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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장 여섯을 하나로 (2)
'화씨(和氏)의 벽(璧)'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천하의 보배였다.
그런 귀중한 것을 초위왕(楚威王)은 영윤인 소양에게 하사하여 제(齊)나라를 쳐 이긴 공로에 보답한 것이다.
소양(昭陽)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없이 컸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집 안에 들었을 때도 집 밖으로 나갈 때도 언제나 '화씨(和氏)의 벽(璧)'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양(昭陽)은 도성 밖 적산(赤山)으로 놀러갔다.
함께 따라간 빈객과 수행원만도 1백 명이 넘었다.
적산(赤山) 아래에는 커다란 못이 하나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강태공(姜太公)이 낚시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 못가에 누각이 한 채 세워져 있었는데, 소양(昭陽)은 바로 그 누각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모두가 얼큰히 취했을 때다.
빈객 중 한 사람이 소양에게 술을 따르며 청했다.
"영윤께선 늘 화씨(和氏)의 벽(璧)을 가지고 다니신다지요? 저희들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 그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기회에 한 번 보여주십시오."
흥취가 난 소양(昭陽)은 시종을 불러 화씨의 벽을 가져오게 했다.
시종은 수레로 가 상자 하나를 소중히 들고 왔다.
소양이 상자를 열자 아름다운 옥 하나가 나타났다.
"아.....................!"
천하의 보배라 불리는 화씨(和氏)의 벽(璧)은 과연 기묘한 광채를 뿜어내며 사람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화씨의 벽을 감상하느라 자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못에서 고기들이 마구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소양(昭陽)은 고개를 돌려 못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1장(丈)이 넘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수면 위로 다투듯 뛰어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장관(壯觀)이로다!"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군무(群舞)에 소양과 빈객들은 완전히 정신이 팔렸다.
잠시 후 그들이 다시 술상 앞에 둘러 앉았을 때였다.
"화씨(和氏)의 벽(璧)이 없어졌다!"
소양(昭陽)은 안색이 변했고, 누각 안은 난리가 났다.
모두들 일어나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한 번 사라진 화씨(和氏)의 벽(璧)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양(昭陽)은 노기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부중(府中)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사람들을 불러놓고 명했다.
"풀을 헤치고 돌을 들춰서라도 화씨의 벽을 훔쳐간 놈을 잡아들여라."
며칠이 지났다.
잃어버린 화씨(和氏)의 벽(璧)으로 인해 매일같이 시달림을 받던 한 문객이 소양을 찾아와 말했다.
"문객 중 한 사람의 소행이 분명한데, 우리 주변에 그럴 만한 짓을 할 자는 장의(張儀)밖에 없습니다. 그는 몹시 가난합니다. 가난한 자가 그런 귀중한 보물을 보았는데, 어찌 탐나지 않겠습니까?"
소양(昭陽)은 그 말을 믿고 즉각 장의를 잡아들여 화씨(和氏)의 벽(璧)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장의(張儀)는 억울하다는 듯 변명했다.
"저는 그 날 화씨의 벽을 만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이실직고할 때까지 저놈을 몹시 쳐라!"
장의(張儀)는 졸지에 곤장 수백 대를 맞고 기절했다.
소양(昭陽)은 장의가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매질을 중단했다.
친구 한 사람이 가냘프게 숨만 쉬는 장의를 업어 그의 집에다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장의(張儀)는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곁에서 간병하고 있던 아내가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당신이 오늘날 이 같은 곤욕을 당한 것은 다 그 빌어먹을 유세술(遊說術)인지 뭔지 때문입니다. 그런 것만 배우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지금쯤 농사를 지으며 편안히 살고 있을 것이요, 오늘과 같은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때 장의(張儀)의 대답은 너무나 유명하다.
내 입안을 들여다 보시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소?
<사기>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기록되어 있는 대답이다.
이 대답은 당시 유세가들이 어떠한 사고를 지녔는가를 가히 짐작하게 해준다.
장의(張儀)가 입을 벌려 들이밀자 아내는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혀는 붙어 있구려."
그 대답에 장의는 또 한 번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소."
몇 달이 지나 장의(張儀)의 몸은 완쾌되었다.
그는 더 이상 초(楚)나라에 머물 마음이 사라졌다.
아내를 데리고 회양을 떠나 다시 위나라 대량(大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할 때 하나의 소문이 나돌았다.
- 소진(蘇秦)이 조나라 재상이 되었다고 한다.
장의(張儀)는 친구이자 동문인 소진(蘇秦)이 출세했다는 소문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소진을 찾아가 벼슬 자리를 부탁해볼까?'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
'아직 소문이 확실치도 않지 않은가?'
그렇게 한 달여를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장의(張儀)는 집을 나서다가 문 앞에 수레를 멈추고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보았다.
행색으로 보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상인 같았다.
그 상인은 장의를 보자 다가와 몇마디 길을 묻는 척하더니 슬며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렸다.
"어쩐지 선생의 낯이 익습니다. 혹시 조(趙)나라에서 사신 적은 없습니까?"
장의(張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나는 원래 위(魏)나라 태생이오. 한데 그대는 누구시오?"
"저는 조나라의 상인 가생(賈生)이라는 사람입니다."
장의(張儀)는 조나라라는 말에 귀가 번쩍 트이는 듯했다.
"조(趙)나라에서 왔다면 소진이라는 사람을 아시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진(蘇秦)이 조나라 재상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구려."
가생(賈生)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선생은 소진 재상을 아십니까? 우리 나라 재상과 친분이라도 있으신지요?"
"있다마다요. 소진(蘇秦)은 지난날 나와 함께 동문수학한 친구라오. 정으로 말하면 형제간보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이요."
"아, 제가 그런 분인 줄 몰라뵈서 송구합니다. 그런데 선생께선 여기서 뭘 하고 지내십니까?"
장의(張儀)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아직 때를 얻지 못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소."
가생(賈生)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우리 나라 재상과 가까운 사이라면서, 또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어째서 조(趙)나라로 가 소진 재상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알기로 소(蘇) 재상께서는 그리 야박한 사람이 아니십니다. 옛 동학(同學)이 찾아오면 반드시 조나라 임금께 천거할 것입니다."
"그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소문의 진위가 확실치 않아서 알아보고 있던 중이외다."
"그렇다면 잘 되었습니다. 조나라 재상이 소진(蘇秦)인 것은 제가 증명해 드렸고, 저 또한 물건을 다 팔고 이제 조(趙)나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선생께서 저같이 미천한 것과 동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이 수레로 선생을 모시고 조나라로 들어가겠습니다. 선생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장의(張儀)로서는 손해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자존심이 나를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 말대로 조(趙)나라로 가 소진에게 부탁을 해보자.'
결국 장의(張儀)는 수레에 올라 가생과 함께 조나라를 향해 떠났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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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