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 ‘불쑥’… 킥보드 사고, 2년새 4배로
[속도에서 생명으로]〈7〉도로 위 무법자 ‘킥라니’
2016년 2월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도로에서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로 길을 건너다 차량과 부딪혔다. 삼성화재 제공
지난달 25일 경기 이천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인도를 달리던 고교생이 다섯 살 어린이를 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를 낸 킥보드에는 고교생 2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둘 다 안전모를 쓰지 않은 상태로 인도를 주행하다 아이를 치어 부상을 입힌 것이다. 피해 어린이는 사고 이후 밤에 자주 우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사고는 안전모를 쓰지 않고, 두 명 이상이 탑승해, 인도를 주행하는 등 킥보드 이용자들의 무법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보행자, 자동차 등과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2년 만에 4배로 늘었다. 대부분 관련 법규를 지키지 않은 경우였다.
○ 킥보드 사고 2년 만에 4배로… 법규 위반 심각
28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가 가해 운전자(과실 비율이 더 높은 경우)로 분류된 교통사고는 2018년 225건에서 지난해 897건으로 2년 만에 4배로 증가했다. 사상자 수는 995명이었다. 특히 개인형 이동장치와 보행자 간 사고는 더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보행자와 충돌한 사고는 304건으로 2018년(61건)과 비교해 5배로 늘었다.
개인형 이동장치의 이용자가 많아지는 반면, 관련 법규는 잘 지켜지지 않아 사고가 급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는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2인 이상이 동승해서도 안 된다. 또 만 16세 이상 원동기장치 면허를 지닌 사람만 이용이 가능하다. 인도로 주행하는 것도 금지된다. 자전거도로나 일반도로의 우측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 이 같은 법규들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1만∼13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5월 13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적발된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위반 건수는 2245건으로 집계됐다.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에서도 법규 위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화재가 자사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와 자동차 간 사고 127건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인도 주행, 역주행 등 킥보드 이용자의 법규 위반에 따른 사고가 많았다. 특히 킥보드 이용자가 인도를 주행하다가 도로나 주차장을 횡단할 때(26%)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전체의 87.4%(111건)는 킥보드 이용자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난 사고였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동 킥보드는 자전거에 비해 바퀴가 작고 무게중심이 높아 차량과 사고가 발생하면 이용자가 머리나 얼굴을 다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 “인프라, 법, 인식 다 함께 바꿔야”
개인형 이동장치 시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12만6000대 규모였던 개인형 이동장치 시장은 지난해 18만8000대 수준까지 커졌다. 앞으로 그 규모가 더 커져 2029년에는 49만3000대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커지는 만큼 개인형 이동장치가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도록 교통 인프라와 관련 법령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인프라 확충이 안 된 상태에서 먼저 법을 통한 규제가 들어가면서 법규를 지키고 싶어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며 “개인형 이동장치만의 편리함과 유용성이 있는 만큼 도로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4차산업혁명교통연구본부장도 “우리나라의 자전거도로는 일반도로의 10분의 1에 불과하며 그중 80% 이상이 보행자 겸용 도로라 개인형 이동수단이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도로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동 킥보드는 오토바이, 자전거 등에 준하는 엄연한 도로 위 교통수단으로 봐야 한다”며 “이용자들도 개인형 이동장치의 불법 주행은 자동차의 불법 행위와 같다는 생각으로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 변종국(산업1부) 신지환(경제부) 정순구(산업2부) 이소정(사회부) 신아형(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