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이맘때이다. 중후한 나이인 40 후반에 들어선 그에게서는 회색빛 냄새가 풍겨 나왔다. '체 게바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독단을 믿는 그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어쩌면 나와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면식을 트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무래도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의 견실한 기업체를 이끌며 열심히 살아온 날 만큼이나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건만 공기 좋고 물 맑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귀퉁이를 찾아 든 이유는 건강 때문이라고 했다. 더욱 아픈 일은 그가 간암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하는 그의 아내 또한 골수암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했던가!
그런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바로 나의 아내가 단초였다. 발 치료사 자격증을 획득한 후부터 가족들에게 쏟던 정성이 자꾸만 방향을 틀더니 고통 속에서 하루를 견뎌내는 사람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내도 건강한 편은 아니다. 무리하지 않아야 하며 푹 쉬고 잘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푹 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은 없다. 그런 아내에게 환자로 그가 접수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와 만날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해 온 것은 바로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고 3이 되는 둘째아들을 위해 논술 쓰는 요령을 부탁하는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던 까닭은 바로 내가 현직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차례 부탁을 하는 바람에 무보수를 원칙으로 하고 시간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지도해 보기로 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같은 학년의 제자들에게 방학 논술특강이 준비되어 있기에 비교 평가해 보려는 속내도 들어 있었다. 녀석은 제법이었다. 논제의 핵심도 곧잘 꿰뚫었고 스키마를 이용한 문제 해결책 제시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토론 중에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피력해 나의 생각을 밀쳐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렇게 왕래가 시작되다보니 자연스레 그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겨났다. 사소한 일상사로부터 출발하여 경제 이야기며 정치 이야기며 사회 전반에 두루 만연된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인식들이 겹쳐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정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수록 눈동자가 빛나고 말의 속도가 빨라짐은 아직도 20대 초반의 갓 입학한 80년대의 386세대를 자명하게 보여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런 시간들도 속절없이 계절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다시금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같이 식사나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자식을 지도해 준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음도 숨기지 않았다. 거기에 그동안의 대화 속에서 나의 문제점을 발견해 낸 것이라며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한 가지 제의를 했다.
"정 선생님의 학생 중에서 한 명만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아이의 논술지도에 대한 답례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종종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나 급식비 를 내지 못하는 반 아이들의 어려움을 들었기에 많이는 아니더라도 그 중 어려운 한 아이 라도 돕고 싶은 제 마음입니다."
나의 깜냥에도 그 스스로가 원하는 도움이라서 거절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또한 얼핏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잃지 않는 맑은 눈망울들이 내 뇌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어떤 아이의 학비를 그에게 떠넘기게 되었다. 물론 나에겐 마음의 빚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었지만.
봄이 오는가 싶게 무더위가 밀려오고 그 여름의 끝자락에 걸려서 선선한 바람이 하늘에서 축복처럼 밀려올 때 그의 복부에 복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나빠지는 상태라서 수술을 시도해 보려했지만 이미 전신에 퍼져버린 암세포로 인한 부작용으로 고열이 계속되고 안타깝게 수술은 시도조차 무산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나서 다시 연락을 받았을 땐 저항력의 약화로 집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게 되었으니 삽사리 두 마리를 나에게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워낙 애견가인지라 마니아답게 그 개를 맡기로 하고 자그마한 트럭을 빌려 도착한 그의 집에서 수놈 청삽과 암놈 황삽을 이끌어 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 그는 무거운 몸을 움직여 두 마리 모두 차에 실은 뒤 안타까운 시선으로 안녕을 고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의 늦둥이 딸은 집 안에서 떠나는 삽사리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고 있었다고 했다.
