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 (1995) 를 보고
감독: 리처드 링글레이터 배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러닝타임: 1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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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궁금했던 영화였는데 이번에 제대로 보았습니다. 100분 정도의 짧은 영화고 로맨스, 드라마 영화입니다.
잡담.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 남녀의 잡담을 듣는겁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것이 영화를 보는 건지 듣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영화의 전반이
남녀의 잡담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둘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에요. 제가 커플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남녀라고 한 이유가 있죠. 둘은 우연히 만났고 말이 잘 통하면서 하루 종일 같이 비엔나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잡담을 나누는 겁니다.
비포 선라이즈.
해가 뜨기 전까지 내내.. 말입니다. 참 대단하죠. 기차에서 처음 만나서 말문이 트였는데.. 그렇게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 비엔나라는 도시에서 같이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개인적인 시각에서 둘은 잠시의 일탈이 필요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처음만난 어떤 이와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잡담을 나눌 수 있을지.. 설정부터 인상깊네요.
해가 뜨기 전까지.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더 이야기해볼게요. 영화의 제목은 '해가 뜨기 전' 입니다. 매우 적절한 제목이에요. 이 둘은 위에서 말씀드렸듯 기차에서 우연히 만났고 말이 잘 통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어요. 둘은 그렇게 눈이 맞아 비엔나라는 도시에 내려 자유로이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비엔나에 무엇이 유명한지, 어떤 장소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저 곳곳을 돌아다니며, 골목을 거니며.. 목적지없이 돌아다니는 거에요. 그동안 둘은 내내 잡담을 나누죠.
그러나 이 둘은 목적이 있기에 기차를 타고 있었던 것이지 않겠습니까? 남녀는 목적없이 비엔나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본래 그들에게는 목적지가 있고 살고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입니다. 오직 하루동안만 둘은 같이 길거리를 거닐며 잡담을 나눌 수 있어요. 비엔나의 길거리를 거니는 것도 갑작스레 둘이서 잡은 계획이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지를 잠시 잊고 일탈을 감행한 것이기 때문에 하루라는 빠듯한 시간이 있죠.
둘은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친밀도를 높여가고.. 하루가 짧다는 것을 느낍니다. 둘은 해가 뜨기전까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비엔나를 구경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죠.
그래서 제목이 비포 선라이즈, '해가 뜨기 전' 입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둘은 오붓한 감정을 나누며 사랑을 느낄 수 있죠.
연락의 폭이 좁던 시절.
이 영화는 1995년에 개봉했습니다. 당시에 컴퓨터야 있었죠. 그렇다고 완전히 누구나 쓰던 것이었나요? 대중화되기 직전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SNS가 없습니다, 연락을 쉽고 간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던 시절입니다.
그렇다보니 지금 우연히 만나면 대충 서로의 SNS로 친구를 맺거나 연락처를 공유하겠지만 이 둘은 그런 매개가 느슨합니다. 시대가 시대니깐요.
그런데 조금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죠. 둘은 어떻게든 찾아보면 연락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둘은 적극적으로 그 방법을 모색한다는 느낌은 덜해요. 왜일까요?
잠깐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데 둘은 내내 비엔나를 돌아다니며 잡담을 나누고 친밀도를 쌓아도.. 장기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내..
이 시간은 잠깐의 일탈이야.
라고 서로 생각하는 느낌이랄까요? 장기간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동안만.. 오붓한 감정을 느끼고, 잠깐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헤어지고 싶어하는 남녀의 모습이 은근히 느껴집니다.
재가 위에서 시대탓을 하면서 둘에게 있어 연락의 고리가 느슨하다고 했지만.. 어떻게보면 아닐지도 모릅니다. 둘은 충분히 연락할 고리가 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는다는 느낌이 갑자기 드는군요.
