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며] ㅡ폭탄 재앙ㅡ '코로나19' 바이러스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3초에 1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하는 이번 바이러스는 쉽사리 소멸되지 않고 있다. 소리 없는 폭탄이다.
자고나면 오르는 수도권의 아파트는 세금 폭탄을 예고해도 내려갈 기미가 없다. 경기는 하강곡선인데도 기현상이다.
중부 지방과 강원도 일부는 5일 동안 700mm의 물폭탄을 맞아 재해와 수재민이 생겼다. 상류의 댐 방류로 한강 둔치의 공원들이 물에 잠겼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핵폭탄 같은 화학 물질이 폭발했다. 수천 명이 다치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겨 아수라장이다.
자주 다니던 인사동 길을 반 년 만에 걸음했다. 광진미협 회장인 강화산 작가의 개인전을 오픈하는 날이다. 아침까지 퍼붓던 폭우는 다행히 오후엔 잠시 멈췄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던 인사동은 거리두기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임대로 내놓은 빈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수요일이면 작품 전시 오픈하는 날이라 음식점마다 인산인해인데 그렇지 않다. 주범인 '코로나19' 때문이다.
ㅡ선율ㅡ 골목 안 챠콜색 건물 '광주전남갤러리' 3층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캔버스의 팽팽한 줄에서 음율을 느낀다. 이야기가 담긴 작품에 리듬이 있다. 주제는 '우연의 지배ㅡ소네트'다.
맹수는 아무때나 제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회남자에서 이른다. 자신에게 장점이 있다거나 강하다고 강자인 척하지 않는다. 겸손한 작가는 묵묵함을 철칙으로 삼는다. 남보다 뒤에 있지만 어느새 한 걸음 앞서 있는 작가다. 너그럽고 넉넉한 그의 가슴은 바다다. 빛이 나도 눈부시지 않는다.
'우연의 지배'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내생각). 이기적이지 않고, 평소 드러내지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서 그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의 변주일 뿐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색다르게 창조한 새것이다. 이후에도 그 이상의 기법은 없으리라 정의를 내린다.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와 함께 어울어진 8인조 연주회는 마음과 시선을 모은다. 작품과 교량 역할을 하는 악기들은 갤러리의 공간을 가로지른다.
체코와 독일, 이탈리아는 음악의 정서가 깊은 나라다.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나 유정아 아나운서가 쓴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에서 음악가들과 만난다. 귀에 익은 곡조가 서서히 흐른다. 작품이 악기의 소리를 대변해 준다. 소리 없는 울림이다.
체코 국민음악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가 지은 세레나데, 교향곡 대가인 독일 출신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로망스가 이어진다.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를 듣는 종자기의 귀가 된 갤러리들이다. 그림이 표현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악기의 소리로 대신해준다. 연주에 행여 방해가 될까봐 숨소리마저 줄인다.
지난 달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영화음악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1928~2020)의 영화 음악이 갤러리 안을 잠시 흥분시킨다. 긴 박수의 답례로 '시네마 천국' 영화 OST 삽입곡을 앙코르 연주한다.
음악이나 그림도 예술이자 철학이다. 작가의 희노애락이 들어 있다. 오늘 전시된 소네트에 마음으로 그려논 악보를 올려 본다.
삼복지절에 주절주절 이야기거리가 많다. 계절이 바뀌면 소네트 작품에 어울리는 서정적이고 담백淡白한 시조 한 수 얹어 보려고 한다.
긴 터널의 코로나, 장마와 더위가 겹친 여름에 풍요롭던 미술에 결핍된 갤러리의 기분을 전환해 준 소네트!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보라고 캔버스에 와이어 줄을 이어 놓았다.
어느 때 보아도 과하지 않은 무욕의 미소, 그냥 뒤돌아서기가 아쉽다. 작가의 예술 정신 세계는 소네트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