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마천루 아래에는 전통찻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거리에선 영어, 중국 만다린어, 광둥어가 뒤섞여 들린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됐지만 마치 여전히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택시를 모는 중국인 기사처럼 중국에도 영국에도 결코 속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처럼 홍콩은 중국과 서양,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어 있는 독특한 곳이다. 글로벌 항공사 캐세이패시픽(Cathay Pacific)도 홍콩의 독특함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기업이다. 미국인과 호주인 조종사가 1946년 자신들의 모국이 아닌 홍콩에 설립한 항공사가 바로 캐세이패시픽이다. `캐세이` 또한 중국 대륙의 주류인 한족이 아닌 거란족의 이름 `Khitan`에서 따왔다. 캐세이패시픽은 인구 약 700만명에 불과한 홍콩의 국적기로 67년 만에 전 세계 39개국, 172곳에 출항하는 연매출 993억7600만홍콩달러(14조4000억원ㆍ작년 기준) 규모의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해 캐세이패시픽은 전 세계 항공사 중 순수익 8위, 국제선 기준 화물 물동량 2위를 차지했다.
매일경제 MBA팀은 지난달 27일 홍콩국제공항 캐세이패시픽 본사인 `캐세이패시픽 시티`에서 존 슬로사 최고경영자(Chief ExecuteveㆍCE)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인수ㆍ합병(M&A)나 저가항공 진출은 치열한 항공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근본적인 전략이 아니다"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더욱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존 슬로사 캐세이패시픽 CE와의 일문일답.
-경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한참 뜸을 들인 뒤 웃으며)흥미로운 질문이다. 각기 다른 주기를 고려해 경영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 1년 주기로는 연간 예산이나 주변 비즈니스환경을 확인하고 팀을 독려하는 등의 일을 한다. 3년 주기로는 상품 혁신과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IT시설이나 항공기 좌석 교체 등을 해야 한다. 또한 7년 주기로는 비행기를 관리해야 한다. 보잉 787처럼 새로운 항공기를 도입하려면 보통 6~7년 앞서 미리 주문해야 한다. 이처럼 항공사를 경영하려면 다음달에 무엇을 해야 할지, 3년 또는 7년 이후 무엇을 할지 동시에 결정해야 한다.
-케세이패시픽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2010년 바로 다음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유가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떻게 위기를 돌파했나.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항공사 이용은 결국 반복적인 것이다. 일등석ㆍ 비즈니스석ㆍ프리미엄이코노미석(이코노미석보다 더 넓고 비즈니스석 기내식을 제공) 고객들 대부분이 `반복구매 고객(repeat customer)`이다. 제품과 서비스가 탁월해야 고객들이 다시 찾아온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를 손봤다. 장거리 노선 비행기 대부분은 새것이다. 공항 라운지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 중이다. IT플랫폼을 개선해 고객들이 어디서든 캐세이패시픽과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이 캐세이패시픽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경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둘째로 항공기에 대한 투자다. 최근 3년간 고유가로 인해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캐세이패시픽처럼 장거리 노선이 많은 항공사는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거리용 항공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연비가 좋은 보잉 777-ER 기종을 계속 늘리고 있다. 2015년엔 아마 이 기종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운영하는 항공사가 될 것이다. 반면 노후화된 747-400 기종은 줄여나가고 있다.
또한 항공사도 결국 `피플 비즈니스(People Business)`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지속적인 투자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의 관계 강화다. 홍콩은 중국에 있어 환상적인 관문이다. (중국 국적 항공사인) 에어차이나(Air China)와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여러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결국은 일등석ㆍ비즈니스석ㆍ프리미엄이코노미석 등 프리미엄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효율적인 노선과 일정, 좌석과 기내식, 기내엔터테인먼트, 공항 라운지 등과 이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들의 조합이 중요하다. 이는 경쟁 항공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캐세이패시픽은 경쟁사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
- 캐세이패시픽은 홍콩의 국적기로서의 이점을 누려왔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국 항공사들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는데.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오히려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오게 됐다. 이는 자회사인 드래곤에어(Dragonair)의 시장이 커졌다는 뜻이다. 홍콩은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좋은 입구(entry point)다. 항공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산업 중 하나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내외부의 네트워크를 동시에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드래곤에어를 활용함과 동시에 에어차이나와의 협력을 강화해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홍콩과 중국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승객들도 더 많이 확보했다.
-드래곤에어를 저가항공사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현재 캐세이패시픽과 고객층이 겹쳐 자기잠식이 우려되지 않나.