저는 이 남녀의 이러한 생각이.. 영화의 서정성을 부각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우연히 만난 이성과 사랑하게 되고 장기간 만남으로 이어진다면 불안감이 듭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났건만 금세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제가 들었던 생각인데 그 생각을 이 남녀도 똑같이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둘은 잠깐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보고나서 싱숭생숭해지게 하는 포인트라고도 생각이 들고, 상당히 현실적인 감정선이라고도 생각이 들거든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이성과 정말 황홀한 꿈과 같은 시간을 하루동안 보내고 있지만.. 이러한 시간도 일시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영원한 시간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슬퍼하며 이 시간을 잠깐의 꿈같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꿈과 같이 황홀한 시간.
남녀가 잘 꾸며입었나요?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후줄근.. 하고 대충 입은 것으로 보이죠. 그들의 일탈이 강조됩니다. 둘은 목적지가 있었지만 잠시 목적을 잊고 황홀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해요.
둘은 당일날 서로 처음만난 사이입니다. 그런 사이로 목적지를 잊고.. 그저 몸이 이끄는대로 이동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요. 잡담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내내 같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사랑이라는 것이 싹틉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몰입이 잘됐어요. 여러분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다가.. 서로 눈맞는 이성을 발견해서.. 그 이성과 하루종일 내내 같이 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다음날 새벽까지 고즈넉한 도시의 길거리를 거닐면 어떤 마음이 들것같나요? 오붓한 감정이 싹트고 주변의 풍경은 우아한 음악이 되어 옆에 있는 이성과 지신을 감싸줄겁니다. 동시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건지도 생각이 들 것 같고, 잠시 인생에 있어 최고의 황금시간, 사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에요.
영화의 설정, 분위기, 둘의 대화 모두가 그러한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오붓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영화는 그러한 느낌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어요. 그러한 분위기를 자연스레 연출합니다. 특히나 남녀에게서 느껴지는 .. 꾀죄죄한 느낌은 현실성과 현장감을 부각시켰어요. 그래서 더 몰입이 되었고 그들이 있는 세계관이 이해되었습니다.
잔잔하게 비엔나를 떠도는 남녀의 잡담을 듣는 시간.
맨위에서도 말씀드렸겠지만 이 영화는 듣는 것에 가까워요. 내내 남녀의 잡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께서 이 영화를 보실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요?
무작정 재미있게 보자.
이런 마음을 지니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실거면.. 잔잔하게 잠시 남녀의 인생사, 생각, 잡담을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세요. 그리고 어우러지는 둘의 오붓한 감정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몽환적인 밤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톡하고 건드려줄겁니다.
이 영화를 보실거라면..
듣고 느끼는 힐링의 시간.
이렇게 생각하시고 영화의 플레이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판타지스러운 로맨스를 추구하지 않아요.
이 영화가 로맨스영화지만.. 판타지스러운 로맨스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설정과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더러 남녀가 잡담을 나누면서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둘은 잡담을 나누며 판타지적인 로맨스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사랑에 있어 영원함은 없다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자연미와 진솔함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로맨스지만 수수하고 현실적이에요.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보통 로맨스를 아름답게 만들기위해서 온갖 MSG를 뿌리지만 오히려 이 영화의 로맨스는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서 더 몰입이 되고 서정적이었달까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건강한 웰빙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크게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남녀가 잡담하는 것만 있었던 영화였음에도 전혀 든게 없는 영화같다거나 부족한 영화라는 생각이 안듭니다. 사실은 신기해요. 크게 뭔가를 보지 않은 느낌임에도 만족스럽습니다. 훌륭한 로맨스 영화였어요.
아무래도 설정이 한몫을 했고, 영화의 전반이 잡담이다보니 인물에 대한 서정적인 감정이 커져 영화의 이야기가 화려하지않아도 느껴지는 깊이와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였어요. 추천합니다. 왓챠에있어요.
너무도 아름다워 꿈만 같은 오붓한 일탈.
-펌글입니다 |
첫댓글 미션님이 올려준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꼭 보고싶다는 감정이 생기네요.
잘보고 갑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