차를 몰아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청삽은 자신이 묶인 줄을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황삽은 마음이 불안한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마도 낯선 길을 눈동자에 찍어 넣고 있는 듯싶었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차를 멈추고 다시금 줄을 확인한 후 집까지 가속도를 붙여 한걸음에 달려왔다. 낯선 곳, 낯선 우리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심란하게 요동치며 발버둥치는 두 삽사리에게 새 장소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혈통 있는 블루칩을 내장한 정말 멋진 삽사리로 빨리 내 보호막을 두르려는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돼지저금통장에 가득 채운 동전을 흔들며 기뻐할 때처럼 나의 우리를 꽉 메운 두 마리 삽사리가 가져다주는 포만감을 만끽하는 나만의 쾌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 애정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을 가다가도 어린 강아지를 보면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강아지를 쳐다본다. 개중에는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런 강아지를 갖고 싶어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내가 바로 그런 어린이었고 또 지금까지도 그런 어른이다. 이제껏 진도견 한 마리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나라 개의 특징을 조금은 파악하고 있다. 한 번 정을 들인 주인과 평생의 인연으로 살아가는 개가 바로 우리나라 토종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는 밥은 쉽사리 먹지도 않을 뿐더러 경계심을 늦추지 않기에 새롭게 어미견을 맞이한 후로 진심으로 대하며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 마음을 나누며 친해질 수밖에 없음을 나는 잘 안다. 진도견인 '신둥이'도 6개월이 넘은 어리지 않은 나이에 우리 집에 왔는데 8년이 지난 지금도 옛 주인을 기억한다. 아니,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옛 주인 둘이서 동시에 부르면 놀랍게도 옛 주인에게로 먼저 달려가 호들갑을 떨고 배를 보이며 난리가 아니다. 한 때는 그것 때문에 무던히 속을 태우기도 했지만.
청삽과 황삽도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 먼저 영역표시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여기저기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물론 꼬리는 흔들지 않았고 조금은 겁먹은 표정인지 살벌한 표정인지 아무튼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황삽의 엉덩이를 보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순간 포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암캐의 본능이었다. 우리 속에만 갇혀 있었기에, 아니면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주인이 아파서 삽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으리라.- 이제라도 발견을 했으니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는 든든한 신랑 청삽이 있고 나이를 파악해 보니 벌써 24개월이 되어 가고 있으니 어쩌면 이번 기회를 놓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삽사리의 특성과 유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찾아간 인터넷 속의 삽살개 홈페이지를 살펴가며 내 시선은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삽살개의 전설 때문이었다.
"아주 옛날 개를 좋아하던 한 노인이 커다란 누렁 삽사리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평소에 점잖았던 삽사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무엇을 보았는지 짖어대기 시작했다. 노인은 개 짖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니 평소에 점잖던 저 개가 왜 시끄럽게 굴고 야단이람! 노인은 영 탐탁하지 않아 아들을 불렀다. '이제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탓에 더 이상 저 개를 기를 수가 없구나! 네가 가지고 나가 어떻게 해 보거라.' 결국 삽살개는 주인의 아들 손에 이끌려 며칠을 더 살다가 죽게 되었다. 죽기 전 노인의 개는 아들네 집의 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가 나타날 때마다 온 힘을 다하여 짖어댔다. 그런 나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하여 나를 버렸으니 나는 물론이고 주인의 운명도 끝이 보이는구나!' 결국 삽살개가 죽던 날 주인인 노인의 목숨도 저승사자가 거둬가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샤머니즘이나 토템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저승사자로부터 주인을 지켜줬다는 삽살개 이야기를 접하며 지금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거리낌 없이 애견가라는 생각만 앞세워 덥석 두 마리 삽살개를 데려온 내가 성급하게 처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자꾸만 가슴 한편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3. 삽사리의 사랑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당이 좁아 내어 놓지도 못하고 지상에서 50cm 정도 떨어진 우리 속에 가둬놓은 청삽이 마당 귀퉁이를 돌며 손바닥만큼의 잔디가 묻어난 모서리에 응가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둘러보아도 탈출할 수 있는 우리가 아닌데 대체 어디를 통하여 탈출을 감행했는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낯선 터라 슬며시 다가가 붙잡으려 시도했지만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린 청삽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청이! 이리 오지 못해!"
