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쯤으로 기억한다. 그 때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바람도 쐬고 마음도 추스를 겸, 무작정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 동해로 차를 몰고 떠난 적이 있다. 늘마음은 있어도 잘 가지지도 않던 곳이라 핑계 김에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모처럼 고속도로 여행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 MP3도 아니고, 정품 CD도 아닌 만원에 두 장 들어 있는 고속도로 CD(최신곡들 모아 놓은 것) 하나 사서 들으며 겨울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아는 노래도 지나 가고, 생전 처음 듣는 노래도 지나 가기를 수 차례, 귀에 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 나오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닌 MC몽의 랩이었다. 아직 그가 신곡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다른 누군가의 노래에 피처링 한 곡이겠거니 생각하고있었는데 그의 랩에 이어 귀에 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목소리의 노래가 귀를 사로잡았다. '사랑해. 세월이 지나도, 널 사랑해. 세상이 변한대도, 다른 누구도 널 대신할 순 없어. 너도알고 있잖아.....' 처음 듣는 노래임에도 단 번에 필이 꽂힌 이 노래, 분명 귀에 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이 목소리의 정체는 누구일까 몹시도 궁금했다.
CD 케이스의 노래 목록을 훑어 보고 나서야 그 노래가 MC몽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케이윌의 'Love 119'임을 알 수 있었다. 케이윌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목소리가 낯선 목소리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2007년에 '왼쪽 가슴'이란 R&B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던 그 케이윌이었던 것이다. 순간 의아했다. 그 노래가크게 히트한 노래가 아니라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왼쪽 가슴'이라는 노래와 'Love 119'라는 노래가 매치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명곡을 짝퉁 CD로 들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여행에서 돌아오는 대로 MP3에 저장함은 물론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으로 곧바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그 노래는 두 달 뒤 그의 신곡인 '눈물이 뚝뚝'으로 바뀌었고, 그 노래는 이승기의 '결혼해줄래'가 나올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케이윌은 2007년에 발표한 1집 앨범의 부진을 씻을 만한 놀라운 가창력으로 2008년 12월에 발표한 싱글 'Love 119'의 대박과 2009년 3월에 발표한 미니앨범의 수록곡 '눈물이 뚝뚝'과 '1초에 한 방울'이란 곡의 연속 성공으로 그야말로 눈부신 성과를 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Love 119'는 그 때 처음 들은 노래가 아니었고, 이승기의 녹도 낙오로 유명한 1박 2일 '외연도편' 2탄의 엔딩 즈음해서 삽입곡으로 쓰였던 노래라서 그 때 당시에 이미 들었던 노래였는데 나중에 재방을 통해서 알았던 사실이다.
공중파 음악 프로를 잘 보지 않아서 그가 음악 프로의 1위 경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케이윌의 2009년은 1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찬란했다. 미니앨범의 성공 후 그는 그 당시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올라 가고 있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중반부 이후에 삽입되었던 주제가 '사랑은 벌이다'로 OST에까지 참여하게 된다. 당시 이 노래는 드라마 내에서 이승기와 한효주의 멜로라인이 형성될 때 적절하게 삽입되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드라마 종영 후에도 새로 발표한 싱글 앨범에 수록된'초콜릿'이라는 노래로 계속해서 인기 행진을 이어 가고 늦가을에 드디어 정규 2집 앨범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를 발표하며 거침없이 활동을 이어 갔다.
그러나 화려했던 2009년과는 달리 2010년은 그의 모습을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봄의 시작과 함께 발표한 '선물'이라는 노래가 히트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대박 행진은 2010년에도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로 그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라마 '산부인과'의 주제가 '사랑까진 안돼요'는 드라마가 별 반향이 없던 탓에 노래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브아걸의 미료와 함께 부른 '버스가 떠난 뒤에'나 길미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미안해 사랑해서'는 본인의 노래인지 그들의 노래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의 반응이었고, 별로 큰 히트를 만들어낸 곡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살며시 모습을 숨겼고, 10월에 가서야 드라마 '대물'의 OST에 참여해 '태양'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겨우 존재감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이렇게 극과 극의 2년을 보냈던 케이윌이 2011년은 다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달에 '기가 차'라는 노래를 맛보기로 발표했지만 워낙 여러 사람이 참여한 탓에 그의 개성을 드러내긴 힘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돌아왔다. 게다가 '가슴이 뛴다'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 두 곡을 더블타이틀로 해서 돌아온 것이다. 지난 1년간 다른사람 노래 피처링이나 OST곡만으로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이제 '선물' 이후로 그만의 매력적인 창법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곡으로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반응 또한 좋다. 2년 3개월 만에 컴백한 빅뱅의 아성에도 흔들림없이 차트 상위권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 아울러 방송 프로 여러 곳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니 그가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난다.
얼마 전에 한 예능 프로에 출연했던 케이윌이 요즘 왜 뜸하냐고 묻는 MC들의 질문에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 데뷔에 밀려 자신이 못 나오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예능 프로인만큼 우스개로 한 말이겠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 나왔었다. 별 주목을 못 받은 데뷔 앨범 후로 한참 뜰 때는 빅뱅의 대성이나 김종국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엉뚱하게 주목 받기도 하고, 소속사에서 밀어 주는 걸그룹 때문에 한 해를 어정쩡하게 보내야 했던 아픔도 있다. 물론 그 소속사에서 밀어 주고 있는 걸그룹은 나름 성공한 걸그룹이라 얘기할 수도 있으나 아직은 성공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소속사에는 그렇다고 해서 내로라 하는 톱스타도 없다. 그런데 그 소속사는 케이윌이라는 훌륭한 가수를 보유하고 있다. 비주얼 면에서는 아이돌에 비견되지 못할 정도이긴 하지만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게 쉽지 않을 정도로 가창력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그런 가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속사 입장에서는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가수를 어째서 1년을 그리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나몰라라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름대로의 이유야 있겠지만 그가 컴백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은 방송사를 종횡무진하고 다녔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연예 기획사라는 곳도 기업체이고 따라서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다 보니 좀 더 스타성이 있는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Love 119'때부터 '선물'까지 그리고 이번 '가슴이뛴다'의 반응을 보면 케이윌은왠만한 아이돌 못지않은 파급력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물론 아이돌만큼의 팬덤이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노래가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의외로 많고, 그의 노래가 나오면 항상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것은 팬덤이 아닌그들의 힘이라는 것을이제부터라도 알고 그를 제대로 밀어 주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어제 '놀러와'에 출연한 케이윌을 보니 7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고 한다. 준비기간이 길고 연습생 시절이 길었다고 해서 모두 다 실력있는 가수들은 아니지만케이윌은 준비 기간 만큼과 비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실력으로 빛을 보고 있는 가수이다. 그러나 실력과 잠재력에 비해 그만큼의 대박을 일구지 못하고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충분히 더 날아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도 어느 이상을 날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깝기도 하다. 이제라도 소속사에서는 케이윌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길 바래 본다. 어차피 아이돌은 거의 끝물에 이르러 작년에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나던 아이돌들이 지금은 거의 새로 탄생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니 지금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에게 투자하는 만큼 케이윌에게도 투자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실력파 가수로 거듭날 가망이 충분하다.
올해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 더욱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케이윌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다른 이들에 비해 적어야 했던 그가 그의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