▶캐세이패시픽은 드래곤에어 인수를 통해 거대한 중국 노선을 얻을 수 있었다. 드래곤에어는 중국 내 22개 지역을 매주 약 400편 운항 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5년 내 30개 지역에서 주당 600편 운항이 가능할 것이다. 드래곤에어 인수를 통해 캐세이패시픽이 얻은 것은 두 가지다. 드래곤에어는 캐세이패시픽이 중국 본토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 동시에 드래곤에어는 캐세이패시픽과 홍콩의 매력을 더 키워줬다. 캐세이패시픽을 타고 홍콩에 도착한 뒤 드래곤에어를 타고 중국 본토를 방문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를 통해 허브기점으로서의 홍콩의 매력을 더욱 강화해주고 있는 것이다. 서로 시장을 잠식한다기보다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6년간 캐세이패시픽과 드래곤에어를 연계해 이용하는 승객수가 3배 증가했다. 양사 간의 시너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드래곤에어는 중국 국내 시장용, 캐세이패시픽은 국제용으로 봐야 하나.
▶맞기도 하면서 틀렸다. 중소형 항공기를 주로 운영하는 드래곤에어는 중국 말고도 캐세이패시픽의 대형 항공기들이 못 들어가는 작은 지역 허브에 진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드래곤에어는 한국의 부산ㆍ제주나 베트남의 하노이ㆍ다낭 등과 같은 아시아의 작은 공항들에 대한 취항도 늘려가고 있다.
-항공사 간 M&A가 늘고 있다. 캐세이패시픽도 홍콩항공(Hong Kong Airways)과 드래곤에어 등 성공적인 M&A 과정을 거쳤다.
▶나는 항공산업에서 M&A가 일반적인 전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항공사들만 예외적으로 M&A가 잦았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2006년 드래곤에어를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이를 통해 중국 내 노선을 강화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M&A는 캐세이패시픽의 핵심 전략이 아니다. 케세이패시픽은 (기존 사업을 통한 성장을 뜻하는) `유기적인 성장`(organic growth)을 더 중시한다.
-일등석, 비즈니스석은 특히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데, 대책이 있나.
▶작년 4월 도입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 좋은 대안이다.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은 운영한 지 10개월 만에 매출 약 10억홍콩달러(1450억 원)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비즈니스석은 물론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홍콩은 금융 허브로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을 꾸준히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 캐세이패시픽은 홍콩 항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기로 인한 어려움을 덜 겪는 편이다.
-캐세이패시픽의 화물 운송 성적은 우수한 반면 승객 운송 성적은 상대적으로 저조한데, 저가항공 시장에 뛰어들 계획은 없나.
▶화물과 승객 운송은 성격이 다르다. 화물은 전통적으로 아시아 항공사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을 포함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에 강하기 때문이다. 2010년 화물 운송 성적은 역대 최고였고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조만간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장거리 화물 운송 시 연비가 좋은 보잉747 13대를 주문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항공사는 다양한 시장 세그먼트(segment)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대서양 노선만 운행한다든지 비즈니스석만 갖춘 비행기를 운행한다든지 특정 세그먼트만 고집하다가 망한 항공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저가항공과 거의 모든 노선에서 매일 경쟁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더 효율적이다. 단순히 저렴한 가격의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프리미엄 고객 등 다양한 객층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안하는 것이 더 낫다. 각종 프로모션 등을 따져보면 가격 측면에서도 저가항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처럼 저가항공과의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저가항공 진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항공사 최고경영자는 유가 변동이나 환율 등 갑작스런 외부 요인에 대처해야 하는데, 노하우가 있다면.
▶유가 변동에 대처하는 전략은 두 가지밖에 없다. 우선 연비가 좋은 비행기를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3년을 내다보고 헤징(hedging) 전략을 쓰는 것이다. 보통 연료 수요의 30~40%를 헤징한다. 나는 항상 매니저들에게 얘기한다. "변동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변동성은 일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항공사를 경영하려면 변동성에 익숙해져야 한다.
■ He is…
존 슬로사 그는 지난 2011년 3월부터 캐세이패시픽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1980년 캐세이패시픽의 모기업인 스와이어그룹(Swire group)에 입사했다.
이후 캐세이패시픽 홍콩, 미국, 태국 항공사업부 등을 거쳐 2007년 6월 캐세이패시픽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역임했다. 캐세이패시픽 최고경영자 외에도 홍콩 드래곤에어 회장직과 코카콜라의 병입업체(보틀러)인 스와이어음료(Swire Beverages)의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