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이 풍년
정 끝 별
쩍 벌어진 으름 씨는 새가 먹고 굴러 떨어진 헛이름은 개가 먹고 갓 벌어진 주름은 내가 먹고 군침 흘리던 해어름 먹구름은 나와 개와 새를 으르며 붉으락 붉으락 으름장을 펼쳐놓고 아뿔싸 입에 쩍쩍 들러붙은 가을 게으름이라니! 음 물큰한 처음 졸음처럼 들척지근한 죽음 음음 잘 익은 울음 오랜 으름 다 먹었다
- 시집〈은는이가〉문학동네 -
은는이가 - 예스24
그러니까 이건 너무 새로운 사랑 이야기시인을 업으로 삼은 지 26년. 그리고 다섯 권의 시집. 대략적인 계산으로 치자면 5년에 한 번 새 시집을 펴낸 셈이니 시를 두고 그리 서두르지도 그리 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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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집 《은는이가〉 문학동네 | 2014
장미차를 마시며
시 쓰는 후배가 인도에서 사왔다며 건넨 장미차 보랏빛 마른 장이들이 오글오글 도사리고 있다 잔뜩 오므린 봉오리를 감싸고 있는 건 연두 꽃판이다 아홉번을 다녀갔어도 후배의 연애는 봉오리째 차마 열리지 못했는데, 그게 늘 쓴맛이었는데 찻물에 마른 장미 아홉 송이를 띄운다 여름 직전 첫 봉오리가 품었던 목마름은 오랜 물에도 좀체 녹아들지 못하고 보라 꽃잎에서 우러나온 첫물은 연둣빛이다 피어보지 못한 것들의 무연한 숨결 첫물은 그 향기만을 마신다 아홉에 한 송이쯤은 어쩌다 활짝 따뜻한 물에서 꽃피기도 하는데 인도밖에 갈 곳이 없었던 후배의 안간힘도 그렇게 무연히 피어났으면 싶었는데 붉게 피려던 순간 봉오리째 봉인해버린 보랏빛까지 다 우려내고도 결코 열리지 않는 물 먹은 숱한 꽃봉오리들 적막히 입에 넣고 씹어본다 보랏빛 멍을 향기로 남기는 제 몸 맛처럼 안으로 말린 모든 꽃이 쓰리라 채 피우지도 못한 꽃일수록 그리 떫으리라
- 시집〈와락〉창비 -
와락 - 예스24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끝별의 네번째 시집. 분방한 시적 상상력으로 사랑과 가족과 사람과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
정끝별 시집 〈와락〉 창비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