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정 쇠실로 나가
삼월 마지막 날은 금요일이었다. 새벽녘 잠 깨어 전날 천주산에서 보고 온 진달래꽃 잔영이 머릿속에 남아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저렇게 놓은 수는 누구의 솜씨런가 / 직녀가 하강해서 직조한 비단인가 / 천주산 북사면 응달 붉디붉은 꽃바다 // 격정을 참지 못한 불붙은 정념으로 / 연인을 사모하다 달아진 얼굴처럼 / 선홍색 화인을 찍고 어쩔 줄을 모른다” ‘황홀경 진달래꽃’이다.
아침 식후에 문우들과 트레킹을 겸한 봄나물 채집을 나서게 되었다. 도지사 옛 관사 앞에서 만나 운전대를 잡은 분의 차에 함께 타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일행 다섯 명은 순천을 출발해 부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진영을 지난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역에 내리기 전 창밖에는 봉화산의 사자바위와 노 대통령 사저 봉하마을이 보였고 화포천 습지의 갯버들을 유록색을 띠었다.
한림정역은 이용 승객이 적어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은 무인역으로 강등되어 매표창구에 직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창원에서 우리와 함께 타고 간 한 아주머니가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 구내를 둘러봤다. 우리는 역 광장으로 나가 준비한 다과를 들면서 하루를 보낼 일정을 의논했다. 일행 가운데 두 분은 오후 늦은 시각 창원 문협 주관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기도 했다.
우리는 철로와 나란히 모정으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다. 모정은 화포천 습지가 샛강이 되어 낙동강 본류로 합류하는 대형 배수장이 있는 곳이었다. 모정에 이르기 전 철길 굴다리를 지나 오서마을 앞에서 하천을 따라 쇠실로 불리는 금곡 본동으로 향했다. 작약산 남향 기슭에 자리한 금곡마을은 김해 입향 광주 노 씨들의 집성촌으로 홍수 시에 수해를 피할 수 있는 촌락이다.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가 자라는 동구를 지나니 마을 회관을 겸한 노인정이 나오고 밭일을 하는 아저씨와 할머니를 만났다. 평소 외지인이 드나들 경우가 드문 곳이라 우리를 의아하게 생각할까 봐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산책 산행을 위해 마을을 지난다고 했다. 마을에서 생림으로 넘는 고개를 향해 가면서 길섶에 내가 봐둔 전호나물을 가리키면서 나중에 나올 때 캐 가자고 했다.
금곡리 마을 안길에서 쇠실고개로 가는 길섶에는 전호나물이 자생하는 곳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전호가 나물이 되는지 몰라 거들떠보질 않고 방치해 두었더랬다. 나는 보름 전 생림으로 트레킹을 나서면서 그 전호를 캐 꽃대감에게도 보내고 우리 집 찬거리로 삼아 잘 먹었다. 동행한 일행들은 처음 보는 싱그럽게 자란 전호나물을 신기해하면서 허리를 굽혀 한 줌 뜯어 보기도 했다.
골짜기의 과수원과 산기슭에서 피는 복사꽃이 절정이라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했다. 활엽수 숲에서는 연초록 잎이 돋아 눈이 부실 정도였다. 쇠실 고개 산마루 쉼터에서 과일과 차를 들면서 작약산 임도로 트레킹을 나설 의향을 여쭈자 모두 되돌아가면서 전호나물을 캐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고개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섶에 자라는 전호나물을 캐서 봉지에 채우기 여념이 없었다.
각자 전호나물을 흡족하게 캐 마을 안길을 지나 정촌으로 나가니 예전 초등학교 터는 대안학교가 들어서 있었다. 화포천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 시전마을에서 들길을 걸어 한림정역 근처 식당으로 들었다. 일행들은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차려져 나온 불고기 백반으로 점심상을 받았다. 나는 반주로 맑은 술도 몇 잔 비웠다. 이후 한 전원주택에 핀 기화요초를 완상하고 찻집을 찾았다.
찻집에서 망고 무디스를 들면서 한담을 나눈 뒤 동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중앙역에 닿았다. 역무원이 없는 역이라 객차에서 승무원이 표를 끊어주어야 하는데 일행이 다섯 명이나 되었음에도 창원중앙역에 내릴 때까지 나타나질 않아 고의성이 없는 무임승차를 하고 말았다. 아침에 출발했던 도지사 관사 앞에서 헤어지면서 후일 언제 얼굴을 뵙자고 인사를 나누었다. 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