아무리 부르고 얼러도 짐짓 당신이 누구냐는 듯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기뻐 날뛰는 녀석을 잠시 지켜보자니 가슴이 떨려 왔다. 워낙 큰 덩치에다가 바로 옆은 차들이 주행하는 포장도로라서 자칫 사고가 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시 비켜서서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물론 황삽 '노니'가 있으니 훨씬 걱정은 덜 수 있었다. 갑자기 우리 안에 있던 암컷 '노니'가 괴성을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자유를 만끽하던 청이는 암컷의 소리에 놀랐는지 이편을 흘끔 돌아보더니 쏜살같이 도로쪽을 향하여 내달았다. 내심 걱정이 앞서자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얼른 목줄을 맨 암컷을 우리에서 꺼내어 도로로 나갔다. 저만치서 칠렐레팔렐레하며 뛰어다니던 청이가 암컷을 보자마자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달려왔다. 잠깐인데도 반가운지 서로 코를 맞추고 킁킁대는 꼴이 꼭 부부 같은 모습이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목을 움켜쥐어 목줄을 단숨에 걸었다. 결국 다시 우리 속에 갇힌 청삽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뒤 내가 물을 주기 위해 수돗가에 간 사이, 다시금 철망을 넘어 암컷 노니'의 방에 들어가 누워 있었다. 아하! 바로 그것이구나! 청삽의 탈출은 바로 철망타기였다. 철망을 타고 넘어 비좁은 공간을 통해 자유자재로 옆방을 넘나들다가 결국 밖에까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틈이 벌어진 공간들을 찾아 다시는 청삽이 넘나들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암컷 '노니'의 행동이 점점 날카롭게 변해 갔다. 나의 방벽을 뚫고 어떻게 다시 암컷의 방으로 넘어갔는지 비좁은 암컷의 방에 수컷 청이까지 같이 있으니 너무 협소한 우리가 되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합방을 하기에는 서로의 심정이 맞지 않는지 동상이몽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쇠로 되어 있는 칸막이를 터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굵은 쇠창살은 쉬 잘리거나 꺾이지 않았다. 결국 절단기를 빌려서 그 일을 해 내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방이 넓어져서 행동이 편함은 물론이겠지만 둘의 합방은 쉽지 않았다. 또한 '노니'의 신경질은 날로 더하여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열대야가 연일 계속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깊은 밤잠을 뒤척이다가 급기야 밖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다. 현관문을 열자 가둬둔 공기보다는 밖의 공기가 조금은 선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청이와 노니는 괜찮을까? 제법 기간이 얼마간 지났기에 둘의 관계가 궁금했는데 설핏 우리 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을 몰래 타고 흐르는 침묵을 흔들며 가만히 다가선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은 어느새 청이와 노니가 부부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돌아선 부부의 등 위로 아직도 식지 않은 달빛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4. 투쟁
결국 청이의 탈출극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퇴근하여 둘러본 우리 속에서 일곱 살이 넘어 노년에 들어선 진도견 암컷 '신둥이'이가 다리를 절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 났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태연히 각자의 우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있지만 일은 청삽 청이가 저지른 것이 자명했다. 신둥이의 우리엔 먹다 남은 사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물그릇 또한 엎어져 한 방울의 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약간의 싸움질이 있었나 싶었지만 청이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워서 나가 보니 싸움하느라 난리가 났어요. 앞다리를 들고 물고 뜯고......"
굳이 옆집 아주머니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진도견과 삽사리의 충돌은 불가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성(異性)이었기에 망정이지 같은 수컷이었다면 정말로 둘 중의 하나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지금까지 제멋대로 넘나들게 방치해 둔 나의 잘못이 결국 나이든 신둥이에게 고통을 안겨준 꼴이었다. 이리저리 맘 내키는 대로 철망을 넘어 다니던 청이가 자업자득의 결실을 거두면서 탈출의 막을 내리게 된 이유였다. 철망을 다시금 높여 확실하게 칸막이가 설치되자 청이는 끙끙대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발가락 사이를 벌려 철망을 타고 올라 보지만 결과는 지붕에 걸리고 만 머리를 돌려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바닥을 긁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청삽 청이의 표정이 안타깝게 나의 시선을 잡았지만 산책을 하기 전까지는 저지른 죄에 대한 벌칙을 스스로 인내해야 하는 것이 청삽 청이의 운명이라고 나는 단정지어 버렸다. 앞으론 좁은 마당이지만 잔디를 더 심고 짬짜미 같이 놀아줄 생각을 했는데 ......
