 사회에서
막대한 인지도와 영향력을 쌓은 인물이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다비드다.
다비드 이외에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은 앵
그르다.
고대 미술은 남성의 근육이나 누드를 미적 대상으
로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앵그르는 여성의 누드를
주로 그렸다.
앵그르 이후 회화에서 남성 누드는 거의 사라지고
여성 누드가 프랑스 예술계를 지배했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이성적이고 엄숙하며
절대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신고전주의가 고대를 모방하고 재현하려고만 할
뿐, 개인의 감성과 주관의 탁월성을 소홀히 했다
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창작자의 주관과 표현을 강조하고 자유
로운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그림의 대상으로 하는
낭만주의 미술이 탄생했다.
감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바로크, 로코코와 유사
한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화가의 강렬한 내면을 외
부 세계에 투영하다는 측면이 강했다.
제리코 - 메두사호의 뗏목 /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후기 근대 미술 -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실주의
사실주의는 리얼리즘과 같은 말로, 낭만주의가 보
여주는 극적이고 과장된 미적 양식에 대한 저항으
로부터 탄생했다.
여기서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
을 똑같이 그려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릴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의 '사실'을 추구
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쿠르베 - 오르낭의 매장 / 돌깨는 사람
표현 방식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이념
성으로 결국 20세기가 되면 사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를 추구하는 공산주의
정치 이념을 대변하게 된다.
미술이 미의 추구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이념 전달
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중세 암흑기의 교회 미술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도 볼 수 있다.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낭만주의와 같이 상대주의적 미술로
분류했으나,
인상주의는 고전주의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에 대
해서도 저항하며 탄생했다.
낭만주의의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화풍을 거부
하고 일상적인 삶과 자연을 그려내려고 했다.
다만 사실주의가 민중의 가난과 노동이라는 정치,
경제적인 측면의 소재를 채택함으로써 이념적인
측면이 드러난다면, 인상주의는 단지 눈에 '보이
는' 것을 가감 없이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
이가 있다.
모네 이외에도 같은 시대에 인상파로 분류된 화가
들로는 마네, 르누아르, 드가, 로댕 등이 있는데,
이들은 보통 전기 인상주의로 불린다.
전기 인상주의 단계를 거쳐 독자적이고 다양한 방
법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서려고 노력한 화가 집단
을,
인상주의 이후에 나타난 화가들이라는 의미로
후기 인상파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는 고흐, 고갱, 세잔이 있다.
세잔은 근대를 마무리하고 현대 미술을 탄생시키
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세잔이 의도적으로 관점을 어긋나게 한 것은 그가
정말로 그리고자 한 것이
순간의 인상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이었기 때문이
다.
인상주의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그림은 한 명의 화
가의 단일한 시선이다. 이때의 주인공은 화가가
된다.
회화는 화가 중심의 세계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세잔이 그리고자 한 것은 사물 그 자체의 본질로,
그림의 주인공은 사물의 본질이 된다.
세잔의 이러한 선구적인 작업은 후에 현대 입체파
와 추상미술을 탄생하게 함으로써
현대 미술이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현대미술 - 입체파와 추상미술
후기 인상주의 이후 20세기가 되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미술 형식과 예술 철학들이 다채롭게 발
생한다.
고흐와 고갱의 원색적인 색채와 화가 내면의 강렬
한 정신은 각각 야수파와 독일의 표현주의로 발전
하고,
세잔의 사물을 분석하고 하나의 화폭에 두 개 이상
의 시점을 한 번에 담아내는 표현 방법은 입체파로
계승된다.
이밖에도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영미의 다다이즘
과 초현실주의까지
현대 미술은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발전해나간다.
현대 미술을 단순화해서 한마디로 정리하면 '새로
움에 대한 강박' 정도가 될 것이다.
입체파
큐비즘이라고도 부르는 입체파는 파리에서 일어
났던 미술 혁신 운동이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사물의 기하학적 분
석과 다양한 시점의 적용을 도입한 이래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 큐비즘이다. 대표적
인 작가로는 피카소가 있다.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 게르니카
추상미술
입체주의는 그림의 대상을 분석하고 새롭게 재구
성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으나,
어쨌든 특정 대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구상미술의
오랜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는 실재하는 대상을 화폭
에서 완벽하게 제거하고,
색의 덩어리와 단순한 선과 면으로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추상미술은 세계대전 동안은 주춤하다
가
1940년대 이후가 되면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로
발전하여 현대 미술을 주도한다.
오늘날의 미술 - 예술의 주체를 흔들다.
오늘날의 미술은 미술의 주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주체를 흔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림 그리는 '화가의 행위 자체'를 예술로 규정
한다 (ex. 잭슨폴락의 액션페이팅)
주체를 아예 없애는 것 (자동기술법, 자동 묘법)
이성에 의한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적인 무념무
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
는 것 (ex. 데칼코마니)
주체를 집단화하는 것 - 다수가 작품에 참여하
고 그로써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단정적으로 정리한다면 현대 예술은 '미의 추구'
라기보다는 '새로움의 추구'다.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우선 예술의 대상을 변화시켰고, 다음으로 예술의
주체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대상과 주체가 탐구되는 동안 일부 예술가
들과 평론가들은 '예술의 의미'를 탐구하는 독자
적인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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