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보 제공업체인 재벌닷컴이 집계한 ‘작년 한국 400대 부자’에
박지만 EG 회장은 재산 규모 583억원으로 360위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은 대마초 구속과 석방을 오락가락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회 적응이 힘들었던 박지만씨가 어떻게 신흥갑부로 떠올랐는지 궁금해 한다.
박지만은 이미 알려진 대로 중앙고등학교 1학년 재학당시 어머니의 죽음을,
육군사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너무나 뼈아픈 가슴에 한 맺힌 인생이었기에 죽음까지 각오한
자포자기의 방탕생활에 빠지기도 하였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했지만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정신적 방황과 불면에 시달리던 그는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된다”는
친구의 유혹에 빠져 코카인 흡입으로 1989년 처음 불구속 입건된 이후
10년간 4차례 구속과 석방, 적발, 선처가 이어졌다.
2000년에도 히로뽕 복용이 뒤늦게 적발돼 2002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이 마지막 구속이 그에게 큰 자극을 줬다고
그를 아는 가까운 사람들은 말한다. 당시 그가 구속된 뒤 가족은 물론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다. 선처를 부탁하는 전화가 검찰과 청와대에
잇따르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때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다“는 마음의 전기를 갖게 된다.
그의 재기를 도운 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박 명예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스승과 제자로 관계로서 각별했다.
세계적인 철강업체 포항제철의 탄생도 이러한 관계가 배경이 된다.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회 집사인 박태준 명예회장은 방황하던 박지만을 교회로 인도한다.
박지만의 지인들은 “그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른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박태준 명예회장은
경제적인 면도 챙기기 시작했다. 박지만씨가 오늘날 EG 회장에 오를수
건 박태준 명예회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1987년 설립된 EG(당시 삼양산업)는 포항제철의 냉연강판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폐산을 독점해 전자용 산화철을 만드는 곳이다. 산화철 가공 부문에 수입 대체
기술을 갖고 있어 신기술 개발 벤처기업으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1989년 마약 혐의로 구속됐다 석방된 직후 박지만씨는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회장의 도움으로 이 회사의 부사장이 된다. 이후 1990년 2월 대표이사가 된 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도움을 받아 8억원을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박지만 회장에게 2004년 겨울은 인생의 분수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 12월, 16살 아래인 변호사 서향희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오랜 친구로 알려진 오명식 EG 상임고문은 “두 사람이 두 달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최근 양가의 허락을 얻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며
소식을 알렸다. 결혼식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몰리면서 미처 입장하지
못한 하객은 별도의 그랜드볼룸에서 스크린으로 예식을 지켜봐야 했다.
당시 식장 앞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김종필 전자민련 총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김성진 전 문공부장관, 박승규 전 민정수석,
민관식 전 문교부장관, 정서영 전 경제수석 등 3공화국 당시 내각과
청와대 핵심인사들이 총 출동했다.
박지만 회장은 결혼식 직후 아내 서 변호사와 함께 국립묘지를 찾아
부모님을 참배하고 폐백의 예로 축문을 읽었다.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근혜, 서영 두 누님과 박태준 회장님 내외분 등 수많은 어르신들이
참석하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뜻을 잘 받들며 사는 것이
곧 아버님 어머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 가겠습니다”.
박지만 회장은 결혼 후 이듬해 3.58㎏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아내 서 변호사는 결혼 전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나
박 회장이 전도해 함께 교회에 나가고 있다.
EG는 현재 전자기기의 주요부품인 페라이트 코어의 주원료인 자성 재료용
산화철을 수거해 재판매하거나 이를 활용해 복합재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영상·정보통신·전자·전력기기 등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에 적용되는
부품 분야의 핵심 소재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회사를 이끈 지 20년 만에 한국 400대 부자로 떠오른 박지만 회장!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새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저는 전직대통령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업가입니다.
회사가 커지면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앞날에 가없는 발전과 행운을 빈다/폄
첫댓글 모든역경을 이겨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면합니다.
박지만씨 어러운역경을 이겨내고 떠떳한 기업인으로 변신하니 돌아가신 부모님 과가족은 물론
온국민이 기뻐할 것입니다,,
어려서 있을 수 없는 뼈아픈 마음의 고통을 잘 이겨내시고 훌륭한 기업인이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지요..우리국민의 영원하신 지도자 고 박대통령님 내외분의 뿌리가 어디 가겠읍니까?? 손자 세현군의 재롱을
저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보이네요.^*^..
꼭 부모님에 대하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