5. 두 번 울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게 될 텐데 눈물이라니! 고약한 자존심이 마음 밑바닥을 치고 올라 왔지만 요즘 들어선 곁에서 살아가는, 아주 내 가까이에 있는 아줌마가 다 되어간다.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슬픈 대목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일어나 베개를 더듬으니 흔건하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1등 아줌마는 새벽 기도를 하러 가 옆자리가 비어 없었다. 고즈넉한 천정에 매달린 전구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계면쩍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숫대야에 물을 틀어 놓고 얼굴을 씻으며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내 욕심을 채워준 삽사리들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날 거라고, 그래서 마음이 아플 거’라고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세숫대야에 떨어져 내렸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되었지만 한 번 흐려진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곧바로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청이, 노니 아버님! 한동안 뵙지 못했더니 얼굴이 그립습니다. 힘내세요! 존경하고 사랑 합니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가 좀 더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그의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포기보다는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하기를 신께 간절하게 기도드리며 문자 메시지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모두를 사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폰에서 문자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내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것은 병마와 싸우며 아직 그가 살아 있어 나와 교신할 수 있다는 사실과 어쩌면 -그의 불행 앞에서 죽음과 직면하지 않은 산 자의 안도감이 교차하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눈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새삼 간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까닭이기도 했으며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6. 산책
저만치 앞서 두 마리의 삽살개가 뛰어 간다.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본다. 해가 기울고 어둑한 빛이 산그늘을 타고 스멀스멀 내려와 그림자를 길게 늘어놓는다. 오늘은 삽사리들의 기분이 가장 좋을 것이다. 지금 내 뒤에는 삽살개들의 전 주인인 꼬마 아가씨 단비가 동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걸음이 넓은 녀석들이라 꼬마 아가씨가 따라 잡기에는 숨이 찰 수 밖에.
개들이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간암으로 입원하신 아빠에 이어 이번엔 골수암으로 고생하시는 엄마마저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가셨기에 당분간은 아내가 돌봐주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나간 삽사리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꼬마 아가씨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노니야, 청이야, 어디까지 갔니?... 돌아와!"
잠시 후 후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삽들이 달려왔다. 바람을 가르며 머리카락은 온통 뒤로 젖힌 채 달려오는 삽들을 보며 나도 마구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꼬마 아가씨가 문제였다. 워낙 겁이 많은데다가 산 밑을 타고 흐르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참에 꼭 물어 봐야 하는 것이다.
"청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알겠는데 노니는 왜 노니야?"
꼬마 아가씨는 잠시 멈칫 하더니
"청이는 심청이의 청이고 암컷이에요."
내심 나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삽들의 이름이 바뀌었음에 당황하고 있었다.
"청이가 청삽이 아니고 황삽이라고?"
"암튼요! 노니는요! 노니는......"
다시금 잠시 주저하는 것은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노니는 어떤 약초 이름인데요, 먹으면 무슨 병이고 낫는다는 풀......"
꼬마 아가씨의 목소리가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다.
"자 뛰어가자!"
나는 꼬마 아가씨의 손을 꼬옥 붙잡고 삽들이 질주하는 저 편을 향하여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7. 주인
가을비가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하루다. 마치 물 폭격을 받은 듯, 제주는 그야말로 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태풍 '나리'가 휩쓸고 간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다시금 북상하는
'위파'의 영향이라고 기상청은 늘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한다. 가끔은 기상청도 휘청거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야 얼마든지 변화무쌍하니까! 하지만 비싼 슈퍼컴퓨터를 들여 놓고 첨단 장비를 이용하는데도 빗나가는 예보에 격분하는, 아니 피해를 본 당사자들의 마음은 조금 다를 수도 있으리라.
여전히 빗줄기를 흘려보내며 삽살개는 우울하다. 간혹 마주치는 나와의 눈길을 통하여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같이 산책해 줄 여유가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밤 11시에 끝나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억지로 낼 수 없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삽사리의 주인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전화를 받고는 매우 우울해 한다. 결국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자식들을 병원에 부르는 모양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내는 성심껏 환자를 돌보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과학이 진단한 사형 언도를 쉽게 번복하거나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음이 좋은 아내의 허탈을 접하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얼마 전의 일이 반추된다.
"그래도 한 번은 만나 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선 전화를 해 보도록 하는 게 좋겠다!"
그의 핸드폰 컬러링은 늘 감미롭다. 그 컬러링을 오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이유는 무엇일까? 컬러링이 아니라도 아픈 기억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명함이 또한 그러했다. 손윗동서가 간암말기에 복수가 차 오른 모습으로 결국 지상을 떠났을 때도 나에게는 그의 컬러링이, 그의 명함이 슬프게 귓전과 눈가를 젖게 만들었으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만나지 않겠습니다. 내가 잘 못 살아온 것만큼 지금의 추한 모습을 보 이고 싶지 않습니다. 또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으로 누구를 도와준다고 거기에 답례를 받 기는 더욱 싫습니다."
그의 답은 확고했다.
내막은 이랬다. 그가 처음 나에게 아들 녀석의 논술 지도를 부탁했을 때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생각했던 것이고 그 보상의 일환으로 형편이 어렵고 힘든 아이 하나를 선정하여 학비와 급식비를 도와주겠다는 그 스스로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일을 실천하는 것에 협조와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찮은 수술비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그의 고통스런 나날을 보며 한 때는 장학사업을 만류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제 마음이 편해서 그런 것입니다.'하면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정된 아이는 부모님의 교통사고로 형편이 좋지 않은 가운데 수업료와 급식비가 여러 차례 밀려 있던 터라 마침내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바로 감사의 편지를 두 차례 썼고 많이 아프다는 소식에 한 번 병문안이라도 하고 싶어 한 것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더욱 뭉클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족을 불러 모은다니 마흔 일곱의 나이가 너무 아깝고 원망스럽다. 늘 새벽기도를 하며 주님의 뜻 가운데 털고 일어서길 원했던 아내의 바람은 다시금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년 전에도 간암 말기 환자의 발치료를 했지만 결국 그도 떠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주님은 침묵하실 것이며 그 침묵의 의미를 살아 있는 우리가 발견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며 당면한 과제이기에 당연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죽음을 담보로 파생되는 삶의 모습에서 경계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그런 죽음의 길에 그가 가까이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진다. 태국에서 지었다는 숙녀 '위파'라는 이름이 어떤 여인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8. 이별
삽사리가 운다.
태풍 위파의 영향으로 가슴 졸였던 밤이 지나고 소멸한 태풍이 몰고 온 열대성 후텁지근한 바람 내음을 맡으며 삽사리가 자꾸만 목소리를 높인다. 아마도 옛 주인이 그립거나 아니면 갇혀 있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갈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끙끙 대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아내는 아직 병원에 있다고 했다. 올케언니의 자궁을 들어내는 대 수술로 인하여 간호차 갔던 것인데 벌써 3일 째라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삽사리의 울음보다는 자고 있는 딸아이의 등교가 더 신경 쓰였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짧은 시간에 동물을 돌보려 서두르기 시작했다. 오골계와 토종닭들은 건강하게 잘 자란다. 봄에 깐 병아리들이 제법 횃대에 올라 푸드득거린다. 오골계의 위상은 대단하다. 벼슬도, 털도, 뼈도 심지어는 발톱까지도 새까만 놈들이 먹이를 주려하면 달려들어 내 손등도 쫀다. 거의 정리가 끝날 무렵 전화 받으시라며 딸아이가 나를 부른다.
"다시 말씀해 주실래요? 못 알아들었습니다."
"이제 임종을 맞을 것 같은데 장례절차를 기독교식으로 준비하려고요."
"임종을 앞두고 있다구요? 정말로요?"
놀란 내 가슴이 진정 되지 않으며 머릿속이 띵 울려와 공명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삽사리의 주인인 그가 이제 막 천국을 향해 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삽사리가 울어 댔던 것인가!
서둘러 씻고 출근을 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까지는 그가 고통스럽지 않게 임종을 맞이했으면 하고 기도했다. 불과 보름 전에도 같이 대화하던 그였다. 물론 3개월을 더 살지 한 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약을 끊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하게 나의 눈앞에 다가섰다. 아내는 수화기 저편에서 그의 죽음을 알렸다. 누구보다 아내가 마음 아파하고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밤새 불어 닥쳤던 바람들이 잦아들고 흩어지는 구름 속에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웃으며 떠난 그의 눈가에 눈물이 배어 있음도 보였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단지 그가 조금 일찍 천국문을 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언젠간 다시 만나 즐겁게 담소할 날이 있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그는 오늘 지상에서 떠나갔다.
두 마리의 삽사리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기억은 할까?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거두는 나의 손등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지만 못내 옛 주인을 두고두고 그리워할 것이다.
첫댓글 차니 님의 개인 게시판에 올린 글(1월 말)을 , 게시판 통합 작업으로 인해, 이 공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차니 님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모처럼 진지하고 깊게 읽은 산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